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등불/초록 영성설교

[주일설교] 사람의 본분

초록 등불 2011. 11. 28. 16:03

  [주일설교] 사람의 본분

 

 

지난 주 중반부터 다소 무리한 탓인지 몸 상태가 좋지 않아졌습니다. 몸 상태가 나빠지면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시는 것보다 이모저모 상당한 어려움을 겪습니다. 피로와 통증 외에 건물로 말하자면 기본골조인 근관절계, 신경, 근육계 등이 대부분 아프다보면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두통이 몰려옵니다.


머리가 답답하고 여러 가지 증상으로 불편해지며 무엇보다도 머리가 맑지 않아서 조금은 멍한 상태가 되곤 합니다.


이렇게 여러 가지 몸 상태가 악화되면 일상적인 생활도 쉽지 않게 됩니다. 끊임없는 피로감에 지속적으로 잠을 자게 되지만 쉬 호전되지 않고 상당한 시간을 필요로 합니다. 이런 날엔 주일이라도 예배를 제대로 인도하기도 어렵지요.


결국 사람은 육신을 통하여 영으로부터 오는 다양한 신호와 주님의 음성을 듣게 되는데, 머리가 아프다보면 이러한 부분에도 장애를 받게 되지요. 그래서 일을 제대로 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어제 주일에는 시간을 내어서 말씀 준비도 하지 못하고, 잠시 기력을 내어서 그래도 예배 시간이니 깔끔하게 씻고 옷단장을 하고 잠시나마 주님께 예배하는 기쁜 시간을 가졌었습니다.


물론 설교도 전혀 준비를 하지 못하였으니 즉시로 그 시간에 주시는 대지로 잠시 편하게 말씀을 나누었지요.


제가 저의 오랜 건강관리를 위해서 경험으로 습득된 것이 있는데, 그것은 적게 먹고 적당히 일하고 많이 쉬어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자어로 소식, 소로, 다휴라고 기억하고 살지요. 그런데 그만 어제 저녁에는 소식을 잊고서 기력이 딸리니 과식을 한 듯싶습니다.


그렇게 과식을 하면 머리가 더욱 아파지는데 때로는 잠을 자면서도 비몽사몽 통증에 시달립니다. 어제 밤 기도하려고 앉았다가 그대로 잠이 들어서 새벽 4시까지 불을 켜 둔 채로 졸았다가 계속해서 잠을 자면서도 통증에 시달리고, 새벽 4시경 정신을 차려 잠시 기도하다가 도무지 피곤해서 안 되겠기에 잠을 다시 자고 낮 오후 1시경에야 곤한 몸 일으켜서 정신을 차려봅니다.


하지만 눈을 뜨자마자 고통스런 이모저모 통증에 마음과 입술은 움직이려 하지 않지만,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 하루도 기쁜 하루 주셔서 감사합니다” “예수께서 채찍에 맞으셨으니 나는 나음을 입었습니다” “예수 안에서 나는 강건합니다” “예수님 안에서 나는 행복합니다”라는 고백으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제가 별로 자랑스러운 일도 아닌데 구구절절 어떻게 아프고 힘든 사연을 적은 것은 바로 이 말씀을 드리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늘 생각을 지키고 마음을 지키고 입술의 고백을 지키라고 누누이 말씀으로 부탁을 드려도 그것이 몸에 배지 아니하면 실천을 못하시고, 부정적인 생각과 어두운 마음을 받아들이고 또한 입술로 원망과 불평을 하시는 분들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시면 아니됩니다. 좋은 날에 감사하고 좋은 일에 기뻐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나쁜 날에 더욱 감사하고 나쁜 일에 믿음의 고백을 해야하고 할 수 있는 것이 우리 그리스도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떠한 환경이나 어떠한 형편에 처하셨던지 절대로 부정적인 생각과 마음을 받아들이지 마십시요. 그리고 입술로 어떠한 형편과 처지에 처하셨던지 현재의 처한 상황이 아닌 믿음 안에서 주님이 주실 좋은 날, 밝은 날을 고백하십시요. 그것이 산 믿음이요, 그리스도인이 해야하고 할 수 있는 믿음의 삶인 것입니다. 할렐루야!


중요한 마음과 생각 지키기, 입술의 고백 지키기를 설명하려다보니 다소 서론이 길어졌습니다. 이제는 어제 나눈 말씀을 잠시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사람이 강건하고 좋은 일이 있거나 하면 다소 마음이 들뜨게 되지요. 하지만 몸이 곤하거나 어려운 일을 당하면 다소 마음이 침잠하게 되는데, 때로는 그러한 마음속에 더욱 조용한 평화를 누리는 것을 보면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의 신비를 한편 생각해 보게 됩니다.


