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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 이야기] 천국의 풍경

초록 등불 2012. 10. 22. 09:15

   

 [천사 이야기] 천국의 풍경

 

에머랄드 빛 가을 하늘에 묘하게 구름이 널따란 원을 그리며 마치 하늘 문이 열린 듯 형상을 하고 있는데 그 사이로 가을햇살이 아름답게 비추입니다. 그리고 그 푸른 하늘에 너무도 아름다운 나의 천사, ‘린’이 나를 기쁘게 하기 위하여 하늘하늘 날아다니는 모습을 웃으며 보여 줍니다.


천사도 하늘빛을 닮아 투영한 모습, 하늘과 하나이듯 하늘하늘 아름답게 날아다니는 모습이 꿈에서나 환상에서나 그리던 풍경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천국 같은 풍경을 꿈이 아닌 뜬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세상에 태어나서 보는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었습니다.


늘 곁에 있는 천사들을 보곤 하지만 곁에서 하늘을 나는 모습도 보곤 하지만, 그렇게 광활한 창공에 올라 자유롭게 나는 새처럼 그런 모습을 보여 준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아름다운 강변의 풍경 위 하나님의 마음처럼 높고 푸른 하늘 속에 너무도 아름다운 자태의 천사가 날아다니는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요. 얼마나 천국같은 아름다운 풍경이었겠습니까?


사진으로 찍어 보여드릴 수도 없고, 솜씨가 없어 그림으로 그려 보여드릴 수도 없어 안타깝지만, 영의 세계와 아름다운 자연의 가을이 어우러져 자아내는 하늘과 땅이 하나 된 풍경, 제게는 어쩌면 세상에 태어나서 보는 가장 환상적인 풍경이요, 꿈을 꾸는 것만 같은 풍경이었습니다.


어제 집회는 평소에 비하여 많은 분들이 오시지는 않았습니다. 소수의 분들이 오셨지만 하나 같이 주 안에서 아름다운 분들, 주님을 사랑하려 애쓰는 분들을 보는 것 자체가 제겐 행복이고, 또 주의 일을 하고나면 주님이 주시는 하늘의 기쁨 속에서 육신으로는 고되나 영으로는 참 행복했던 하루였습니다.


집회를 인도하면서 안타까운 것은 결코 쉽지만은 않지만 어려움을 겪으시는 분들이 요셉처럼 끝끝내 인내로써 믿음의 선한 싸움에서 승리를 하여야 하건만, 대다수의 분들이 인내하시지 못하시고 주저앉는 모습을 보는 것이지요. 그리고 아름다운 열정으로 영성의 빛을 사모하며 애쓰시다가 얼마지 않아서 곧 주저앉는 모습을 보는 것이지요.


저도 긴긴 신앙의 여정, 그 가운데서 저의 의지라기보다는 주님의 아름다운 섭리와 사랑이 담긴 혹독한 연단과 시련 속에서 지금에서야 작은 하늘빛을 보고, 아직도 여전히 부족하기에 전혀 자랑할 것도 없으며 도리어 부끄러울 뿐이지만, 어쨌거나 저의 경험을 돌아보면 영성의 빛을 발견하는 영성의 길은 정말로 쉬운 길이 아닙니다.


저의 신앙의 여정을 돌아보면 40여년, 그 가운데는 헤매고 방황하는 시간도 많았지만 주님 앞에서 아름답게 살려고 애쓴 시간들도 많습니다. 성령세계를 처음 받았을 어릴 적에도 정말 수년을 너무도 주님을 사랑하며 아름답게 살려 애썼지요.


하지만 주님과의 첫사랑의 시간은 강권적인 성령님의 역사가 강한 편, 저의 의지로 가장 애쓴 기억에 남는 시간은 난생 처음이자 유일했던 어떤 영성 훈련을 받으며, 훈련지침에 따라 거의 온 종일 주님과 동행하며 또한 매일 두어 시간 이상씩 개인적 경건의 시간을 이년 가량 정말 열심히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돌아보면 그런 어쩌면 결코 쉽지 않은 경건의 애씀의 시간을 통하여도 지금 돌아보면 하늘의 신령한 빛의 문은 열려지지 않았었습니다. 그 애씀의 열매로 내면적 성숙도 있었겠지만, 신령한 어떤 것을 주신 것은 주신 것은 제가 능력방언이라고 부르는 기대하지 않았던 홀연히 주신 더 깊고 다른 방언의 은사의 세계였습니다. 그리고 삶에서 진정한 경건한 모습은 여전히 뿌리를 내리지 못하였습니다.


