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등불/초록 영성수필

소 각 - 읽어보십시요. 깨달음을 줄 영성의 좋은 글이라 믿습니다.

초록 등불 2011. 9. 14. 17:27

 

※ 소  각 ※

 

 

 

의학적으로 그러려니 하지만 병명도 병증도 제대로 모르는 오래된 저만의 육체의 연약함, 어떤 때는 건강한 사람처럼 컨디션이 좋다가도 어떤 때는 이런저런 이유나 또는 별스런 까닭 없이 정말 힘들어지곤 합니다.


연휴 동안이 그러하더군요. 그렇게 힘이 들 때는 마치 무슨 근무력증을 앓는 사람처럼 온 몸과 사지에 하나도 힘이 없습니다. 걷는 것도 힘이 들고 그냥 누워서 숨 쉬는 것도 힘들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기도하면 불이 임하고 여러 가지 영적인 선물은 주시면서, 왜 육체의 연약함은 기록되고 약속된 말씀대로 실제가 되어 아직 누리게 하지 못하시는지 잘 알 수 없지만, 다만 믿음으로 주님께 맡기고 언제나 주님만을 바라보며 지금의 삶의 자리에서 나름 애써볼 뿐입니다.


힘든 몸을 일으켜 아침 겸 점심을 먹고 나니 여전히 곤하여 기도도 말씀도 힘들 것 같아서 그냥 편히 누워 쉬면서 잠시 텔레비전을 시청하였습니다.


방으로 돌아와 힘들어서 누워서 잠시 기도하며 무엇을 하여야 하는지 물으니, “일어나 앉아서 잠시 기도하라. 텔레비전 볼 힘은 있으면서 앉아 잠시 기도할 힘은 없느냐” 책망 겸 명하셔서 잠시 기도하니, “강하고 담대하라”라는 말씀을 주시네요.


주님의 그 말씀 붙잡고, 여전히 곤하지만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무엇이든 할 수 있느니라”는 사도바울의 고백과 함께 말씀을 기록해 봅니다. 이러하던지 저러하던지 주님께 감사와 경배를 드릴 뿐입니다. 할렐루야! 주님 모든 영광 받으시옵소서.


누구나 그러하겠지만 저도 성격이 깔끔한 것을 좋아하는 편이라 무엇을 청소하고 깨끗하게 하는 일은 기분 좋게 잘 합니다. 그래서 가사일 중 다른 일은 잘 돕지 못해도 설거지해야 할 것들은 눈에 보이면 보이는 대로 하는 편입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어린시절 좋아했던 일 중의 하나가 마당 쓸기입니다.


도회지와는 달리 시골집의 대부분이 그러하듯이 저의 고향 시골집도 꽤 넓었습니다. 그래서 일반적인 작은 빗자루가 아닌 큰 대로 만든 대빗자루로 쓸어도 한참 쓸 것이 있었지요.


그러한 큰 대빗자루를 들고 마당과 집으로 들어오는 길목을 다 쓸어 모으면 꽤나 쓰레기나 나뭇잎 등이 모입니다. 치워야 할 것들을 다 쓸어 모아 놓으면 그 다음에 해야 하는 일이 소각이지요.


소담하게 쌓인 쓰레기 더미 아래에 작은 공간을 만들고 불이 붙기 좋은 종이 등으로 쏘시개를 한 다음에 성냥으로 불을 붙이면 하얀 연기를 내면서 쓰레기들은 한 줌의 재로 변하고 집 안 밖은 깨끗하여 집니다.


마당을 쓸 때에도 기분이 좋지만, 쓰레기들을 태울 때도 몹시 기분이 좋았던 기억이 납니다. 잘 타지 않는 부분들은 부저깽이 같은 막대기로 잘 저어주고 뒤집어도 주면 모두 깨끗하게 소각이 되어서 집 안팎도 마음도 깨끗해지고 깨끗한 마음을 느끼곤 하였지요.


제가 어린시절의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우리네 마음에도 이처럼 쓸어내고 꺼내어 모아서 불태워야 하는 것들이 많이 있기 때문이지요.


우리, 곧 성경이 말씀하기를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이라는 우리의 속에는 누구에게나 다소의 차이가 있겠지만, 쓸어내고 꺼내어 불태워야 하는 육성과 죄성이 있습니다.


로마서 2장에서 이러한 것들에 대하여 잘 열거하고 있지요. 그러한 것들은 불의, 추악, 탐욕, 악의, 시기, 음란, 살인, 분쟁, 악독, 비방, 능욕, 교만, 자기자랑, 패역 등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이 있습니다.


이러한 명백하게 죄명에 해당되는 것들뿐만 아니라, 신앙생활의 나태함, 게으름, 불경건 등도 실상 불태워져야 하는 마음들입니다.


