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등불/초록 영성수필

열납되는 예배 (의자를 엎어버린 이유)

초록 등불 2011. 10. 21. 15:34

 

※ 열납되는 예배(의자를 엎어버린 이유) ※

 

 

 

스미스 위글스워스 목사님의 이야기 중에 우리의 관심을 끄는 이야기가 하나 있습니다.


하루는 목사님께서 예배를 인도하시는데, 별다른 이유없이 성령께서 다소 임재하지 않으시고 역사의 제한을 받으시는 것을 목사님께서 느끼셨습니다. “왜 그럴까? 특별히 하나님 앞에서 부족하게 행한 것도 없는데..” 이런 생각을 하시면서 이유를 모르겠으니 목사님은 기도로 하나님께 그 이유를 여쭈어 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성령 안에서 눈을 열어서 교회의 의자 둘째 줄에 앉은 사람들을 보여 주십니다. 그리고 그들은 예배를 드리려 온 자들이 아니라 예배를 구경하고 방해하려 온 마술사, 곧 우리나라로 말하면 무당 들인 것을 알게 해 주십니다.


그래서 원래 육체적인 노동에 종사해서 육체적인 완력도 좋으셨던 목사님께서 강단 아래로 내려가셔서 둘째 번 의자를 번쩍 들어올리시면서 고함을 지르십니다. “이, 마귀의 자식들아, 당장 꺼져라!”


모를 줄 알았던 그들의 정체가 탄로나고 목사님께서 성령의 능력 안에서 꾸짖자 그들은 혼비백산하여 도망을 갑니다. 하하하. 할렐루야!


또 다른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예수님께서 큰 기적과 이적을 행사할 때는 때로는 혼자 들어가시거나, 때로는 제자 중 믿음이 좋은 두어 사람만 함께 하게 하셨습니다. 그것은 왜일까요?


그것은 만약 믿음이 부족하거나 불신앙을 가진 사람이 그 곳에 있으면 하나님의 역사에 방해를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임재하심에 장애를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막5:35 아직 말씀하실 때에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들이 와서 가로되 당신의 딸이 죽었나이다 어찌하여 선생을 더 괴롭게 하나이까

막5:36 예수께서 그 하는 말을 곁에서 들으시고 회당장에게 이르시되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하시고

막5:37 베드로와 야고보와 야고보의 형제 요한 외에 아무도 따라옴을 허치 아니하시고


이러한 사실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는 것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임재, 곧 성령의 역사하심에 있어서 그곳에 있는 사람들의 마음의 상태에 따라 영향을 받으시고 제한을 받으신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일은 실상 우리의 세상에도 마찬가지이지요. 가령 우리가 어떤 곳에 초대를 받았다고 생각해 봅니다. 그런데 그곳에 같이 초대된 사람들이 다 나를 좋아하고 환영하는 사람들이라면 우리는 부담없이 그곳에, 그리고 기쁨으로 참석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전부나 혹은 일부라도 우리에게 나쁜 감정을 가지고 있거나 별로 오는 것을 달갑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우리도 그곳에 갈까 말까 망설이게 되고 때로는 가지 않으려고 할 것입니다. 인격체이신 하나님도 마찬가지이신 것입니다. 하나님도 어떤 예배나 장소에 성령으로 임하실 때 그곳에 모인 사람들의 영적인 상태나 마음의 상태 등에 따라서 영향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또 다시 예를 든다면, 어떤 친구가 우리를 초대해놓고 방도 청소도 하지 않고 음식 먹은 것들을 설거지도 하지 않고 아무런 정성없이 홀대히 우리를 초대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만약 안다면, 우리는 별로 가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인간이라 잘 모르니까 때로는 가지요. 하지만 하나님은 불꽃 같은 눈으로 모든 것을 아시기에 그러한 상황과 상태와 장소에는 임하시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배를 관념적으로, 혹은 의례적으로만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예배는 실제이지요.


그리고 가인과 아벨의 경우에서 보듯이 때로는 예배가 열납되기도 하고 때로는 예배는 열납되지 않고 헛수고인 경우도 많습니다.