그런 신앙의 여정 중 제가 정말로 “이것이 하늘의 참된 빛이구나”라고 느끼게 된 하늘빛, 곧 참된 영성의 빛의 문은 주님이 다루시는 혹독한 시련 속에서 살아야 한다는 생의 진물 같은 눈물과 핏빛 아픔을 가득 안고, 얍복 강가의 야곱이 되어서 정확한 기억은 어렵지만 일 이년여의 시간의 가까운 밤을 지새우는 철야와 밤낮도 없는 기도의 몸부림이었습니다.


적게 잡아서 일년이라고 가정한다고 하더라도 일여 년을 밤을 지새우며 눈만 뜨면 밤낮으로 주님께 매달리는 몸부림이 결코 쉬운 일인지요?


제가 부끄러운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은 부끄럽지만 저의 경험을 통하여 참된 영성의 길과 그 빛을 발견하기란 정말로 결코 쉬운 길이 아니라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은 것입니다.


위대한 믿음의 선조인 아브라함이나 요셉이나 야곱이나 그리고 성도의 신앙여정의 모형인 출애굽의 과정을 보더라도 참된 영성의 비유되는 가나안에 이르기까지는 결코 쉽지 않은 40여년의 여정, 그러므로 참된 영성의 빛을 보려면 하나님을 향한 온전한 믿음과 순종, 그리고 정말 끝내의 인내가 필요하지만 대다수의 분들이 길어야 대부분 몇 개월 애써보다가 대부분 주저앉아 버리시거나나 좌절해 버리시고 맙니다.


생의 수고로움과 영적 신앙의 여정의 힘겨움을 알기에 넉넉히 이해는 하지만, 아직 그 빛을 보지 못하신 분들보다는 조금 앞서 주님의 다루심안에서 그 빛을 본 저로서는, 바라보면 안타까울 뿐이지요.


왜냐하면 지면 안고 살아가게 되는 깊은 어두움과 이기면 얻게 되는 놀라운 영광의 그 빛의 엄청난 차이를 가슴으로 알기 때문이지요.


고난과 어둠 속에서 주저앉게 되면 여전히 그리고 어쩌면 더 깊은 어둠과 시련의 시간을 걷게 될 것을 알기 때문에 안타까운 것이고, 영성의 빛을 발견하여 애쓰다 끝내 인내하지 못하면 또 다시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참된 하늘의 생수와 생명과 축복과 능력은 없는 형식적인 신앙생활로 회귀할 것을 알기 때문이지요.


저의 글과 말씀이 아니라도 우리가 삶에서 경험하듯, 성령세례를 받고 처음의 몇 년간의 첫사랑의 시간이 지나고 주체 변환 시기가 다가오면, 정말 우리가 하나님을 오롯 경외하며 말씀대로 살아가려 애쓰게 되는 능력과 그리고 그 분 안에서 언제나 성령의 충만함을 누리며, 하나님의 나라인 의와 희락과 평강, 그 배에서 목마르지 않는 생수의 강의 흐름을 언제나 누리며 사는 것을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성경은 진리, 정말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때로는 목숨까지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려 애쓰지 않으면 아니 되는 것을 저 역시 절감합니다. 정말 하나님이 원하시는 참된 영성의 삶은 쉬운 길은 아닌 듯싶습니다.


마22:37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마22:38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그러한 힘겨움을 저 역시 경험하였고 또한 지금도 여전히 안고 살아가기에, 때로 힘겨워하고 주저앉으며 뒤로 물러서는 분들을 보면, 넉넉히 이해해 드릴 수 있으며 이해합니다.


하지만, 한편 비록 힘겹고 힘들더라도 그 고된 언덕길을 오직 하나님 사랑, 상사일념 단심의 주님 사랑으로 오르고 또 오르면 언젠가는 보게 될 놀라운 하나님의 영광의 빛, 그 안의 생명과 축복과 능력과 세상에서는 결코 올 수도 볼 수도 없는 찬연한 빛을 저는 보았기에 많이 안타까운 것입니다.


