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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진리] 영적 성장의 여정 (4)

초록 등불 2013. 11. 1. 02:12

 [핵심 진리] 영적 성장의 여정 (4)

 

(1)편 (2)편 (3편)을 보시지 않으신 분은 앞선 글들을 읽으신 후 읽어 보세요.

이스라엘 백성의 순례의 과정에서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는 시간대에 유비해 볼 수 있는 영적 장성한 시기에 이르면, 참 영적인 삶의 관점에서 보면 이것 또한 걸음을 시작하는 단계이나, 육성으로 살아가던 이전과는 다르게 영성으로 살아가는 속사람의 생명이 발현되므로 적지 않은 크고 많은 변화가 스스로에게 다가오게 됩니다.


육성에서 영성으로 바뀌는 것이니 말과 생각과 행동과 성품이 변하며, 좋아하던 모든 것들이 바뀌며 친구도 바뀌며 모든 것들이 바뀌게 됩니다. 온유해지고 고요해지며 삶 그 자체가 바뀌게 됩니다. 육이 좋아하던 모든 것들은 저절로 싫어지게 되고 영이 좋아하는 것들로 바뀌게 됩니다.


자신이 자신을 봐도 타인이 자신을 봐도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됩니다. 이러한 과정을 겪지 않았다면 아무리 은사 능력이 나타난다 할지라도 여전히 육에 속한 사람이요, 광야에 머무는 사람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나 사역자들이 영성이라 함은 무슨 신령한 계열의 은사와 능력으로 생각하며 그러한 것들을 찾아 이곳저곳을 수없이 찾아다니시는데, 비록 우리의 삶과 사역에 그러한 부분이 필요하다 할지라도 은사와 능력은 본질이 아직 외면적인 것일 뿐입니다. 오직 우리가 본질적으로 추구해야 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형상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은사와 능력이 강하게 나타난다고 하여도 불법을 행하는 자가 되어서 구원을 받지 못하는 수도 있으며, 본질이 아닌 외적인 은사와 능력을 집착적으로 추구하다 보면 그것이 통로가 되어 어둠의 영에 사로잡혀 잘못된 신앙, 잘못된 사역의 길로 접어들기도 하는 것입니다.


마7:22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마7:23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그러므로 외적인 은사와 능력이나 영적 체험은 영적 성장의 다림줄은 결코 아닙니다.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고 성경이 말씀하듯이 영적 성장의 징표는 그 속사람을 보여주는 생각과 말과 행동이며, 그 삶과 신앙의 열매입니다.


어쨌거나 영적으로 영성이 발현되는 장성한 시기에 이르면 주님과 또 다른 새로운 깊이의 사랑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는 남녀의 사랑의 비유하여 설명을 드리면 첫사랑의 셀레임과 순수함, 그리고 신혼의 달콤한 시간을 너머, 숱한 세월 생활의 이러저러한 어려움과 서로가 달라 부딪히는 숱한 갈등의 시간을 지나, 지긋한 나이에 모든 과거의 이러저러한 일들이 바탕이 되어 이제는 서로 넉넉히 이해하고 육체적 사랑과 같은 뜨거움은 없을지라도 넉넉히 서로를 가슴으로 이해하고 사랑하는 새로운 시간대로 접어드는 것과 같습니다.


또 다른 예를 든다면 어린 아이가 태어나서 어릴 적에 자신에게 사랑을 주시는 부모님께 기뻐서 “엄마, 아빠 사랑해요, 감사해요”라고 말하는 것이 영적 순례의 첫 사랑의 마음이라면, 장성한 시기에 주님을 향한 새로운 느낌을 사랑은 자라 장성한 어른이 되어 참으로 가슴으로 어버이의 사랑을 참되게 알아 지극한 마음으로 효와 예를 다하는 성숙한 사랑입니다.


이러므로 이 시기에 이르게 되면 실제적으로 “주님이 내 안에, 내가 주님 안에” 거하는 생명합일의 삶이 시작되고, 주님 편에서는 ‘인자하심’의 세계를 펼쳐 주십니다.


롬 11:22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준엄하심을 보라 넘어지는 자들에게는 준엄하심이 있으니 너희가 만일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머물러 있으면 그 인자가 너희에게 있으리라 그렇지 않으면 너도 찍히는 바 되리라 


그 인자하심의 세계가 펼쳐지는 이 시기, 곧 이스라엘 백성의 순례의 과정에서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게 되는 이 시기는 이제는 가나안 땅에서 젖과 꿀을 먹고 누리게 되듯이 조금씩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영육 간에 축복이 조금씩 나타나게 됩니다. 하나님의 자비하심과 인자하심을 맛보고 누리게 됩니다.


