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등불/초록 영성설교

어떻게 해야 변화될 수 있을까요?

초록 등불 2011. 10. 16. 17:26

 

※ 어떻게 해야 변화될 수 있을까요 ※

 

 

 

성경을 살펴보면 이 땅에서 육신을 입고 살다가 죽음을 맛보지 않고 하나님의 나라로 그냥 들림을 받은 사람이 두 사람 나오지요. 한 사람은 불의 선지자 엘리야이고, 다른 한 사람은 에녹입니다.


오늘은 그 중의 한 사람인 에녹의 이야기로 “동행”의 중요성에 대해서 함께 나누어보고자 합니다.


창5:21 에녹은 육십오 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창5:22 므드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를 낳았으며

창5:23 그가 삼백육십오 세를 향수하였더라

창5:24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성서를 깊이 연구하였거나 성서인물에 대해서 자세히 연구해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에녹에 대해서 성경은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지 않습니다. 다만 그는 삼백육십오세를 살았고 그 중에 “삼백년을 하나님과 동행하였다”라고 짧게만 기록하고 있습니다.


왜 수도 없이 많은 인류의 역사 속 사람들 중에 하나님은 유독 에녹이라는 사람을 그냥 하나님이 죽음을 맛보지 않고 그냥 데려가셨을까요? 그 해답은 아마도 “동행”이라는 단어에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는 그의 이 땅의 생의 대부분의 시간인 짧지 않은 삼백년의 시간을 늘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살았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의 바라는 것들 중의 하나가 있다면 그것은 성화되고 거룩한 삶일 것입니다. 그것은 사람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영접하여 그리스도인이 되면 그 속에 거룩한 하나님의 생명이 태어나서 이전처럼 혼과 육을 좇아만 살 수 없는 내적갈등과 전쟁이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누군들 전쟁을 좋아하겠습니까. 안식과 평안과 쉼을 원하지요. 하지만 그리스도인은 죽었던 영이 깨어남으로 본질적으로 상반된 속성을 가진 혼과 육을 향한 싸움이 시작됩니다. 그래서 육을 좇아 살면 영은 곤고함을 느끼고, 또 영을 좇아 살면 육이 곤고함과 불만의 소리를 냅니다.


그런데 육을 좇아 살면 성경에 이른 대로 잠시는 즐겁고 유쾌한 듯 보이나 그 시간이 지나면 저 깊은 영혼 속에서 죽음 같은 곤고와 허무감이 몰려옵니다. 하지만 영을 좇아 육을 쳐서 복종시키며 살면 그 순간은 인내와 참음과 견딤을 요구하나 승리하면 말할 수 없는 하늘의 그윽한 평강이 몰려옵니다.


그것을 알기에 그리스도인들은 누구나 할 수만 있다면, 언제나 그리고 항상 육을 쳐서 복종시켜서 영을 좇아 살며 거룩한 기쁨과 하늘의 평강을 맛보고 누리며, 하나님의 나라 안에서 살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로마서 7장에서 사도바울이 고백하고 탄식하듯이 우리 속에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는 속사람이 있고, 또한 죄의 법 아래로 자꾸만 끌어가려는 겉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둘은 언제나 싸움입니다.


그 싸움의 와중에서 때로는 우리가 너무도 지치고 곤비해서 사도바울과 같은 탄식을 하게 됩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영성저술가인 워치만 니도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하면 성화된 삶을 살아갈 수 있는가에 대한  문제를 심도있게 다루고 있습니다.


그에 의하면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온전한 성화를 향해 나아가고 이루어 가려면 첫째, 우리 자신의 육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사실을 믿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갈5:24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우리는 여전히 죄를 짓고 살고 있습니다. 악을 행하고 있습니다. 선을 행하기 원하는 속사람의 소리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죄를 짓고 있습니다. 너무나도 육은 생생하게 살아서 활동하며 우리로 하여금 탄식하게 합니다. 그래도 성경은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고 선언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십자가에 올라가서 십자가에 못 박혔다거나, 또는 우리 의지로 십자가에 올라가서 십자가에 못을 마음으로나마 박았다라는 말의 의미가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가 어떻게 행하며 살던지 간에 하나님은 우리의 육체를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을 박았고 함께 죽은 것으로 생각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꾸만 내 육신이 살아 있어서 내가 이런 죄를 저지르고 악을 행한다 생각하며, 근본을 알지 못하고 자꾸만 육신의 죄 된 가지만 치려고 애를 씁니다. 그러나 그 뿌리와 근원을 알아서 문제해결에 접근해야 합니다.


