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등불/초록 영성수필

지금과 내일 (항상 기뻐하라)

초록 등불 2011. 4. 14. 18:22

 

※ 지금과 내일 ※

 

 

여러분들이 제 글이나 말씀을 읽으시면서 오해나 착각을 하시는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저는 언제나 성령 안에서 기뻐하며 언제나 주님의 기뻐하시는 뜻대로 사실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가끔 어떤 분들이 제게 주시는 쪽지나 메일을 보면 그렇게 생각하시는 듯 합니다. “목사님은 그렇게 여러 가지 어려운 환경이신데도 성령 안에서 늘 기쁨을 누리시고 주님의 음성을 들으시고 교통하며 사시니 너무 부럽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가령 목회자가 말씀을 증거할 때 누가 자신의 기분과 감정을 전하겠습니까? 말씀 안의 진리를 전해야지요. 그리고 적어도 말씀을 전할 때는 성령 안에서 전해야 하기에, 저 같은 경우는 그러하지 않으면 한 말씀이나 글을 쓰지도 못하는 편이기에, 보통은 곧잘 성령께서 감동하여 주시고 인도하여 주시지만, 때로는 주님 앞에 앉아서 기다리고 기다려서 성령이 감동하실 때 글을 쓰곤 하기에 그렇게들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저도 여러분과 같은 사람일 뿐입니다. 다른 목사님들도 마찬가지이실 것입니다. 다 같은 사람입니다. 아프면 힘들고 괴로우면 힘들고 가난하면 힘들고 누가 성가시게 하면 힘들고 다 같은 사람입니다.


얘기를 나누어보면 어쩌면 보통의 그리스도인들보다 영적인 것들은 많이 누리며, 주 안에서 영적인 기쁨을 한편 누리고 살아온 것도 같지만, 인간적인 관점에서 바라볼 때는 육신의 연약함과 그로 인하여 가지가지 마음의 힘든 세월을 살아온 사람입니다.


왜 그렇게 아프고 힘든 세월을 살아가야 하는지 하나님이 말씀하여 주시지 않으니 모르겠지만, 저는 긴긴 세월을 육신의 연약함으로 힘겨운 생을 살아왔고, 또 그러한 연약함에 기인한 삶의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으면서 살아온 사람입니다. 그래서 목회자가 아닌 문인으로서의 글에서는 대부분 아픈 글들이 많은 것은 때때로 그러한 아픔을 글로나마 마음 달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선천적으로 타고난 연약한 육체의 문제 때문인지, 누구나 살아가면서 때때로 짓게 되는 죄로 인한 것인지, 아니면 하나님의 연단과 시련의 과정인지, 아니면 아직 제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믿음의 분량에 성장하지 못해서인지 모르지만, 저는 아직도 육체적, 그로 말미암은 마음의 힘겨움을 감내하며 살아갑니다.


아시는 분들은 아시지만, 저의 모든 병의 뿌리는 류머티즘 계열의 이름도 병명도 확실하게 나오지 않는 병증입니다. 그리고 신경성 두통도 많이 힘들게 하는데, 이 병증에도 류머티즘 계열의 병증이 영향을 미치는 듯 합니다.


이 병증을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이 병은 오전이 힘이 듭니다. 자고 일어날 때가 가장 힘들고 정상적인 활동을 하려면 시간이 다소 걸립니다. 그리고 무척이나 피로감을 느낍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이 일반 세상 사람들과 다른 점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세상 사람들이 바라볼 수 없는 믿음의 대상인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이고, 그러기에 믿음과 소망을 가질 수 있다는 것, 그러한 행복을 우리는 누리며 살아가지요.


그러기에 저 또한 긴긴 세월 아픔을 감내하며 살아왔지만, 여전히 하나님 안에서 믿음과 소망을 잃지 않고 살아갑니다. 궁극적으로는 구원과 영원한 나라에 대한 소망과 기쁨과 행복이며, 부분적으로는 육체와 환경의 연단을 통한 믿음의 성숙과 정금 같이 빚어 언젠가는 나를 주님께서 당신의 종으로 쓰실 그 날을 바라보는 주님 안의 믿음과 소망, 그리스도가 있기에 지닐 수 있는 소망을 행복을 간직하고 하루하루 살아갑니다.


