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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의 글] 새 옷의 향기

초록 등불 2012. 10. 10. 18:31

   

 [영성의 글] 새 옷의 향기

 

세상이 얼마나 빠르게 변화하는지 기억을 더듬어 제가 어린시절로 돌아가 보면 지금의 현대 사회에 비하여 어린시절은 마치 원시 문명의 시대와도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전기가 없어서 호롱불을 켜고 살았으며, 여름이면 반딧불이를 잡아다가 유리병에 넣고서 밤을 밝혀보던 기억도 납니다. 난방은 땔감으로 지피는 온돌방이거나 조금 사정이 나아진 후에는 연탄으로 난방을 하였지요.


먹을거리도 부족해서 쌀밥과 고기반찬은 명절에나 구경을 하였고, 평소에는 보리밥과 고구마 등의 곡류로 배를 채우곤 하였지요. 쑥을 캐어다가 밀가루와 반죽하여 먹던 기억도 납니다. 산에 올라 우리가 부르던 이름으로는 “삐삐”라는 식물을 먹던 기억도 납니다.


요즘에는 보기도 귀한 일이지만, 당시에는 옷이나 양말 등을 기워서 입는 것이 아껴서 사는 삶의 일상적 모습이었습니다. 운동화와 구두는 보기도 흔하지 않았고, 까만 고무신이 아닌 하얀 고무신을 신은 친구도 부러워하곤 하였습니다. 요즘 학생들이 들으면 웃을 일이지만, 새 지우개를 사면 그 향기가 너무도 좋아서 과자인 냥 먹고 싶어 했던 기억도 납니다.


그러니 오늘날처럼 자주 씻지도 못하였고, 새 옷은 명절이나 되어야 구경을 하곤 하였습니다. 그러니 아이들에겐 오늘날의 명절과는 의미가 사뭇 달랐습니다.


가족과 친지들이 서로 혈연의 예와 사랑을 나누는 그런 의미야 여전하였지만, 어린아이들의 마음에는 그것보다는 새 옷과 맛있는 음식을 먹어보는 날이었습니다. 그래서 손꼽아 명절을 기다리곤 하였지요.


그런 기억 중에 유달리 제 기억 속에 남는 기억이 있습니다. 어느 명절을 앞두고 부모님께서 새 옷과 새 운동화를 사다 주셨습니다. 얼마나 좋은지 며칠을 밤마다 품에 안고 잠을 자며, 손꼽아 명절이 오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런 새 옷을 당시에는 “때때옷”이라고 불렀는데, 그 새 옷을 품고 자다보면 옷에서 너무도 기분 좋은 향기가 났습니다. 요즘은 새 옷이 너무 흔하여 냄새가 나는지도 잘 살펴보지 않아서 모르겠는데, 당시에는 늘 때 묻고 기운 옷만 입고 지내다가 새 옷을 어쩌다 가까이 해서 그런지 분명 옷에서 새 옷의 향기, 곧 “때때옷의 향기”가 났습니다. 너무도 기분 좋은 향기였습니다.


그렇게 부모님이 새 옷을 사다 주시면 향기가 나는 새 옷을 품에 안고 자며, 명절이 오기를 기다리곤 하였지요.


그런 명절이 찾아온 이른 아침, 깔끔하게 목욕한 몸에 새 옷을 상하의로 갈아입고, 그리고 아래 테두리가 하얀 운동화를 신고서 마당을 걸어서 밖으로 나가보았습니다.


기억 속의 그 날은 하얀 눈이 내린 아침이었습니다. 아마도 설날이었나 봅니다.


그렇게 깨끗하게 목욕을 하고 향기가 나는 새 옷을 말끔히 차려 입고, 그리고 아래 테두리가 하이얀 단아한 운동화를 신고서 하얀 눈이 내린 명절의 아침을 밟고 있노라니, 깔끔한 나 자신의 모습에 스스로도 자신이 너무도 향기롭게 느껴졌고 마치 세상의 왕자라도 된 듯한 기분을 느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주님께 전혀 새로운 다루심을 받는 가운데 내면뿐만 아니라 외면의 단정함과 정결함을 배우고 난 뒤에 요즘 제게 살아가는 가운데 그와 비슷한 느낌을 받곤 합니다.


