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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의 실제] 꿈, 또 다른 하나님의 통로

초록 등불 2011. 12. 9. 20:21

 

  [영의 실제] 꿈, 또 다른 하나님의 통로

 

오늘은 본래 다른 것에 관한 글을 쓰려다가 아침에 꾼 꿈 때문에 꿈에 관한 글을 써봅니다.


저는 개인적인 일이라 일일이 말씀드리기 어렵지만, 물론 저의 부족함에 기인함도 있겠지만 한편 정말 기구한 고난의 생을 살아왔습니다. 그리고 아직도 고난의 시간 속에 있지요.


그 긴긴 시간의 심적 육적인 고난도 보통 사람들은 가히 상상도 하지 못할 것이며, 특별히 작년 한 해 육적 심적 고통 가운데 갑자기 건강이 악화된 이후 제가 겪은 두려움, 공포, 고독함, 육적, 심적 고통의 깊이는 아마 질병이나 사고 등으로 죽음 앞에 서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고통의 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돌아보면 그 고난의 시간은 하나님의 특별한 연단의 시작이었습니다. 한 일 여년의 시간을 넘게 하나님 앞에서 혼자서 때로는 밤을 새며 울고 통곡하는 시간을 거친 후에야 그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시간 이후 제게 일어난 일들이 너무도 자연적인 사건들과는 누군가의 각본에 의해서 짜여진 것처럼 인위적인 일들이 많이 일어났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손길이 모든 것을 마치 짜여진 커리큘럼, 훈련과정처럼 진행하였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경험을 통하여 얻은 것은 고난과 중보에 대한 새로운 깊은 이해와 인식입니다. 정오 무렵 한 지체님과 신앙상담을 하면서 이 부분에 대한 말씀을 조금 나누었지요. 이 부분에 관한 글은 다음에 고난이 단순히 의미 없는 것이 아닌, 신비임을 다시금 한번 글로써 논하겠습니다. 깊은 영성적 의미로 한번 찾아가 뵙겠습니다.


고난 가운데 계십니까? 때로 영 안으로 들어가 분별해보면 죄로 인한 고난을 겪는 사람들도 있지만, 정말 하나님의 깊은 경륜 안에서 도리어 다가올 미래의 참된 생명의 뿌리가 될 섭리의 고난도 많습니다. 하지만 어떤 고난도 깊이 통과하고 보니 다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고난 가운데 계시더라도, 지금은 죽고 싶을 정도로 힘드시더라도 하나님을 믿고 인내하십시오. 오랫동안 참고 인내하면 그것이 결코 헛된 시간이 아니었음을, 얼마나 귀한 것을 배우고 얻는 시간이었음을 알게 되실 것입니다.


먼저 본론적인 진행을 위해 다음 글을 쓰기 전에 미리 말씀 드려야 할 것이 있습니다. 아래의 글은 결코 저의 자랑이나 과시를 위한 글이 아님을 깊이 양지해 주시기 바랍니다. 모든 것들을 있는 그대로 말씀드려 전해드리고자 하는 메시지의 본질을 살리기 위함임을 알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는 주 밖에서는 너무도 부족하고 허물 많고 연약한 그릇일 뿐인 사람입니다.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저와 오랫동안 함께 지내온 분들은 저의 사역에 대해서 잘 아실 것입니다. 저는 제가 살아오면서 만나본 수많은 성령세례를 받으신 분들 중 저처럼 유창하고 다양한 깊은 방언을 받으신 분을 거의 보지 못하였습니다. 방언이 넓고 깊다는 것은 그 은사의 깊이와 넓이가 깊다는 것이지요. 꼭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저의 경험으로는 그러하였습니다. 방언의 폭과 깊이가 넓어질수록 더 깊고 넓은 세계가 열려졌습니다.


