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장 원하시는 것은 우리가 영적으로 충만한 성장을 이루고 의와 진리의 사람이 되어, 땅이 아닌 하늘의 영원한 생명과 나라를 함께 누리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가 당신께서 온 사랑으로 지으신 피조물이요, 당신의 형상을 닮은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당신 안의 이러한 사랑의 열정을 이루시기 위하여, 하늘 문을 여시고 우리가 영적인 생명을 얻고 성장할 수 있는 충분하고도 넉넉한 것들을 당신을 찾는 자들을 위하여 준비하여 두셨으며 공급하여 주십니다. 이를 기뻐하십니다.
성경을 보면 예수님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오, 그 근본은 하나님이신바 하나님은 결국 이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전부 내어 놓으셨습니다.
빌2: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빌2:7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빌2: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그리고 우리에게 오신 성령도 하나님의 영이신바 하나님은 우리의 영적 생명과 성숙을 위하여 당신의 모든 것을 주시고, 이제는 천사나 선지자를 통하여서가 아닌 당신이 친히 오셔서 우리와 함께 ‘너는 나로 더불어 먹고 너는 나로 더불어 먹기’를 기뻐하시며 우리의 영적 성장을 기대하시고 계십니다.
이를 위하여 살아계시는 인격체이신 하나님의 성령은 우리 속의 생명의 본체인 속사람 곧 우리의 영에 하늘의 생명력과 거룩한 불의 감화력을 공급하셔서 우리를 육체와 사망의 것이 아닌 생명의 성령, 생명의 하늘 안으로 인도하시는 것이지요.
땅이 공허하고 흑암이 깊음 위에 있을 때 하나님의 신이 수면에 운행하신 것처럼, 자꾸만 우리 안에서 일렁거리는 육적 혼적 사망의 어둠과 혼돈의 물결을 다스리시길 원하시는 것이지요.
이를 위해 성령께서는 우리의 심령에 빛을 얻게 하시려 빛이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를 인도하시고, 세상과 죄를 이길 수 있는 능력을 받게 하게 하시려 우리를 기도의 세계로 이끄십니다.
이를 위하여 혹 우리가 육체의 소욕을 좇아 어둠과 사망의 길을 걸어갈 때는 도리어 견디기 힘든 공허와 곤고함으로 우리를 회개로 이끄시고, 하나님의 생명의 자양분을 공급받는 경건생활에 게으르면 깊은 목마름으로 천천히 흐르는 생명의 실로아의 물, 생명의 떡이요 음료이신 생명의 주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찾게 만드십니다.
하지만 우리가 삶에서 경험하다시피 우리의 타락한 육의 본성의 뿌리도 결코 얕지 않고 또 우리의 삶의 수고로움도 결코 적지 않으니, 그 힘겨움 속에서 우리를 보암직도 하고 먹음짐도 한 사망의 선악과를 이끄는 사단의 유혹도 만만하지만은 않습니다.
육신의 눈에는 멀게만 느껴지는 하늘의 것이 아닌 지금 땅의 만족과 즐거움을 구하는 우리 겉사람의 눈에는 그런 사람의 유혹이 적잖이 보임직도 하고 먹음직도 하여 우리 속엔 언제나 늘 영과 육의 싸움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이 싸움이 사도바울의 고백처럼 결코 만만하지 않습니다.
롬7: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그래서 우리는 때로 이기고 때로 지며, 때로는 지고 또 지기도 합니다.
때로 우리는 거듭되는 이러한 일련의 실패 속에서 자신 안에서 실망하기도 하며 낙담하기도 하며 하늘의 의와 진리를 이루는 일에 주저앉기도 합니다.
하지만 앞에서 기록한 것처럼 우리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과 하나님께서 당신의 생명까지 주시며 그 사랑 안에서 우리에게 원하시고 기다리시고 주시고 싶어 하시는 것이, 곧 썩고 쇠할 땅의 생명과 것이 아닌 하나님의 안의 하늘의 생명과 영원한 것들임을 알아 우리는 언제나 오뚜기처럼 일어나야 합니다.
하나님의 그 간절한 사랑의 바람과 또 필연적으로는 우리 자신을 위해서 다시 일어나고 일어나야 합니다.
누구도 완전한 의와 진리의 삶을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어릴 때는 어린만큼 더 많이 넘어지고 실족하는 것이며 그런 실족과 실패와 우리의 노력이 더불어 우리는 조금씩 성장해 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실패의 뒤는 돌아보지 말며 다시금 일어나고 일어나 앞의 빛, 곧 생명의 성령의 법, 진리와 자유의 법으로 나아오고 또 나아가야 합니다.
성경과 성경을 통하여 우리에게 알게 하시는 하나님의 우리를 향하신 이러한 경륜을 우리와 교회는 잘 알기에, 이러한 영적 생명과 성장을 위하여 다양한 훈련이나 방법론들이 많이 있습니다.
사실은 본질은 하나일 텐데 사람은 영원이 아닌 시간 안에 있어 같은 일상이나 것들엔 싫증을 느끼는 면면이 있어, 어떠한 측면이나 방법을 강조한 영성 훈련이나 방법들이 새롭게 나오고 나와 우리에게 신선한 동기와 동기부여를 주며 영성을 향한 촉매의 역할을 합니다. 그리고 때로는 이전에는 몰랐던 조금은 독특한 영적인 진리가 있어 유익함을 누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예컨대 기도를 이렇게 하라는 등의 기도론 훈련이나 방법론 등은 영적 성장을 이루어 가는 과정에 도움을 주는 한 부분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신선함에 그러한 방법론을 따라 행하여 보기도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또 새로운 것이 그립고 흥미를 잃어가곤 하는 것입니다. 이는 유익하기는 하나 더 깊은 근원적이고 궁극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물은 언제나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 궁극적이고 근원적인 진리는 시간 속에서 쇠하지 않는 영원한 것입니다. 사람의 성정상 같은 것들엔 식상해 하는 속성이 있지만 그래도 영원한 진리는 한편 영원한 새로움으로 다가옵니다.