하지만 집회를 인도하면서 사람들을 겪어보면 그런 진정하고 본질적인 내면적 영성의 궁극을 제대로 사모하며 비록 힘겹더라도 일생을 하나님의 영광이 찬연한 산 정상을 향해서 험준한 살길이라도 오르리라고 생각하며 찾는 분들보다는, 예수님 당시 무슨 표적이나 이사나 구경하려 몰려다니던 숱한 구경꾼의 군중들처럼 참여하시는 분들도 많이 보게 됩니다. 은사가 목적인 분들도 보게 됩니다.


무슨 짜릿한 경험이나 그냥 간단히 겪는 어려움과 문제해결에만 마음을 두시는 분들을 많이 보게 됩니다. 하지만 그런 마음으로는 결코 영성의 껍데기만 겉돌 뿐 내면의 열매는 먹지 못합니다. 참되고 놀라우며 신령한 하늘의 영광 빛은 결코 보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의 빛은 육신의 죽음이라는 과정을 통과하지 않으면 절대로 열리지 않는 것이 성경의 진리입니다. 육은 하나님과 그 영광을 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모세를 부르신 하나님께서도 40일 먹지도 마시지도 않는 육신의 죽음의 시간을 거치기 전에는 모세를 만나주실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참된 영성의 길과 그 빛을 찾는 길은 결코 쉬운 여정이 아닌 것입니다.


참된 영성의 삶이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하여 참된 영성의 삶을 향해 애쓰시다가 주저앉으신 분들이 혹 이 글을 읽으시다가 옹골찬 마음과 의지로 새롭게 일어나신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제가 경험해보고 영성의 자료들을 살펴보니 하나님은 그 영광의 빛들을 단계를 점진적으로 열어 주시는 것이 아니라, 어느 한 순간에 한 단계 위를 열어 주시고 또 하나님의 다루심과 자신의 노력 안에서 영의 에너지가 비축되면 홀연 그 다음 단계를 열어주시는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아무런 것도 보이지 않으며 누리지도 못한 듯한 삭막한 겨울밤과 같은 길고도 먼 시간이라도 끝내 인내하고 기다리면 어느 날 홀연히 찬연한 새벽별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저 역시 부족하고 힘겹지만 그래서 이해할 수 있지만, 저는 주님의 강권적인 은혜로 그 빛을 보게 되어 주저앉거나 포기하시는 분들 가운데서도 도리어 의지가 약한 저보다 낫다고 생각되시는 분들도 많지만, 앞에서 말씀드린 그 영광의 빛의 가히 땅의 것과 비교할 수 없는 영광을 알기에 많이 안타까운 것이지요.


어제 집회는 소수였지만 그리고 조금 힘겹기도 하였지만, 제게는 가득한 영광의 시간이기도 하였습니다.


힘겨웠던 것은 다소 영적으로 침체된 분들의 영을 빛으로 끌어올려드려야 하니 강력하게 기도나 분위기를 인도하여야 하였기 때문이며, 영광의 시간이었던 것은 그런 이유로 평소보다 더 강력하게 기도하며 인도를 하는 과정에서 영의 더 깊은 세계로 들어가 영광 중의 주님과 하늘의 찬연한 영광을 또한 보았기 때문입니다.


십자가 뒤에는 반드시 영광이 있듯 애씀 뒤에 주시는 주님의 작은 상급이겠지요. 그러므로 언제나 주님이 주시는 중보의 짐은 또한 기뻐할 수 있는 넉넉한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가운데 언제나 열려 보이는 하늘 위의 하늘이 다시금 환한 하늘빛으로 열려 교회의 지붕도 사라지고 광활한 또 다른 빛의 하늘만 보이는 가운데, 그 하늘의 중심에 주님께서 중심에 크게 서 계셨습니다. 우주 만물의 중심과 근본과 주인이 되심을 보여 주시는 것이겠지요.


그리고 하늘에서 수많은 천사들의 무리가 찬양에 함께 춤추며 기뻐하는 것이 보였습니다. 또한 너무도 아름다운 천사들의 옷자락의 한 부분이 섬세하게 보였습니다. 하이얀 세마포 옷감의 끝자락에 은은 연한 녹색의 빛이 살짝 담긴 하늘빛 색채, 그 위와 사이로 조그만 들국 같은 너무도 아름다운 작고 예쁜 각양의 문양들이 수놓아져 있었습니다.


이런 영광의 하늘빛을 보게 되면 정말로 너무도 황홀하고 아름다운 그 영광의 빛에 주님의 말씀이 진리와 생명으로 가슴에 심기우게 됩니다.