그래서 통변도 넓고 깊으며 시간이 걸려서 그러하지 마음만 먹으면 설교이던 기도든 저의 글의 삽입없이 모두 성령의 감동만으로도 기록도 할 수 있었습니다. 방언의 은사의 폭과 깊이만큼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에 있어서도 깊고 폭 넓게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한 방언의 은사와 통변, 그리고 통변이 되다보면 가능한 일반적인 권세 차원의 예언 등 도리어 경험하지 못하시는 분들이 이상할 만큼 너무나도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데 익숙하여 있었기 때문에 다른 은사들이나 영성적 것들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병 고침을 위해서 긴긴 세월 기도했지만 응답도 되지 않고 축사 등은 분명 성경에 나오지만 왠지 꺼림칙하고, 보통 목회자들이 말씀사역만 하듯이 저도 일반 말씀이 아닌 성령의 감동하심에 의한 다소 영성적인 말씀사역이긴 하였지만, 그냥 말씀사역에만 만족하며 지내왔습니다.


그런데 작년 육적 심적 오랜 동안의 힘겨운 시간 안에서 갑작스레 찾아온 건강악화, 그것을 계기로 홀로 고독한 저미는 아픔의 시간을 거닐며 처음에는 그냥 개인적인 치유를 받고 싶은 마음에 성령의 역사에 의한 치유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는 폭이 넓어져서 나처럼 육신적으로 고통당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해 줄 때 그들을 병에서 자유하게 해 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에서 또 치유에 관심을 더욱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나아가 어려운 문제를 겪고 있는 분들에게 인간적인 상식이 아닌 성령 안에서 적절한 조언과 방향을 제시해 줄 수 있다면, 더 나아가 귀신들린 자들에게도 자유함을 줄 수 있다면, 이러한 생각의 확장으로 더 깊고 깊은 영적인 것들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것들에 관심을 가지고 접근해보니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진정한 성령의 사역이요, 오늘날의 말씀 위주의 사역은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는 것이 아니라 능력에 있다”(고전4:20)는 말씀처럼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진정한 성령의 능력을 상실한 것을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것들에 관심을 가지며 접근해 보니, 너무나도 영적인 세계에 대해서 알아야 할 것들도 많고 배워야 할 것도 많고 실제적인 임상경험도 필요한 것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아서 힘겹지만 성령의 조명하심과 믿음의 선조들의 삶을 통해서 이러저러한 것들을 배우며 익히고 있습니다.


그러한 가운데 하나님은 다소 저를 향하신 경륜의 때가 임박한 것인지, 어느 시점부터 숨 가쁘게 각종 영적인 세계의 것들을 열어 주셨으며, 제가 그러한 현상들에 적응하고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지금도 한 주, 한 달이 다르게 새로운 것들을 열어 주고 계십니다. 성령세례의 초기에는 이런 현상이 일어나곤 하지만 40년 가까이 세월이 지난 지금 봇물 터지듯이 열려지는 다양한 영적인 세계와 그 속의 일들로 제가 적응해 나가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그래서 그러한 성령의 역사들에 대하여 이해와 적응을 위하여 다양한 경로로 이해하고 적응하기 위한 개인적인 노력도 내 속에 역사하시는 성령의 역사를 따라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여러 알아야 할 영적인 분야의 한 과정 속에 꿈이라는 과제가 있더군요. 우리는 거의 무시하고 지내지만 성경에는 꿈속에서 말씀하신 많은 사건들을 다루고 있지요. 그래서 다른 것도 경험하고 살펴가고 있지만 이제는 그 부분을 기도하며 파고들고 있습니다.


여러 영적인 세계의 것들 중, 예언과 축사와 치유가 가장 화려한 은사이지만 이해하고 배우고 익혀야 할 것들이 가장 많아 가장 어려운 과제요, 과목이기도 하지요. 하지만 상대적으로 조금 쉽다고 할 수 있겠으나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의 일은 어느 것 하나 쉬운 것이 없습니다.


꿈과 환상은 본질적으로 같은 것인데, 이것의 어려움은 상징과 해석의 어려움이지요. 하지만 모든 것을 성령님께 의지하며 배워가다 보면 깊이의 차이는 있겠으나 누구나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듯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중요한 한 통로인 꿈에 대해서도 알아가시게 될 것입니다. 자세한 것은 다음에 다시 논하기로 하겠습니다.


