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등불/초록 영성수필

포르르.. (생명, 기쁨)

초록 등불 2011. 11. 2. 16:00

 

※ 포르르.. ※

 

 

 

포르르.. 한 마리 새가 생기롭게 이리저리 날아다닙니다. 그러다가 저 높은 하늘로 한없이 솟아올랐다가 다시 수직으로 하강합니다. 그리고는 다시 하늘로 한없이 솟아올랐다가 다시 수직으로 하강합니다.


또 다시 포르르 생기롭게 원을 그리며 자유롭게 날아다니다가 다시 하늘로 오르락 내리락 합니다.


육신적으로나 혼적으로는 쉬운 일은 아니지만, 저는 가장 기쁜 시간이 한밤 중 주님 앞에서 말씀 읽고 기도하고 찬양을 드리는 시간입니다. 만물이 고요히 잠든 시간, 홀로 주님 앞에서 그리고 주님 안에 있을 때가 가장 행복합니다.


때로는 저의 부족함에 눈물을 짓기도 하지만, 때로는 주시는 한량없는 기쁨에 기쁨의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혼자 성령 안에서 간간 법궤 앞에서 즐거워하며 춤을 추던 다윗이 되곤 합니다.


성령 안에서 심령으로 포르르 생기롭게 날아다니는 새가 보입니다. 기쁨에 겨워 춤추는 저의 영혼의 모습을 보여주시는 것이지요.


하늘로 한없이 솟구쳐 올라갑니다.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자리로 올라가서 제 영이 하나님의 영광을 맛보는 것이지요. 또 다시 수직으로 한없이 내려옵니다. 이는 하나님의 영이 제가 있는 땅으로 내려 오셔는 베푸시는 임재의 은혜를 보여주시는 것이지요.


수없이 반복하여 제 영은 한 마리 생동하는 새가 되어서 포르르 날갯짓하며 아스라이 저 높은 하늘 보좌로 오르고 다시 수직으로 하강을 하는데 땅에 속한 것이 아닌 하늘의 찬란한 빛이 내려 비추입니다.


그리고는 심령으로 주님의 음성이 들려옵니다. “아들아, 사랑한다”


감격하여 주님 앞에 “주님, 부족한 종을 왜 사랑하십니까?” 감사와 감격의 눈물이 흐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지 않느냐? 사랑하려고 애쓰지 않느냐? 고맙고 기뻐구나!”


“아버지께서 먼저 주신 사랑에 너무도 보잘 것 없는 하찮은 작은 마음 아닙니까? 그것이 어떻게 아버지를 기쁘게 할 수 있겠습니까?” 미안한 마음으로 물어봅니다.


“아니다. 그래도 참 고맙구나. 내가 먼저 사랑한 것은 맞지만 그리고 깊은 사랑을 준 것도 맞지만, 그래도 세상의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사랑하려고 애쓰지 않는다. 그래서 너의 사랑하려고 애씀이 기쁘고 고맙구나”


주님의 그 말씀 앞에서 너무도 죄송하고 미안해집니다. 누구나 다 그렇듯이 저도 살아온 시간을 돌아보면 주님 앞에서 너무도 부족하고 죄송한 시간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 앞에 엎드려 말씀드립니다.


“아버지, 제가 아버지 앞에서 그릇된 길과 잘못된 삶을 산 적도 많지 않습니까?”


주님께서 성령 안에서 말씀하십니다. “내게 있어서 과거는 중요하지 않다. 누구나 돌아오고 회개하면 나는 언제나 용서하고 용납하며 사랑으로 안아준다. 왜냐하면 너희는 내가 지극한 사랑으로 지었고 지극한 마음으로 언제나 돌아오기를 기다리기 때문이다. 세상의 아버지도 그러하지 아니하냐?”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가 축복과 부탁의 말씀을 하십니다. “내 안에서 평안하라, 언제나 평안하라. 그리고 많은 사람들에게 말씀과 복음을 증거하며 내 마음을 알려주려무나!”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제가 오늘 이 글을 쓰는 것은 우리의 기쁨의 회복을 위해서입니다.


수고로운 세상의 길을 걷다보면, 가지가지 우리의 마음을 힘겹게 하는 일들로 우리는 마음의 기쁨을 잃어버립니다. 그래서 “항상 기뻐하라!” 주님은 성경을 통하여 말씀하시고 명하셨지만 우리가 그 기쁨을 항상 누리지를 잘 못합니다.


오늘 아침에도 일어나니 이런저런 일들과 곤함으로 마음이 다소 밝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버릇처럼 “주님, 지금 제게 원하는 것이 무엇입니까?”라고 물으니, 시시때때로 수도 없이 이르시는 “기뻐하라!” 들려오는 주님의 음성.


그래서 “어떻게 기뻐지지 않는데 기뻐할 수 있습니까?”라고 물으니, 그 말에는 대답도 하지 않으시고 또 다시 “기뻐하라!” 그저 반복해서 들려오는 음성.