예를 들면 옛날에는 여자분들은 출가외인이라 하여서 결혼을 하게 되면 친정집으로부터는 아주 떨어진 외인으로 취급을 당했습니다. 그래서 혹은 결혼생활에 실패하여 쫓겨나도 친정으로 돌아가지 못하였습니다. 혹여 인정이 그리워 돌아오면 아버지와 어머니는 매몰차게 출가외인인데 왜 왔느냐하면서 죽어도 시댁에서 죽어라고 다시 쫓아 보내었습니다.


여기서 인식의 차이의 중요성을 보게 됩니다. 출가외인이 아니고 언제나 힘들면 나는 친정으로 도망하거나 피신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시집살이를 하는 것과, 나는 죽어도 이제는 이 집안의 사람이니 사나 죽으나 여기서 내 생을 헤쳐나가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사는 인식의 차이는 삶의 모습에 적지 않은 영향을 가지고 옵니다.


“힘들면 친정으로 가버릴거야”라는 생각을 가지고 살면 조금만 힘든 일이 있으면 그냥 보따리를 싸서 자꾸만 친정으로 가곤 할 것이고 그곳 생활에 정착을 하지 못하겠지요. 하지만 나는 친정에는 갈 수 없는 출가외인이다. 죽으나 사나 나는 이곳에서 헤쳐나가야 한다고 생각하면 어떤 역경과 시련이 와도 마주쳐 싸우며 헤쳐나가겠지요.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이미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정과 욕심을 못 박아 우리의 육은 이미 죽었다라고 생각하는 것과 아직 육은 죽지 않고 살아 있어서 그 육과 더불어 싸워야 한다고 생각하고 인식하는 것은 크나큰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가령 분노가 일어난다면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지”라고 생각하면, “죽은 사람이 무슨 분노야. 분노를 죽여야지”라고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사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면, 자꾸만 분노 그 자체만 다스리고 그것과 더불어 싸우려고만 합니다.


그래서 본질적이고 근원적인, 우리의 의지가 어떠하던, 우리의 모습이 어떠하던 하나님은 그리스도인인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았고 못박힌 사람으로 보신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이미 육신, 곧 겉사람은 죽은 사람인 것입니다. 영적으로는 이미 그것이 확정된 사실이고 하나님 또한 우리를 그렇게 인정하시고 보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죽음이 곧 우리 개인의 죽음이 되고 그로 말미암아 우리는 죄로부터 구원을 얻게 되는 것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두 가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나의 죄를 용서하시기 위하여 대신 죽으셨다는 것과 나아가 우리 또한 십자가에서 예수님과 함께 더불어 못 박힘으로 우리의 육의 정과 욕심이 죽었기에 더 이상 육체의 지배를 받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모습이 어떠하던지, 우리의 성정이 어떠하던지 간에 하나님께서 “너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고 육은 죽었다”라고 말씀하시니, 우리는 단순히 “아멘, 나의 육체는 이미 그리스도와 함께 못 박히고 죽었습니다”라고 받아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사실로 인정하고 인식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먼저 이 사실, 곧 나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은 사람이다. 나는 육체와 그 죄와는 무관한 죽어버린 출가외인이라는 인식을 먼저 깊이 알고 믿음으로 받아 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 바탕 위에서 이제 실제적인 우리의 모습, 우리의 경험 속으로 눈을 돌려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의하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구속을 위하여 필요한 모든 것을 이미 이루어놓으셨지만, 그것은 ‘이미’와 ‘아직’의 긴장관계 속에 있습니다.