더 나아가서 차원 높게는 주님 앞에서 주님이 아닌 다른 것들을 바라는 마음, 곧 부와 귀와 명예와 은사와 능력마저도 주님 안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라면 꺼내어 모두 불태워 버려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과의 사랑을 너무도 객관적이고 멀리의 관념적인 사랑으로만 생각합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물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은 저 멀리 하늘 보좌에 계시고 우리가 경건한 마음과 몸으로 경배해야 할 분이시기도 하지만, 친밀하게는 우리의 친구가 되시고 우리의 사랑, 더욱 적극적으로 표현한다면 우리의 연인이 되시기도 하십니다.


살아오시면서 누군가와 사랑을 해 보신 경험과 기억이 있으실 것입니다. 가령 어떤 이성이 나를 사랑하는데 나를 50% 정도 사랑하고, 나머지 50%정도는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면 그 사랑이 기뻐셨는지요? 아니지요. 화만 나고 질투만 나지요.


또 가령 내가 사랑하는 어떤 이성이 나를 사랑하는데 나를 99%사랑하고, 나머지 1%를 다른 누군가에게 마음을 주고 있다면 그 사랑이 기뻐겠는지요?


하나님과 우리의 육이 아닌 영적인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온전히 100%사랑하십니다. 그 증거는 우리를 위하여 아낌없이 주신 당신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시지요.


그런데 우리의 마음이 온전히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하고, 겸하여 세상을 사랑한다면 하나님게서 기뻐하실까요? 아니지요?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을 향하여 99%를 향하여 살고 있고 세상에는 1%정도의 마음만 가 있다면, 물론 50%정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보다야 기뻐하실 수 있겠지만, 온전히 그 마음에 열납되는 사랑일까요?


우리가 살아오면서 누군가를 사랑한 경험이나 추억에 비견하면 결코 아니지요. 사랑은 사랑의 속성은 온전과 완전이지요. 사랑하려면 상사일념 오직 한 사람만 사랑해야하지요. 그러하지 아니하면 온전한 사랑도 아니며 온전한 기쁨을 주지도 못하지요. 도리어 애타고 질투나게 하고 화도 나게 하는 그런 사랑이지요.


가령 우리가 기도와 말씀에 애쓰다보면 죄를 조금씩 멀리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조금은 기뻐하시겠지요. 죄를 멀리 하면서 말씀을 좇아 조금씩 살아가면 더 하나님은 기뻐하실 수 있겠지요. 그러나 겸하여 세상을 사랑하고 죄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면 그 삶을 온전히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는 없는 삶인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많이들 착각하는 것 중의 하나가 하나님, 곧 주님의 사랑에 대한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실상은 주님을 사랑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고 주님이 주실 복을 기다리고, 주님이 주실 건강을 찾고, 주님이 주시는 무슨 은사나 능력을 구하고 있지, 정말 우리가 사랑해야 할 대상인 하나님, 곧 진정 주님 당신을 원하는 경우는 드뭅니다.


죄를 짓지 않는 것도 정말 하나님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무슨 벌을 받을까봐, 주님을 섬기고 봉사하는 것도 정말 주님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무슨 축복을 받기 위해서가 많습니다. 주님을 섬기고 경배하는 삶이 진정 주님을 사랑하고 그분 자신을 구하는 것이 아닌 자신의 성공과 명예와 부를 위하여 구하는 경우가 많다는 말씀입니다.


은사와 능력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물론 은사와 능력도 받아야 합니다. 성경에서 말씀하니까요. 그러나 우리는 그 모든 것들은 주님 안에서 간구하여야 합니다. 자신의 영적 명성이나 목회 성공을 위하여 그것만을 구한다면 이는 잘못된 것인 것입니다.


주님 당신을 진정 사랑함으로 당신을 더 잘 섬기고 맡긴바 소명을 잘 감당하기 위해서 은사와 능력도 필요합니다. 주님과 몸 된 교회를 섬기고 이웃을 섬기기 위해서 주님 안에서 물질도 필요합니다. 우리의 마음과 정신이 이래야 된다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진정 주님을 구하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주님께로 나아가서 병을 고치고, 물질의 축복을 받고, 어떤 성공을 바라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가령 어떤 사람을 사랑한다면서 그 사람이 진정한 사랑의 대상이 아니라 그 사람의 배경이나 가진 부와 귀와 명예를 더불어 갖기 위한 것이라면 그 사랑이 온전한 것이라 말할 수 있으며, 진정 그 사람을 기쁘게 할 수 있는 사랑이겠습니까?


오병이어의 기적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주님, 주님..” 하면서 호감어린 목소리로 당신을 찾았습니다.


그 때 주님은 “너희가 나를 찾은 까닭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고 떡을 먹고 배가 부른 까닭이로다”말씀하셨지요. 이것이 우리들 대부분의 실상의 모습인 것입니다.


