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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의 글]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

초록 등불 2012. 9. 7. 16:07

   

 [영성의 글]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

 

늘 영으로 곁에 계신 것이 보이는 주님께서 그런 일상적인 함께 하심이 아니라 때때로 선연하게 보이시고 나타나시는데, 그런 경우 세 가지 모습 중의 하나로 나타나십니다. 비유로 들자면 늘 성령께서 우리 속에 내주하시지만 때때로의 특별한 임재하심과 같은 것이지요.


주님께서 그렇게 나타나실 때의 세 가지의 모습은 자애로우신 주님, 그리고 준엄하신 주님, 그리고 영광의 주님의 모습니다.


일반적으로 나타나실 때는 대부분 늘 자애로우신 주님으로 친구처럼 다정하게 보이십니다. 그리고 영광의 주님의 모습으로 나타나실 때에는 대부분 집회 등의 예배 시간에 그렇게 나타나시는데 이런 경우는 영광의 모습으로 나타나십니다.


왜 그런지는 저도 잘 모르지만 일반적인 나타나심의 경우는 보통 흰옷을 입고 계신데, 영광의 주님으로서 나타나실 때는 홍포, 곧 붉은 색의 옷을 곁들어 입고 나타나셨던 것 같습니다.


영광의 주님으로 나타나셔서 하늘 보좌에 앉으셔야 할 그분께서 강단의 의자에 앉으셔서 예배를 받으실 때는 다소 엄위하신 모습과 영광의 모습으로 가만히 앉아 계십니다. 이런 경험을 통하여 예배를 인도할 때나 드릴 때나 맘가짐을 경건하게 그리고 가지런하게 하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성경이 말씀하듯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그러므로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사람 앞에서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드려져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영광을 구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구해야 하는 것인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날의 많은 경우 예배가 사람의 영광을 구하고 형식적인 경우가 많지요.


세 번째로 준엄하신 주님으로서 나타나심은 아주 드문데, 최근에 두어 번 그리하셨습니다. 준엄하신 주님으로서 나타나시면 조금은 거룩한 경외감, 경건한 두려움이 마음에 깃듭니다.


조금만 생각해 보십시요. 하늘보좌를 친히 버리시고 우리와 같은 종의 형체를 빌어 그분께서 낮아지셔서 친히 우리의 스승이 되시고, 구세주가 되시고, 친구가 되어 주셔서 그러하지, 정녕 그분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한 위격으로서 창조주시며 만물의 근본이시며, 하늘과 땅과 땅 아래 모든 것들이 그 이름에 복종하는 존귀하신 만주의 주요, 만왕의 왕이 아니십니까?


이 땅에 계실 때에도 말씀하신 것처럼 아버지께 구하여 열두 군단도 더 되는 천사를 불러 올 수 있다고 말씀하신 주님, 말씀 한 마디에 바람과 풍랑도 잔잔하고 죽은 이도 생명을 얻던 그 능력과 권세의 주님이 아니십니까? 우리의 육은 물론이고 영의 생사와 모든 것이 그분의 손에 있지 않습니까?


그런 그분께서 준엄하신 모습으로 여러분 앞에 나타나신다고 생각해 보십시요. 두렵지 않습니까? 직접 대면하여 보십시요. 두렵습니다.


최근에 개인적으로 조금 쉼을 가졌습니다. 2-3년의 시간을 너무도 쉬지 않고 달려왔기에 조금 쉬고 싶었으니까요. 그런데 영의 생명이란 결국 호흡인 기도와 양식인 말씀에 달려 있는 것, 잠시의 쉼에서도 다소 영적으로 단이 무너짐이 느껴지더군요.


그 때 주님께서 엄위하신 모습으로 나타나셨습니다. 거실 부엌에서 무엇인가를 하고 있는데 거실 한 가운데 나타나셨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보아온 주님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가정의 아버지로 비유하자면 자애로운 아빠로서의 모습이 아니라 엄위하신 아버지로서의 모습 같다고나 할까요?


처음 뵙는 주님의 준엄하신 모습에 조금은 경건한 두려움이 마음에 찾아왔습니다. 성경을 보면 영광의 주님을 뵈올 때 믿음의 선조들도 많은 경우 두려워하였지요.