주님은 가장 먼저 생각과 마음을 다루셨습니다. 제가 주님께 다루심을 받고 보니 그리스도인은 영성적 삶을 살아가려면 가장 먼저 생각과 마음의 깊은 다루심을 받아야 합니다. 그냥 평범한 다루심이 아니라 아주 깊은 다루심을 받아야 합니다. 다루심의 통로는 다양할 수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깊고도 긴 고난의 시간입니다.


어쩌면 사람의 본질이요, 근간인 생각과 마음의 깊은 다루심을 받지 못하면 제가 주님께 다루심을 받은 경험을 반추해 볼 때 아직 참된 영성의 삶을 시작하지 못한 상태인 듯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은사와 능력은 물론 그 무엇보다도 선행하여 그리스도인은 깊고도 철저한 생각과 마음의 다루심을 받고 변화되어야 합니다. 은사와 능력은 기도하면 누구에게나 임하지만, 사람의 근본이라고도 할 수 있는 생각과 마음의 변화는 기도와 더불어 철저하고도 깊은 하나님의 다루심을 받아야 변하는 것 같습니다.


그 깊은 다루심 안에서 은사와 능력이 나타나야 하나님의 뜻과 말씀의 본질을 벗어나지 않는 아름다운 사역자요, 섬김이가 됩니다. 그러하지 아니하면 많은 사람들이 그러하듯 불법을 행하는 자가 되곤 합니다.


마7:22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마7:23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그 생각과 마음의 깊은 다루심은 성령의 세례를 처음 받고서 성령 안에서 순간적으로 성화되어서 나타나는 삶의 변화와는 다른 의미입니다. 그것 역시도 너무도 아름다운 변화이나 그것은 뿌리가 약하여 성령을 소멸하면 사라지는 삶의 성화입니다.


생각과 마음의 깊은 다루심은 다윗에게 있어서 결코 짧지 않았던 도피자의 생활을 통한 내면적 성숙이요, 40여년 광야 생활을 통한 모세의 내면적 성숙이요, 억울한 누명을 쓴 채 긴긴 힘겨운 세월을 살았던 요셉이 겪은 내면적 성숙과 변화를 의미합니다.


이러한 근원적이고 뿌리 깊은 생각과 마음의 변화를 위한 하나님의 다루심은 그리스도인 누구에게나 필요하며, 하나님은 반드시 광야라는 여정을 통하여 우리를 그렇게 이끄십니다. 그 수단은 육신의 연약함이나 물질의 어려움이나 혹은 우리 자신의 실수이거나 다양한 삶의 방편들을 이용하여 그렇게 다루십니다.


그래서 성경을 통하여 사도 바울은 그의 생의 여정 속에서 경험한바 우리에게  이렇게 확신있게 고백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범사에 감사하십시요.


롬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경험해보니 하나님은 그런 내면적 다루심과 아울러 외면적 정결도 다루셨습니다. 사람들의 내면의 외면적 나타남인 말과 행동, 곧 마음대로 말하거나 행동하거나 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욕설은 두 말할 것도 없고 사투리나 비어도 쓰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양치한 물은 반드시 세면대로 내리게 하셨고, 혼자 있거나 남들 앞에 있거나 항상 반듯한 몸가짐과 옷가짐을 요청하셨습니다.


우리는 때로 영을 강조한 나머지 혼과 육을 소홀히 하는 경향성이 있는데, 성경은 영과 아울러 우리의 혼과 육도 거룩하고 성결할 것을 말씀하고 있지요.