그렇지만, 아침에 눈을 뜨면 아프고 힘든 육신, 사람인지라 힘도 들고 때로는 기분이 몹시 가라앉기도 합니다. 잠은 잤으니 더 자는 것은 그다지 필요하지도 않고 의미도 없는데, 일을 하자니 그건 몸에 무리 같고, 그렇게 누워서 쉬다보면, 쉬다 자다 하다간 오전이 가버리곤 합니다. 피곤한 날은 오후도 그렇게 흘러가 버립니다.


대부분의 날들은 그래도 믿음과 말씀 안에서 대부분 승리하며, 보통 오후에 가지는 경건의 시간에는 세상에서 오는 것이 아닌 하늘에서 임하는 평강과 기쁨, 말씀 읽고 기도하고 찬양하다 감사해서 하나님 앞에서 감격과 감사의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때로는 성령 안에서 희락의 춤을 추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떤 날은 몹시도 마음이 힘들면, 하루 종일 가라앉은 마음과 기분, 구체적으로 잘 뱉어내지는 않지만 원망과 불평이 나오려 하기도 하고, 마치 신앙과 믿음을 다 잃어버린 사람의 모습 같을 때도 있습니다. 아마 여러분도 그러한 날과 시간이 있을 것이기에 저의 이러한 말이 한편 위안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하.


저도 케네스 해긴 목사님의 글을 읽다가 그런 부분에서 위로를 받았거든요. 정말 대단한 말씀에의 믿음을 가지셨던 그분도 어떤 날은 마음에 감동과 기쁨도 없고, 말씀도 무미건조하게 느껴지고 했던 그런 날도 있었던 모양입니다. 책에서 그러한 자신의 모습을 “마치 내가 타락한 것 같았습니다”라고 적어 두었더군요. 저도 위로 받았습니다. 하하.


어느 하루 제가 그랬습니다. 그런 날은 하려해도 기도도 잘 되지 않고 기도를 애써 하여도 성령의 임재하심과 기름부음도 잘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냥 지루하고 힘들 뿐이지요. 하루 종일 믿음을 다 잃어버린 사람처럼 지냈습니다. 영적으로 패배한 하루의 시간을 보낸 것이지요.


그렇게 하루 지내다보면, 그래도 매일매일 나름 승리해 가는 것은 세상이 아닌 하나님으로부터 임하는 평강과 기쁨인데, 그것마저 없는 날이면, 돌이켜 생각해보면 환경을 믿음으로 이겨내지 못한 나 자신, 일상의 힘듬과 영적으로 연약한 자신의 모습 때문에 마음과 기분은 더욱 엉망이 되곤 합니다. 영적으로 패배한 것은 목회자로써 한편 영적인 자책과 부담이 되기도 합니다.


그래도 늘 습관적으로 속에 계신 성령님의 마음과 뜻을 살피지요. 그런데 속에 계신 성령님은 저의 이러한 기분과 마음은 아랑곳하지 않고 내내 “기뻐하라”고 감동하고 명하고 계셨습니다.


몸도 마음도 힘들고, 영적으로 패배한 하루 같아서 영적 기분도 아닌데, “감사하라, 기뻐하라”만 반복하여 감동하고 계셨습니다. 저는 못 들은 척 아랑곳 하며 하루를 지냈지요.


저녁 무렵, 주님께서 어떤 경륜을 가지시고 그렇게 하신 것인지, 세상으로부터의 완전 단절, 오직 주님 앞에서만 살아가는 시간이 어언 1년여, 오직 주님이 주시는 말씀과 기쁨, 그리고 능력만 내 자신과 환경을 이길 수 있는 힘의 근원이기에 주님 앞에 억지로라도 앉아 기도를 시작하였습니다.