이에 관한 경종과 가르침으로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생각해 볼 수 있지요. 하나님은 영이시니 우리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여야 합니다.


요4: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므로, 우리 인간이 아니시므로 우리의 모든 마음과 생각을 아십니다. 다 보십니다. 사람은 자신의 생각과 마음 상태를 사람에게는 속일 수 있으나 하나님은 결코 속이지 몼합니다. 그러므로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여야 합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한다는 것은 우리의 겉사람의 마음, 곧 혼이 아닌 속사람의 마음, 곧 심령으로 예배하라는 말씀이기도 한데, 이는 정말 가슴 깊은 곳에서 진정과 사랑과 정성과 경외와 감사 등을 담아서 예배를 드리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드리는 예배가 열납되기 위해서는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여야 함을 기억해야 합니다.


가령 아무런 마음의 준비도 없이 놀다가 헐레벌떡 겨우 시간에 맞추어서 예배에 참석하면 하나님께 열납되는 예배가 힘들겠지요. 사치스럽고 호화로운 옷은 입지 못해도 정갈하고 아담하게 정성을 다해서 차려입고 예배에 오지 않고, 슬리퍼를 신고 운동복이나 외설적인 찢어진 청바지 등을 입고 와서 예배를 드린다면 과연 그것이 존귀하신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행할 바이며 과연 그러한 예배를 하나님께서 받으실까요?


하나님께서 당신을 그렇게 가볍게 생각하시거나 홀대하는 자리에 임하실까요?


출20:7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나 여호와는 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


또한 “서로 사랑하라”, “하나님은 사랑이시니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라고 성경이 말하고 있는데, 성도 상호간에 서로 용서하지 못한 채 미운 감정을 품고 앉아서 드리는 예배라면, 혹은 목회자를 향하여 반감이나 거부감 등을 가지고 앉아서 예배를 드린다면 과연 그 예배가 열납이 될까요?


그래서 예수님은 예배를 드리려다가 어떤 형제와 다툰 것이 생각나거든 먼저 가서 화해하고 와서 예배를 드리라고 하신 것이지요.


마5:23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 들을 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마5:24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무수히 많은 예배를 드립니다. 하지만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대부분의 예배에서 실패합니다. 하나님께 열납되지 못하는 가인의 예배를 드립니다.


가인과 아벨의 경우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곧 예배의 성공은 생의 행복과 승리로 이어질 수 있지만 실패는 생의 불행과 패배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가인은 예배에 실패함으로 불행한 생의 길을 걷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배에 승리하여야 합니다. 예배에 승리할 때 우리는 올곧은 생의 길을 걸어가며 참다운 축복과 행복한 생을 살아가게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신 가장 근본적인 이유가 우리와의 사랑의 교제인데, 그것의 중심에는 예배가 자리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배의 자리에서 한 신앙고백을 가진 무리가 되어 모여서 우리에게 사랑과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을 찬미하고 기뻐하며 예배를 드릴 때 하나님은 은혜와 영광으로 우리에게 찾아오시고 우리와 사랑을 나누시며, 당신도 우리와 함께 기뻐하시며 우리에게 축복을 주시며 참 생명을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스미스 위글스워서 목사님은 이것을 일컬어 생명의 순환이라고 말씀하셨지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축복해 주시고 성령으로 기름부어 주시고, 우리는 경배와 찬양과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께 다시 올려 드리고, 다시 하나님은 우리에게 부어주시며 그러한 사랑과 생명의 교통과 흐름을 생명의 순환으로 보신 것이지요.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인간을 지으신 가장 근본적인 이유 중의 하나가 우리로 하여금 예배를 드리게 하심에 있습니다.


