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등불/초록 영성수필

말씀을 사랑하라 (말씀, 영적보화)

초록 등불 2011. 4. 12. 17:39

 

※ 말씀을 사랑하라 ※

 

 

평소 몸의 연약함이 있다보니 작은 병증에도 서로 상호작용을 일으켜 큰 앓이를 하곤합니다. 그러한 연유로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피로감과 불편함, 한 동안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거의 종일 누워있기만 하였습니다.


오늘도 오전 내내 누웠다가 몸을 씻고 점심을 먹고 나니 그래도 오늘은 조금 기운이 생겨서 신앙자료들도 조금 올려 드리고, 주님 앞에서 경건의 시간을 갖기도 하였습니다.


그런 것 있지요. 왠지 큰 병을 앓고 나면 조금은 마음이 차분해지고 어떤 의미에서 평화로움을 느끼는 것, 그런 비슷한 마음과 한 동안 몸앓이로 다소 갖지 못했던 주님과의 교제의 시간, 오랜만에 연인을 만난 듯 경건의 시간은 새로운 영적인 달콤함이었습니다. 마냥 주님 앞에 앉아 있고 싶었습니다.


다만 오래 갖지 못한 것은 “오늘은 말씀을 증거하라” 명하셨기 때문에, 나머지 경건시간은 뒤로 미루고 아직 식은 땀이 조금씩 나곤 하지만 책상머리에 앉아서 주님의 감동하심과 말씀을 주의 명을 좇아 기록하여 봅니다.


먼저 오늘의 경건시간에 대하여 잠시 말씀 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기도를 드리고 싶어도 머리가 너무 아파서 한 동안 제대로 드리지 못하다가 오늘은 조금 나아서 주님 앞에 앉으니, 성령께서 먼저 “주 하나님께 감사와 경배를 드려라”명하셔서 감사와 경배를 드렸습니다.


“우리가 이제는 거울로 보는 것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이제는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고전13장 12절)


일주일이 넘게 내내 아팠던 것뿐인데, 세상적인 눈으로 바라보면 별스레 감사할 것도 없는데, “감사와 경배를 드려라”는 성령의 음성에 제 영혼은 주님 앞에서 감격스레 눈물만 흘립니다.


저의 아둔한 혼은 왜 그리 제 속의 영이 주님 앞에서 늘 감격하고 감사하는 지 잘 알지 못하지만, 얼굴과 얼굴을 마주볼 때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성부 하나님의 얼굴을 마주 대할 그 때는 온전히 알게 되겠지요. 천군천사의 무리와 함께 성삼위 하나님을 소리높여 찬양할 그 날에는 알게 되겠지요.


이어서 이어지는 성령님의 감동하심, “주 하나님을 송축하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물었습니다. “송축이란 축복한다는 것인데, 높은 자가 낮은 자에게 하는 것이고, 하물며 전능자이신 하나님을 부족한 사람이 어떻게 송축, 곧 축복을 합니까?”라고 성령님께 물었습니다.


가르치시는 성령, 곧 기름부으심이 깨닫게 하시기를, “물론 하나님은 누군가의 축복이 필요하신 분은 아니다. 그렇지만 너희를 사랑과 교제의 대상으로 지으셨고 너희 각 사람은 정말로 인격적으로 존중하며 대등하게 대하시는 아버지시다. 너희가 누군가의 송축을 받으면 기쁘듯 하나님도 그러하시다” 성령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러고 보면 성경에 하나님을 송축하라는 말씀이 참으로 많지요.


시103:1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 성호를 송축하라

시103:22 여호와의 지으심을 받고 그 다스리시는 모든 곳에 있는 너희여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시134:2 성소를 향하여 너희 손을 들고 여호와를 송축하라


그러한 성령님의 가르치심과 인도하심을 따라 “세세토록 아버지 하나님께 영광과 존귀가 있기를 기원합니다”라고 송축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기쁨 안에서 저도 기쁨을 누렸습니다.


