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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의 글] 엄위하신 아버지, 자비하신 아빠

초록 등불 2012. 6. 26. 17:41

  

  엄위하신 아버지, 자비하신 아빠

 

주일 저녁에 예배를 드리는데, 왠지 영으로 성부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니 야단을 조금 치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것은 예배에 다소 정성과 마음이 부족하다는 것이었습니다. 평소 늘 격려나 용기와 도전의 말씀만 주시다가 처음으로 그러시니 잘못 들었나 싶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즈음부터 하나님께서 다른 면에서도 조금씩 저를 엄하게 다루기 시작하셨습니다. 가령 기도를 드리는 자세라든지, 예물을 드리는 자세라든지, 과거의 다소 편함과는 거리가 있는 마음뿐만 아니라 인간의 표현으로 표현하면 몸의 예절이랄까 그런 것들을 요청하시기 시작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은 중심을 보신다고 하면서 외면을 다소 가볍게 생각하는 경향성이 있는데, 마음이 있으면 외면의 모습이나 행동도 드러나게 마련이지요.


가령 우리가 한 나라의 대통령을 만나려 간다면 결코 정성이 깃들어지지 않은 옷차림으로 갈 수 있을까요? 그러나 우리는 왕 중의 왕이시요, 모든 것들과 존재들의 창조주시요, 지극히 존귀하신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는 그다지 정성을 곁들이지 않지요. 하지만 이제는 어린아이의 신앙의 도를 버리고 장선한 분량으로 점점 나아가면 마음이던지, 외면이던지 하나님을 향한 경외의 모습이 나타나야 합니다.


우리는 신약시대를 살아가면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곧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시대를 살아가면서, 예수님의 보혈의 장막 안에서 살아가면서 성부 하나님의 엄위하심과 두려우심과 그분 앞에서의 경외감을 다소 잃은 감이 없잖아 있습니다.


그러나 구약의 성경에서 잘 나타나 있듯이 하나님은 한없이 엄위하시고 존엄하신 분이십니다. 구약에서 나타나는 성부 하나님의 본성은 그 근원은 자비로우심이겠으나 한편 얼마나 엄위하시고 두려우신 분인지를 잘 보여줍니다. 두렵고 떨림으로 섬겨야 하는 분임을 분명하게 말해 줍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엄위하심과 결코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않으시는 모습을 보여 주시기 위하여, 친히 이스라엘 백성의 목전에서 시내산에 강림하셔서 그들이, 나아가 우리가 하나님을 한편 어떠한 마음으로 섬겨야 하는 분인지를 가르쳐 주셨지요.


하나님은 시내산에 강림하시기 전에 백성들에게 몇 가지를 요청하시지요. 첫째는 하나님을 만나긴 이틀 동안 마음의 성결하게 하실 것을 말씀하시지요. 그러한 것들 중의 하나로 여인을 가까이 하지 말라 이르시지요. 여인을 가까이 하지 말라 하심은 그러한 육체적 나눔은 우리의 속에 음란 등의 육적인 생각과 마음을 깃들 수 있기 때문에 이르신 말씀이신데, 이 부분은 마음의 성결함을 말씀하는 것이지요. 우리는 하나님을 가까이 하려면 마음을 성결하게 하여야 합니다.


출19:10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백성에게로 가서 오늘과 내일 그들을 성결케 하며 그들로 옷을 빨고

출19:15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예비하여 제 삼 일을 기다리고 여인을 가까이 말라 하니라


둘째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로 옷을 빨게 하셨지요. 이는 외면적 성결을 말하는 것입니다.