어쨌거나 그런 환경을 초월한 침잠되었으나 조용한 평화 가운데 짧았지만 행복한 예배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말씀의 세세한 것에 대하여 감동을 받을 시간은 없었지만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에 대한 주제는 감동하심을 받아 두었기에 우리가 잘 아는 전도서 12장 13-14절의 말씀으로 “사람의 본분”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잠시 나누었습니다.


본문을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전12:13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

전12:14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간에 심판하시리라


제 설교는 대부분 강해설교가 아닌 주제설교이기 때문에 본문에 크게 얽매이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외워둘만한 구절이니 마음에 꼭 새기어 두시면 싶습니다. 이제 주님이 가르치신 설교내용과 함께 본론으로 들어가 봅니다.


사람이던 건물이던지 무엇이던지 간에 존재의 중심과 축이 되는 것이 있습니다. 사회나 나라나 회사도 마찬가지이지요. 어떤 이념이나 사상 등이 그 사회의 축이 되어 있곤 하지요.


그 기초와 중심이 되는 축이 튼튼하고 강할수록 쉬 흔들리지 않고 강한 존재력과 생명력을 자랑하게 되지요.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의 중심과 축은 무엇이어야 하겠습니까? 그것은 두 말할 나위도 없이 하나님과 그 말씀이 중심이요, 축이 되어야 하겠지요.


오늘 본문은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즉 세상의 모든 일들의 헛됨과 부질없음을 들었으니, “오직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라고 우리에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하고 있는 본문을 보면, 하나님을 경외하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그 명령을 지키라고 우리에게 권면합니다.


우리는 신약의 은혜로운 시대를 살아가면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 십자가, 곧 아들을 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시고 사랑하신 하나님, 곧 사랑의 하나님만을 강조하면서 공의의 하나님, 우리의 모든 것을 결국 심판하실 공의의 하나님, 한편 두려운 하나님에 대하여서는 다소 선포도 적고 우리도 잊고 사는 듯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지만, 동시에 정녕 우리가 두려워하며 공경하고 받들어야 하는, 곧 경외하여야 하는 하나님이십니다. 주님도 정녕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분은 육과 함께 동시에 영을 멸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이시라고 말씀하셨지요.


마10:28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우리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과 그 말씀을 삶의 축으로, 마음의 중심으로 삼고 살아가야 합니다. 삶의 근본인 반석으로 삼고 살아가야 합니다. 그래야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지 않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래야 주님 앞에 서는 날, 불의 공력이 나타나 우리의 모든 것을 시험하는 날 모든 것이 허물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오롯이 하나님을 공경하고 두려워하는 경외의 삶을 살아가십시요. 그러한 마음으로 그분께서 명하시는 명령, 곧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십시요. 이것이 가장 먼저 품어야 하는 마음입니다.


이러한 마음의 중심으로 살아갔던 대표적인 성경의 인물이 요셉입니다.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 앞에 어쩌면 넘어갈 수도 있을 혈기 왕성한 나이, 그러나 그는 코람데오, 곧 하나님의 목전에서 살아가는 마음으로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 옷마저 던져버리고 도망을 치지요.


그 일로 억울한 누명을 쓰고 중형의 옥살이를 하게 되었지만, 어쩌면 원망과 불평을 할 수 있어 보이기도 하지만, 자신의 정당함을 아시고 모든 것을 보시는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결코 잃지 않아 결국은 승리를 하였었지요. 요셉은 정말로 위대한 믿음의 선조인 것입니다.


다른 예로 한편 우리가 본 받을 믿음의 사람임은 분명하지만, 한 때의 실수, 곧 하나님 경외의 삶에 실패한 사람으로는 다윗을 생각해 볼 수 있지요.


그는 우리야의 아내인 밧세바에게 마음을 빼앗겨 살인죄와 간음죄를 저지르게 됩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와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삼하12:9 그러한데 어찌하여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업신여기고 나 보기에 악을 행하였느뇨 네가 칼로 헷 사람 우리아를 죽이되 암몬 자손의 칼로 죽이고 그 처를 빼앗아 네 처를 삼았도다

삼하12:10 이제 네가 나를 업신여기고 헷 사람 우리아의 처를 빼앗아 네 처를 삼았은즉 칼이 네 집에 영영히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고


하나님은 나단 선지자를 통하여 다윗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네가 나를 업신 여기고!!”