표적, 곧 당신께서 그리스도인 것을 알고 참 진리와 본질, 나아가 주님 그 자신을 찾는 사람은 적다는 것입니다.


앞에서도 말씀 드렸지만, 사랑은 전부 아니면 전혀아님(nothing)이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하나님과 세상을, 하나님과 재물을 짝하거나 겸하여 섬길 수 없다”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일2:15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요일2: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온 것이라


약4:4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게 하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누군가와 혼적인 사랑을 할 때도 온전히 서로가 서로만을 바라보아야 하고, 그 사람에게 속한 것들이 아닌 온전히 그 사람 자체를 진정 그리고 온전히 사랑할 때가 진정하며 참된 사랑이듯이,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도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사랑은 그 사람이 살아가는 이유입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하면 그것이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가 되지요.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은 어떠한 것보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말씀을 좇아, 진리와 성령 안에서 우리의 마음은 온전히 주를 향하고,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가 주님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가 아내나 남편이어서도 아니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가 자녀가 되어서도 아니됩니다. 우리의 부모이거나 심지어 우리 자신 곧 나여서도 아니됩니다. 오직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가 주님이어야 합니다. 그것이 참된 사랑이며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을 향한 참된 신앙입니다.

마10:37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마10:38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
마10:39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
 


참된 사랑은 생명을 초월합니다. 진정 사랑한다면 우리는 그 사람을 위해서 생명을 줄 수 있지요. 그래서 부모님들은 자녀들이 생명의 위기에 처하면 자신을 던져서라도 구하지 않습니까? 사랑은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입니다. 생의 목적이요, 목표입니다.


사랑은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가 됩니다. 마음도 물질도 그 무엇이든지 그 사랑을 위해서 쓰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자신들의 모습은 과연 어떠합니까? 불신자를 포함해서 넓게 말씀 드리면 어떤 사람은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가 술입니다. 술 마시는 즐거움이 살아가는 이유입니다. 어떤 사람은 세상의 쾌락입니다. 그 쾌락이 자신이 생을 살아가는 이유입니다. 어떤 사람은 게임이거나 쇼핑이거나 텔레비전 드라마거나 여행이거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좋아하고 사랑하는 어떤 것들에 중독이 되어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병증들은 우리의 영혼을 부패하게 하고, 마음을 썩게 하고 육을 해하게 합니다. 자유롭게 하시는 진리의 성령 안에서, 모든 멍에를 꺾어버리는 성령의 기름부음 안에서 자유와 해방을 맛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직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는 죄악도 아니요, 기도와 말씀의 경건한 삶도 아니요, 무슨 사역이나 은사나 능력도 아닌, 가장 먼저 그리고 근원적으로 주님을 향한 사랑이어야 합니다.


주님을 사랑함으로 그 사랑 안에서 형벌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주님을 사랑함으로 그 말씀을 지켜 행하고 죄를 멀리하며, 주님을 사랑함으로 매일 그분과 교제하는 기도와 찬양의 시간을 가지며, 우리를 위해서 생명까지 주신 그분을 사랑함으로 그분을 더욱 잘 섬기기 위하여 은사와 능력도 주님 안에서 구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과 눈은 언제나 주님, 곧 우리를 사랑하시고 생명까지 주심으로 우리를 구속하신 성삼위 하나님과 그 사랑에로 향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요14:15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진정 우리가 구하여야 하는 것은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주님 자체, 주님 당신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것들에 속하지 아니한 것들, 모든 추한 것들과 더러운 것들은 물론이거니와 우리의 자아적인 욕심이나 욕망 그 모든 것들을 다 내려놓아야 하고 던져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의지의 빗자루를 꺼집어 내어 쓸어 모아서 기도함으로 성령의 불로써 태워버리고 소멸시켜 버리고 오직 주님만 우리에게 남게 하고 모셔야 하는 것입니다.


어느 날 이러한 내용과 관련된 기도를 드리며 말씀의 빛을 받는 가운데, 심령의 눈에 휘이잉~ 소용돌이치며 부는 바람이 보였습니다.


급하고 강한 바람이 불어오자 사방에 널려있던 휴지며 더럽고 치워야 할 쓰레기들이 추풍낙엽처럼 바람에 휘날려 가버립니다. 급하고 강한 바람이 모든 쓰레기를 깨끗이 치워 버립니다.


그러자 이 땅의 물은 아닙니다. 너무도 맑은 수정빛 맑은 물이 어디선가 흘러 들어옵니다. 처음에는 적게 땅을 적시더니 점점 창일하여 져서 거대한 강과 호수를 이룹니다. 너무도 맑고 고운 수정빛 물이 온 땅 가득한데 일렁임 하나 없이 고요하며 잔잔합니다.


