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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핵심진리 ☆ 기저귀

초록 등불 2014. 1. 12. 17:19

 [핵심 진리] 기저귀

 

제가 영의 세계를 경험해가며 하나님 앞에서 성경과 영적인 일들을 공부해 갈수록 하나님과 그 말씀의 참됨 앞에 많이 놀라게 됩니다. 정녕 신중에 참 신은 하나님뿐이시며 오직 진리와 생명이 되는 말씀도 하나님의 말씀 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그 말씀을 전하려 오신 예수님은 “내가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말씀하셨고, 나아가 “나는 하나님의 명령이 영생인줄 아노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영생인 것은 하나님의 말씀은 그 말씀이 곧 실재가 되는 능력이요,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그러하다면 그렇게 되는 것이고, 아니라면 아니 되는 실재이기 때문입니다.


요12:50 나는 그의 명령이 영생인 줄 아노라 그러므로 나의 이르는 것은 내 아버지께서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이르노라 하시니라


그런데 그런 참된 하나님의 말씀을 살펴보면 ‘새 술은 새 부대에’라고 주님이 말씀하신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 말미암아 그동안 감추어졌던 비밀한 경륜이 십자가를 통하여 밝혀지고, 하늘의 생명과 소망의 계시가 그 안에서 풀려지면서 신약시대로 접어들면서 복에 대한 개념이 하늘로 바뀌어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것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말씀이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에서 전하신바 팔복의 말씀이지요. 곧 심령이 가난한 자, 애통하는 자, 온유한 자,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긍휼히 여기는 자, 마음이 청결한 자, 화평하게 하는 자,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들이 복이 있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주님께서 하늘의 복음을 전파하시면서 그동안 감추어져왔던 땅이 아닌 하늘의 생명과 복음을 전파하셨지만, 곧 썩고 죽고 쇠하는 땅의 모든 것들을 향한 말씀이 아닌 당신 안에서의 영생과 영원을 말씀하셨지만 사람들은 그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지요. 곧 주님은 언제나 하늘을 두고 말씀하시는데 사람들은 언제나 땅으로 이해하려 하고 땅으로 들으려 하지요.


이것은 비단 영적으로 무지몽매한 이스라엘 백성들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곁에서 예수님이 행하시는 놀라운 이적과 기사를 보며 늘 동행하였던 제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도 정치적인 메시야로 왕이 되실 주님을 기대하였고 땅의 영광을 바라보았습니다.


하지만 훗날 제자들은 두 가지의 이유로 그들의 보는 눈과 듣는 귀가 달라지지요. 곧 하나는 성령과 불로 세례를 받은 것이요, 다른 하나는 친히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목도한 사건입니다.


행2:3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행2:4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요일1:1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주목하고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


이러한 면을 살펴볼 때 지금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땅이 아닌 하늘을 바라보려는 참된 시각의 변화가 있으려면 성령의 충만함과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스스로의 내적 확증이 필요하다 생각이 되어집니다. 성령의 충만함은 기도로 말미암으니 무릇 기도에 힘쓸 일이요, 믿음은 들음에서 나니 하나님의 말씀과 영적인 경건한 것들을 가까이 함으로써 부활에 대한 확증을 가질 일입니다.


주님께서 영의 눈을 열어 주셔서 영의 세계와 그 속의 존재들을 보니, 생물학적인 육체의 죽음이란 사도바울의 말처럼 육신의 장막을 벗는 일일 뿐입니다. 육신의 장막을 벗고 육의 세계를 벗어나 영의 몸을 입고 영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일 뿐입니다.


고후5:1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나니

고후5:2 과연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니

고후5:3 이렇게 입음은 벗은 자들로 발견되지 않으려 함이라

고후5:4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 진 것같이 탄식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오직 덧입고자 함이니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킨 바 되게 하려 함이라


이러한 죽음의 실제를 실제적으로 알고 나면, 주님 앞에서 최선을 다하여 이 땅에서 달려갈 사명의 길을 잘 달려갔다면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거하고 싶은 소망을 사도바울처럼 갖게 되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친히 만난 바요, 성령 안에서 영이신 주님과 그 나라를 가득 체험한 바요, 셋째 하늘에 들려올라가 하늘의 모든 비밀한 것을 보고 온 사도바울에게 죽음이란 한편 소망이요, 기쁨이었던 것입니다.


고후5:8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그것이라


성경의 말씀대로 우리의 죽음은 끝이 아니라 온전한 부활의 그날을 바라보며 잠이 드는 것이요, 잠이 들었으니 다시 깨어날 일이요, 자금 이후 곧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들은 복이 있을 뿐인 것입니다.