출19:10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백성에게로 가서 오늘과 내일 그들을 성결케 하며 그들로 옷을 빨고


신이신 하나님의 본질적 한 속성은 거룩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가까이 하려면 우리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이 성결과 정결과 거룩이지요. 본질적으로 하나님은 영이시며 우리의 중심을 보시므로 본질은 내면의 성결이 근간이나 마음은 행동으로 나타나는바 외면적 성결도 한편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께 제게 요즘 요청하시는 이러한 외면적인 정결함을 두고 사람들은 율법적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질지 모릅니다. 물론 율법은 폐하여졌고 율법을 준수하는 마음으로 우리가 외면적인 정결을 지킬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시내산에서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나아올 때 그 옷을 빨며 외면적 정결함을 요청하신 것은 율법 이전에 주신 말씀입니다. 구약 성경을 살펴보면 하나님은 율법의 조항이 아닌 부분들에서도 내면적 거룩과 성결뿐만 아니라 외면적 정결함도 본성상 좋아하시고 더러움과 불결함과 추함을 싫어하시는 당신의 본성을 읽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앞에서 말씀 나눈 것처럼 마음은 행동으로 드러나는 바, 하나님을 존귀하게 여기며 경외한다면 내면적 뿐만 아니라 외면적으로 그분을 존중하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나타나기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때 이제까지는 아무렇게나 주의없이 나아갔다면 이제는 어린아이의 초보를 버리고, 이면적 성결과 외면적 정결을 갖추려고 노력하며 나아가십시요.


가인의 제사는 열납하시 않으시고 아벨의 제사는 열납하신 것처럼, 우리가 예배를 드린다고 하여도 다 열납되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존귀하게 여기는 자를 존귀하게 여기시고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을 또한 사랑하십니다.


잠8:17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셋째로 하나님은 선을 정하여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어느 경계선 안으로는 결코 들어오지 못하게 하셨지요. 이는 하나님은 죄인 된 육신의 몸으로는 결코 가까이 갈 수 없는 거룩하심과 존귀하심을 말씀하는 것이지요.


우리는 가끔 하나님께서 얼마나 크신 분이시며 존엄하신 분인지를 잊어버릴 때가 많습니다. 가령 옛 시절 거대한 한 나라의 왕이 누리던 영광과 존귀가 어떠하였습니까? 그럴진대 가히 측량하기 어려운 이 광활한 우주만물의 창조주시요, 현상계와 아울러 영계의 창조주와 근원되신 왕중의 왕, 곧 만왕의 왕이 되시며 오직이요 유일이신 참신되시는 하나님의 영광과 존귀와 엄위하심은 가히 우리가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요?


지극히 높은 곳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최상위 높은 반열의 천사들도 그 얼굴을 보지 못하고 날개로 그 얼굴을 가린다고 성경은 말씀하지요. 또한 발도 가려 경외심을 나타낸다고 기록하고 있지요.


사6:1 웃시야 왕의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사6:2 스랍들은 모셔 섰는데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그 얼굴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그 발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날며

사6:3 서로 창화하여 가로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하나님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권능과 능력과 영광과 존귀와 존엄의 아버지이십니다. 사람들이 가히 이르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육을 입은 자 그 빛의 영광을 보고 살자가 아무도 없습니다.


언젠가 기억이 정확하지 않아서 수치는 잃어버렸는데 이 우주 안에 태양보다 몇 조배 가량 밝은 빛을 내는 별인지 현상인지가 있다고 읽은 기억이 납니다. 그 빛의 강렬함이 어마어마하여 상상하기 힘든 먼 거리에서 그러한 빛의 발현이 있더라도 지구가 종말, 곧 지구상의 생명체가 살아남기 힘들다는 기사를 읽은 기억이 납니다.


저 하늘의 태양빛도 우리가 눈으로 보기에 버거운데, 그 몇조배의 빛의 밝기도 만드시는 하나나님의 영광과 빛은 과연 어떠할까요? 결코 육신을 입고는 보고 살자가 없는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빛의 영광을 지니신 분인 것입니다.