고전3:16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고전3:17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살전5:23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나아가 몸의 내면적 성결을 위한 먹는 음식도 간섭하셨는데, 우리는 우리의 몸에 나쁜 영향을 끼치는 술과 마약류와 같은 사단에 속한 음식을 먹어서는 아니 되며, 또한 몸의 건강을 해치는 음식을 마구 먹어서도 아니 됩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다루심은 율법은 사라졌지만 먹어도 되는 것과 먹지 말아야 하는 음식에 관하여 말씀하신 음식에 정결법과 부정법에 하나님의 속성이 나타나 있지요. 이제 그러한 율법에 문자적으로 매일 필요는 없으나, 하나님의 속성은 여전하시며 당신께서 거하시는 거룩한 성전이기도 한 우리의 영과 혼과 육이 모두 온전하고 거룩하며 정결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께 다루심을 받아, 연약한 인간이기에 때때로 실족하여 하나님의 말씀과 뜻대로 살지 못할 때도 있지만, 생각과 마음을 지키려 애쓰며, 더불어 외면적 성결인 말과 행동을 하나님 앞에서 나름 단정하게 살아가려 애쓰다보면, 이전에 별스런 생각 없이 살던 그 때의 제 스스로에 대하여 느끼던 것과는 사뭇 다른, 느낌을 가지게 됩니다.


그것은 어린 시절의 명절날, 깨끗하게 목욕을 하고 향기 나는 새 옷으로 말끔히 갈아입고 하얀 테가 둘러진 새 운동화를 신고서 새하얀 눈길에 서 있던, 스스로의 향기로움을 느끼며 세상의 왕자와도 같았던 그 때의 느낌과 비슷합니다.


영의 세계는 참으로 기이하여 사역을 하다가 악한 영이 들린 사람들을 만나면 가끔 심한 악취가 납니다. 육이 아닌 영으로 나는 냄새이지요.


악한 영이 그렇게 악한 내음을 풍긴다면, 성령 안의 사람은 아름다운 향기를 발할 수도 있겠지요. 언젠가 천사의 품에서 맡아본 하늘의 향취와도 같이 너무도 아름다운 향기가 날 수 있겠지요. 성경은 우리를 그리스도의 향기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그런 의미에서 이는 단순한 은유가 아닌 영의 실제일 수도 있는 것이지요.


고후2:14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고후2:15 우리는 구원 얻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

고후2:16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 좇아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 좇아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누가 이것을 감당하리요


하나님께서 무한한 은혜로 제게 영의 세계를 열어 주셔서 그 나라와 천상의 존재들의 빛을 보니 그 빛은 이 땅의 빛이 아닙니다. 땅의 빛과는 차원이 다른 너무나도 아름답고 거룩하며 정결한 빛입니다. 그러므로 그 나라는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과 의로움으로 그렇게 정결하게 단장된 주님의 신부된 자들이 가는 나라인 것이지요.


계7:13 장로 중에 하나가 응답하여 내게 이르되 이 흰 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뇨

계7:14 내가 가로되 내 주여 당신이 알리이다 하니 그가 나더러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계19:7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여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 아내가 예비하였으니

계19:8 그에게 허락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가끔 길을 가다가 들길이나 숲길에 핀 꽃을 바라보면 얼마나 아름답고 향기로워 보입니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처럼 생각과 마음의 주님의 다루심을 통한 내면적 아름다움과 나아가 성전 된 우리 몸의 모든 행실의 단정함과 정결함을 배워, 그처럼 세상에서 향기로운 존재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며, 그리스도의 향기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그 아름다운 꽃들이 하나 둘 피어나 영성의 아름다운 향기가 세상에 조금씩 번져나갈 때 하나님의 나라와 의도 이 땅에서 조금씩 더 꽃을 피우게 되는 것입니다. 저야 여러분 모두 부족하나 나름 힘쓰고 애써 그런 아름다운 각각의 꽃들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할렐루야. 아멘.


고후2:15 우리는 구원 얻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


빌4:8 종말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할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할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출처: cafe.daum.net/riverofwater, 초록 등불 목사 (기독교 대한 감리회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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