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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의 글] 육신의 두 가지 일

초록 등불 2012. 9. 10. 13:42

   

 [영성의 글] 육신의 일 두 가지

 

성경을 보면 육신에 속한 일과 영에 속한 일은 도무지 서로 상합할 수 없고, 이는 저를 거스리고 저는 이를 거스리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을 통하여 주님은 밝히 말씀하시기를 우리가 육을 좇지 말고 영을 좇아 살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갈5:17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그리고 성경은 육신을 좇는 삶은 사망과 곤고이며, 영을 좇는 것은 생명과 평안이라고 우리에게 전합니다. 영을 좇는 삶, 곧 주의 영이 깃든 마음에는 자유함을 얻을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롬8:5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롬8: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고후3:17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우리의 삶에서 생명과 평안, 그리고 자유함을 누린다면 이는 영을 좇아 행하는 것이요, 생명의 성령의 법아래서 살아감을 알 수 있는 것이지요.


육을 입고 살아가는 생, 환경적인 것들에서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겠지만, 생명의 성령의 법 곧 영을 좇아 살아가는 삶에는 환경을 초월한 생명과 평안, 그리고 자유함이 있음을 말씀하시는 것이지요.


요4:13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요4:14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그리고 영을 좇아 살아가는 삶의 열매에 대하여 성경은 아래와 같이 말씀하고 있지요.


갈5:22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갈5:23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그러므로 우리의 삶에서 이러한 열매들이 나타나야 하고, 이러한 열매들이 아름 나타나지 않는다면 더욱 생명의 성령의 법을 좇아 사는 삶에 애써야 하는 것입니다.


반면에 육체 속한 일들, 육체를 따라 사는 삶에 대하여 성경은 다음과 같이 전하지요.


갈5:19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갈5:20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갈5:21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육체에 속한 일의 가장 두드러진 것인 음행으로부터 시작하여 가지가지 타락한 육신을 좇아 사는 삶의 모습을 전해주고 있지요. 더불어 이러한 육을 좇아 사는 삶은 이 땅에서도 영의 사망과 곤고함을 누릴 뿐만 아니라, 결코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임을 말씀하고 있지요.


그러므로 우리는 단순히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는다는 안일하고 나태하고 불의한 신앙의 삶에서 벗어나,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는 야고보 사도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날마다 우리 자신을 쳐서, 육이 아닌 영을 좇아 살아가려 애써야 하는 것입니다.


고전15:31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게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성경은 분명히 믿는다는 이름은 가졌으나 구원을 받지 못하는 자들도 있음을 말씀하고 있지요.


마24:40 그 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마24:41 두 여자가 매를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마24:42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계21:7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유업으로 얻으리라 나는 저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계21:8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여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그러므로 육신에 속한 삶을 사는 무늬만의 그리스도인에게 구원을 보장되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이기는 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단의 죄의 유혹을 이겨내고 우리 자신을 이겨내는 참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어쨌거나 성경은 육에 속한 일들로 음행과 더러운 것들, 우상 숭배와 분쟁과 시기, 투기와 술취함과 방탕한 것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육신에 속한 첫 번째 것들은 이러한 타락한 죄의 본성을 좇아 살아가는 삶이 육신에 속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소극적인 의미에서의 협의적 육신에 속한 삶입니다.


이런 협의적 삶이 아닌 광의적 의미에서의 육신에 속한 삶이 또 하나 있습니다. 그것을 주님은 개인적인 경험을 통하여 알게 하셨습니다.


저는 대부분의 일상에서 늘 피로감을 느끼며 살아갑니다. 요즘은 나름 바쁘게 살아가지만 가령 그러하지 아니하고 하루 종일 가만히 누워 쉬더라도 피로감은 늘 있습니다. 소모성 병증을 가진 사람들의 느끼는 증상이지요.


그러므로 때때로 말하는 것도 힘겨울 만큼 기력이 없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때때로 기도의 시간도 힘겨울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조용한 묵상의 기도를 많이 드립니다.


