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세계는 영이신 하나님과의 교통과 관계의 세계이지요. 우리가 잘 알다시피 그 중심에는 기도가 놓여 있습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하여 영이신 하나님과 관계를 맺으며 교통을 합니다.
그런데 이 기도도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니라 다양한 기도들이 있고 다양한 기도들에 따르는 기도의 원칙이나 원리도 다릅니다. 그래서 기도만큼 쉬운 것도 없고 우리가 경험하다시피 기도만큼 또 어려운 것도 없습니다. 성경은 다양한 기도를 ‘모든 기도와 간구’라고 적고 있습니다.
엡6:18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고
그래서 영적인 서적 중에 특히 기도에 관한 책자들이 수없이 많은데, 포괄적인 기도에 관한 글이 아니니 오늘은 중보 기도에 대하여 알아보려 합니다.
다만 포괄적인 기도에 관하여 본질을 말씀 드리자면 열심 있는 기도 생활을 하여야 할 것입니다. 영적 성장이나 개인의 영적 성향에 따라 기도의 유형도 다소 변해 가지만 기도가 신앙의 뿌리인바 우
은 열심 있는 기도 생활을 하여야 할 것입니다.
영적 경험이나 지식이 부족한 일반적인 그리스도인은 중보기도라고 하면 단순히 자신의 것이 아닌 다른 사람이나 다른 것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이라고 문자적으로 알고 있는데 원론적으로 맞는 말이지만 깊이 내용을 들여다보면 대략
3단계의 중보기도가 있습니다.
1. 마음의 기도
중보 기도의 첫 번째 단계로는 ‘마음의 기도’ 단계가 있습니다. 이것이 일반적인 그리스도인들이 중보기도라고 인식하고 있는 그러한 중보의 기도입니다.
곧 다름 아닌 자신의 마음과 생각 안에서 다른 사람이나 다른 무엇을 위하여 자신이 마음의 기도를 드리는 것이지요. 자신이 마음속에서 생각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중보의 기도를 드리는 것입니다.
중보기도의 가장 처음의 단계이지만 사람은 자신을 위한 자아가 강한 바 이런 마음의 기도라도 중보의 기도를 많이 드린다면 이는 사랑이 가득한 아름다운 그리스도인입니다.
2. 예언의 기도
두 번째의 단계로는 예언의 기도 단계가 있습니다. 이것을 보통 ‘예언적 중보기도’라고 우리가 일컫지요.
이 예언적 중보 기도의 단계는 내 마음 속의 생각을 좇아 기도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내용을 따라 다른 사람이나 무엇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 예언적 중보 기도를 드리려면 영적 의식이 깊어진 상태에서는 성령의 이끄심 안에서 마음이나 생각의 혼의 기도가 아닌 이끄심의 영의 기도가 가능하겠지만, 가장 평범하고 일반적이며 쉽고 유용한 기도의 방법은 ‘방언 기도’입니다.
기도의 대상을 분명하게 정하고 방언으로 기도를 시작하면 성령께서 우리의 영을 통하여 중보 기도의 대상을 위하여 기도를 이끄시게 됩니다. 통역으로 들어보면 무엇을 위하여 기도하는지를 알게
됩니다.
통역이 되지 않아 답답한 경우에는 마음으로 중보하고 또 방언으로 중보하는 곧 마음으로 기도하고 영으로 기도하는 방법이 유용할 것입니다.
고전14:15 그러면 어떻게 할꼬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으로 기도하며 내가 영으로 찬미하고 또 마음으로 찬미하리라
방언 기도를 통하여 이러한 예언적 중보 기도를 드리며 통역을 해 보면 대게는 평범한 수준에서 때로는 깊은 수준에서 인지되는 기도 내용을 통하여 기도 대상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알게 됩니다. 그래서 무슨 말을 권면해 주어야 되는지 알게 되는데 곧 권면의 예언의 말씀을 전할 수도 있게 됩니다.
우리 자신을 위한 기도도 그러하지만 본질적인 기도는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기도를 드리는 것인바 진정한 의미에서의 중보 기도는 이 단계에서부터라고 말씀 드릴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3. 동화의 기도
세 번째로 가장 깊은 영적인 중보 기도는 ‘동화의 기도 단계’입니다. 이것은 저도 경험을 해보기 전에는 잘 알지 못하였는데, 이 기도의 단계에서는 나는 사라지고 내가 곧 기도의 대상이 됩니다.