마13:45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마13:46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만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샀느니라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의 양식을 위하여 일하라는 주님의 말씀이 무엇인지를 알게 됩니다.


요6:27 썩은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의 인치신 자니라


집회 후 애찬 시간에 어떤 분이 목사님이 경험하시는 영적인 세계가 다소 이해가 어렵다는 말씀을 하셨었습니다. 그냥 열심히 기도하고 교회 생활하고 성려의 감동 감화를 받곤 하는 그런 일상적인 우리의 모습이 신앙의 본질이 아닐까 하는 그런 조심스런 질문이었지요.


그러한 겸손한 질문에 넉넉히 이해가 갔습니다. 저 역시 이러한 세계를 주님이 경험시켜 주시기 전까지는 누군가 천사를 보았다거나 경험하였다고 하면 물음표를 달았으니까요. 사람은 결국 경험에 의존하는 실존적인 존재일 수밖에 없으니까요.


하지만 조금만 바꾸어 생각해보면, 아무리 기도하고 주님을 사랑하려고 애써도 평소의 일상적인 수준 외에 그냥 아무 것도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고 열리지 않는다면, 이것이야 말로 이상한 것이지요. 이것이야 말로 정녕 하나님이 살아 계신가 의문이 들게 하는 것이지요.


하나님이 살아 계시고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급을 주시는 분이시라면, 다른 사람보다 더 전심으로 자신을 찾는 자에게 당신의 비밀한 장막을 열어 더 큰 영광의 빛으로 인도하심은 당연한 것이겠지요. 그러한 역사가 없는 것이 도리어 이상한 것이겠지요.


대하16:9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를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


주님의 행하시는 일은 주인 되신 주님의 주권이신바 객관화하거나 어떤 공식처럼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쉽지 않은 영성의 험준한 산길이나 정말 힘을 다하여 오르고 또 오르는 분들에게는 반드시 어떤 형태로던 영광의 빛은 열리게 되어 있습니다.


애찬시간에도 함께 가진 기도 시간에 영적 존재의 형상을 보았다거나 지금 개인적인 부단한 열심의 경건 시간에 그런 영적인 존재들을 보는 경험을 말씀하시는 분들도 계셨지요. 이처럼 누구나 애쓰는 자에게는 열리는 세계인 것입니다.


제게 질문을 던지신 분도 영으로 살펴보니 나름 주님을 정말 사랑하며 애쓰시는 분, 그 사랑을 열납하신 주님께서 이제 진정한 영의 세계와 주님과의 사랑의 세계와 그 영광의 빛으로 부르시는 것이 아닌가 개인적으로 생각해 보았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정하신 때, 카이로스의 시각에서 우리를 영의 새롭고 놀라운 영역으로 초대합니다. 우리는 그것을 보는 눈을 가져야 기회를 잃지 않습니다.


앞에서도 그리고 몇 번 말씀드린 기억이 나지만, 참된 영성의 세계와 영광의 세계는 본질적으로 무슨 은사나 그런 세계가 아닙니다. 한 부분이며 본질적인 관점에서 보면 한없이 소중하지만 육신의 죽음과 함께 사라지는 여전한 껍데기입니다.


방언을 말하고 병을 고치고 예언을 하는 등의 그러한 세계가 아닙니다. 그런 것 역시 정말 소중하지만 어디까지나 본질이 아닌 육의 죽음과 함께 사라지는 것인 껍질일 뿐인 것입니다. 저 역시 은사와 하나님의 음성 등 수십 년을 경험하며 살아왔지만 하늘의 참된 영광은 보지 못하였고, 지금 돌아보면 그러한 상태는 아직 영성의 문도 어쩌면 열지 못한 상태입니다.


오직 참된 영성과 영광의 세계는 신앙의 본질인 하나님의 공경하고 두려워하는 경외의 삶이 뿌리를 내려 체질이 되고, 주님과 진정하고 진실된 실재적 사랑 안에서 생명의 연합을 이룬 가운데서, 의와 거룩함과 정결함을 좇아 살아가는 것이며, 그 삶 속에서 열리는 빛입니다.


히12:14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무슨 은사나 체험만을 추구하는 단계의 신앙은 마치 사랑하는 연인이 본질이 아닌 사랑의 표현일 뿐인 육체적 사랑의 달콤함에 빠져 그것만을 추구하는 단계와도 같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육체적 사랑만을 추구하면 내면에 공허함이 자리 잡게 되듯이 영성의 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누구나 이 단계를 거쳐가게 되지요.