엡1: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엡1: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엡1:6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그러므로 우리는 무슨 선을 행하고 의를 행하는 등도 좋지만, 가장 먼저 하나님 앞에서 행하고 승리해야 할 것이 예배임을 알아야 합니다. 삶과 마음의 중심엔 예배라는 것이 가장 큰 축이 되는 중심으로 자리잡고 있어야 합니다. 곧 예배 중심의 삶이 되어야 하고, 그 예배가 열납되는 예배 승리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무소부재, 어디에나 계시고 어디에나 임하여 계십니다. 또한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언제 어디서나 우리에게 사랑을 베푸시고 복을 내려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예배시간이 공적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축복을 내려 주시는 시간입니다. 공적으로 하나님께서 임재하셔서 우리에게 복을 주시는 시간입니다.


예배에 관하여 기도하는 가운데 주님은 “예배에 승리하여라. 생의 행복과 승리로 이어질 것이다. 하나님은 당신을 예배하는 자를 찾으신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는 자에게 복을 내려 주시느니라” 감동하셨습니다.


요4:23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성경을 보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가는 곳마다 가장 먼저 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는 예배 중심의 삶을 살았던 것이고 그럼으로 말미암아 승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창12:6 아브람이 그 땅을 통과하여 세겜 땅 모레 상수리나무에 이르니 그 때에 가나안 사람이 그 땅에 거하였더라

창12:7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가라사대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그가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를 위하여 그 곳에 단을 쌓고

창12:8 거기서 벧엘 동편 산으로 옮겨 장막을 치니 서는 벧엘이요 동은 아이라 그가 그 곳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

창12:9 점점 남방으로 옮겨 갔더라


구약시대를 보면 하나님께서 제사나 예배를 열납하시면 구름이 곧게 하늘로 올라가거나 혹은 제단에 불로 응답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갈멜산에서 하나님께서 엘리야가 드리는 예배를 열납하실 때 하늘에서 불을 내려서 제단과 제물을 태우시지요.


이렇듯이 열납되는 예배와 열납되지 않는 예배에는 징조가 있습니다. 열납되지 않는 예배는 연기가 흩어져 버렸지요. 이는 예를 들면 예배시간에 아무런 은혜나 감동을 느끼지 못하고 마음만 산란한 것을 영적으로 의미합니다.


열납되는 예배에는 불이 임하였지요. 이는 열납되는 예배에는 우리의 심령의 지성소에 하늘로부터 불이 임하고, 그 불로 인하여 우리의 마음에 빛과 기쁨과 하나님을 향한 거룩한 열정이 회복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하여 예배를 통하여 우리가 이러한 심령의 불의 임함,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는 의와 희락과 평강이라 말씀하신 것처럼 의와 희락과 평강을 맛보게 되는 것이 열납된 예배요, 승리한 예배요, 반면에 그러하지 못한 예배는 헛수고만 한 것인 것입니다. 실패한 예배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무심코 예배를 대하지 마십시요. 무심코 예배에 참석하지 마십시요.


하나님을 향한 경외와 사랑과 사모함의 마음을 가지고 임하십시요. 가난하여 비싸고 좋은 옷은 입지 못할지언정 정갈하고 단아한 옷차림으로 예배에 참여하십시요. 가난한 이들을 생각하면 너무 사치스럽거나 화려하게 옷을 입는 것보다는 정갈하고 단정하게 입는 것이 어쩌면 하나님께서 더 기뻐하실 일입니다. 예물을 준비하여도 예물만 준비하지 마십시요. 마음을 담아 함께 마음을 준비하십시요.


앞에서도 말씀드렸다시피 한 사람, 한 사람이 예배의 승리와 실패의 요인이 될 수 있음을 기억하고, 자신뿐만 아니라 교우들을 위하여서라도 그렇게 하십시요. 아무런 준비없는 자신의 예배참여가 하나님의 임재를 방해할 수 있음을 기억하십시요.


그러나 아무리 준비가 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또한 아무리 죄를 짓는 삶을 산다고 하여도 예배에는 참석하십시요. 참석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께서 더 기뻐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실상 죄인을 구하려 오신 예수님, 하나님은 아무리 우리가 준비되지 않았고 부족한 죄인의 모습으로 살아갈지라도 당신의 자녀인 우리가 당신의 집을 떠나는 것보다 더 슬퍼하시는 것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경우에라도 예배에는 참석을 하십시요.