기도를 시작하니, 종일 “감사하라, 기뻐하라” 나의 속사람, 곧 영을 통하여 말씀하신 성령께서, 구체적인 말씀을 시작하시더군요.


“하루 중 영적으로 패배한 삶을 살았을지라도, 때로 죄를 짓거나 어리석은 시간을 보냈을지라도 항상 기뻐하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에게 주신 죄 사함의 자유 안에서 기뻐하라”


“사람은 연약하여 넘어질 수 있는 존재가 아니냐. 그러기에 십자가가 필요했던 것 아니냐. 더 중요한 것은 패배하거나 넘어졌다는 것이 아니라, 대속의 은혜 안에서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뻐하며 새롭게 나아오는 태도이다”


“다시금 새롭게 기름부음을 받으며 충만함을 받으라. 과거는 이미 지나간 시간이요, 죽은 시간이다. 지금과 내일, 곧 미래가 중요할 뿐이다. 그러므로 지나간 시간이나 일들에 마음과 기분을 얽매이지 말고 항상 성령 안에서 새롭게 읽어나며, 바로 지금을 새롭게 하라”


성령 안에서 이르시고 가르치시는 주님의 말씀을 들으니 다소 마음이 녹고 기분도 밝아지긴 하더군요. 그렇지만 여러 가지 힘든 환경, 마음에 온전히 기쁨이 임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한 부분을 아셨는지 주님은 성령 안에서 기쁨의 찬송을 부르게 하셨습니다.


순종하는 마음으로 “찬양이 언제나 넘치면”을 들으면서 함께 부르기도 하고 기도하니 조금씩 성령께서 마음을 다스려 주시고 기쁨을 주시더군요.


영적으로 보면 아닌데 세상의 체면이라는 면에서 보면 조금 부끄럽지만, 가끔은 성령께서 일어나서 성령 안에서 춤추며 찬양하라 하십니다. 남들 보는 데서는 다소 망설이겠지만 혼자 있을 땐 그런 감동을 주시면 그냥 춤이라고까지 할 것 없겠지만, 몸과 마음으로 찬양을 드리고 합니다.


성령의 감동하심과 명하심을 따라 “찬양이 언제나 넘치면..” 몸과 마음으로 찬양을 드리고 있으니, 찬송 가운데 임하시는 주님. 조용히 저의 마음을 어루만지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들아! 천국은 있다. 그러므로 이 땅의 잠시의 고난과 아픔과 슬픔 때문에 슬퍼하지 말아라. 나는 너를 지켜보고 있으며 인도하고 있느니라”


그리고 살아오면서, 살아가면서 제가 누리지 못한 것들이 아닌 누리오고 누린 복들을 헤아려 보게 하셨습니다. 그러시면서 삶이 이러하던지 저러하던지 “오직 생명의 성령의 법을 좇으라!” 말씀하셨습니다.


나아가 당신의 말씀 안에서 제 자신의 하루의 심령을 새롭게 정립하시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런 경험을 하시는 분들도 많으시겠지만, 성령이 이끄시는 기도, 성령 안에서 기도를 드리면, 기도의 순간순간을 성령께서 이끄시지요.


가령 찬양과 경배를 드려라던가, 혹은 간구의 기도를 드려라던가, 혹은 주님의 음성을 들으라던가.. 그 지금의 순간에는 주님의 말씀으로 저의 심령을 새롭게 새우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말씀하게 하시고 저는 들었습니다. 주님께서 이러한 말씀을 하시더군요.


“하나님의 말씀대로 천국이 있으면 세상의 삶에 연연하지 않고 믿음으로 사는 삶이 지혜 아니냐!”


“다만 하나님을 경외하고 공경함이 참 복된 삶이 아니냐!”


“하나님의 음성만이 생명의 음성이 아니냐!”


“전 소유를 팔아서라도 천국을 사는 삶이 지혜로운 것이 아니냐!”


