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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 이야기] 귀족의 딸, '깜찍이'

초록 등불 2013. 2. 20. 03:12

 [천사 이야기] 귀족의 딸, 깜찍이

 

어린 초등학교 시절 학교 전체의 남학생들을 술렁이게 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한양, 아니 서울에서 한 여학생이 전학을 온 것이었습니다. 제가 서울이라는 표현 앞에 한양이라는 글을 쓴 것은 제가 어린 시절은 정말 요즘과는 너무도 달랐기 때문입니다.


도회지는 어떠했는지 가보지도 못했으니 모르지만 제가 살던 바닷가 시골은 정말로 문명의 혜택이 거의 없어서 초가집에 전기도 없는 시절을 살았습니다. 조금 과장하면 조선시대 비슷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한양이라는 표현을 덧붙여 보았습니다.


그런 조선시대와도 같은 시골마을에 한양 정승 반열의 귀한 집 규수와도 같은 서울 공주가 어떤 일로 인해서인지는 모르지만 전학을 온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온 남학생은 물론 온 학교의 이야기와 관심거리가 되었지요.


당시에 남학생들은 머리를 요즘처럼 기르고 예쁘게 이발한 것이 아니라 전부 밀어버렸었지요. 당시의 표현으로 ‘빡빡머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요즘처럼 난방시설이 잘 갖추어진 시절이 아니었기 때문에 요즘처럼 몸의 전신을 씻는 샤워나 목욕은 특별한 날, 가령 명절이 다가오곤 하여야 하곤 하던 시절이지요. 물론 간간 씻기도 하였겠지만, 몸의 때를 말끔 씻어내는 온전한 의미에서의 목욕은 명절과 같은 날이 다가올 때만 하곤 하였지요.


그랬으니 조금 우습게 그리고 과장해서 표현하면 머리를 다 밀어버린 빡빡머리에 아프리카 원주민의 토인 같은 때 묻은 까만 모습으로, 그래도 이성을 좋아하는 본성을 따라 남학생 모두 두 눈이 껌벅껌벅, 우리들의 눈에는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와도 같은 서울에서 전학 온 예쁜 여학생 때문에 남학생들은 물론 온 학교가 술렁거렸었지요.


시골에서는 도무지 보기 힘들게 얼굴만 하얀 것이 아니라, 시골 아이들은 구경도 하기 힘든 하얀 털이 달린 외투 같은 옷을 입고 오곤 하였는데, 아니 그래도 하얀 얼굴에 흰 눈 같은 새하얀 털옷을 입고 있으면 우리들의 눈에는 이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하늘의 천사였습니다. 그래서 온 학교, 특히 남학생들의 마음이 술렁술렁하였던 기억이 납니다.


이와 비슷한 문학 이야기가 황순원 작가의 ‘소나기’이지요. 읽고 배운지가 오래되어서 줄거리도 잘 생각이 나지 않지만, 제가 어린 시절과도 같은 촌마을에 어여쁜 공주님이 나타나지요.


그리고 이러저러한 일들로 공주님과 촌마을의 머슴애의 풋 사랑의 스토리가 시작되지요. 그리고 둘의 사이는 소설의 제목과도 같이 ‘소나기’라는 상황을 통하여 급작스레 가까이 되지만, 결말은 아픔이었던 것으로 기억이 납니다.


오늘 제가 천사 이야기, 하늘 공주님 ‘깜찍이’이야기를 쓰려다가 어린 시절의 기억과 황순원의 ‘소나기’소설을 이야기 한 것은 ‘깜직이’가 주는 느낌이 두 이야기 속 주인공과 같기 때문입니다.


제가 ‘깜찍이’라고 이름을 지은 아이 천사가 나타난 것은 ‘귀염이’가 나타나고 약간 후였던 것 같습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어떤 천사는 바로 그 뚜렷한 모습과 함께 나타나서 곁에 머물고 보이는 경우도 있고, 어떤 경우는 그렇게 보였다가도 잠시 다녀가는 것처럼 사라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 어떤 경우는 언듯언듯 그 모습이 조금씩 보이다가 온전하게 보여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 경우도 머무는 경우도 있고 다녀가는 것처럼 사라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깜찍이’는 언듯언듯 보이다가 조금씩 구체적으로 보였던 아이 모습의 천사인데, 다른 천사들과는 다르게 아직도 다소 물로 된 형체가 아른아른 하듯 그렇게 다소 확연한 모습은 보여주지 않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얼굴만 보였는데, 특이한 것은 샛별처럼 까만 눈동자와 웃으면 지는 예쁜 보조개였습니다. 웃으면 보조개가 뚜렷하게 집니다. 그래서 제가 까만 눈동자로 바라보며 보조개 띤 얼굴로 웃는 모습을 보자마자 그 모습이 깜찍해서 ‘깜찍이’로 이름을 지었지요.