여러분의 경건시간에도 우리의 감사와 경배, 그리고 송축을 기뻐하시는 하나님께 감사와 경배와 송축을 많이 드리고 올려서 아버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주님의 은총과 축복하심을 가득 누리는 여러분이면 좋겠습니다. 그러한 마음에서 잠시 오늘의 경건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러면 금번 주일에 나눈 설교의 말씀으로 나아가 볼까요? 금주에 주께서 성령으로 감동하신 설교의 내용은 “말씀을 깊이 묵상하고 배우고 깨달으라”라는 그런 의미였습니다. 하지만 제목은 “말씀을 사랑하라”로 정하였습니다. 그 주제에 적절한 본문으로는 이 본문을 택하였습니다.


요5:39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먼저 더불어 주신 각론을 나눈 다음에 금번 주일에 주신 내용에 대하여 조금 깊이 있게 다루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아시다시피 금번 주일에는 몸 앓이로 깊이 있는 설교준비와 교통을 다소 나누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말씀 가운데 더욱 깊은 성령의 감동하심 가운데 더 많은 은혜와 생명을 누리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첫째, 주님은 성령 안에서 “말씀 안에 내가 있다”라고 감동하셨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이해하기 어려운 비밀이지만 성삼위 일체이신 하나님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위의 감동하신 말씀은 “말씀 안에 하나님께서 계신다”라고 보아도 좋겠지요.


우리가 잘 알다시피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으십니다. 그 눈에 보이지 않으시는 영이신 하나님을 보여주고 알게 해 주고 느끼게 해 주는 것이 바로 성경이지요. 그리고 기록된 말씀인 성경은 단순히 인간의 혼적 지식으로 기록된 것이 아닌 성령, 곧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말씀으로 살아서 역사하지요.


그래서 요한복음1장에서는 예수님을 단순히 “말씀”으로까지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요한복음의 기록대로 하나님의 영으로 말미암아 기록되었고 영이신 하나님께서 그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역사하시므로, 말씀은 곧 하나님이라고 때로 표현하고, 말씀 속에 하나님이 계신다는 말을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말씀 속에 내가 있다” 감동하신 주님은 이어서 “말씀 속에서 나는 너희를 가르치고 인도한다. 말씀을 사랑하라. 말씀을 사랑하는 자 하나님의 생명력을 누리게 될 것이다”라고 또한 감동하셨습니다.


사랑하는 그리스도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의 신앙생활에 있어서 무엇이 가장 근본이요, 기초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입니다.


기도도 좋습니다. 여러 영적인 신앙서적도 좋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을 읽지 않으면 어느 새 영적으로 병들어가는 자신을 보게 될 것입니다. 왠지 영적으로 공허함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은사도 좋습니다. 권능과 기적도 좋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만 추구하다보면 어느새 병들어가는 자신의 영혼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진정한 우리 영혼의 양식이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은사나 나타남도 반드시 신앙의 세계에 필요하지만, 그러한 것들에 특별한 주의가 한편 요망되는 것은 말씀 안의 균형을 잃어버리고 어느 한편으로 치우치는 것들 때문입니다. 가령 축사에 치우치면 모든 것들을 귀신의 역사로 단정하거나 또는 성경과는 상관없이 일어나는 현상들을 고정화, 형식화 하는 등의 오류를 범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극단으로 나가는 것이 정로를 벗어난 바로 이단이 되는 것입니다.


항상 성경으로 돌아가고 성경에서 살피고 성경을 읽으며 성경의 원점에서 우리는 벗어나지 말아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가 건강하고 건전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균형잡힌 영적인 생명의 떡입니다.


둘째, 주님은 성령 안에서 “말씀 안에 빛이 있다” 감동하셨습니다.


대학시절 철학을 공부하는 학생과 같은 하숙집에 머문 적이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태어나서 잘한 것이라곤 공부밖에 없었던 것 같은 저, 그래도 서울대학교에 다니는 사람이라면 수재가 아닙니까?