그 생명의 물, 생명수가 창일하게 흘러넘치자 주변에 신록들이 파릇파릇 새롭게 돋아나고 자라납니다. 그 위로 새들이 생기롭게 노래하며 날아다닙니다. 그리고 여기저기서 목마른 들짐승들이 나타나 그 물을 마시며 생기를 되찾습니다.


성령 안에서 심령의 눈에 보여주신 이것은 무엇을 말씀하는 것입니까?


우리가 죄를 짓지 않고 싶다고 하여 죄를 짓지 않게 됩니까? 우리가 좋아하는 세상의 것들, 중독된 것들에서 우리가 자유하고 싶다고 하여 우리의 힘으로 됩니까? 우리가 주님 곁의 복을 바라는 기복신앙에서 자유롭게 벗어나 오직 주님 그 자체이신 주님을 사랑하고 싶다고 하여 우리의 힘으로 됩니까? 저의 경험도 그러하지만, 결코 되지 않습니다. 아니됩니다.


우리의 힘만으로 하려 할 때는 “오호라! 나는 곤고한 몸이로다. 누가 이 사망의 몸에서 나를 건져내랴!” 탄식하게 될 뿐입니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생명의 성령의 법뿐입니다. 오직 생명의 성령의 법뿐입니다.


슥4:6 그가 내게 일러 가로되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


그러므로 기도하여야 합니다. 급하고 강한 성령의 바람이 불어와야 우리는 우리 속의 주님이 아닌 그 모든 것들을 던져버리고 결단하여 모아 불태워 버릴 수 있는 것입니다.


기도한다고 됩니까? 기도하면 안됩니다. 또한 기도하면 됩니다. 말씀이 이상하지요. 기도하면 아니된다는 말은 일시적이고 감정적인 기도로는 결코 이룰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기도하면 된다는 말씀은, 끝내 인내하고 인내하며 기도하면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라는 말씀이 실제가 된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너무도 급합니다. 우리 시대의 사람들은 너무도 급합니다. 모두가 바빠서 어디론가 쫓겨 가는 사람들 같습니다.


그러나 신록이 자라고 꽃이 피는데도 시간이 필요하듯, 우리의 육성과 죄성이 죽고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고 닮아가는데는, 어린 신앙에서 벗어나 장성한 분량에 이르는데는 시간이 걸립니다. 평생에 걸쳐 애써가야 하는 부분입니다.


그러므로 참된 신앙의 성숙에 있어서 필요한 덕목은 무엇보다도 인내입니다. 인내로써 기도하고 기도하면 끝내 그 모든 것들은 극복되어집니다. 물이 발목에 이르다가 무릎에 이르고 허리에 이르고 마침내 우리의 온 몸을 잠굽니다. 그 때에는 성령 안에서 한없는 자유를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성령 안에서 주님이 아닌 모든 것들은 성령의 바람에 날려보내고, 성령의 불로 태워버리고 나면, 세상의 물이 아닌 다시 목마르지 아니하는 하늘의 생명수가 흘러 들어옵니다. 처음에 적지만 점점 흘러 들어와 배에서 솟아나는 강물이 되고 창일하게 됩니다. 쓰레기 더미를 태우는 이 땅의 불이 더 태울 것이 없어 꺼지면 하늘의 거룩한 불이 우리의 심령에 임합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의 심령의 지성소에 영광의 구름으로 임재하십니다.


대하5:11 이 때에는 제사장들이 그 반차대로 하지 아니하고 스스로 정결케 하고 성소에 있다가 나오매

대하5:12 노래하는 레위 사람 아삽과 헤만과 여두둔과 그 아들들과 형제들이 다 세마포를 입고 단 동편에 서서 제금과 비파와 수금을 잡고 또 나팔 부는 제사장 일백이십 인이 함께 서 있다가

대하5:13 나팔 부는 자와 노래하는 자가 일제히 소리를 발하여 여호와를 찬송하며 감사하는데 나팔 불고 제금 치고 모든 악기를 울리며 소리를 높여 여호와를 찬송하여 가로되 선하시도다 그 자비하심이 영원히 있도다 하매 그 때에 여호와의 전에 구름이 가득한지라

대하5:14 제사장이 그 구름으로 인하여 능히 서서 섬기지 못하였으니 이는 여호와의 영광이 하나님의 전에 가득함이었더라


그리하면 우리를 통하여 그리스도께서 역사하시고, 우리는 주님을 통하여 생명의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통하여 예수님을 만나고 그리스도를 보며 그 생명을 접하게 되고 생명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 그렇게 진정한 주님사랑을 통하여 귀한 생명의 통로, 뭇 영혼을 치유하고 주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귀한 생명의 통로가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해 봅니다. 아멘! 할렐루야!


마22:37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마22:38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마22:39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마22:40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글쓴이: cafe.daum.net/riverofwater, 초록 등불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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