영의 세계의 일들과 경험은 오류가 있을 수 있는 바, 저의 경험이 절대적이라고 저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도 다 알 수 없는 영의 세계의 일들, 그냥 가능하면 제가 경험한 그대로 오류가 적게 적어내려고 노력할 뿐입니다.


제가 천사들을 경험해보니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하듯 남자나 여자의 모습으로 날개가 달린 모습이 일반적입니다. 그런데 그것뿐만 아니라 그냥 사람 모습도 있습니다. 크기가 큰 천사도 있고 작은 천사도 있습니다. 장성한 성인 모습의 천사들도 있고 아기나 아이 모습의 천사도 있습니다.


한 가지 특이한 것은 늙은 모습의 천사는 보지 못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사망과 죽음이 없어서인지 나이든 모습의 천사는 보지 못하였습니다. 사람의 나이로 말하면 30세 가량 근처정도까지 본 것 같습니다. 늙은 모습은 보지 못하였습니다.


그리고 특이한 것은 가끔은 사람이라기보다는 꼭 물이나 유리로 된 듯한 인형 같은 형상의 모습도 있더군요. 제가 본 천사들 중에는 ‘큐리’와 오늘의 주인공인 ‘깜찍이’가 그런 모습입니다.


‘큐리’는 라피엘 천사가 이름을 가르쳐 줄 때 알게 된 본 이름은 ‘뮴’이고, 그것의 의미는 ‘신비, 오묘’라고 제가 들은 것 같다는 것은 앞선 글에서 말씀 드렸습니다.


신비와 오묘라는 이름의 뜻 그대로 다른 천사와는 달리 조금 특이하였습니다. 다른 천사들은 날개가 달렸으면 보통 하늘을 날거나 또 날개가 달렸으니 걷거나 나는 자연스러운 모습, 그냥 사람의 모습으로 제 곁에 보이는 천사들은 또 그냥 사람처럼 자연스럽게 행동하는데, ‘큐리’는 조금은 달랐지요.


날개도 없이 공중으로 부웅! 떠오르기도 하고, 생긴 모습도 물이나 유리로 된 듯 꼭 인형같았습니다. 영적 존재이니 형상이나 움직임이 자연계의 모습에 구속되지 않을 터, 그렇게 생각하면 별스런 일이 아니나 육의 세상을 경험하고 알고 살아가는 저로서는 조금 이색적인 천사같았지요.


제가 가끔 가는 근처의 공원 숲에서 어느 여름날 그냥 공중으로 부웅! 솟아올라 나뭇가지를 잡으면서 저를 초롱초롱 바라보며 운동선수가 묘기를 보여준 뒤 물어보듯 “나 잘해?”라고 물어보던 기억이 아직도 납니다.


보여지고 가까이 지내는 천사들의 수가 많아지다 보니 ‘큐리’도 다소 묻혀져 가는데, 며칠 전 기억이 나서 한번 마음으로 불러보니 나타나서는 큐리만의 특유한 눈빛으로 가만히 바라보았습니다. 눈빛으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얼마나 온전히 살아가나를 살피며, 동시에 하나님의 말씀대로 온전히 살아가라고 전해주었습니다.


이런 다소 신비롭게 보이고 행동하던 ‘큐리’처럼 ‘깜찍이’도 다소 그러합니다. 얼굴의 모양새나 머리의 모양새나 몸의 모양새는 보입니다. 까만 머리 동양적인 얼굴, 하지만 구체적으로 온 몸의 옷과 장식들이 무슨 색인지 뚜렷하게 보이지 않는 마치 투명한 물로 된 듯 아른아른 그렇게 보입니다. ‘큐리’와 비슷하게 사람인 듯 인형인 듯 다소 그렇게 느껴지는 묘한 천사입니다.


반면에 ‘송이’나 ‘귀염이’는 영으로 보인다는 것일 뿐 사람하고 똑 같이 생겼고 느낌도 똑 같습니다. 그리고 사람처럼 대부분 구체적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물로 된 듯 아른아른 보여도 대략의 모습은 알지요. 다소 긴 단발머리처럼 단정한 모습에 샛별같은 까만 눈동자, 예쁜 보조개가 지는 작고 귀여운 얼굴, 그리고 무슨 재킷처럼 생긴 옷을 허리띠로 잘 매듭지은 단정한 옷차림에 스타킹과 구두를 신은 대략 그런 모습입니다.