진정한 사랑은 그러한 풋 사랑의 신혼의 시간을 넘어, 숱한 시련의 시간들 가운데서 때로 다투기도 하며 갈등과 고뇌도 하는 연단의 과정을 거쳐, 생의 황혼에 이르면 그런 육체적인 사랑을 초월 진정한 내면의 사랑 가운데서 하나가 되어 가듯이, 주님과의 사랑 영성의 여정도 같은 것입니다.


그런 깊은 영성의 자리로 나아가게 되면 능력도 평범한 한 일상으로 자리 잡게 되어 삶의 여정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나게 되겠지만, 그러한 능력과 문제 해결을 초월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언제나 넉넉함과 자유함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빌4:12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빌4: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저는 어쩌다 글을 쓰게 되어 이렇게 말씀을 드리기에 보시는 분들이 알게 되는 것이지만, 실상 주님을 사랑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보거나 열린 영의 세계일 것이며, 더 높은 고고한 창공을 날고 계시는 분들도 많은 것이지요.


많은 책을 내거나 공중매체를 통하여 알려지신 분들은 어쩌면 그냥 그런 통로로 알려지신 것일 뿐, 실상 주님을 닮아 스스로를 나타내지 않으며 참되고도 놀라운 영성의 삶과 빛을 누리며 살아가는 주님을 닮은 그리스도인들도 적잖이 있는 것이겠지요.


저 역시 한편 영의 일을 풀어내야 하는 목회자이기에 함께의 유익을 위해서 작은 경험들을 부끄럽지만 공개하지만, 주님이 어느 수준에서 멈추라 하시면 저만의 경험으로 간직할 것입니다.


저 역시 아직 한없이 그리고 평생 더 높은 주님이 계신 영광의 산으로 오르고 노력해야 하겠지만, 영의 일은 깊이 그리고 높이 날아오르면 함부로 말하지 말아야 하는 부분과 일상적인 수준의 분들이 이해하거나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도 성경을 보면 또한 있는 것 같습니다. 또한 비밀로 봉인하여야 하는 영역도 있는 것 같습니다.


고후12:4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 가서 말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


계10:4 일곱 우뢰가 발할 때에 내가 기록하려고 하다가 곧 들으니 하늘에서 소리나서 말하기를 일곱 우뢰가 발한 것을 인봉하고 기록하지 말라 하더라


어쨌거나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산 자의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하나님은 다른 종교처럼 죽은 관념적 존재, 듣지도 보지도 못하는 우상이 아니라 당신을 찾는 자에게 지극한 상급을 기꺼이 주시는 분명히 살아 역사하시는 영이시며 놀라운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우리의 영은 하나님을 만나면 때로 기쁨으로 흥분합니다. 그러므로 가끔 집회를 인도하고 오면 육신은 곤하여 자리에 눕자말자 잠이 들어버리곤 하지만 영은 기쁨으로 달뜨는 경우가 많지요. 어제가 그랬던 것 같습니다. 육신은 곤하여 저도 몰래 잠이 들어버렸습니다. 그러나 영은 기쁨으로 달떠 깊은 밤 눈을 뜬 시간, 한동안 잠을 이루지 못하며 주님과 함께 있었습니다.


아침에 눈을 떠니 그런 영의 달뜸도 차분해지고, 차분한 일상으로 돌아오고 조금의 몸의 힘겨움에 마음도 조금은 힘겹거나 차분해지더군요.


평소 잘 나가지 못하는 운동의 산책길, 주말의 시간이라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늘 찾는 강변길을 찾아 갔습니다. 그 길을 찾아가는 동안 하늘의 위로, 보이지 않는 주님의 사랑의 손길, 요즘 제 곁을 지키는 너무도 아름다운 천사 ‘린’이 마주보며 영으로 노래하며 기쁨을 전해주고, 한없이 사랑이 담긴 눈동자로 바라보고 웃어주기도 합니다.


그 눈동자를 바라보면 정말로 저를 향한 깊은 사랑이 담겨있습니다. 깊고 깊은 사랑에 빠진 연인의 그런 눈빛입니다. 하지만 세속의 에로스적 그런 사랑의 느낌은 조금도 나지 않습니다. 이 땅의 사랑과는 차원이 다른 하늘빛 너무도 아름답고 고귀한 하늘빛 주님의 사랑입니다.