기도의 대상이 무슨 문제나 어떤 것일 때는 이러한 현상이 일어나지 않겠지만 타인인 경우에는 그 기도 시간만큼은 자신이 아닌 바로 그 사람이 되어 버립니다.
가령 아파하는 어떤 사람을 위하여 기도한다면 마음의 기도 단계나 예언의 기도 단계에서는 “하나님, 이 사람을 아픔을 긍휼히 여겨 주십시오”라고 기도의 표현이 나온다면, 동화의 단계에서는 “하나님, 내가 너무 아픕니다”라고 그 사람이 고백하듯 기도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이 시간만큼의 그 사람의 마음과 영과 동화되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표현만 그렇게 기도가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심령이 그대로 자신에게 임하므로 그 사람이 아파하면 아파하는 그대로 아파하게 되고, 슬퍼하고 있으면 그대로 슬퍼하게 되고, 울고 있으면 그대로 울게 됩니다.
기도가 깊어져 가면서 감정이나 느낌이 깊어져서 점차적으로 감정이나 느낌이 동화되어 가는 것이 아닙니다. 영의 전이로 순간적이고 즉각적으로 그 시간만큼은 그 사람이 되어 버립니다.
영적 감각의 날을 세워 주신 가운데 다양한 것들을 경험시켜 주시는 가운데 이러한 중보 기도도 종종 경험하게 하셨는데, 찬양과 기도 가운데 영 안에서 희락 가운데 있다가도 아픈 사람을 위하여 중보 기도를 시작하면 바로 그 사람이 되어서 아파하며 울게 되거나 답답한 문제를 가진 사람이라면 그 답답함이 그대로 전해져 와서 영적 신음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성령 안에서의 기도의 시간은 기쁘고 즐거우나 중보 기도의 시간만큼은 영적으로 힘겨운 영적 신음을 하게 되는 것이 참된 중보의 기도요, 능력 있는 중보의 기도가 됩니다.
때로 어떤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면 정말로 힘겨운데 이러한 경험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신앙의 길은 곧 중보의 길임을 가슴으로 느껴보았었지요.
하나님께서 그 소명을 중보 기도자로 세우신 사람들은 곧잘 이러한 경험을 통하여 힘겨운 중보의 기도를 드리게 됩니다. 예컨대 피시의 집회를 위하여 자신을 중보 기도자로 드린 다니엘 내쉬와 같은 사람을 말씀 드릴 수가 있습니다.
주님께서 영적인 다양한 것을 경험 시켜 주시며 배우게 하시기 위하여 제게도 심령의 동화를 통하여 정말 힘겨운 기도도 경험시켜 주셨는데, 정말 방을 이리저리 구르고 싶을 정도로 답답하고 힘겨웠습니다. 그런 경험을 통하여 진정한 중보도 진정한 신앙의 사역도 결국은 중보의 중한 십자가임을 알게 하셨지요.
이러한 ‘동화의 중보 기도’는 성령의 역사로 영이 전이되어 그렇게 일어나기도 하지만 조금 더 영적으로 성숙함으로 나아가면 성령께서 자신이 원할 때 그 사람의 영으로 들어가게 해 주십니다. 그리하면 자신이 원하면 그 사람의 심령이 되어서 기도를 드릴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예언적 중보기도와 마찬가지로 지금 그 사람의 영적 상태나 무슨 문제가 있는지, 무슨 말씀이나 말이 도움이 되는지 예언의 권면을 할 수 있게도 됩니다. 이를 일컬어 ‘심령 기도’라는 말을 쓰기도 하지만 같은 영적 동화의 기도입니다.
오늘은 중보 기도의 대략에 대해서 나누어 보았습니다. 중보 기도도 드려보면 때로는 성령께서 기도를 막기도 하시는 등 중보 기도의 세계에도 다양한 것들을 경험하게 되는데 그러한 경험이나 깊음은 한편 성령의 뜻 안에서 일어나는바 우리에게 필요한 자세는 열심있는 기도의 삶이겠지요. 그리고 사랑이겠지요.
자신을 위하여 기도하고 또 이웃과 세상을 위하여 열심히 기도하며 기도를 통하여 세상을 아름답게 변화시켜 가는 아름다운 기도의 사람이면 좋겠습니다. 우리 모두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남겨진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가야 하는 아름다운 영적 중보자입니다. 그 아름다운 중보의 짐은 훗날 한없는 영광으로 안겨 올 것입니다. 할렐루야! 아멘.
딤후4:7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딤후4: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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