딤전6:16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아무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자시니 그에게 존귀와 영원한 능력을 돌릴지어다 아멘


출33:20 또 가라사대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


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복음이라는 은혜와 진리의 시대를 살아가보니, 다소 이러한 하나님을 향한 진실 된 경건을 잃어버린 경향성이 많습니다. 그냥 아무 차림으로 교회에 가고, 별스런 정성 없이 예물을 드리고, 아무차림으로 기도하고 하나님을 대합니다.


앞에서 말씀 드린 것처럼 구약의 율법적 조항에 매여서 우리가 살아갈 필요는 없지만, 어린 아이의 도의 초보가 아니라면, 이제는 하나님을 향하여 이면적 성결과 더불어 외면적 정결함과 정성스러움도 배워가는 조금씩 자라가는 신앙이어야 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으로 친히 목도하게 하시어, 당신의 엄연한 살아계심과 아버지께서 만물의 창조주시요, 또한 우주만물과 모든 영적 존재를 포함한 모든 생명체의 근간이시요, 중심이시요, 법과 규범과 질서의 중심을 되시는 엄위하신 하나님이심을 보여 주시려고, 강력한 우레와 번개소리와 또 그 빛을 가려줄 빽빽한 하늘구름 속에서 크고 두려운 천사들의 나팔 소리 가운데서 현현하셨지요.


그것이 얼마나 두려웠던지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까이 나아가기조차 두려워하였고, 모세조차도 떨었지요.


출19:16 제 삼 일 아침에 우뢰와 번개와 빽빽한 구름이 산 위에 있고 나팔 소리가 심히 크니 진중 모든 백성이 다 떨더라


히12:21 그 보이는 바가 이렇듯이 무섭기로 모세도 이르되 내가 심히 두렵고 떨린다 하였으나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고 친히 자녀로 삼아 주셨지만, 하나님을 아버지로써 공경하고 두려워하며 경외하는 마음과 자세를 잊어서는 아니됩니다.


히12:9 또 우리 육체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늘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여 살려 하지 않겠느냐

히12:28 그러므로 우리가 진동치 못할 나라를 받았은즉 은혜를 받자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지니


하나님의 음성을 조금 깊게 들어보신 분들을 다 아시겠지만, 성부 하나님의 음성과 주 예수님의 음성과 성령님의 음성이 다소 다릅니다. 그리고 삼위일체의 신비, 한 분이시지만, 전혀 다른 독립된 위격이신 삼위의 성격도 다소 다르지요. 다르시기에 말씀하시는 음성도 다릅니다. 성자 예수님은 우리의 중보자, 대제사장으로 우리를 위하는 편에 서 계시고, 보혜사 성령님도 우리를 돕는자, 위로자 이시기에 음성이 다소 부드럽지만, 성부 하나님의 음성에는 일반적으로 강력한 엄위하심이 깃들어 있습니다.


성부 하나님의 음성은 시내산에 강림하셨을 때처럼 곧잘 강력한 우렛소리와 더불어, 혹은 속에서 들려옵니다.


하루 그러한 성부 하나님의 음성에 관한 영적 경험에 대하여 제가 아는 분과 함께 영적인 나눔을 하고 있을 때, 함께 우렛소리 등을 얘기하고 있는데, 그렇게 얘기를 하고 있다보니 의식이 영으로 기울여지고 아버지의 음성을 향하여 기울여지지 전화로 이야기를 나누는 도중에 그 우렛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였습니다.


영으로 들려와서 다행이지 그 강렬함과 강력함은 육으로 들으면 고막이 터지고야 말 강력한 소리이지요. 그런데 그 날은 당신의 엄위하심을 제게 교훈하려고 하시는지 그러한 정도가 아니라 터와 집이 흔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출19:18 시내 산에 연기가 자욱하니 여호와께서 불 가운데서 거기 강림하심이라 그 연기가 옹기점 연기같이 떠오르고 온 산이 크게 진동하며


아니 그래도 요즘은 제가 다소 엄하게 대하셔서 조금 경건히 두렵기도 한데, 갑자기 집이 흔들릴 정도의 우렛소리를 발하시니, 아버지의 큰 소리 앞에서 다소 기죽고 조용해진 아이처럼 제 맘이 조금 그랬습니다.