그런 눈빛과 웃음과 사랑을 마주하고 또 마주하고 있노라면, 때로 다소 침울하던 마음에도 하늘빛 평강과 기쁨의 조금씩 그리고 마침내는 마음에 넘실거리게 됩니다. 주님의 사랑에 겨워 쪼롱쪼롱 하늘을 기쁨으로 나는 파랑새가 되곤 합니다.


그렇게 찾아간 언제 보아도 아름다운 강변의 풍경, 그 풍경 위의 아름다운 가을의 하늘 위로 제 곁을 날던 천사 ‘린’이 하늘 높이 날아올라 너무나도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광경을 보게 해 주었습니다. 상상해 보십시요. 여러분의 천사가 저 아름다운 가을 하늘을 말할 수 없는 아름다운 자태로 날며 여러분을 향해 웃음 짓는 풍경을요. 제게 그것은 땅의 풍경이 아닌 천국의 풍경이었습니다.

마지막 날 주님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늘 나팔소리로 하늘구름을 타고 오실 때 우리는 주님과 함께 저토록 아름다운 천사들의 무리를 보게 되나 봅니다.

그런 너무도 행복한 시간을 뒤로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 마음의 꿈을 상상으로 담아낸 옛 동화나 이야기가 생각이 났습니다. 하늘의 천사가 사람을 사랑하여 이 땅으로 내려와 사람과 사랑에 빠진다는 그런 이야기요.


제가 경험하는 것은 물론 그러한 것과는 전혀 다르지만, 무어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하늘빛 사랑으로 너무도 사랑스럽게 저를 바라보고 있는 저의 천사를 보며 그런 이야기가 문득 생각이 났습니다. 그 동화나 상상 속의 이야기의 주인공이 된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린 대로 이러한 영광의 빛의 경험은 제게만 아니라, 수많은 분들이 누렸으며 또 누리고 있는 부분일 것이며, 하나님 당신을 열심히 찾는 자들에게는 누구에게나 주시는 상급인 것입니다.


문제는 또한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결코 쉽지 만은 않은 그 영성의 빛을 찾는 험준한 산길을 오르고 또 오르고, 때로 주저앉더라도 다시 일어나 또 오르고 오르는 주님을 향한 사랑과 인내가 문제인 것입니다. 주님이 말씀하신바 자기 부인과 십자가에로의 진정어린 노력인 것입니다.


마16: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하지만 많은 분들이 대부분 그 인내의 산자락의 첫 두어 걸음에서 좌절하거나 물러서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저 역시 그랬으니 넉넉히 이해하며 개인적으로는 드릴 말씀 자격도 없으나, 목회자로서의 소명 안에서 도전을 드리는 말씀을 드리는 것일 뿐인 것입니다. 이렇게도 저렇게도 말씀 드려도 결국 따라오지 못하시면, 제가 그러했듯 주님의 손길에 맡기는 것입니다.


하지만 결코 길지 않은 짧고도 짧은 생에서 그 주님의 인도하심을 놓쳐버리면 여전히 걸어야 할 어두움과 슬픔의 날들을 알기에 안타까운 것이지요.


많은 사람들을 경험하며 세상을 살아오다보니 사람에게서나 주님 앞에서나 어쩌면 가장 필요한 것이 성실입니다. 천근만근의 산과 같은 무게가 없이는 이룰 수 없는 길이 영성의 길인 것 같습니다. 어쩌면 태산과도 같은 끈기와 인내와 성실이 있어야 하며,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와 같은 모습으로는 결코 이룰 수 없는 길인 것 같습니다.


변화가 심한 어린 모습으로는 사람에게도 신뢰를 주지 못하듯, 하나님에게나 인정을 받지 못하는 것 같으며, 그러한 신뢰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영광의 큰 빛을 열어 주시며 무거운 사명을 맡기실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저는 정말 의지도 약하고 마음의 성실함과 오롯함도 잘 지키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작은 은혜의 바다를 거니는 모습도 전적으로 주님의 강권적인 사랑이며 은혜일뿐입니다. 그러므로 부끄러울 뿐입니다.