롬8:22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

롬8:23 이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


곧 하나님은 십자가에서 우리의 구원을 위한 모든 기본적인 것들을 다 해결하셨으나 온전한 구속의 그날은 주님이 다시 오시는 그날, 모든 것들이 온전하게 되는 새로운 날인 것입니다. 그날 까지는 우리 뿐만 아니라 만물도 탄식하며 온전한 구속을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사단의 모든 권세를 깨뜨리셨지만, 우리는 그 권세를 가지고 여전히 사단과의 싸움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육체를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그렇게 인정하시지만, 여전히 살아있는 육, 온전히 구속받지 못한 육을 입고 살아가는 동안에는 우리 속에 육의 정과 욕심은 살아 우리의 영적 생활에 도전을 해 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의 육은 이미 십자가에서 죽은 것이다”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바탕 위에서, 능히 하나님의 능력 안에서 실제적으로 육이 죽은 것을 경험하는 삶으로 우리는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십자가 안에서 이루어진 것들 가운데 그러한 삶이 가능하도록 모든 것들을 예비해 두신 것입니다. 그것에 대해서 로마서 8장에서 사도바울은 다음과 같이 선언합니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이 말씀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우리의 정과 욕심을 못 박은 것을 실제적으로 경험하고 누리려면, 생명의 성령의 법을 좇아 살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하루 왼 종일 기도하고 하루 왼 종일 말씀을 읽으며 산다면 그는 죄의 유혹, 곧 육신의 일로부터 완전히 해방될 수 있을까요?


우리의 경험과 성경과 워치만 니는 “아니요!”라고 대답을 합니다. 육에서 난 것은 육일뿐입니다. 육에서 난 것이 영으로 될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육을 입고 있는 한, 온전히 구속된 새롭고 영화로운 육을 덧입기까지는 우리는 결코 육의 일로부터 완전히 해방될 수는 없습니다. 여전히 우리 속에서는 육과 영의 갈등과 전쟁이 있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한 순간도 영적 경계태세를 갖추지 아니하면 아니됩니다. 아무리 영적인 거장의 길을 걷는 사람도 한 순간의 방심에 육신의 아래로 떨어지고 갇혀질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혼과 영과 육의 구속을 위한 모든 것들을 십자가에 이루어놓으셨습니다. 사단을 이길 수 있게 그 권세를 깨뜨려놓으셨고, 우리의 육신의 죽음 또한 이론이 아닌 경험과 실제가 되도록 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다만 선택의 문제는 우리에게 남겨두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는 것입니다.


롬8:12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롬8:13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워치만 니는 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죄를 짓는 성향을 지니지 않을 정도까지 우리를 구원하셨으나 전혀 죄를 지을 수 없을 상태까지 우리를 구원하신 것은 아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다시피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구원과 육신의 죽음에 대하여 필요한 모든 것들이 공급되도록 십자가에서 이루어주셨으나, 만물이 온전히 회복되는 그날까지는 우리 안에 그러한 싸움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깨어 기도하면서 늘 영적 파수꾼의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정녕 변화되어 거룩하고 영화로운 삶을 살기 원합니다. 하지만 번번히 실패합니다. 저나 여러분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육신을 입고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이 땅에서 하나님의 온전하심과 같은 신적인 삶과 성품에는 결코 이르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한편 능히 사단과 우리의 육신과 죄를 이길 수 있는, 길을 열어 두셨고, 권세와 능력을 우리에게 주셨으므로, 생명의 성령을 법을 좇아 살아가면서 믿음의 선한 싸움 가운데 예수님의 형상을 이루어 가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오직 생명의 성령의 법을 좇아 사는 삶”외에는 사단과 육신의 죄로부터 자유함을 누리는 길은 없는 것입니다.


갈5:16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성령을 좇아 살려는 이 믿음의 선한 싸움은 앞에서도 말씀드렸다시피 우리의 육신이 살아있는 한 육신의 정과 욕심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기에 날마다, 아니 시각마다, 분초마다 견지되어지고 깨어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령 안에서 가장 거룩하고 성스러운 마음의 상태를 지닌 순간에도 육신의 유혹으로 넘어질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항상 깨어 있고 또 깨어 있어야 합니다.