이는 어버이가 자녀를 양육함에 있어서 아직 배우고 자라야 할 때에는 다소 엄하게 대하시다가 장성하여 이제는 어버이의 뜻을 마음으로 헤아려 효와 예를 다하려고 하는 자녀를 인자로 대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영적으로 장성한 시기에 들어가게 되면, 이제는 이전과는 다르게 다소 죄와 불의와 악에 대하여 스스로 이겨나가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가나안 족속들과의 싸움에서 대부분 승리하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싸움의 승리는 억지로 애쓰고 힘겹게 싸우는 것이 아니라 누림이 됩니다. 이전에는 그토록 좋아하던 죄의 속성을 가진 것들이 영성의 발현 가운데서 하나씩 싫어지게 되고 도리어 행하려고 하면 힘이 들게 됩니다. 이는 영적 생명과 성장이란 이론이 아닌 실제이기 때문입니다.


여전히 자신 안에서 속사람과 겉사람의 싸움은 있지만 이전과는 다르게 많은 부분에서 이기고 누려가는 자신을 보게 되며, 그리고 그러한 싸움의 승리의 영역과 전장이 점점 넓혀져 가는 것을 시간 속에서 경험하게 됩니다. 그 시간의 흐름 속에서도 영은 조금씩 성장하고 자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의 출애굽의 여정에서 광야는 한편 머물러야 할 본토가 아닌 외토이고 머물러야 할 본토는 하나님이 그들을 조상을 통하여 언약하신 가나안 이듯이, 외적인 것들에서부터 점점 내면적으로 것으로 마음과 관심이 기울여 집니다.


비유를 들자면 남녀가 사랑하여 결혼을 하게 되면 그래도 젊은 날에는 외적인 사랑에도 적지 않은 관심을 가지게 되지만, 점점 성숙한 나이로 접어들게 되면 진실 되고 참된 내면의 사랑으로 마음이 성숙해 가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어찌하면 은사와 능력을 받아서 신령하게 보일까, 어찌하면 화려한 영적 경험을 해볼까 등의 마치 외적인 외모에 관심을 많이 가지던 젊은 날의 사람이 자라고 장성해 가면 그러한 것들에서는 초연해져가며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게 되는 것처럼, 어떻게 하면 참된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룰까를 두고 거룩한 고민을 하게 되며, 그 거룩한 고민 앞에서 부끄러운 자신의 내면의 모습에 하나님 앞에서 울먹이게 됩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 가운데 그 사랑을 깊이 가슴으로 느끼며,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마음에 참되게 합한 사람이 될까 자신의 내면을 깊이 돌아보게 됩니다. 나이가 지긋이 들어서야 어버이의 참 사랑을 깊이 깨닫고 어찌하면 어버이의 남은 생, 어버이의 기쁨과 행복이 되어드릴까 자신의 마음을 살피는 철이든 참 자녀처럼 행하게 됩니다.


획일적으로 구분하기는 어렵겠지만 광야의 시간은 자신의 구습과 옛 사람을 죽이고 버리는 시간과 하나님의 법으로 자신을 세워가는 시간이라면, 성장기에 맞는 가나안의 시간은 자신의 내면의 깊은 악, 곧 가나안의 일곱 족속을 철저하게 뿌리 뽑는 시간입니다. 완전수 7처럼 완전히 악을 몰아내고 더욱 성숙해 가는 시기입니다.


신7:1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인도하사 네가 가서 얻을 땅으로 들이시고 네 앞에서 여러 민족 헷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히위 족속과 여부스 족속 곧 너보다 많고 힘이 있는 일곱 족속을 쫓아내실 때에

신7: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게 붙여 너로 치게 하시리니 그 때에 너는 그들을 진멸할 것이라 그들과 무슨 언약도 말 것이요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도 말 것이며

신7:3 또 그들과 혼인하지 말지니 네 딸을 그 아들에게 주지 말 것이요 그 딸로 네 며느리를 삼지 말 것은

신7:4 그가 네 아들을 유혹하여 그로 여호와를 떠나고 다른 신들을 섬기게 하므로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진노하사 갑자기 너희를 멸하실 것임이니라


우리 속의 그러한 죄성과 악성은 철저하게 뿌리를 뽑아야 하기에, 하나님은 가나안을 정복할 때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도 말고 모두 진멸하라 하신 것이지요.


이렇게 하나님의 다루심 안에서 장성기의 시기도 가나안에 처음 발을 들여놓는 첫 걸음부터 그 땅을 완전히 정복하는 데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리게 되며, 그러므로 그 시간 안에서도 우리의 누림은 많이 다르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는 순간부터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와 성령의 세례와 임재로 말미암은 능력이 주어지지만, 우리가 영적으로 장성하여 가면 하나님으로부터 이러한 권세와 능력은 점점 강화됩니다. 이는 우리의 부모들이 자녀가 성장하게 되면 더욱 많은 재량권을 주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점점 우리의 기도와 말과 행함에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증거로 함께 하십니다.