매일 들어도 매일 눈에 보이는 현실의 삶의 어려움에 때때로 고개 숙이고 힘들어하는 부족한 저, 주님의 말씀 안에서 하루 또 다시 심령의 빛을 보며, “주님, 어떻게 하면 항상 기뻐할 수 있을까요?”라고 물었습니다.


주님은 단순히 “항상 나를 바라보라” 이르셨습니다.


오늘은 어쩌면 다소 목회자로서 부끄러울 수 있는 저의 말씀을 함께 나누는 것은 여러분도 사람, 또 누구에게나 있는 삶의 어려움들, 아마 저의 이러한 삶의 경험들을 여러분도 경험하며 사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 궁극적으로는 연약한 인간, 힘겨운 일들과 환경 앞에서 때때로 믿음도 흔들리고 삶의 기쁨과 소망을 잠시 잃어버리기도 하겠지만, 그러한 환경과 마음속에서 제가 주님과 나누고 교제하였던 대화와 영적인 나눔이 저는 물론이거니와 여러분에게도 새로운 빛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때때로 낙망하기도 하고 넘어지기도 하고 죄를 지을 수도 있는 연약한 존재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러한 우리를 아시기에 십자가에 그러한 부분을 다 처리해 두셨습니다. 단지 우리가 해야 하고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내가 일어나 다시 아버지께로 가리라”하던 집을 나갔던 탕자의 돌아감, 곧 아버지께로 다시 나아가는 회심의 마음인 것입니다.


그리고 어제가 아닌, 바로 지금과 내일, 지금과 미래를 향해서 다시금 신선한 기름부음 안에서 새롭게 충만 되어져서, 설혹 삶이 힘겨워 매일 넘어질지라도 매일 주님을 바라보며 다시 일어서는 믿음의 자세인 것입니다.


성경이 말하듯 우리의 삶에는 근본적으로 수고로움과 어려움이 흐릅니다. 위대하고 위대하였던 믿음의 조상들, 성경의 큰 족보의 줄기를 이루는 그러한 분들의 삶에도 다 살펴보면 고난과 역경과 시련의 시간들이 있었습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고 큰 족보의 흐름에 이름이 오른 다윗, 그의 생애에도 얼마나 많은 시련이 있었던가요?


이처럼 우리의 삶에는 한편 본질적으로 수고로움이 흐릅니다. 그리고 육은 언젠가 죽음으로 끝을 맺습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소망과 마음을 이 땅에 두는 한, 우리는 좌절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아둔한 혼이 잘 알지 못하여 자꾸만 땅을 바라보려 하지만, 우리는 성령 안에서 영의 눈을 들어 저 푸른 하늘과 그 하늘에 계신 하나님과 그 나라를 바라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할 때에만 우리는 결코 좌절하지 않으며, 때로 넘어지더라도 오뚝이처럼 다시금 일어설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항상 기뻐할 수 있습니까?”라고 묻는 저의 기도에 주님은 단순히 “언제나 나를 바라보라”이르셨지요?


요즘 가끔 밖에 나가서 봄햇살을 마주하고 벤치에 앉아 있으면 이유없이 마음이 밝아지고 행복이 깃들기도 하지요? 빛은 우리의 마음에 기쁨과 행복을 주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주님은 자연계가 아닌 영적인 세계의 빛이십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말씀처럼 빛 되신 주님을 바라보고 바라보는 그리스도인은 따뜻한 봄햇살을 마주한 사람처럼, 세상이 아닌 하늘과 주님으로부터 임하는 평강과 기쁨으로, 수고로움이 적지 않은 세상이지만, 풍랑이 일렁거리는 고해이기도 하지만, 주님의 붙들어주심과 능력 안에서 넉넉히 영적인 물위를 걸어가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때로 삶의 수고로움에 넘어지더라도 언제나 다시금 주님을 바라보고 일어나서 결국 천국을 취하는 승리의 저와 여러분의 생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바래봅니다. 아멘!


살전5:16 항상 기뻐하라

살전5:17 쉬지 말고 기도하라

살전5:18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저작권자: cafe.daum.net/riverofwater, 초록 등불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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