다윗은 정말로 하나님을 사랑했던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가 비록 실족하여 우리야의 아내를 취할 때에도 하나님을 사랑하거나 경외하는 마음을 잃었던 것은 아닙니다. 단순히 유혹의 감정을 뿌리치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윗의 행위에 대하여 “네가 나를 업신여기고”라고 단죄합니다.


그것은 왜 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은 아니 계시는 곳이 없으신 무소부재 하신 분이시며, 모든 것을 불꽃같은 눈으로 보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행하는 일거수일투족은 모두 하나님의 목적, 곧 그분의 눈앞에서 행하는 것과 일반인 것입니다.


우리 육신의 아버지가 보는 앞에서 아버지의 말씀을 어기는 행동을 한다면 이는 아버지를 업신 여기는 것이지요. 그런 원리로 하나님은 어디에나 언제나 계시며 우리의 모든 것을 보시고 계시므로 실상 살아가면서 우리가 악을 행한다면 이는 하나님의 목전에서 행하는 것이며, 결국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행위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공경하고 두려워하는 마음, 사람의 눈이 아닌 하나님의 눈을 의식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누가 보던지 아니 보던지, 혼자 은밀한 곳에 있던지 공개적인 자리에 있던지 우리의 언행은 모두 말씀 안에 있어야 하며 하나님과 자신 스스로에게 바르고 정직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 곧 하나님을 공경하고 진리 안에서 두려워하며 그 말씀에 순종하는 삶 위에, 하나님을 향한 사랑의 마음, 하나님을 의뢰하고 신뢰하는 믿음 등의 마음이 함께 자리를 잡아 축을 이루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올곧게 경외하며, 그리고 사랑하고 믿고 신뢰하는 삶이 우리의 삶의 중심과 마음의 축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무릇 경외하는 삶, 그것이 피조물인 우리가 마땅히 지녀야 하는 사람의 본문인 것입니다.


이것과 관련하여 주님은 4가를 감동하셨습니다. 아니 제가 곤하여 짧게 4가지의 감동하심만 나누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은 믿은 자의 하나님이 되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이라고 말씀하시며, 당신을 사랑하는 자가 사랑을 입으며 찾는 자가 만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11:12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잠8:17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나아가 전심으로 당신을 향하여 사는 자를 위하여 능력을 베푸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대하16:9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를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을 덧입어 살아가려면, 지존자의 그늘 아래, 지켜주시는 지존자의 날개아래 거하는 삶을 살아가려면,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여야 합니다. 오직 마음을 다하여 그분을 향하여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의 하나님이 되어 주시는 것입니다.


둘째로 주님을 하나님을 믿고 경외하는 삶이란 말씀에 순종하는 삶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라고 말씀하고 있지요.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우리의 주로 그분을 믿으며, 생사화복의 모든 주권이 그분께 있음을 또한 믿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지으신 피조물로 그분의 양이요, 그분은 우리의 목자 되심을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믿는 삶은 그 말씀과 뜻에 온전히 순종하는 삶을 말하는 것입니다.


가끔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인간으로서 섬기는 주인과 주군을 향한, 혹은 왕을 향한 목숨을 건 충정을 봅니다. 한낱 사람을 향한 충정도 이와 같을진대 우리의 창조주되시며 모든 것들의 주인되신 그분께는 더 말할 나위가 무엇이겠는지요?


가라하면 가야하고, 서라하면 서야하고, 그 분이 말씀하시고 명하신 즉 우리는 곧 그리고 즉시로 순종하며 행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진정 경외하며 또한 믿는 믿음의 삶인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정녕 하나님을 믿었기에, 어떠한 상황, 곧 설령 아들을 태워 제물로 드릴지라도 다 타버린 잿더미 속에서라도 능히 다시금 아들을 살려 내실 하나님을 믿었기에, 순종하였던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곧 순종의 삶으로 나타납니다. 진정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과 그 계명에 절대적으로 순종의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셋째로 주님은 하나님을 경외며 믿는 자는 꿈과 비젼의 사람이 된다 가르치셨습니다.


동물적인 기능만 두고 본다면 우리 사람만큼 약한 존재가 없습니다. 대부분의 생물들은 태어나면 곧 자신의 몸은 스스로 가눕니다. 하지만 우리 사람은 한 동안 누군가 돌봐주지 아니하면 생명을 유지하지 못합니다.