그리고 장성한 시기에 접어들게 되면 우리는 점점 고요하고 안정된 성품으로 바뀌게 됩니다. 이는 어린 아이가 자라서 어른이 되면 점점 점잖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고요하고 안정된 성품으로 깊어진 만큼 혼이 아닌 영 안에서 살아가게 됩니다.


영은 언제나 고요하고 여상하며 평화롭습니다. 제가 영의 눈으로 영의 하늘과 그 속의 빛의 영들을 보니 영의 세계는 언제나 고요합니다. 그러므로 영적으로 성장하여 갈수록 사람은 점점 고요하여져 가고 변화가 적어집니다.


벧전3:4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


그리고 육은 자신 중심적이나 영은 이타적이므로 자랑하거나 교만하거나 하지 않습니다. 자신은 죽고 오직 그리스도만을 나타내고 드러내며 자신은 사라져 갑니다.


하나님 안에서 혹독한 다루심과 시련을 수없이 통과하였기에 간고와 질고가 무엇인지를 알며, 그 외형은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으셨다는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게 됩니다. 그러나 그 초라해 보이는 모습 안에는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놀라운 강인함을 머금고 있습니다.


사53:2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사53:3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 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그렇게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을 가슴으로 깨달으며, 그 속에서 자신 안에 머무는 내면의 악 곧 가나안 일곱 족속을 하나씩 몰아낼 때마다 영적으로 더욱 성장해가고 더욱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어 가게 됩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온 족속을 몰아내고 온전히 가나안을 회복하게 되면, “아버지가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그리고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라고 말씀하신 주님과 온전히 하나를 이루는 생명의 단계에 이르게 됩니다.


요10:30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이 마지막 다섯 번째 단계인 생명의 단계에 이르게 되면 그동안의 숱한 세월 속에서 묻어온 그리스도의 형상과 성품이 온전히 덧입혀져, 자신의 생각이 그리스도의 생각과 일치하며, 자신의 뜻이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는 온전한 생명의 연합을 이루게 됩니다.


이러한 단계에 이르게 되면 예수님의 행하심이 곧 아버지 하나님의 행하심이었듯이 “우리의 말이 곧 하나님의 말이 되는 놀라운 영권이 주어집니다”. 그런 영권이 주어져도 문제가 될 것이 없는 것은 모든 것들은 오직 하나님의 뜻 안에서 행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엘리야가 그 좋은 예입니다.


왕상17:1 길르앗에 우거하는 자 중에 디셉 사람 엘리야가 아합에게 고하되 나의 섬기는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 말이 없으면 수년 동안 우로가 있지 아니하리라 하니라


하지만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광야에서 가나안의 장성한 시기로 들어오는 사람도 지극히 소수이며, 영성이 발현되는 가나안의 시기로 들어왔다 할지라도 대부분 생명의 단계에 이르기는 결코 쉽지 않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궁극으로 지향하여야 성장의 목표이지요.


하지만 비록 힘겹고 찾는 이가 적은 좁은 문, 좁은 길이지만 이 땅의 섞고 쇠하는 것이 아닌 하늘나라의 영생과 영원한 상급과 반열을 향한 후회없는 달음질이니 사도바울의 고백처럼 우리도 참 지혜의 눈을 떠서 열심히 달려가야 하겠지요.


고전9:24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아날지라도 오직 상 얻는 자는 하나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얻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고전9:25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고전9:26 그러므로 내가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같이 아니하여

고전9:27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


딤후4:6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왔도다

딤후4:7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딤후4: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그리고 사도바울의 권면처럼 이러한 영적인 순례의 여정에는 언제든지 넘어지고 멸망으로 떨어질 연약성은 언제나 우리에게 있는 것입니다. 집을 세우는 것은 어려우며 오랜 시간이 걸리나 허무는 것은 순간입니다. 그러므로 온전히 구원을 성취하는 그날까지 깨어 경성함을 잃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고전9:27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


더불어 세상에서도 그러하듯이 영의 세계에서도 거저란 없습니다. 반드시 영광과 상급에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하여야 합니다. 그러므로 어떠한 영적 성장의 여정에 있던지 간에 우리의 궁극의 가나안인 하늘나라에 이르기까지는 우리에게는 한편 적지 않은 아픔과 신음이 있게 되어 있습니다.


썩지 않을 하늘 영광을 위하여 하늘 진주를 사기 위하여 팔아야 하는 것들이 있는 것입니다.


마13:45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마13:46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만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샀느니라


저의 지금의 경우 언제나 천사들이 함께 하고 하늘의 언제나 영광을 보니 마냥 행복하다고 여기실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그러한 부분도 없지 않아 있겠지만 마냥 그렇지 않습니다. 영적 은사나 영적 체험은 우리는 시간의 다스림을 받기에 시간 속에서 그 감흥은 적어져 가기 때문입니다.