그런데 그러한 수재가 철학과에 몸담고 다니면서 사람이 이상해지더군요.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아무리 머리가 좋고 좋아도 결코 스스로 답을 얻을 수 없는 가장 기초적인 질문, “인간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이 물음에 철학은 결코 진정한 해답을 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철학을 공부하시는 분들이 마음의 병을 얻는 분들이 많지요.


우리가 알고 싶어하는 진정한 철학적인 물음은 결코 우리 스스로 알 수 없습니다. 문명 세계가 엄청나게 발달하였다고 자부하는 오늘날의 우리가 아는 지식이라곤, 저 엄청난 바다의 물에서 한 그릇의 물 정도에 해당할 뿐일 것입니다.


물리학을 공부한 저, 과거 뉴튼 시대에는 그러한 원리와 법칙들이 대단한 것들로 보였겠지요. 그러나 새로운 시대 새로운 이론이 발견되면 이전의 것들은 진실이 아니라 하나의 허상임을 알게 되지요.


뉴튼의 물리학 법칙은 지금도 사용하곤 있지만, 아인슈타인의 방정식의 근사치일 뿐 진실은 아닙니다. 또 세월이 흐르면 지금의 과학과 의학 등의 모든 것들은 미래의 사람들 눈에는 아주 유치하고 한심한 수준의 학문이 될 것입니다.


이처럼 세상에 속한 이성에 의한 학문의 진실성도 한 시대에 유효적인 가면일 뿐인진대, 우주와 인간의 창조, 저 삼라만상과 현상계와 영계를 아우르는 진리의 빛을 우리가 도대체 어떻게 찾을 수 있습니까?

그것은 오직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 계시하신 부분 밖에 우리는 알 수 없는 것입니다. 그분의 계시하신 말씀이 담긴 책이 곧 성경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에서 참된 빛을 보게 됩니다. 우주와 우리의 기원과 종말, 살아가는 이유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해답, 무엇이 선이고 악인지에 대한 해답, 그 모든 것들이 성경에 있는 것입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처럼 성경을 상고하고 살핌에 우리에게 너무도 소중한 생명, 이 땅의 한시적인 육체의 생명이 아닌 영원한 생명의 길과 아울러, 지혜와 장수와 부귀와 존귀의 모든 길들이 성경 속에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주님의 감동하심처럼 성경 속에 빛이 있는 것입니다.


셋째, 오늘의 진정한 주제로 주님은 성령 안에서 “성경 안에 영적인 보화가 가득하다”감동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의 “상고하다”라는 말의 뜻은 “깊이 파고들다”라는 의미입니다. “부지런히 연구하다”라는 뜻입니다.


주님은 금번 주일의 설교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성경을 한편 통독하는 것도 좋지만, 깊이 묵상하고 상고하며 그 속의 영적인 것들, 보화들을 깨내어 우리들 자신들의 것으로 만들기를 원하셨습니다.


롬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우리가 잘 아는 마르틴 루터는 이 말씀을 붙잡고 깊이 상고함으로써, 복음의 뿌리가 썩어 잘못된 곳으로 흘러가는 천주교의 교리로부터 기독교의 개혁을 이루어 냈습니다.


말씀과 믿음의 사도라고 불리워도 조금도 손색이 없는 케네스 해긴 목사님은, 길고긴 병고의 끝자락에서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막11:24)라는 말씀을 붙잡고 씨름하다 죽음 직전의 자신의 불치병에서 자유함을 받음을 물론, 그 말씀에 의지하여 수많은 병자들을 치유하는 능력을 행하시다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시대를 넘어서 많은 사람들에게 진정한 믿음이 무엇인지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서도 믿는 자들이 가진 권세와 능력에 대해서 잘 모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의 이름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영적인 권세와 능력에 대해서 잘 모릅니다. 그러나 성경을 상고하면 알 수 있습니다.


많은 믿음의 선조들, 주님 앞에서 크게 쓰임 받았던 믿음의 선조들의 특징은 한결같이 모두가 기도와 그리고 말씀을 상고하는 사람들이었다는 것입니다.