계1:17 내가 볼 때에 그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같이 되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가라사대 두려워 말라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니

계1:18 곧 산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계1:19 그러므로 네 본 것과 이제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


거실에 나타나신 주님께서 제게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다만 처음 뵙는 준엄하신 모습, 조금은 두려웠습니다.


그 다음날인지 아니면 하루를 거른 그 다음날인지 모르지만, 곤하여 거실에 누워 있는데 다시 준엄하신 모습으로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저의 삶에서 아직도 깨어지고 부수어져야 하는 부분을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의 다루심으로 많은 것들 주님의 말씀대로 살아가지만 저도 연약한 사람, 저 나름의 선한 싸움이 있지요. 그러한 부분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대답하기를 “주님, 말씀하시지 않으셔도 저도 다 압니다. 그런데 연약한 성정의 사람 저로서도 극복이 쉽지 않네요”


주님께서 대답하시기를 “나는 십자가에 올라가서 죽기까지 아버지께 순종하였다”


주님의 말씀에 아무런 할 말이 없었습니다. 누가 그 말씀 앞에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다소 침묵하다가 주님께 “저도 압니다. 그런데 모든 것일 이길 능력이 제게 없네요”라고 조심스럽게 말씀 드렸습니다.


주님께서 대답하시길 “기도하라. 모든 것은 기도의 분량이 차면 이긴다고 네 스스로 집회 시간에 가르치지 않았느냐?”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말씀에 따라 모두에게 있는 자아와의 싸움, 저도 지금은 기도로 다시금 싸우고 있습니다.


집회를 통하여 만나시는 분들이나 혹은 전화나 인터넷으로 만나시는 분들 중 여럿 분들은 제가 경험하는 영적인 현상들이 다만 부럽기만 하다고 합니다. 물론 주님을 영으로 뵈옵고 성령님을 영으로 뵈옵고 하늘의 숱한 천사들을 보는 것들은 변화산에서 제자들이 영광의 주님을 뵌 것처럼 실상 영광의 놀라운 경험이요, 오직 허물 많고 부족한 종을 긍휼히 여겨주시는 주님의 거주 주시는 한없는 은혜요, 사랑입니다.


하지만 그런 영광과 감사와 기쁨의 경험만은 아닌 부분은 잘 모르시는 것 같습니다. 준엄하신 주님으로서 두렵게 나타나지 않으시더라도 늘 저의 영의 눈에 주님도 보이시고 성령님도 보이시고, 숱한 천사들이 곁에 있는 것이 보이는데, 저의 삶을 저의 마음대로 살 수 있겠습니까?


조금만 어그러진 삶을 살면 두려운 주님으로 나타나 책망하시니 가끔은 저의 이런 영적 체험들이 두렵게 그리고 무겁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왜 제게 이런 영적 현상을 보여주시거나 경험하게 하시는지 모르지만, 차원 깊은 영적인 경험 뒤에는 어쩌면 사명의 십자가도 있는 법, 의지도 약하고 모든 면에서 부족한 저 자신을 너무도 스스로 잘 알기에 견뎌내야 하고 참아내야 하는 자아죽음의 삶에 자신이 없는 제게는 한편 제게는 두려운 일입니다.


온전히 말씀 그대로 살기를 원하시는 주님의 바램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고 작은 어깨에 무거움을 느끼는 일입니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우리의 인생과 그 모든 길은 주님의 손에 있음을 또한 어찌하겠습니까? 부족하고 연약할지라도 순종하려 애쓰며, 영광의 나라를 생각하면 우리에게 주시는 소명과 사명의 길 또한 한없이 감사한 일, 사도바울처럼 “날마다 죽는”훈련을 하며 이끄시는 대로 살아가야지요.


여러분 주님이 준엄하신 모습으로 나타나면 두렵습니다. 경건한 두려움이 마음에 찾아옵니다. 하지만 그분이 심판주로 오시는 그날에는 우리가 주님의 말씀대로 살아가지 못하였다면 이 두려움과 가히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이러한 영적인 경험들을 통하여, 오늘날의 교회는 사랑의 하나님만을 전하며 듣기 좋은 복음적 소식만을 전하며, 너무도 안일한 그리스도인들을 어쩌면 양육하고 있지 않나 저 개인적으로 많은 생각의 변화가 있습니다.