제가 말씀을 드리는 것은 예배에 참석을 할 때의 더 승리하고 열납되는 예배를 위하여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 것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예배를 위하여 글을 쓰려고 마지막으로 하나님 앞에서 열납되는 예배에 대하여 환상을 구하였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축복을 상징하는 무슨 꽃잎들이 떨어지는 것이나 아니면 성령을 상징하는 비나 아무튼 그러한 것들을 기대하였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열납되는 의미를 상징하는 것으로 하나님께서 심령 가운데 보여주신 것은 “눈물”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의미를 영으로 전달해 주셨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예배하시는 것을 기뻐하시는 눈물이요,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겨워 하시는 사랑의 눈물이요, 우리를 한편 아파하시는 당신의 가슴의 눈물이요, 우리를 기꺼이 축복해 주시기 원하시고 마침내 영원한 나라로 데려가시길 간절히 원하시는 축복의 눈물이었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눈물을 실제로 뚝뚝! 흘리신다는 것보다는, 인간의 눈물의 의미에 비유하여 우리가 심령과 진정으로 당신을 예배할 때의 당신의 마음을 가르쳐 주신 것이지요.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의 예배를 기뻐하시고 가슴 겨워하십니다.


만약 목회자도 그러하고 참여하는 온 성도들도 모두, 오롯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는 마음, 그리고 신령과 진정으로 준비된 몸과 마음의 예배를 드리면, 한 입술로 아버지 되신 그분을 영과 마음으로 진정으로 찬미하면, 우리가 “하나님”, “주님”이라고 부르는 예배의 첫 순간에 주님이 기쁨과 영광으로 임하실 것입니다. 임하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예배가 채 시작되기도 전에 그 기쁨과 희락에 젖어서 기쁨의 눈물부터 흘리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예배는 이렇게 되어야 합니다. 마땅히 이렇게 열납되고 승리하는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할 때 예배 가운데 하나님의 임재와 놀라운 영광을 맛보며, 천국을 맛보며, 말에 있지 아니하고 능력에 있는 하나님 나라의 임재 가운데 영육간의 문제들이 닫힌 문들이 열리고, 사단의 어두운 그림자들이 물려가게 되는 것입니다.

예배는 공적인 동시에 한편 개인적입니다. 그러므로 같은 예배를 통해서 어떤 사람은 승리하는 예배, 열납되는 예배를 드리게 되고, 어떤 사람은 실패하는 예배, 열납되지 못하는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예배의 성공과 실패는 각 사람의 생의 성공과 실패로 이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예배에 승리하는 사람이 되십시요.

오! 주님, 우리가 언제나 이러한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로 예배에 승리하게 하옵소서. 당신을 기쁘게 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생이 복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사랑이신 당신을 찬양합니다. 경배합니다. 아멘! 할레루야! 할렐루야!


대하5:11 이 때에는 제사장들이 그 반차대로 하지 아니하고 스스로 정결케 하고 성소에 있다가 나오매

대하5:12 노래하는 레위 사람 아삽과 헤만과 여두둔과 그 아들들과 형제들이 다 세마포를 입고 단 동편에 서서 제금과 비파와 수금을 잡고 또 나팔 부는 제사장 일백이십 인이 함께 서 있다가

대하5:13 나팔 부는 자와 노래하는 자가 일제히 소리를 발하여 여호와를 찬송하며 감사하는데 나팔 불고 제금 치고 모든 악기를 울리며 소리를 높여 여호와를 찬송하여 가로되 선하시도다 그 자비하심이 영원히 있도다 하매 그 때에 여호와의 전에 구름이 가득한지라

대하5:14 제사장이 그 구름으로 인하여 능히 서서 섬기지 못하였으니 이는 여호와의 영광이 하나님의 전에 가득함이었더라

<글쓴이: cafe.daum.net/riverofwater, 초록 등불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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