한 순간 소리 질러 가슴을 치며 울부짖어 기도한다고 변화되는 것이 아닙니다. 며칠 혹은 한 달 아니 몇 달을 경건생활에 진력을 다한다고 해결되는 것도 아닙니다.


주님이 우리의 썩을 몸도, 이 죄악 된 몸도 영화로운 몸으로 변화시켜 주시는 그날까지, 결국 육신이 정녕 실제적으로 죽기까지 우리 안에 이 갈등과 선과 악, 성령과 사단, 하나님의 나라와 어둠의 나라의 갈등과 싸움은 있는 것입니다.


왜 제가 서두에 에녹의 이야기를 꺼내었을까요? 그것은 진정한 변화와 거룩한 삶과 영적 성숙한 삶의 비결은 한 순간의 무엇이 아닌, 주님과의 지속적인 동행에 그 해답이 있기 때문입니다.


롬8: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롬8: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갈5:16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죄와 사단과 육신의 일로부터의 자유함을 얻고 누리는 길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생명의 성령의 법을 좇아 사는 것뿐인 것입니다. 하루도 아니고 이틀도 아닌 평생의 삶을 통하여 늘상 깨어 성령을 좇아 사는 것뿐인 것입니다. 성령 안에서 늘 그리고 항상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사는 것뿐인 것입니다.


성경이 말하듯 육을 좇는 삶은 사망이요, 영을 좇는 삶은 생명과 평안입니다.


롬8:5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롬8: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하나님은 십자가에서 온전한 구원을 위한 모든 것을 우리를 위해서 이미 이루어놓으셨지만 한편 우리의 의지에 또한 많은 것들을 남겨 두셨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거나 거부하여 멸망을 받거나 이제는 하나님의 문제나 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육을 좇아 사망을 맛보며 살거나 영을 좇아 생명과 평안을 누리며 사느냐의 문제도 우리의 의지에 맡겨두셨습니다.


만일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사랑으로 권면하시는 생명의 말씀인 것입니다.


사도바울의 고백과 같이 “날마다 우리 자신의 육을 쳐서 성령 안에서 복종하기로 우리의 마음을 결단하면” 우리는 십자가에서 이루어 놓으신 주님의 사랑과 성령의 능력 안에서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되어 진정한 생명을 누리며 자유함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주님을 닮아가는 온전한 성화에 걸음걸음 날마다 조금씩 더 다가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사도바울과 같이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백하며, 날마다 기도와 말씀에 힘쓰며 에녹처럼 하루도 이틀도 아닌 삼백년의 생이라도 늘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바라는 변화된 삶, 그것은 어떤 것으로 가능할까요? 그것은 성경이 말하듯 생명의 성령의 법을 언제나 좇아 사는 것뿐입니다. 에녹처럼 팽생 주님과 매일매일 동행하는 삶뿐입니다. 순간적인 기도의 열정이나 노력으로는 결코 변화될 수 없습니다.


똑!똑! 떨어지는 작은 물방울이 오랜 세월이 지나면 바위라도 구멍을 뚫듯이 우리의 영적 생활도 그러한 것입니다. 에녹처럼 평생을 한결같이 주님과 동행하는 삶에 진정한 변화가 오는 것입니다. 평생을 하루같이 성령을 좇아 살려는 애씀 속에 진정한 변화가 오는 것입니다.


말씀을 위해서 기도하니 간단하지만 가슴 깊이 파고드는 말씀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강조하시며 반복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세상의 빛이라는 것은 세상은 어둠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다는 말씀입니다. 세상에 살아가지만 우리는 결코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다는 이 말씀을 가슴 깊이 새기고 빛 되신 주님과 항상 그리고 언제나 동행하면서, 성령을 좇아 평생을 여상히 행하면서 진정으로 빛된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길 손모아 기도해 봅니다. 아멘. 샬롬!

 

<글쓴이: cafe.daum.net/riverofwater, 초록 등불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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