제가 위에서 짧지 않은 글로 논한 하나님은 엄위하신 아버지 하나님의 모습니다. 가정에도 아버지가 엄하지 않으면 질서가 무너지듯이 영계와 현상계의 모든 존재와 생명체의 중심이 되시는 아버지 하나님은 정녕 엄위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당신께서 정하신 법도를 지켜 행하지 않으시면 엄히 경고하시고 벌주시며, 한편 결코 만홀히 대하거나 그 이름을 망녕되이 일컫는 자를 용서하시지 않는 엄위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출20:7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나 여호와는 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


그렇게 집에서 아버지의 큰 소리에 다소 풀이 죽은 아이처럼 되어서 조금 누워서 쉬고 있는데, 이제는 습관이 되어버린 무심결의 방언 기도, 곧 영의 기도가 제 입에서 무의식 가운데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특이하게 “도도도도...” 이렇게 말을 하고 있었습니다.


통변이 깊어지면 별스레 귀를 기울이지 않아도, 우리가 우리의 말을 알아듣게 되듯 그 의미가 영으로 들려오는데 제 영은 “아빠, 아빠, 아빠...”라고 부르고 있었습니다. 조금 무섭게 대하시니 제 영이 하나님 아버지에게 “아빠, 아빠, 조금 무서워. 큰 소리 내지 마세요” 하면서 아뢰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제 방언에는 영어가 다소 섞여 있는데, 기도를 하다보면 제 영이 파파(papa)라고 종종 부릅니다. 이는 아버지를 애칭으로 아빠라고 부르는 것이지요. 왜 “파파”대신 “도도도도...”가 제게 “아빠,아빠”들려왔는지 생각해보니, 이는 어린 아이가 아빠가 화를 내면 “아빠, 왜 그래? 앙앙앙앙..” 곧 뒤의 “앙앙앙앙..” 하는 것과 같은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그렇게 제 영은 엄위하신 아버지 되시지만, 또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친근 아빠도 되시는 하나님께 재롱이라면 재롱이고, 옹알이라면 옹알이로 볼 수 있는 것을 하고 있었습니다.


갈4:6 너희가 아들인 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그렇게 기도하다가 큰 방으로 옮겨가서 누워 조금 쉬고 있는데, 언제나 보이는 열린 하늘에서 홀연 칠색의 무지개가 줄기를 펼치며 제 영의 눈에 보였습니다. 아까는 집이 흔들릴 정도의 우렛소리로 놀라게 하시더니 소리도 고요하였습니다.


저 의미가 무엇인지 주님께 영으로 물어보니 “두 가지 의미인데, 하나는 너를 위로하시는 아버지의 사랑이고, 두 번째는 영광의 세계로 더욱 날아오르라”는 의미를 전해주셨습니다. 그 의미를 성경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이 살펴볼 수 있겠지요.


빨주노초파남보, 칠색빛의 무지개는 노아시대 홍수로 이 땅의 생명체를 멸하신 후 다시는 그렇게 멸하시지 않겠다고 하신 보호의 언약의 상징이지요.


창9:11 내가 너희와 언약을 세우리니 다시는 모든 생물을 홍수로 멸하지 아니할 것이라 땅을 침몰할 홍수가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

창9:12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나와 너희와 및 너희와 함께 하는 모든 생물 사이에 영세까지 세우는 언약의 증거는 이것이라

창9:13 내가 내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었나니 이것이 나의 세상과의 언약의 증거니라


한편 무지개는 영광과 존귀의 상징이지요. 하나님의 보좌에는 무지개가 둘러있지요.