어쨌거나 꿈을 이해하고 파고들기 시작한 날부터 주님께서는 꿈을 꾸게 하시며 가르치셨습니다. 가르치고 계십니다.


꿈은 바로 깬 후 적지 않으면 잊어버리는데, 적지 않아서 기억이 희미한데, 맨 첫날 꾼 꿈은 제 아이인지 다른 아이인지 누군가 배가 아파서 우는데 제가 배 위에 손을 얹고 기도하니 편안히 잠이 드는 모습이더군요. 아직 경험이 부족하여 성령의 능력을 풀어놓는 영적 원리나 믿음 등에서 배워야 할 과제가 많지만 신유의 능력이 이미 주어졌음을 알려주시는 꿈이지요.


그 다음날 꿈은 너무도 아쉽습니다. 제 일생에 그런 꿈은 꾸어본 적이 없습니다. 이건 꿈이 아니요, 이전에 경험한 눈에 보이는 실제적 환상도 아니요, 마치 경험은 없지만 영이 천국에 들리어 가서 경험하거나, 에스겔서에 나오는 에스겔의 영이 예루살렘 성전으로 이끌리어 가서 보듯이 무엇인가를 너무도 생생하게 보고 경험하는 꿈이었습니다.


환상은 말 그대로 거짓 이미지입니다. 실제가 아닌 것이지요.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정말 영이 실제적인 세계를 거니는 것처럼 꿈도 아니요, 환상도 아니요, 영의 실제적 경험같았습니다. 그런데 꾸다가 깨서 기록하지 않고 다시 잠이 들어버리고, 그나마 조각처럼 남아있던 기억도 며칠 지나서 다 잊어버렸습니다. 정말 적어두지 않은 것이 아쉬웠습니다.


그래서 안되겠다 싶어서 노트를 한권사서 매일 꿈을 꾸면 눈을 뜨자마자 적기 시작했습니다. 깨서 바로 안 적으면 꿈은 잊어버리게 되더군요.


그런데 매일 꾸는 꿈이 그냥 의미 없는 것이 아니라 중요한 영적인 그리고 하나님의 음성이 담긴 것을 발견해 가고 있습니다.


저는 인생의 중요한 기로에서 누가 봐도 명확한 해석이 나오는 분명한 뜻의 꿈을 통하여 생의 길을 계시하심을 여러 번 받았는데, 이런 경우는 이례적입니다. 아마도 지난 저의 경우는 너무도 하나님의 뜻을 제가 알아차리지 못하니까, 직설적 화법으로 표현하신 듯싶습니다. 불순종한다고 아예 성경책 요나책을 펴서 성경책의 각 첫 머리에 있는 ‘요나’에 색연필로 동그라미를 쳐서 아주 얼굴 앞 코 앞으로 들이대시기도 하셨지요.


그런데 일반적으로 하나님은 꿈속에서 비유와 풍유 등을 통하여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영적인 자료들을 살펴보아도 그러하더군요. 제가 꾼 꿈을 통하여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환상이나 꿈을 경험해보면 하나님은 한편 위트가 넘치고 유머가 넘치십니다. 보다가는 웃음을 터뜨릴 때가 많습니다. 환상에 관한 것도 한번 글로써 찾아 뵙겠습니다.


하루(11,12,08)는 꿈을 꾸니, 우습게도 제가 젊은 나이에 아이를 혼자 기르는 홀아비로 나오더군요. 그런데 옆에 역시 결혼하고 혼자된 비슷한 또래의 여자분이 있는 것이었습니다.


아니 비유를 하셔도 저를 젊은 나이에 상처한 홀아비로 비유와 풍유를 하시니 우습지 않습니까? 기도하다보면 주님은 가끔 저를 웃기십니다. 환상 속에서 주님과 깔깔거리며 웃다보면 실컷 웃게 하시곤 나서는 시치미 딱 떼시고 앉으셔서, 진정성 어린 말을 하시기도 하십니다. “우습니? 내가 웃기니 기쁘니? 목회자는 성도들에게 늘 그런 웃음과 기쁨을 주는 삶을 살아야 한단다” 웃다말고는 숙연해 지기도 하지요.