가령 한 가지만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아주 나쁜 죄질의 인생의 길을 살아오던 사람, 가령 조직폭력배나 도둑이나 강도나 그러한 사람이 예수님을 영접하였다고 생각하여 봅시다.


아마도 그러한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은 이후로 여전히 나름 죄책감에 시달릴 것입니다. 물론 인간적으론 죄책감에 시달려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을 힘들게 하고 고통을 주었으니 거기에 대한 마음의 부담을 가지고 되갚은 생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사람들이라도 하나님 앞에서 그러한 부담감은 잘못된 것입니다. “나 같은 것의 기도를 들어주시겠나”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것인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고후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에서 분명히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이전 것은 지나갔다”, 그리고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라고 분명히 선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나갔다는 말은 잊혀졌다, 지워졌다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악한 사람이었다 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순간, 하나님의 눈에는 이전 것은 기억도 나지 않는, 갓 태어난 아기처럼, 영적인 아기로 하나님 보시기에는 순결하고 깨끗한 것입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하게 하리라” 아멘!


이러므로 우리는 성경을 그냥 읽는 것도 좋지만, 깊이 묵상하고 상고하며 그 속의 영적인 보화들을 캐내고 우리의 것으로 만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금번 주일설교를 통하여 이것을 알고 가르치시길 원하셨습니다.


아무리 좋은 것을 가지고 있어도 쓸 줄 모르면 소용이 없듯이, 성경을 깊이 묵상하고 배우고 공부하여 하나님과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권세와 능력과 축복을 알아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가 알고 이해하는 것 이상으로 결코 믿음이 자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누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 영적인 보화가 가득한 금맥인 성경을 상고하고 묵상하고 깨닫고 배워, 말씀 속에서 자라가는 믿음, 그 속에서 많은 영적인 권세와 능력, 그리고 축복을 받아 누리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더불어 이러한 각론 외에 주님은 우리가 말씀을 읽고 가까이 하며 성결한 삶을 살아가길 원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성결한 삶은 하나님께서 진정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요,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아름다운 생명의 향기니라”


“말씀을 사랑하라, 하나님을 사랑하라.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이 가장 지혜로운 삶이요, 무너지지 않는 가장 견고한 집을 짓는 삶이다”


“말씀은 곧 하나님이니라. 말씀을 읽을 때 하나님을 알게 된다. 말씀을 가까이 하라. 하나님을 아는 지식처럼 귀한 보화가 없느니라. 그것이 너희로 하여금 복과 생명을 누리게 하리라” 주님은 성령 안에서 감동으로 이르셨습니다.


주 안에서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베드로 사도는 베드로 전서 2장 2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지요.


벧전2:2 갓난 아이들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여기서 말씀하는 신령한 젖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곧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어린아이가 어머니의 젖을 먹고 자라고 성장해 가듯이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배우고 익히고 묵상하고 상고하며 그 믿음이 자라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읽고 가까이 하며 묵상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앞에서도 말씀 드린 각론처럼, 말씀 안에서 하나님은 우리를 가르치시고 인도하시며, 말씀 안에서 빛을 비추어 주시며, 말씀 안에서 우리로 하여금 영적인 보화들을 발견하고 누리게 하시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 오늘 주님이 말씀을 통하여 가르치신 것처럼, 모두 말씀을 언제나 사모하고 가까이하며 상고하는 삶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장차 우리를 위해 베푸실 영광뿐만 아니라 이미 이루어 두신 영적인 능력과 권세와 보화,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를 넉넉히 이 땅에서 누리는 복된 생이 되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우리의 어버이 되신 만군의 주 여호와 우리의 하나님이시여, 우리의 경배와 찬양과 영광을 받으시옵소서. 오직 주 만이 홀로 주되시며 영원토록 찬송 받으시기에 합당하시나이다. 아멘, 아멘!!

<저작권자: cafe.daum.net/riverofwater, 초록 등불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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