그런 감흥은 적어져 가는데 여전히 남은 삶의 무게와 수고로움은 여전합니다. 그러므로 정말 힘들고 고되고 삭막하고 힘든 시간도 많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섭리하심과 영성의 작은 발현 속에서 세상의 즐거움을 대부분 거두셨기에 흥미나 재미를 느끼는 것이 거의 없습니다.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습니다. 몇 년의 시간을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주님 앞에서 홀로 자고 쉬며 경건을 시간을 갖는 것뿐입니다. 할 수 있는 것과 하고 싶은 것이 그러한 것 외에는 별로 없습니다. 작게나마 영성의 발현을 경험하신 분이시라면 이해하실 것입니다.


가령 전도서에 나오는 솔로몬이 누렸던 것처럼 그러한 것을 가지고 어떤 친구가 제게 이런 말을 합니다. “이런저런 많은 즐거움이 있는데 함께 갈래?”


그러면 제가 대답합니다. “응, 어쩌면.. 나도 가고 싶은데.. 못 가겠어!”


영성의 발현을 경험하지 못한 세상에 속한 사람은 이해를 못하니 다시 묻겠지요. “왜 이렇게 먹고 마시고 누리는 즐거운 곳에 못가겠다는 거야?”


그러면 제가 다시 대답할 것 같습니다. “응, 어쩌면 나도 가고 싶은 거 같은데.. 이전에는 좋아했던 것 같은데.. 난 못 가!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어. 넌 이해를 못하겠지만 지금의 난 그래. 안하는 게 아니라 하려고 해도 못하겠어. 못하는 거야


그렇게 친구를 뒤로 하고 혼자의 고독한 방, 주님 앞으로 돌아옵니다. 몇 년의 세월을 혼자서 아파서 울고 기뻐서 울고 땀과 눈물과 기쁨이 베인 저만의 자리로 돌아옵니다. 밧모섬의 요한처럼 돌아온 자리에는 푸르른 하늘과 파도뿐이요, 들려오는 소리는 갈매기의 애절한 울음소리뿐입니다.


떠나보낸 친구들처럼 세상의 것들을 누림도 없으며, 아직 하늘의 것도 온전히 누리는 부름을 받지 못하였으니, 눈과 마음에 다가오는 것은 외로운 섬과 바다와 하늘뿐입니다. 그 속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그 품으로 달여가 봅니다. 그 달음질 속에 아픔이면 아픔이요, 기쁨이면 기쁨인 눈물이 아롱집니다. 그런데 그 눈물 속에 주님이 미소 짓고 계십니다.


제가 주님께 나름 혹독한 다루심을 받고 보니 영성의 길은 주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고독의 길이요, 눈물의 길이요, 아픔의 길이요, 십자가의 길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신비롭게도 그 아픔의 길에서 그 눈물 속에서 미소 짓고 계시는 참된 주님을 만나게 됩니다. 아버지 하나님께 놓인 사닥다리를 보며 천사들이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의 삶이 그리고 삶의 시간이 어쩌면 형 에서의 위협을 피하여 도망치다가 들에서 딱딱한 돌을 취하여 베게를 삼고 잠을 잤던 야곱과 같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과 섭리 안에 있으면 그곳에도 하늘의 문은 열려있고 하나님과 그의 사자들은 함께 합니다.


창28:11 한 곳에 이르러는 해가 진지라 거기서 유숙하려고 그 곳의 한 돌을 취하여 베개하고 거기 누워 자더니

창28:12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섰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가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하고


그러므로 들에서 돌베개 잠을 자는 나그네 인생길이지만, 하나님의 나라에 이를 때까지는 결코 쉽지 않은 우리가 걸어야 하는 영성의 길이지만, 저와 여러분 모두 장성한 시기를 너머 주님과 생명의 온전한 연합을 이루는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을 향하여 열심히 달려가는 우리면 좋겠습니다.


성경을 통하여 그리고 주님의 다루심 안에서 가슴으로 배우고 알고 보니, 참된 신앙과 영성의 길이란 눈물 속에서 미소 짓는 주님을 만나고, 죽음 앞에서 도리어 영생을 맛보는 신비입니다. 십자가 뒤에 영광이 있고 흘린 아픔의 진주 같은 눈물들이 있기에 열두 진주문을 지나 들어갈 수 있는 영광을 얻는 길입니다.


그러므로 비록 좁은 문, 좁은 길이나 우리 모두 승리하여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순종으로 승리하여 권능의 우편의 보좌에 앉으셨듯이 우리도 주님과 함께 그 자리에 앉으며 세세토록 왕노릇하는 복된 사람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멘! 샬롬!


계3:21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출처: cafe.daum.net/riverofwater, 초록 등불 목사 (기독교 대한 감리회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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