이 이야기도 다음에 기회가 되면 생각이 나면 실리게 되겠지요. 너무 글이 길어질 것 같아 본론에만 치중하면서 진행합니다.


저는 젊은 나이에 상처한 애 키우는 초라한 홀애비, 그리고 옆에는 홀애비 사정 과부가 안다고 젊은 나이에 역시 혼자가 된 젊은 과부가 살더군요.


그런데 제가 먹을 게 좀 있더라구요. 그런데 그 과부 자매가 가까이 오니 나도 가난하고 초라하게 사는데, 여성 과부는 더 힘들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들지만, 아까운 마음에 먹다가 움켜쥐고는 숨기는 거예요.


그런데 그만 눈치를 챈 그 과부 자매가 속이 상해서 화가 나서 오던 길을 돌아가버리는 것이예요. 그래서 제가 뒤에다 대고 “같은 처지끼리 잘 좀 지냅시다”라고 말을 하더군요. 하지만 토라져서 종종 가버리더군요. 그리고는 눈을 떴습니다.


자, 이제 우리가 꿈을 무지하게 잘 해석한 다니엘과 요셉이 되어봅시다. 무슨 의미의 꿈일까요? ^^


꿈의 해석은 물론 하나님께서 즉 성령께서 사용하시는 다양한 상징의 기본적인 이해가 필요하겠지만, 중심은 어디에서나 성령의 조명하심입니다. 즉시 눈을 떠서 성령 안에서 꿈을 조명해 보았습니다.


남자와 여자, 이건 사람 사이의 관계성을 대표적으로 말하는 것임이 조명되어져 오더군요. 홀아비와 과부, 이건 청승맞다는 세상 말처럼 조금 궁색한 생활을 하는 사람을 의미하는 것이지요. 자 그러면 꿈의 해석은 다 되지요? 아직도 모르겠습니까?


넉넉하지 않아도 또한 넉넉하지 않은 사람과 나누며 살라는 것이지요. 하나님께서 위트와 재치 있는 비유로 꿈을 공부하는 제게 말씀하신 것이지요.


자 그런데 이 날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요? 큰 교회에서 작은 교회들에게 연말이면 주는 쌀이 조금 들어왔더군요. 그런데 근처에 실제적으로는 어려운 생활을 하시는데, 목회생활이 오래 되셔서 그런 작은 교회들에게 가끔 큰 교회에서 주는 그런 사랑을 받지 못하시는 분이 계십니다.


그 쌀은 제가 꿈에 본 비닐 봉투 속의 조금의 먹거리지요. 그리고 홀아비는 저이고 과부는 그분을 위트있게 주님이 상징하신 것이지요.


꿈과 그리고 같은 날 주어진 상황,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의심할 것도 없는 상황, 당장 한포 대 들고 갔다 드렸지요. 이렇게 꿈의 첫 실습을 하였습니다.

어제 저녁에는 주님께서 기도하지 말고 가만히 누워서 당신 안에서 안식하라고 하셔서 그냥 가만히 누워서 영으로만 주님과 말없이 교통하며 쉬고 있었는데, 꿈에 대해서 공부해 가고 있으니, 꿈에 대하여 주님의 잔잔한 조명하심을 간구하였습니다.

저도 기억상 더듬어 보면 가끔 악몽에 시달리곤 하였는데, 어떤 날은 조금은 그런 악한 것들과 접촉 되었거나 악을 행하였을 경우에 꾸는 경우가 있더군요. 인간의 죄는 다양하지만 크게 세 범주로 나누면 성과 관련된 죄, 폭력과 미움과 관련된 죄, 그리고 접신과 정신계의 죄로 나누어 볼 수 있겠지요. 술취함, 방탕함, 마약, 담배 등은 세 번째 부류에 넣을 수 있겠지요.