물론 믿음으로 구원을 받지만,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는 말씀, 그리고 준비하고 예비하지 못하여 버려지는 다섯 처녀의 이야기는 세상 사람을 향하여 하신 말씀이 아닌 우리 그리스도인을 향하여 주신 말씀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복음을 통하여 사랑의 하나님을 접하였다면 이제는 의의 말씀의 경험을 통하여 공의의 하나님, 심판의 하나님, 두려운 하나님도 배워야 합니다. 성경이 말씀하고 제가 경험한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심과 동시에 공의와 경건한 두려움의 하나님이십니다.


히10:31 살아 계신 하나님의 손에 빠져 들어가는 것이 무서울진저


주님의 책망도 있었던 며칠간의 시간도 지나가고 나름 열심히 주 안에서 살아가는 오늘이라는 하루, 한없이 맑게 빛나는 가을햇살처럼, 영으로 보이는 주님의 모습도, 천사들의 모습도 한없이 밝기만 합니다.


잠시의 나들이, 가을벤치에 앉아 가을을 온 몸으로 느끼고 있노라니 주님도 자애롭게 말을 걸어오시고, 저 푸른 하늘엔 전에 보지 못한 또 다른 천사장 반열로 생각되는 큰 천사가 제 영의 눈에 보입니다. 집으로 돌아와 부엌에서 손을 씻고 있으니 지금까지 보아온 천사 중 어쩌면 가장 아름다운 다른 한 천사의 모습이 보입니다.


다윗은 시편 23편 4절에서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라고 적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시는 두 가지의 방법을 말하는 것이지요. 물론 막대기는 원수들로부터 지켜주시는 하나님의 보호하심의 의미도 있겠지만, 오늘의 말씀 속에서 저는 막대기는 우리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회초리로 보려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과 공의, 곧 지팡이와 막대기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이 땅의 예도 그러하듯이 어버이가 자식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주면, 반드시 그 자녀는 잘못됩니다. 다윗이 그 한 예이지요.


왕상1:6 저는 압살롬의 다음에 난 자요 체용이 심히 준수한 자라 그 부친이 네가 어찌하여 그리하였느냐 하는 말로 한번도 저를 섭섭하게 한 일이 없었더라


그래서 지혜서인 잠언에서는 자녀를 준실히 징계하고 엄하게 기를 것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지요.


잠13:24 초달을 차마 못하는 자는 그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니라

잠29:17 네 자식을 징계하라 그리하면 그가 너를 평안하게 하겠고 또 네 마음에 기쁨을 주리라


그러므로 우리는 복음 안에서 갓난아기로서의 사랑의 하나님을 경험하였다면, 이제는 믿음의 장성한 분량으로 나아가며 의의 말씀을 경험하며 공의의 하나님, 준엄하신 주님을 경험하고 배워야 합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주님이 준엄하신 공의의 주님으로 나타나실 때는 두렵습니다. 하물며 우리가 삶을 불의하게 살아간다면 심판의 그날에 주님 앞에서 설 때의 두려움은 어떠할런지요?


저나 여러분이나 사람들은 모두 듣기 좋은 말,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의 지팡이를 더 좋아합니다. 그러나 실상 우리의 성장에 유익한 것은 우리의 부족함을 일깨워 주는 말, 그리고 공의의 하나님의 막대기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지팡이가 아니라 막대기 앞에 서서 부단히도 우리 자신을 채찍질하며 하나님의 의를 우리 속에서 이루려는 노력이 우리에게 부단히도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야만 우리에게 성숙이 있는 것이며, 하나님의 의가 우리 속에서 자라고 이루어져 가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다 부족하지만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려 우리가 애쓰면 이렇게 하나님은 자애로운 아빠 하나님이 되셔서 우리를 위로하시고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의 말씀대로 아버지로서의 엄위하신 하나님과 주님을 알아 공경하고 경외하며 순종하는 삶을 통하여, 그 속에서 자애롭고 사랑하시는 아빠 하나님을 기쁘게 누리며 또한 기쁘게 섬기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면 싶습니다.
샬롬. 할렐루야! 아멘!


요15:9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요15:10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요15:11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니라


히12:28 그러므로 우리가 진동치 못할 나라를 받았은즉 은혜를 받자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지니

히12:29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심이니라

 

 출처: cafe.daum.net/riverofwater, 초록 등불 목사 (기독교 대한 감리회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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