어떤 훈련이나 방법도 유익하기는 하지만 그것은 부분이요, 영성을 이루어 가는 길은 우리의 영혼육의 온 삶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이끄시고 이루어 가시는 전삶적이며 전인적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성을 이루는 길에 있어서 조금은 궁극적이고 본질적인 내용으로 접근을 해야 합니다.
가령 남녀가 가정을 이루어 온전한 한 마음 한 몸을 이루는 여정에는 외적인 어떤 것들보다 마음의 깊은 것들로부터 서로 하나가 되어가야 하듯이, 하나님과 생명의 합일인 영성을 이루어 가는 길도 같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그런 참다운 영성을 이루어 가는 본질적인 것, 근원적인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마22:37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마22:38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물론 하나님을 그렇게 사랑하기 위해서는 말씀도 필요하고 기도 등도 필요합니다. 말씀과 기도 등을 통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얻게 되고 또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 안에서 기도와 말씀 등도 행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사랑과 경건의 생활 등은 생명의 유기적인 관계로 놓여 있으나 그래도 본질과 바탕은 하나님 사랑입니다. 그리고 그래야 합니다.
너무도 당연한 말 같지만 실상 우리의 신앙생활에는 이렇지 않은 면이 많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무엇이 필요해서 기도하고 말씀을 읽는 경우도 참 많습니다. 나를 위해 무엇을 얻고 싶고 나를 위해 마음의 평안과 위로를 얻기 위해서 하는 신앙의 행위들도 많습니다. 이런 경우는 자기사랑일 뿐이요 하나님 사랑이 아닙니다.
이런 경우는 하나님은 사랑의 대상이 아니라 자신의 요구를 들어주어야 하는 도우미의 대상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또 진정한 하나님 사랑 안에서 행하지 못하는 것들은 가령 무슨 섬김이나 무슨 일을 행하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말씀이 하늘이나 땅에서나 심은 대로 거둘 것을 말씀하고 계시니 그렇게 성취될 것이지만, 우리 안에 자의로 어떤 것을 기대하는 기대 심리로 행하는 섬김이나 일들은 참 하나님 사랑 안에서 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령 이것은 회사를 사랑하는 마음은 없지만 급료를 위하여 다니는 근로자의 마음과 같은 것이지요.
참 사랑 안에서의 행함이란 고용주와 근로자의 관계처럼 무엇 일에 대한 대가를 요청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어떠한 하늘의 경륜으로 행하던지 좋은 것을 거두게 하실 것을 종용히 믿는 사랑과 믿음 안에서의 잠잠한 안식입니다.
무화과나무에 열매가 없고 외양간에 송아지가 없어도 사랑함으로 말미암아 여호와를 인하여 기뻐하는 기쁨입니다.
합3:17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합3:18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영성에 이르게 하는 근본의 길인 그러한 하나님 안의 사랑의 삶을 성경은 ‘너는 나로 더불어 먹고 나는 너로 더불어 먹으리라’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계3: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이것은 영성이 특정한 경건시간이나 훈련이나 방법이 아닌 온 삶과 생을 아우르는 개념이듯이 하나님과 사랑 안에서 더불어 잠들고 일어나며, 더불어 걷고 말하며, 더불어 먹고 마시는 삶이 영성에 이르는 길인 것입니다. 하나님과 더불어 온 시간을 보내며 하나님과 더불어 동행하는 삶인 것입니다.
이 땅의 생이 있는 한 우리에게 아픔과 수고로움이 있듯이 이 땅이 있는 한 하나님도 우리와 더불어 먹으며 동일한 아픔과 고난을 겪으십니다. 육신으로 땅에 거하실 때도 그러하셨지만 지금도 성령으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아픔을 우리와 더불어 겪으십니다.
롬8: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구속의 사역이 중보의 사역인 만큼 주님은 대신 말해 주고 대신 기쁨을 전해주고, 대신 아파해주고 대신 고난 당해주고 대신 울어줄 참 사랑의 우리를 기다리시는 것이지요. 그렇게 ‘주와 내가 언제나 더불어 먹는 삶’이 참된 하나님 사랑의 길이요, 영성에 이르는 근간이지요.
그러므로 영성과 영성에 이르는 길이란 언제나 하나님과 시간을 함께 하며 하나님의 행복에 함께 행복해하고 하나님의 고난에 함께 고난당하며, 더불어 기뻐하고 슬퍼하며, 하나님만이 참 선이시오 진리이시니 사랑 안에서 나는 죽어가는 잠잠함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향한 참 사랑 안에서 주님과 내가 더불어 그 무엇에나 동행하는 생의 여정에서는 말씀과 기도가 삶과 다른 것이 아니며 예배와 삶이 다른 것이 아닌 삶의 시간시간이 말씀이요, 기도요, 예배가 됩니다. 거룩한 산 제사가 됩니다.
그런 참된 하나님 사랑, 언제나 무엇에나 주와 더불어 동행하는 삶이 영성에 이르는 근간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 사랑이 아닌 자기 사랑 안에서 필요를 따라 하나님의 도움을 구할 뿐이니 헛되이 성전 문지방을 밟고 다닐 뿐입니다. 하나님 용서하세요.
롬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롬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말1:10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내 단 위에 헛되이 불사르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너희 중에 성전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도다 내가 너희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너희 손으로 드리는 것을 받지도 아니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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