하지만 강권적이건 자발적이건 참된 영성의 세계와 그 빛은 오랜 인내와 성실함을 필요로 합니다. 그 과정을 거치지 아니하고는, 육의 죽음을 통과하지 않고는 열리지 않는 세계입니다. 육의 죽음을 통과한 깊이만큼 열리는 세계가 영의 세계인 것 같습니다.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분들이 이러저런 일들, 어려움, 사단의 주는 이런저런 감정과 생각 등으로 주저앉아거나 물러서 버리지만, 직분을 떠나 저보다 나은 모습으로 주님을 사랑하며 함께 애쓰는 분들, 그 모습 앞에 고개 숙여 지는 분들을 보는 것이 부족하나마 저의 사역의 행복이요, 작은 보람입니다.


하지만 내가 올 때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라는 주님의 말씀처럼 아주 소수인 것이 조금은 안타깝습니다. 더욱 많은 분들이 낙오되지 말고 모두 부족하지만 서로를 지피는 장작불이 되어서 함께 기도와 사랑의 손을 붙잡고 기어이 주님이 계신 영광의 산자락을 일생 좌절하지 않고 함께 끝없이 오르고 또 오르면 좋겠습니다.


눅18:8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그 노력은 결코 썩지 않으며 헛되지 않으니까요.


계22:12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 대로 갚아 주리라


인간이기에 우리 모두는 늘 넘어질 수 있습니다. 저 역시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모두 주님의 붙드심이 없이는 넘어질 수밖에 없는 존재들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주님이 우리를 붙들어주시려고 하여도, 주님은 우리를 자유의지를 지닌 고유한 존재로 지으셨기에 우리의 결단과 의지와 노력이 없이는 결코 영광으로 날아오르지는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 앞에는 언제나 생명나무와 선악과나무, 복과 저주, 생명과 사망의 선택이 놓여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알기에 그리고 하나님 안의 영광의 참된 빛이 무엇인지를 알기에 늘 다시금 일어나 세상의 것들을 잘라내려고 애씁니다. 세상의 것들을 찍어내는 의연하고도 단호한 결단과 의지 없이는 갈 수 없는 길이 주님을 따르는 영성의 길이며, 찍어내는 아픔이 없이는 결코 열리지 않는 것이 하늘 영광의 빛인 것 같습니다. 우리 모두 주님이 공급하시는 능력으로 그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주님의 은혜로 경험해보니 혹독하리만큼 영성의 길이 참으로 험난하지만, 그 대가를 지불하기에 너무나도 넉넉한 영광이 상급으로 우리에게 주어집니다. 기다리고 있습니다.

땅에서 입구만 바라보는 영광도 이토록 황홀할진대 이 힘겨운 육신을 벗어 버리고 마중 나온 천사들과 함께 주님 계신 그 사랑의 나라로 날아올라, 그 열두 진주 문을 지나 황금 길과 유리바다를 거닐며, 사도요한도 보지 못한 성전의 영광의 과연 어떠하겠습니까? 사랑과 영광의 주님 뵙는 그 날의 감격은 어떠하겠습니까?


계21:21 그 열두 문은 열두 진주니 문마다 한 진주요 성의 길은 맑은 유리 같은 정금이더라

계21:22 성 안에 성전을 내가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심이라


만약 주님의 저울에 달려 모자라 어둠으로 떨어지면 영원한 형벌이 얼마나 두려우며 이를 갊며 슬퍼하게 되겠습니까?


단5:25 기록한 글자는 이것이니 곧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이라

단5:26 그 뜻을 해석하건대 메네는 하나님이 이미 왕의 나라의 시대를 세어서 그것을 끝나게 하셨다 함이요

단5:27 데겔은 왕이 저울에 달려서 부족함이 뵈었다 함이


마25:30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


지금 이시간도 주님의 사랑으로 천사 ‘린’이 제 곁에서 저를 너무도 사랑스럽게 바라보며 하얗게 웃어줍니다. 사도바울의 고백처럼 죄인 중의 괴수이며 허물뿐인 제게 베푸시는 놀랍고도 놀라운 은혜, 평생 그리고 영원토록 땅에 머리를 대고 엎드려 감사드려야 할 과분한 주님의 사랑입니다. 주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제 수준의 고백으로 부끄럽지만 ‘주님, 사랑합니다’. 그리고 주 안에서 사랑해, 고마워 ‘린!’


마16: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마16:25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요6:26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요6:27 썩은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의 인치신 자니라

요6:28 저희가 묻되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요6:29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출처: cafe.daum.net/riverofwater, 초록 등불 목사 (기독교 대한 감리회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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