요즈음은 보는 시대라 하여 보는 것들을 통하여 우리가 많이 악한 것들과 접촉하게 되는데, 매체를 통한 악한 영의 영향은 이 부류로 보면 선정적인 것, 폭력적인 것, 접신 적인 것으로 나누어 볼 수 있지요.

가령 어쨌거나 실제적으로 하루 그러한 악한 죄를 짓게 되거나 혹은 매체를 통하여 접하게 되는 경우 가끔 악몽을 꾼 기억이 나더군요. 그래서 그러한 부분에 대해서 쉬면서 영으로 말없이 물어보았습니다. 기도하며 깊이 분별한 것이 아니라 그냥 쉬면서 가볍게 조명하심을 받아보았는데 세 가지를 조명해 주시더군요.

1) 죄를 지었기에 영적으로 어둠의 세계에 떨어져 고통을 당하는 것이다
2) 꿈 속에서 고통을 당하게 함으로써 현상계에서의 형벌을 줄여주는 것이다. 이 말씀은 하시면서 모든 일은 반드시 심은대로 거두게 됨으로 악은 영적으로나 현실 속에서나 반드시 그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고 조명해 주시더군요.
3)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그렇게 고통을 당하게 함으로써 죄에 대한 경각심을 주는 것이다

어떤 분들은 그러한 악몽이 일종의 정화작용이라고 설명하시는 분도 계신데, 성령의 조명하심을 받아보면, 다른 영성 사역자들과 또 다른 조명하심을 하심을 경험합니다. 그것은 한 개인을 두고 예언자가 각각 다른 예언이 나오는 것과 같은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다양한 관점에서 보게 하시고 다양한 시각으로 우리를 교정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이겠지요.

가령 예를 들면 어떤 환자가 한의원에 들리면 한 의사는 아주 고전적인 한방 이론에 근거하여 처방을 내리고, 어떤 분들은 사상체질 등 다른 방면에서 처방을 내리나 실상 치료에 대부분 다 도움이 되지요. 그렇게 생각해 보시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때로 이 영성 사역자에게서 해결받지 못한 문제가 저 영성 사역자에게서 해결되고 그러는 것입니다. 각 사람에게 고유한 영성과 사역의 색깔과 다른 색깔의 능력을 주시는 것이지요.

위의 세가지를 새겨보시고 가끔 악몽을 꾸신다면 한번 자신을 헤아려 보십시요. 물론 사단이 공격하는 악의성 가위눌림과 같은 것은 우리의 죄와는 관계가 없겠지요. 다시 본론으로 돌아갑니다.

둘째는 오늘 아침의 꿈입니다. 이 꿈은 조금 가슴 아픈 꿈이더군요.


꿈의 내용인즉 이러했습니다.


저의 어머니가 꿈속에 나오시는데 저를 위해서 어떤 곳에서 일을 하고 계시더군요. 제가 직접 일하는 곳을 가보지는 못하지만 이런 일을 하고 있구나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우연히 어머님이 일하시는 곳을 보니, 제가 생각한 곳이 아니라 무슨 한증막 같은데서 때밀이 비슷한 일을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나름 근사한 곳에서 일하시는 줄 알았는데 그런 곳에서 일을 하시는 모습을 보니, 순간 당황도 하게 되고 마음도 아프고 어머님이 보실까 속히 그 자리를 돌아서 나오더군요. 나오는데 카운터의 아가씨가 저를 쳐다보더군요. 어쨌거나 어머님이 민망해 하실까 보지 못하시게 속히 후다닥 밖으로 나왔습니다.


밖으로 나왔는데 어머님 때문에 미안함과 아픔이 몰려오더군요.


꿈속에서가 아니라 어머님은 정말 저 때문에 이런 고생 저런 고생 다 하셨습니다. 평생 몸이 아파서 애 먹이고 기타 등등 정말 제가 힘들게 많이 했습니다. 자식들 위해서 연로한 나이에 힘든 병원계단 청소일도 하시고, 작년에 쓰러졌을 때에는 그 연로하시고 약하고 건강하지 못한 몸으로 100일을 작정하시고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새벽마다 교회를 찾아가 주님께 눈물의 애소를 드리시기도 하셨지요.