계4:2 내가 곧 성령에 감동하였더니 보라 하늘에 보좌를 베풀었고 그 보좌 위에 앉으신 이가 있는데

계4:3 앉으신 이의 모양이 벽옥과 홍보석 같고 또 무지개가 있어 보좌에 둘렸는데 그 모양이 녹보석 같더라


어쨌거나 시내산에 강림하셨던 하나님처럼 요즘 다소 제게 엄하게 하시고, 또한 지진이라도 난 듯 집이 흔들릴 정도의 우렛소리로 저를 다소 놀라게 하시더니, 제가 아이가 되어서 아빠에게 옹알이를 하니까, 이제는 소리도 잔잔히 멈추시고 친근한 아빠의 모습으로 하늘에 무지개를 펼치시며 아버지의 사랑을 보여 주시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시간을 초월해 계시고 시간조차 창조하신 분이시지만, 우리의 연대로 표현하면 5천억조의 시간도 더 계셨을 터, 육신적으로 보면 지천명의 나이에 들어선 제가 “아빠, 아빠” 이런 표현은 다소 어려 보일지 모르지만, 영원하신 하나님 앞에서는 백발이 성성한 노년이라도 아주 어리고 어린 아이일 뿐이지요.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 어린아이와 같은 순전함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그러한 자들의 것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18:3 가라사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어쨌거나 하나님은 다소 엄하게 아버지로서 대하시더니, 제 영이 “아빠, 아빠”라고 당신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하자, 이제는 자비로우신 아빠의 모습으로 하늘에 칠색 무지개를 펼치시며 저를 다독거리시고 위로하시기 시작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에게 두 가지 속성으로 우리를 대하십니다. 하나는 엄위하신 아버지로써 우리를 엄격하게 대하심이요, 하나는 아빠로써 자비로심과 사랑으로 우리를 대하심입니다. 그런데 이 두 가지는 실상 한 가지입니다. 그것은 엄하게 대하시는 것도 우리를 곧고 바르게 하려 징계하심의 사랑이요, 자비하심으로 대하시는 것도 또한 위로하시는 사랑이시지요.


출34:6 여호와께서 그의 앞으로 지나시며 반포하시되 여호와로라 여호와로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로라

출34:7 인자를 천 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나 형벌받을 자는 결단코 면죄하지 않고 아비의 악을 자여손 삼 사 대까지 보응하리라


이처럼 하나님은 아버지의 엄위하심으로던지, 아빠로서의 친근한 모습으로서든지 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모습의 양면성일 뿐입니다. 하지만 앞에서 말씀 드린 것처럼, 우리의 육신의 아버지가 우리를 사랑하신다 하여 장성하여 가면 함부로 버릇없이 대하는 것이 예가 아닌 것처럼, 우리도 믿음의 초보가 아니라면 몰라서가 아니라면, 그 사랑의 하나님께 내면과 외면의 경외를 표하는 것이 그 사랑에 대한 영의 아버지를 향한 우리의 예절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믿음의 초보를 버리고 조금씩 자라고 성장해 가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내면의 거룩함과 성결함, 그리고 외면적 정결함과 예를 배워가며, 엄위하신 아버지 하나님의 속성 앞에서는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그리고 자비하신 아빠 하나님 앞에서는 아이처럼 기쁘게 섬기며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복음의 시대를 살아간다고 하여 하나님 아버지의 엄위하심과 존귀하심을 결코 잊지 마십시요. 하나님은 한편 두려운 엄위하신 하나님이시요, 소멸하시는 불인 것입니다. 아빠로서의 사랑은 당신을 경외하며 두려워하고 순종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사랑인 것입니다. 말씀대로 살아가지 아니하고 경외하지 아니하면 엄위하신 아버지로서의 징계가 반드시 임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아멘!


히12:28 그러므로 우리가 진동치 못할 나라를 받았은즉 은혜를 받자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지니

히12:29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심이니라

 

 출처: cafe.daum.net/riverofwater, 초록 등불 목사 (기독교 대한 감리회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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