그런 어느 하루 기도를 하다가 곤하여 그만하려고 누워 쉬는데, 기도의 양이 채워지지 않았는지 주님은 천사를 통하여 “다시 일어나 기도하라”고 말씀을 전하여 주셨습니다. 그러한 가운데 영으로 한 깨달음을 주셨습니다.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사는 삶이란 소극적인 의미에서 육신의 타락한 본성을 좇아 사는 삶, 곧 죄 된 삶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육신의 연약함에 지고 편안함을 좇아 나태하고 안일하게 안주하는 삶 역시 육신을 좇아 사는 삶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육신에게 지는 삶이란 협의적 의미에서 죄를 좇는 삶이요, 적극적이고 광의적인 의미에서 육신의 연약함에 지고, 나태하고 편안한 삶을 좋아하는 육신에 자신을 방임하는 것 역시 육신에게 지는 삶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롬8:12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롬8:13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롬8:14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물론 성경적으로 육신의 연약함에 지거나 육신의 안락함을 좇는 삶이 불의하거나 구원을 이루지 못한다고 적극적으로 해석하기는 어려우나, 육신의 연약함에 지고 안일하고 나태하며 편안한 신앙생활을 하려하다보면 영력을 잃게 되는 것은 필연인 바, 협의적인 의미의 육신에 속한 일들로 빠져들게 마련이지요.


하지만 성경은 또 다른 본문에서 육신에게 져서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지 아니하고 우리에게 주신 달란트, 곧 재능과 은사와 소명들에 게으른 삶에 대하여 살 때의 경종의 말씀도 있지요.


마25:24 한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가로되 주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마25:25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받으셨나이다

마25:26 그 주인이 대답하여 가로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그리고 그 종에 대한 심판은 “내어 쫓음”이었지요.


마25:30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


가끔 제게 사람들이 구원에 관한 물음을 던져옵니다. 어떤 성경 본문이나 목회자는 행함에는 전혀 관계가 없는 듯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듯 말씀하고, 어떤 성경 본문이나 목회자는 행함이 따르지 못하면 구원을 받지 못한다 하니 분별이 어렵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여러 가지에서 양면성을 말씀하고 있지요. 어떤 곳에서는 오직 은혜를 말씀하고 있는가 하면 어떤 곳에서는 우리의 의지와 노력을 말씀하지요. 구원에 관한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은 오직 믿음을 강조하는 곳이 있지만, 또한 행함을 강조하는 곳도 있습니다.


이러한 경우 우리는 한편으로 치우쳐서는 아니 되는 것입니다. 성경이 그렇게 기록된 것에는 그러한 배경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오직 믿음을 강조할 때는 사람들이 자꾸만 구약의 율법적 신앙으로 돌아가려고 하니 십자가와 믿음을 강조한 것이요, 야고보 사도가 행함을 강조할 때는 십자가의 은혜만을 강조하다보니 그리스도인의 삶이 방종과 방탕함으로 기울여지니 의와 경건함의 강조한 것이지요.


이러한 양면성을 고려해 보면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 맞지만 참된 믿음이어야 구원을 받습니다. 행함이 없는 죽은 믿음, 육신에게 져서 방탕과 방종의 육신을 따르는 삶을 사는 자에게 구원을 보장되지 않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믿노라 하는 이름만 가졌지 행함이 전혀 없는 예수 그리스도의 언약의 피를 부정하게 만드는 타락한 삶에는 구원은 보장되지 않습니다.


히10:28 모세의 법을 폐한 자도 두 세 증인을 인하여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죽었거든

히10:29 하물며 하나님 아들을 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의 당연히 받을 형벌이 얼마나 더 중하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


우리는 사도바울의 구원에 관한 생각을 묵상해 보아야 합니다. 그는 누구보다도 열심히 복음을 전파하며 부끄러움이 없는 사도로서의 삶을 살았지만, 구원의 문제에 있어서는 두렵고 떨림으로 끝내 이루기를 위하여 힘썼습니다.


빌2:12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고전9:27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 진리이지만, 우리도 사도바울 같이 온전한 구원을 이루기까지 깨어 경성하며 하나님을 경외하며 거룩한 두려움과 떨림으로 구원을 위하여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 온전한 구원을 이루기 위하여 달려가는 삶에는 육신에 속한 일의 두 가지 장애물이 있습니다. 하나는 소극적인 의미에서의 육을 좇아 죄와 타락의 삶을 사는 것이요, 둘째는 적극적인 의미에서 육신의 연약함과 나태함과 편안함을 좇는 본성을 이겨내는 것입니다. 이기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 우리 모두 이 두 가지 육신에 속한 일들에서 늘 승리하여, 성경이 말씀하는 생명과 평안을 언제나 누리며, 그 나라에 들어감도 넉넉히 누리는 우리 모두면 좋겠습니다. 샬롬.


롬8:12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롬8:13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롬8:14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벧후1:10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지 아니하리라

벧후1:11 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

 

 출처: cafe.daum.net/riverofwater, 초록 등불 목사 (기독교 대한 감리회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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