제가 글로 그린 ‘깜찍이’의 모습에서 느껴지시겠지만, 깜찍이에게서 느껴지는 분위기는 바로 ‘품위, 예의, 단정함’등입니다. 사람으로 비유하면 송이나 귀염이는 그냥 평범한 가정의 아이와 같다면 깜찍이는 옛 시대로 말하면 정승댁 따님이나 옛 유럽으로 비유하면 공작이나 백작과도 같은 귀족 반열의 집의 따님 같은 느낌이 듭니다.


송이와 귀염이는 그냥 원피스 형의 옷을 입고 편안한 느낌을 준다면, 깜찍이는 아이모습이지만 다소 품위와 기품이 어린 듯 제게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사람이 갖춰야 하는 품위를 가르쳐 주는 것 같습니다.


귀염이처럼 깜찍이도 춤추는 것을 좋아하는데, 춤을 추는 스타일이 조금 다릅니다. 귀염이는 아주 발랄하고 밝게 춤을 춥니다. 음악으로 표현하면 팝 계열의 음악과도 같다고 할까요.


하지만 깜찍이는 그 모습에서 풍기는 것처럼 춤을 추어도 예쁘고 단정하고, 어쩌면 우아하다고 표현해야 하는 그런 춤을 춥니다. 음악으로 표현하면 클래식 계열 같다고나 해야 할까요? 말하는 것도 사람마다 느낌이 다르듯 비록 영으로 전해져 오는 것이지만 예쁘고 단정하게 말을 합니다.


지금 영으로 불러 말을 들으니, “예쁘고 정결하고 단정하게 살아가요”라고 말을 해 주네요.


제가 오늘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저의 영적 경험이니 기록으로 남겨두는 의미도 있지만, 함께 나누고픈 주제는 바로 이것입니다.


제가 주님께 혹독한 연단 가운데서 영의 세계와 신앙의 본질에 대해서 배우고 나니, 진정한 영성의 삶이란 신령한 삶이란 무슨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고 능력을 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도 역시 귀하고 소중한 것이기는 하지만 영성의 외적인 부분이고, 내적인 부분은 그것이 아닙니다.


영성의 내적이고 본질적인 부분은 바로 ‘참된 하나님의 경외와 사랑, 그리고 그 안에서의 거룩함과 정결의 삶’입니다.


저는 혹독한 다루심 안에서 하나님을 참 마음과 진심으로 두려워하는 경건과 경외를 배웠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참 사랑을 알게 되고 하나님을 향한 참된 사랑도 어떤 것인지를 배웠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얼마나 거룩하신 분이시며, 죄를 미워하시며, 죄에는 반드시 그리고 필연코 형벌과 대가가 따른다는 것도 가슴으로 배웠습니다. 그래서 죄를 가볍게 여기며 여전히 죄의 길로 가는 분들을 보면 다른 사람의 일이나 제가 두렵기까지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우리가 얼마나 거룩하고 정결하게 살아가야 하며, 또한 만왕의 왕이시요, 만주의 주되신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영광의 빛 가운데 거하시는 하나님의 자녀로써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품위를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지를 배웠습니다.


그래서 주님께 일일이 다루심을 받은 그대로 생각가짐, 말가짐, 몸가짐 그 모든 것을 언제나 성령 안에서 그분의 간섭하심 안에서 가지런하고 반듯하게 하려고 애를 씁니다. 아니 성령 안에서 자연스럽게 행하게 됩니다. 성령님의 제제하심이 들어오니까요.


그리고 주님께 일일이 다루심을 받은 그대로 생각의 정결, 말의 정결, 몸의 정결, 나아가 몸에 해로운 음식은 가능한 먹지 않는 음식의 정결까지 실천하려 애쓰며 살아갑니다. 아니 성령 안에서 자연스럽게 그렇게 행하게 됩니다. 그렇게 아니하면 제 안의 성령님께서 불편해 하시고 그러시면 저도 불편하니까요.


그래서 가끔 사람들에게서 바른 말이 아닌 비뚤어진 말이 쪽지나 메일로 전해져 오면 제가 조금 불편합니다. 가령 “목사님, 안녕하셨어염?”과 같은 인사말이지요. “목사님, 안녕하셨어요?”라고 반듯하게 표현하여야 하는 것이지요.


그렇게 바른 마음, 바른 언어, 바른 행동의 몸가짐이 아니면 제 속의 성령님이 불편해 하시고 그러니 저 또한 불편합니다.