지금도 여전히 저 때문에 맘고생 하시고 다 자란 나이에 도움을 드리기는커녕 ‘내리사랑’이라고 늘 건강 때문에 염려하시고, 어쩌다 애써 적은 용돈이라도 쥐어드리면 던져놓고 가시고 하나라도 자식들에게 더 해주고 싶으셔서 애써 말리셔도 노동의 일을 나기시곤 하십니다. 그래서 앓이도 잦으시지요.


어쨌거나 꿈속에서 어머님의 가슴 아픈 모습을 보고 나온 제가 마음이 아파서 올릴 수 있는 높이까지 목청을 높여서 무슨 노래인가를 불렀습니다. 저는 평범한 남성보다 다소 기본 음계가 높아야 맞습니다. 그리고 정말 혼신을 다하면 정말 높은 음까지 실제로 노래음이 올라갑니다.


마음이 아프니 그렇게 혼신을 다하여 무슨 노래인가를 하늘을 향하여 불렀습니다. 저 높은 하늘로 치솟아 오르듯 노랫가락이 울려 퍼지자 사람들이 노랫소리를 듣고 몰려들기 시작하더군요.


제가 정확히 아는 지식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르헨티나의 한 대통령의 영부인이었던 거룩한 창녀, 천한 성녀라고 불리는 에바 페론은 사생아로 태어나 15세에 부에노스 아이레스로 무작정 상경, 살기 위해서 남자들의 품을 전전하던 밑바닥 인생이었지요.


하지만 그녀는 꿈을 잃지 않았고, 마침내는 대통령의 영부인이 되어서, 자신이 그러한 삶을 살았기에 여성과 빈자, 사회적 약자를 위해서 많은 일을 하다가 33살에 백혈병으로 죽었지요. 그녀의 죽음은 전 아르헨티나 국민들의 애도  속에서 한달여간 국장으로 치루어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녀가 불렀는지, 그녀를 기리기 위해서 불러진 노래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녀의 이야기로 꾸면 진 영화의 한 장면을 보면 수백만의 군중이 모여든 대통령 궁 앞에서 그녀가 이 노래를 부를 때, 미성의 가시나무의 울음소리를 모든 만물들이 숨죽여 듣듯이,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깊은 감동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게 숨죽여 듣지요. 한 사람의 삶과 음악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지 볼 수 있는 장면이었습니다.


제가 그렇게 아프게 노래하고 있었습니다. 더 없이 올라갈 수 없는 높이의 음으로 노래하며 거리를 걸어 다녔습니다. 노래를 부르고 있는 가운데 사람들은 자꾸만 제 주위로 몰려듭니다.


그런데 저 만치 학교에서 아이들이 운동회인지 아니면 무슨 학교 축제인지 노래를 부르고 있더군요. 그런데 노래를 지도하는 리더가 없더군요. 그래서 제가 그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는 선창을 불렀습니다. 글이라서 장단까지 들려드릴 순 없지만 잠을 깨고도 너무도 선명하여, 아프고 바빠서 그토록 좋아하는 악기지만 오래 묵혀 두었던 기타를 꺼내서 먼지를 털어 간만에 그 장단으로 그 노래를 불러보았습니다. 잠을 깨서 불러도 구슬픈 노래 눈물이 나더군요.


꿈속에서 제가 부른 노래는 간단한 운율의 반복이었습니다. 제가 글뿐만 아닌 음성 사역을 위해서 디지털 녹음기를 구입할 예정인데, 다소 고가라 조금 망설이고 있습니다. 또 한편 왠지 쑥스럽기도 하구요. 하지만 구입하게 되면 때로 기도와 짧은 설교, 혹은 찬양을 녹음해서 들려드리겠습니다. 그 때 기회가 되면 꿈속에서 부른 너무도 선명한 음률의 노랫가락을 혹 들려드릴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아이들 앞에서 선창을 했습니다. “아리아리 아라리요~” 그러자 아이들이 같이 화답을 합니다 “아리아리 아라리요~ 아리아리 아라리요~”


