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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 이야기] 사랑해

초록 등불 2012. 10. 4. 14:17

   

 [천사 이야기] 사랑해

 

주님의 영적훈련과 연단에도 군대의 훈련처럼 시간에 따라 다루심이 달라지는지, 혹독한 훈련시간을 끝내고 복무위치로 배치를 받아 다소 정상적인 근무를 하게 되듯이, 근래에는 열정적인 경건생활보다는 차분하고 고요한 시간으로 많이 인도하시며 안식과 쉼을 많이 허락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2~3여년 가량을 거의 말씀과 기도의 생활 외에 다른 것은 하지 않는 시간을 보내다가, 최근에는 간간 개인적인 취미생활이나 여유도 가지며 조금 생활을 하였습니다. 너무도 오랫동안 세상의 건전한 즐거움도 멀리하고 지내서인지 가끔은 마음을 빼앗겨 취미생활에 간간 몰두도 되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사람의 마음이란 게 참 묘하여 절제하며 하루 잠시 가지는 저만의 즐거운 취미생활이라도 자꾸만 마음을 앗아가 경건시간에도 생각이 나곤하였습니다. 가끔은 절제가 잘되지 않기도 하였습니다. 마음이 언제나 오롯이 주님을 향하여야 하건만, 간간 취미생활에 마음이 빼앗기곤 하였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실상 그것도 별스런 즐거움이 아닌 주님과 영안의 즐거움에 미치지도 못하는 것인데도, 너무 오랜만에 세상의 작은 즐거움의 취미생활을 가지다보니 다소 자꾸만 마음이 끌리고 빼앗기는 그런 면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마음과 정성이 다 주님께 오롯하여도 쉽지 않은 영성 사역, 주님도 사람이 세상의 건전한 즐거움을 누리며 지내는 것을 전혀 허락하지 않으시지는 않으리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마음을 다스리며 주 안에서 누릴 수 있을 때까지는, 또 저만을 향한 주님의 뜻을 제대로 알기 전까지는 또 다시 일절 영의 일에 몰두하기로 하고 하루 잠시 갖는 혼의 즐거움이지만 그 시간을 내려놓았습니다.


그렇게 또 다시 언제나 주님 앞에서 혼자 그리고 말씀과 기도의 시간 속으로 들어가니 영은 자유함을 누리나 혼의 곤고함이 조금 깃들었습니다.


그리고 사역자의 기쁨이란 지체님들의 삶의 승리일텐데 이기시는 분들보다 영적 전쟁에서 져서 주저앉고 낙심의 자리로 떨어지는 분들을 보면 마음이 힘겨운데, 최근에 조금 더 그러한 분들을 보면서 마음이 조금 힘겨웠습니다.


그동안 사역을 하면서 지켜보면 이기시는 분들보다 지시는 분들이 더욱 많습니다. 아니 대부분의 분들이 결국 지시는 것을 많이 봅니다. 그만큼 영적 전쟁이 실상인 신앙생활의 승리란 쉽지 않은 것인가 봅니다.


삶의 이런저런 아픔과 수고로움, 타락한 우리의 본성과 죄의 유혹, 쉽지만은 않은 길고 긴 인내의 시간들 속에서 승리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은가 봅니다. 저도 삶 속에서 절감하는 부분이기도 하지요.


사단은 정말로 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방법과 기회를 다하여 우리를 거룩한 삶과 승리의 삶에서 떨어지게 합니다. 하지만 언제나 기도의 두 손과 말씀을 놓지 말고 승리하는 우리면 좋겠습니다. 날마다 자기 부인과 자기 십자가를 지는 삶을 통하여 넉넉히 승리하면 좋겠습니다.


어쨌거나 이런저런 이유로 다소 마음이 며칠 힘겨웠습니다. 그리고 영의 경건한 생활이란 주간보다는 고요한 밤의 시간이 결국 도움이 된다는 결론 아래 다시금 고요한 밤에 경건시간을 갖는 시간으로 돌아가 그렇게 혼자 깊은 밤 조용히 주님 앞에 있었습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맘도 조금 힘겹고 환절기가 다가와서 그런지 몸도 조금 곤하였습니다. 그래선지 머리도 맑지 않고 기도도 잘 되지 않더군요. 하지만 하나님은 때로 곤고하게 하시며 지켜보시기도 하시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며, 또 삶이란 이런 날도 있으며 저런 날도 있으니 애써 기도하는 시간을 지켰습니다.