그런데 그 음성을 반복적으로 듣고 있다보니 그냥 마음이 기뻐집니다. 마음에 햇살이 깃들고 평안이 찾아옵니다.


그리고 말씀을 기록하기 전 잠시 엎드린 자리에서 왜 마음이 기뻐졌는지 그 영적인 원리를 알게 해 주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은 사랑이시며 빛이시라”는 주님의 음성이었습니다.


성경이 이르시듯 하나님은 사랑이시며 빛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영혼이 하나님을 앙망하고 바라고 생각할 때 하나님의 그 빛이 우리에게 비추입니다. 잠잠히 하나님을 바라고 있으면 그 빛이 우리를 환하게 만들어 줍니다. 그 빛은 소망의 빛이며, 깨달음을 주는 지혜와 명철의 빛이며, 마음에서 어두움을 몰아내는 기쁨과 희락의 빛입니다.


요즘은 꽤 많은 분들 두고서 중보기도를 합니다. 항상 제가 말씀드리지만 성령 안에서 영으로, 그리고 우리의 혼과 마음으로 전달되어져 오는 과정에서 우리는 때때로 오류를 범할 수 있습니다. 틀릴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음성이나 지식과 지혜의 말씀이나 예언의 말씀 등이 하나님의 영에서 우리의 영을 거쳐 우리의 마음으로 전달되어져 오는 과정에서, 우리의 마음이 정결하지 못하거나 상처 등의 쓴뿌리로 인하여 빛을 바르게 통과시키지 못하는 구부러진 렌즈일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 과정에서 나의 생각이나 사단의 생각이 개입할 여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언이나 지식의 말씀이나 그 모든 부분에서 우리는 항상 분별하며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해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지만 기도에 더욱 힘쓰고 정결하고 거룩한 삶에 애쓰면 애쓸수록 조금씩 더 정확하게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고 여러 가지 상황들을 분별하게 됩니다. 경험합니다.


중보기도에 들어가면 일단 성령 안에서 제 영으로 각 사람의 영을 스치며 점검을 합니다. 그러면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다소 오류가 있을 수 있겠지만, 지금 낙심에 빠져 있는지, 그래도 기쁨을 누리고 있는지, 다소 힘들지만 애쓰고 있는지, 아니면 영적 지각을 잃고 혼미한 가운데 있는지 영적 정보가 성령 안에서 제 영으로 전달되어져 옵니다.

물론 때때로는 그냥 혼적 상태에서 안부의 인사를 전할 때도 있지만, 그런 영적 점검 가운데서 다소 영적인 기운을 불어넣어주어야 할 분들이 보이면 문자나 전화 등으로 다소 영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기도와 말씀 등으로 독려를 해 드립니다.


한번은 간밤에 어떤 분의 영적인 상태을 영 안에서 점검하니 다소 침체되고 울적해진 상태가 느껴집니다. 그래서 마음을 새롭게 하시고 힘을 내시라고 문자를 드렸더니, “아멘! 저의 심리를 어떻게 아시고..^^”라고 유머스럽게 답장이 왔습니다. 제가 아는 것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영의 흐름으로 아는 것이지요.


그렇게 각 사람의 영적 상태를 수시로 스치며 점검해보면 참으로 많은 분들이 삶의 기쁨을 잃고 자주 침체하며 삶의 활력을 잃어버리는 모습을 참 많이 봅니다. 그런 분들 뿐만 아니라 저도 역시 연약한 사람 종종 마찬가지이지요.


그러나 저는 한 가지 기쁨의 비결을 점점 더 깊이 배워갑니다. 그것은 마음을 세상을 향하지 아니하고 점점 더 하나님을 향할 때에만 진정한 기쁨의 삶을 살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하나님을 사랑하려면 육신적으로 혼적으로는 때로 힘겨울 때도 많습니다. 쉽지만은 않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나를 부인하고 영을 좇아 행하면 하늘의 평강과 기쁨이 늘 마음속에 머무는 것을 봅니다.


세상의 기쁨과 하늘의 기쁨, 사단이 주는 즐거움과 하나님이 주는 기쁨은 방식이 서로 다릅니다.


세상이 주는 기쁨은 세상을 취하고 시작할 때는 즐겁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끝나면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공허감과 곤고함이 찾아옵니다. 그런데 하늘이 주는 기쁨은 따르고 시작하려면 힘이 듭니다. 그런데 그 과정을 극복하면 “정말 잘했다”라는 스스로의 만족감과 함께 땅의 것이 아닌 목마르지 않는 생수의 행복과 평안으로 찾아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알지만 가슴으로 깨닫지 못하거나 기도를 게을리 함으로써 영적인 힘을 잃어 알면서도 행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울적하거나 마음이 힘들면 기도와 찬송과 말씀을 쉬어버립니다. 때로는 교회도 가지 않습니다. 정말 이 때가 더욱 하나님께 기도하고 찬양하며 말씀을 가까이 하고 영적인 힘을 공급 받아야 할 때인데도 말입니다.