나아가 날카로운 이빨도 부리도 손톱도 강인한 표피도 가진 것이 없습니다. 너무도 나약한 존재이지요. 다만 하나님께서 놀라운 지능을 주셨으므로 우리는 그것으로 만물을 다스려 가는 것이지요. 그러나 그러하다고 하여도 우리는 너무도 연약한 존재입니다.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요, 해가 뜨면 스러지는 아침 안개와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능력의 하나님 안에 있으면, 그분의 손에 붙들리면 전혀 다릅니다.


유약하고 무능한 자신과는 다르게 자신 안에서 놀라운 권능과 능력으로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한 사도바울은 이렇게 고백하였지요.


빌4: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역사적으로 위대한 일을 감당했던 믿음의 선조들은 한결같이 하나님을 향한 굳건한 믿음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자신은 아무런 것도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면 능히 할 수 있음을 믿었기에 그들은 그 믿음 안에서 큰 꿈과 비젼을 품을 수 있었고 그것을 이루어 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어떻게 어린 소년 다윗이 백전노장의 장수요, 거대한 몸짓의 골리앗을 이깁니까? 그러나 그가 하나님의 성신과 하나님을 향한 믿음에 붙잡혔 때 그의 가슴에는 능히 이기며 능히 뛰어 넘을 수 있는 초라한 존재로 보였습니다.


삼상17:45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삼상17:46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붙이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머리를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로 오늘날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

삼상17:47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로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붙이시리라


이처럼 믿음의 사람은 꿈과 비젼과 능력의 사람이 됩니다.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을 향한 굳건한 믿음을 가지게 될 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처럼 예수님이 하신 일보다 더 큰 일도 할 수 있음을 고백하게 되는 것입니다.


요14:12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


마지막 네 번째로 주님은 하나님을 향한 믿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언제나 하늘의 평강을 누리게 됨을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움과 불안은 실상 어디에서 옵니까? 그것은 믿고 의지할 대상이 없기에 오는 것이지요.


아무리 두렵고 어두운 산길과 사망의 골짜기로 갈지라도 어린 아이가 힘세고 능한 부모의 품에 안겨 있으면 두려워하거나 염려하지 않게 되지요.


그러므로 우리가 전능하신 하나님, 천지만물을 말씀으로 지으신 전능자이신 그분을 참되이 믿으면 우리는 세상을 초월한 평강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풍랑이 거칠게 일렁이는 배 속에서도 곤히 잠을 잘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을 향한 믿음 때문이었겠지요.


제가 생각과 마음 다스리기에서 말씀드린 기억이 나지만, 하나님의 능력은 우리의 믿음에 비례하여 역사하고, 사단의 역사는 우리의 두려움이나 염려와 걱정에 비례하여 커진다라고 말씀하였지요.


그리고 어떠한 상황과 환경에 처하더라도 염려와 불안함과 두려움을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사단이 주는 생각을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하였지요. 그러므로 어떠한 경우라도 이러한 마음은 예수 이름으로 거절하십시요. 물리치십시요.


그리고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고백하시고 믿음을 받아들이십시요. 그리하면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의 마음에 임하게 됩니다.


빌4:9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제가 존경하며 따르고 싶은 영적 멘토인 케네스 해긴 목사님의 이야기를 보면 그분이라고 늘상 생이 평탄하거나 어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병증이 잠시 다시 재발하기도 하였으며, 이런저런 삶의 어려움을 겪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분은 절대로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잃지 않았습니다.


가령 어느 날 몸이 아파지면, 혹은 더욱 아파지만, “사단아, 나는 속지 않아. 예수님께서 채찍에 맞음으로 나는 나음을 입었어”라고 염려와 불안을 물리치고 믿음을 선택하였습니다. 여타의 모든 어려움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렇게 신실하게 하나님을 조금의 의심도 없이 믿는 목사님의 마음과 믿음의 길에 하나님은 늘 당신의 신실한 말씀대로 목사님께 응답하여 주셨고 승리하게 해 주셨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향한 참된 믿음으로 그러한 승리의 삶을 살아갔으면 참 좋겠습니다.


오늘은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다소 곤하여 간만에 조금은 편하게 쓸 수 있는 말씀으로 함께 은혜를 나눕니다. 다소 지금 건강의 어려운 길을 걷고 있으나 전능하신 주님께서 능히 그리고 속히 회복 시켜 주시 것을 믿습니다.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아멘! 아멘! 할렐루야!

 <글쓴이: cafe.daum.net/riverofwater 초록 등불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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