그러다가 자리에 누워서 쉬고 있었습니다. 몸도 마음도 다소 곤하니 혼적 슬픔이 눈에 어려 눈이 끈적거리더군요. 저만의 느낌인지 몰라도 저는 가끔 마음이 힘이 들면 눈이 끈적거리는 느낌을 받습니다.


곤하여 쉬면서 그렇게 누워서 영으로는 늘 곁에 있는 주님의 영과 천사들이나 환상의 모습을 보면서 조용히 누워 쉬었습니다.


“그렇게 주님과 천사들도 보면서 마음이 힘들가요?”라고 의아해하실지 모르지만, 영적 현상은 처음에는 다소 신기하고 흥분도 되곤 하지만 일년 이년 시간이 흘러가면 처음과 같은 황홀감이나 감격은 다소 차분해 집니다. 방언의 경험이 그러하듯 평범한 일상이 되어가지요. 하지만 분명 위로가 되는 부분은 적지 않게 있습니다. 주님께 감사한 일이지요.


그렇게 누워있는 눈에 늘 곁에 보이는 천사 외에 다른 한 천사가 선연하게 보였습니다.


경험해보면 늘 곁에 많은 천사들이나 영적 존재들이 보일지라도 그렇게 보이는 존재들과 성령 안에서 제게 특별하게 그 시간에 두는 존재는 차이가 납니다. 주인공처럼 두드러지게 보이거나 홀연 나타나지요.


그렇게 선연하게 나타난 천사를 가만히 살펴보니 옛 프랑스 귀족의 딸처럼 생긴 우아한 머리, 유리알처럼 맑은 수정 같은 눈동자, 본 천사들 중 특이하게 사람처럼 생겼다기보다는 꼭 인형처럼 예쁘게 생긴 모습 그리고 하얀 세마포, 옷은 간간 본 것과 다르게 입었으나 전에 간간 본적이 있는 제가 ‘큐리’라고 이름 지은 천사 같아 보였습니다.


우리가 외국사람을 보면 두드러지게 다르게 생기면 몰라도 이 사람이 저 사람 같고 저 사람이 이 사람 같듯, 천사들도 많이 보다보면 두드러지게 다른 모습이면 구별이 가지만 이 천사가 저 천사 같고 그렇습니다. 그래서 물어보았습니다.


“너 큐리니?”


“응”하고 대답을 하더군요.


그리고 한없이 맑은 눈동자로 가만히 바라보고 있더니, “사랑해”라고 말을 하더군요.


“사랑해..”


그리고는 제가 다소 놀라게 다가와 가볍게 입맞춤을 해 주더군요. 천사들에게 포옹은 가끔 받아보지만 그런 표현은 다소 의외였습니다.


그런데 그 입맞춤은 인간 세상의 그런 세속적인 그런 입맞춤이 아니라 하늘의 주님의 사랑을 담은 거룩하고 아름다운 하늘 사랑의 입맞춤이었습니다. 천사는 우리를 위하여 친근한 우리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나긴 하지만 실상 성별도 없는 하늘의 영적 존재일 뿐이지 않습니까?


여러 번 말씀드린 기억이 나지만 천상의 존재들에게는 세속의 그런 느낌은 전혀 들지 않습니다. 오직 거룩함과 정결함과 고요한 평화와 하늘빛 사랑의 느낌뿐입니다.


입맞춤이라는 형식으로 하늘의 사랑을 전해 준 것은 우리의 사랑의 표현 방식 중 가장 친밀함이 그런 형식이기에, 다소 맘 곤고해하는 저를 위로하려는 영의 신랑 되신 주님의 사랑이 천사를 통하여 영의 신부된 제게 당신의 사랑이 표현된 것이라 생각되었습니다.


비록 늘 고독하고 혼적으로 쉽지 않은 길이나 오롯 영의 일에 다시 나름 힘쓰려는 저에 대한 감사한 주님의 위로와 사랑 같았습니다.

한없이 맑고 고운 눈빛과 영으로 전해주는 “사랑해..”라는 행복한 말과 사람이 가장 깊은 사랑의 마음을 표하는 입맞춤이라는 표현으로 천사가 하늘의 사랑을 전해주니, 곤고하던 제 마음은 눈 녹듯이 녹아내렸습니다. 봄날 대지에서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듯 영의 행복이 잔잔히 가슴에 깃들었습니다.