들려드리지 못해 아쉽지만 지금도 부를 수 있는 너무도 아름다운 음율의 주고받음입니다. 제가 선창하면 아이들이 아름답게 두어 번 화답을 합니다. 학교를 돌다가 거리를 나섭니다. “아리아리 아라리요~” “아리아리 아라리요~ 아리아리 아라리요~”


그렇게 다소 애절하고 슬픈 노래를 부르다가, 시간이 흐르니 노래가 기쁨의 노래로 바뀌어갑니다. 속이지만 즉흥적으로 제가 어떤 경쾌한 리듬의 음률을 띄우니 아이들이 즉시로 조화를 맞추며 화답을 합니다.


실제로 제가 음악 중 작곡을 전공하였더라면 상당한 실력을 발휘하였을 것입니다. 모든 예술 분야가 통한다고 음악적 감성도 무척이나 섬세합니다. 때로는 늘 마음속으로는 창작의 음률이 흘러갑니다. 하지만 옮겨내는 법을 배우지 못해서 그냥 흘려보내지요.


꿈을 꾸니 깨어나니 정말 악보를 기록하는 법만 배웠다면, 그 모든 꿈속의 노래를 전통악기인 가야금이나 거문고, 그리고 북과 장고, 그리고 헤미메탈의 현대적 악기 등등으로 신바람나게 순식간에 옮겨 적을 수 있을 것처럼 생생하였습니다.


악보로 옮기는 기술은 배우지 못하였고 다소 아쉬워서 꿈속에서 부른 모든 노랫자락과 음악의 흐름을 혼자 기타로 이리저리 불러보다가, 그것도 답답해서 방언의 노래, 트릴라로 불러보았습니다.


어쨌거나 꿈속에서 ‘아리아리 아라리요~’ 저의 아픔을 노래하는 소리가 아이들과 함께 어울려 거리를 누리면서 기쁨과 환희의 노래로 바뀌었고, 저와 아이들 그리고 온 사람들이 함께 기뻐하는 축제의 노래를 부르다가 깨어났습니다.


이 꿈은 무슨 뜻인지 알겠는지요? 성령 안에서 잔잔히 조명하여 보았기에 저는 무슨 뜻인지 압니다. 여러분도 대략 그 의미를 아시겠지요? 그냥 저의 사적인 것이니 해석이 잘 되던지 아니 되던지 그냥 생각해 보십시오.


제가 이런 글을 원래 쓰려던 글에서 바꾸어 오늘 드리는 이유는 그 감흥이 너무나도 새로웠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꿈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배우기 위해서 파고드니 실제로 역사하심을 경험하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날마다 무슨 꿈을 꿀까? 그리고 어떤 의미일까? 그리고 생전에 처음 꿔본 꿈도 아니요, 환상도 아니었던 것과 같은 영의 실제와 같던 꿈, 그러한 꿈을 통해서 주님과 천국을 다시 만나고 맛보게 되지 않을까 설레이며 잠들게 됩니다.


여러분도 꿈을 통해 주님께서 말씀해 주시기를 기도해 보십시요. 그리고 기대해 보십시요. 그리고 꿈을 성령 안에서 조명하여 보십시요. 이제 막 시작한 꿈을 통하여 말씀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공과지만, 짧은 시간 안에서 저는 꿈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생생히 경험합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다양한 경로를 통하여 말씀하시고 자신을 나타내십니다. 그 중의 귀중한 한 통로가 꿈입니다. 아멘! 샬롬!


창28:10 야곱이 브엘세바에서 떠나 하란으로 향하여 가더니

창28:11 한 곳에 이르러는 해가 진지라 거기서 유숙하려고 그 곳의 한 돌을 취하여 베개하고 거기 누워 자더니

창28:12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섰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가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하고

창28:13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가라사대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너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창28:14 네 자손이 땅의 티끌같이 되어서 동서 남북에 편만할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을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

창28:15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창28:16 야곱이 잠이 깨어 가로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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