여러 번 말씀드리지만 신앙생활은 장난이 아닙니다. 그냥 예수 믿고 구원받는 초보의 도야 쉽겠지만,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삶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누구든지 나를 따르려거든 자기를 부인하라! 자기 십자가를 지라!”이르신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그냥 일반적인 도덕적이거나 종교적인 수양의 그런 차원과 의미가 아닙니다. 영원한 생명을 두고서 하나님의 나라와 어두움의 나라가 치열한 영적 전쟁을 벌이는 가운데 우리는 놓여 있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우리는 영적 전쟁터에 서 있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알고 우리는 깨어 있어야 하고 각성하고 있어야 합니다.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요10:1)의 말씀처럼 도적인 사단은 시시탐탐 우리의 생명을 죽이고 멸망시키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깨어서 경성하며 세상이 아닌 하나님의 나라를 오롯이 사랑하려고 애쓰면, 애쓰는 자에게는 주님이 말씀하신바 세상이 주는 것이 아닌, 다시 목마르는 것이 아닌 생수를 하나님은 우리에게 주십니다.


앞에서 말씀 드렸다시피 세상이 주는 기쁨은 세상을 취하고 시작할 때는 즐겁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끝나면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공허감과 곤고함이 찾아옵니다. 그런데 하늘이 주는 기쁨은 따르고 시작하려면 힘이 듭니다. 그런데 그 과정을 극복하면 “정말 잘했다”라는 스스로의 만족감과 함께 땅의 것이 아닌 목마르지 않는 생수의 행복과 평안으로 찾아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요일2:15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요일2: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온 것이라


롬8:7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약4:4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게 하는 것이니라


이 말씀들을 기억하고 묵상하며, 세상과의 단절을 결단하셔야 합니다. 어정쩡하게 세상에 한 다리, 하나님의 나라에 한 다리를 걸치고 있으면 마치 두 사람을 사랑하면서 더욱 번민과 고뇌에 빠져가게 되듯이 마음이 괴로우며, 이편도 아니고 저편도 아니어서 더욱 곤고할 뿐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이미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닙니다.


요15:19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터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인 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신앙의 삶이 힘들다고 세상을 기웃거려보았자 낯선 이방인일 뿐입니다. 세상에서도 밟힐 뿐입니다.


젊은 날 언젠가 기도원에서 기도하며 자다가 보여주신 꿈, 꿈에 보니 화면이 두개의 스크린으로 나누었는데 제가 한편은 세상이요, 한편은 십자가, 그 사이에 다리를 벌리고 서서 한 발은 이쪽에, 한 발은 저 쪽에 두고 있는데 조금 있으니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저를 밟아 버리더군요.


마5: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신앙의 삶이 힘들다고 세상을 기웃거려보았자 낯선 이방인, 세상에서도 밟힐 뿐인 것입니다.


우리에게 오직 남은 한 길은 비록 가는 길이 좁고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고 힘이 들지만, 옹골찬 마음과 기백으로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 그리스도’만을 바라보며, 종용히 순종하며 온유와 겸손으로 섬기며 따라가는 길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한번 결단해 보십시요. 세상과의 단절을 선언해 보십시요. 나라의 충절을 위하여도 그토록 사랑하고 보고 싶던 여인을 가던 길이라 무심코 데려갔던 자신의 아끼던 말의 목을 단호히 잘라버렸던 김유신처럼 그렇게 세상과의 단절을 결단해 보십시요. 그럴 때에 진정으로 하늘의 평강이 하늘에서 내려옵니다.


때로 밤을 새워 기도하여도 말씀을 읽어도 찬양을 드려도 그 시간이 너무 짧아 아쉽고 체력이 부족하고 밀려오는 졸림이 아쉽고 싫을 만큼, 이 땅의 것이 아닌 하늘의 기쁨과 평강을 주십니다.


아픔과 수고로움과 다사다난한 이 세상에서 우리가 참된 기쁨을 잃어버리지 않고 살아가는 비결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오직 하나님을 사랑하는 길입니다. 왜냐하면 오직 그분만이 존재의 의미와 존재의 기쁨과 존재의 평안과 존재의 참 생명 그 모든 것의 근원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꾸만 그 사실을 망각하고 터진 웅덩이와 같은 세상에서 자꾸만 행복과 기쁨을 찾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곳에는 참된 행복이 없습니다. 만족과 기쁨은 없습니다. 추구할수록 더 깊은 공허와 곤고함만 찾아올 뿐입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 이제는 하나님이 아닌 세상을 등지고 돌아서서 하나님만 바라보며 그렇게 하나님을 참되이 사랑하며 그 빛 가운데서 언제나 하늘의 화안한 기쁨 가득히 누리며 살아가는 우리면 정말 좋겠습니다. 아멘! 샬롬!


약1:17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살전5:16 항상 기뻐하라


요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글쓴이: cafe.daum.net/riverofwater, 초록 등불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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