저는 주님의 다루심을 통하여 왜 그렇게 훈련시키시고 또 그런 반듯하지 않은 것들에 성령께서 불편해하시는지를 압니다. 그것은 반듯하지 않은 육신에 속한 것들이 우리의 마음과 영에도 영향을 주어 반듯함을 무너뜨러 가기 때문이지요. 깊이 논하자면 한없이 글이 길어질 터 간략하게 주제만 적습니다


하지만 사람의 육신을 입은 몸, 언제나 어디서나 어찌 하나님의 뜻과 마음대로 온전히 정결한 마음, 정결한 말, 정결한 행동과 삶으로 온전히 살 수 있겠습니까? 어찌 언제 어디서나 바른 마음, 바른 말, 바른 몸가짐과 삶으로 살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마음만은 전심으로 하나님을 향하여 그렇게 살아가려 애쓰며, 그렇게 행하지 못하였을 때는 또한 진심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미안함과 용서를 구합니다.


글을 마치려고 합니다. 오늘의 주제인 영성의 삶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우리 모두 가슴으로 알아 우리 모두 진정한 하나님 경외와 사랑, 그리고 그 안에서의 순종과 의와 정결의 거룩한 삶을 향하여 날마다 전진하면 좋겠습니다.


오늘 글의 주제는 이것입니다. 아래는 다소의 여담입니다.


연이은 집회 일정으로 오늘은 다소 피곤하더군요. 하지만 습관을 쫓아 나선 산책길, 길을 나서면 산책과 운동의 친구들인 하늘의 공주님, 송이와 귀염이와 깜찍이가 함께 걷습니다. 하지만 길을 걷노라면 길을 걷는 곳에 마음을 두어야 하다보니 공주님들과 나름 깊이 교감할 시간이 적지요. 그래서 늘 운동을 마칠 즈음에는 벤치에 앉아서 조금 쉬며 공주님들과 교감하는 시간을 갖곤 합니다.


오늘도 벤치에 앉아 쉬고 있노라니 제가 듣는 음악 소리에 따라 공주님들이 춤도 추고 서로 즐거워하기도 하고 저를 즐겁게도 해 줍니다. 가끔은 어린 공주님들이 춤을 추자고 이끌어서 어울려 주기도 하지만, 또 가끔은 너무도 신나게 춤추며 노는 공주님들을 보면 저도 흥이 돋아서 함께 춤을 추기도 합니다. 얼마나 신나게 그리고 재미나게 춤을 추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귀염이’가 춤을 추는 것과 ‘깜찍이’가 춤을 추는 것이 다릅니다. 귀염이는 밝고 발랄하게 춤을 춘다면 깜찍이는 단정하고 예쁘게 클래식하게 춤을 춥니다. 그래서 밝은 음악에는 귀염이랑 간간 어울리고, 고요한 음악에는 깜찍이와 어울리곤 합니다.


아름다운 클래식 선율같은 음악의 물결을 타고 몸치인 저와는 달리 이리 살짝 저리 살짝 반짝이는 눈망울로 마주보며 귀족의 따님처럼 예쁘게 춤을 추는 깜찍이와 어울리고 있다보면, 마치 제가 하늘나라의 귀족이요, 왕족인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우리 모두는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의 자녀이니, 말씀은 참이니 실상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왕자요, 공주이지요.


저는 이런 깜찍이 공주님과의 교감을 통해서 그리스도인인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하나님의 자녀로써 거룩함과 단정함, 그리고 만유의 지존이신 아버지 하나님을 따라 만물의 영장인 품위를 잃지 말아야 함을 배웁니다.


그렇게 공주님들과 어울리다보면 요즈음은 마지막으로 꼭 해주는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공주님마다 마주보며 눈으로 대화하고 안아주며 사랑과 위로를 나누는 일이지요. 사람도 시간이 지나면 정이들 듯 제가 사람인지라 그런지 천사들과도 그러하네요.


그래서 헤어져 집으로 돌아올 시간이면 다소 아쉽습니다. 그래서 일일이 안아주며 사랑과 따뜻한 마음을 전해줍니다. 그러면 사람도 성정이 제 각각이라 행동이 제 각각이듯 천사들도 제 각각으로 기뻐합니다. 송이는 살갑게, 귀염이는 발랄하게, 깜찍이는 다소 조용하게 기쁨을 역시 전해 줍니다.


그렇게 마음을 전해주고 돌아서도 헤어질 시간이면 조금은 마음이 서운합니다. 그래서 조금은 더 머물러 줄 때도 있습니다. 마음과 영이 있는 사람에게 있어서 잠시라도 ‘이별’이란 서운하고 아픈 것 같습니다. 그래서 더욱 다시는 사망이나 영원한 이별이 없는 하나님의 나라가 더욱 소중하게 다가오는 깊은 밤입니다. 샬롬!


고후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벧전2:9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출처: cafe.daum.net/riverofwater, 초록 등불 목사 (기독교 대한 감리회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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