그러다가 ‘큐리’가 누군지 궁금하여 제가 다시 물었습니다. ‘이름’이 아니라 존재의 본질을 물어본 것이지요.


“너는 누구니?”


그러니까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사랑”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 그 사랑을 전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짐작은 되었지만 대답을 듣고 보니 성삼위 하나님께 새롭게 감사할 것뿐이었습니다.


그러더니 ‘큐리’가 가만히 저를 바라보더니, “내가 삶의 기쁨을 잃지 않는 한 가지 진리를 알려줄게”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일러 주었습니다.


언제나 마음과 영의 정결함을 잃지마. 정결함 속에 참 기쁨이 있어. 정결함만 잃지 않는다면 마음의 빛을 잃지 않고, 마음의 빛을 잃지 않으면 기쁨 또한 잃지 않아”


“그리스도인들이 마음의 기쁨을 잃는 건, 죄의 유혹, 마음의 욕심, 세상의 염려 등으로 마음이 어두워지기 때문이야


하나님을 믿고, 그 말씀을 믿으며, 언제나 마음의 정결함을 잃지마


그리고는 또 다시 “사랑해..”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큐리’의 말을 듣고 보니 그 가르침이 진리인 것 같았습니다. 오직 우리의 마음이 언제나 거룩하고 정결하다면 하늘의 신령한 빛이 우리의 마음에 비추일 것이고, 그 빛 속에서 세상의 기쁨이 아닌 참 기쁨과 소망을 언제나 잃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그때의 저 또한 하나님과 그 말씀을 오롯 붙잡지 못하고 인간적인 감정에 매여 마음이 어두워져 기쁨을 잃고 마음이 곤곤한 듯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하나 궁금한 것이 있어서 누웠다가 식사를 하려고 나온 저를 따라온 ‘큐리’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저는 밤에 일을 하기에 저녁 식사가 아침이고, 새벽 즈음에 먹는 식사가 점심이고, 낮에 먹는 식사가 저녁입니다.


“큐리야, 다른 천사들은 내게 말을 놓지 않는데 너는 왜 말을 놓니?”


“나는 친구” 그렇게 대답을 하더군요.


생각해보니 그렇게 친구처럼 편하게 대화를 해 주니 더욱 친근하고 편하게 느껴지고 이 또한 주님의 배려라 싶었습니다. 육신의 눈으로 보이는 모습은 저보다 어려보이나 영적 존재이니 실상 시간을 초월한 존재, 어쩌면 시간 속에서 갖난 아이에 불과한 저를 친구해 대해줌이 어쩌면 고마운 일인 것도 같았습니다.


오늘 이 글을 통해서 나누고 싶은 주제는 세 가지입니다. 첫째는 우리의 영과 마음은 언제나 오롯 주님을 향하여야 한다는 것이며, 그것에 방해되는 것들이라면 다 내려놓거나 절제하며 다스려야 진정한 영성 생활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저도 가끔 실패하지만 우리 모두 그렇게 애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제게는 특별한 영적 경험으로 주님의 사랑의 경험시켜 주셨지만, 주님은 언제나 우리를 지켜보고 계시며 사랑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어떤 날은 몹시 힘들어하던 날, 주님은 평소 저편에서는 거의 전화가 없는 절친하나 과묵한 친구의 또 평소와는 다른 따뜻한 말과 목소리의 전화를 통하여 위로를 해 주신 기억이 납니다. 이처럼 주님은 우리를 늘 지켜보고 계시며 때를 따라 당신의 사랑으로 위로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정말로 사랑하십니다. 때를 따라 징계하심도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셋째는 천사 ‘큐리’를 통한 주님의 가르침처럼 우리가 마음의 빛과 기쁨을 잃는 것은 죄의 유혹과 욕심과 염려와 근심 등으로 마음이 흐려지고 정결함을 잃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언제나 우리의 눈과 마음이 하나님과 그 말씀을 향하고 있다면, 정결함을 잃지 않는다면 마음의 빛과 기쁨을 잃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에게 도전이 되는 작은 글이길 바래봅니다. 할렐루야! 아멘!


요14: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요14:2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요14:3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빌4:4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출처: cafe.daum.net/riverofwater, 초록 등불 목사 (기독교 대한 감리회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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