계14:13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가로되 기록하라 자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가라사대 그러하다 저희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저희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


저도 어릴 적에 성령을 체험하고 주님을 나름 만난 바 되었으나 참된 영의 세계를 제대로 보지 못하고 알지 못할 때에는 이러한 영원한 생명과 하나님의 나라에 대하여 다소 막연한 믿음을 가졌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영의 눈을 열어 주셔서 영의 우주와 그 속의 존재들을 보며 지내는 지금, 죽음에 대한 생물학적인 아픔에 대한 본능적인 피하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죽음 그 자체에 대해서는 사도바울과 같이 초연해져 가는 자신을 보게 됩니다.


다만 주님 앞에서 상급과 심판의 행위들 곧 의와 진리를 행하시는 시간도 이 땅의 시간뿐이요, 죄와 불의를 행하는 시간도 이 땅의 시간뿐임을 알기에, 주님 앞에 서는 날 구원의 감격과 더불어 주님의 웃으시는 환한 얼굴을 보고 싶은 갈망의 커져감 안에서,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거하는 것이 한편 소망이나 남겨진 생의 길을 최선을 다하여 달려가고 큰 갈망도 있는 것입니다.


하늘로 들림을 받는 제 삼일에는 영원한 반열과 상급이 결정되어져 버림으로, 다시는 기회가 없음으로 이 땅을 거니는 오늘과 내일에는 나름 최선을 다해서 살고픈 마음이 커져가게 되는 것입니다.


제가 영의 세계를 경험해보니 사람은 자신이 실존적으로 경험하거나 깨닫지 못하면 참으로 알지 못합니다. 아무리 성경을 읽어도 말씀을 들어도 소경의 보는 바요, 소귀에 경이라 예수님이 말씀하신 빛에 대하여 생각해 보게 됩니다.


마6:22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마6:23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두움이 얼마나 하겠느뇨


저의 삶을 돌아보면 성령이 충만하여 주님의 이름만 불러도 눈물이 흐르는 시간대도 지금 돌아보면 영적 소경이요, 영의 세계는 참으로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면 다 영적 소경일 뿐입니다. 더 많이 밝은 눈을 가진 사람이 보면 어두운 눈을 가진 사람은 소경으로 밖에 보이지 않으니, 예수님이 말씀하신바 사람은 한편 다 소경이요, 자기 빛만큼 보고 자기 빛만큼 들을 뿐입니다.


왜 예수님이 자꾸만 들을 귀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신 그 말씀의 의미를 알게 됩니다.


마11:15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이렇게 사람은 자신의 눈이 열려 빛을 보는 것만큼 땅이 아닌 하늘을 품게 됩니다.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면 아무리 말해도 여전히 눈이 가려지고 귀가 가려져서 땅을 향해서 살아갑니다. 말씀도 땅으로 풀고 땅으로 이해할 뿐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하나님의 은총과 자신의 경건한 노력 안에서 눈과 마음에 빛이 깃들고 머물면, 땅이 아닌 하늘을 바라보게 되고, 하늘을 침노하는 거룩한 열망을 가지게 됩니다. 왜냐하면 땅의 모든 것들은 결국 무너지는 헛되고 헛된 것임을 알며, 하늘의 것은 영원한 생명 위의 생명인 것을 가슴으로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마11:12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사도바울은 이 빛이 마음과 눈에 충만하였기에 운동장에서 달음질 하는 선수처럼 한시적이고 아침 이슬과 같은 짧은 생에 하늘의 보화를 쌓기 위하여 진력하도록 달려간 것입니다.


고전9:24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아날지라도 오직 상 얻는 자는 하나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얻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고전9:25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고전9:26 그러므로 내가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같이 아니하여


그러나 저의 삶을 돌아보아도, 또 사역을 통하여 많은 사람들을 겪어 보아도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참 빛이 눈과 마음에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언제나 하늘을 말씀하시나 사람들은 언제나 땅으로 알아듣고, 언제나 땅을 향하여 살아가며 땅의 삶에 기대하고 소망하다 아파하고 울고 좌절하며 낙망합니다. 입술로만 머리로만 하늘이 있을 뿐 가슴에는 없습니다.


이러한 하늘의 빛이 눈과 마음에 없으므로 땅을 향해 살아가며, 신앙생활을 하는 목적과 이유도 이 땅에서의 축복과 마음의 위로와 평화가 그 목적입니다. 하늘은 관념일 뿐이요, 막연한 기대일 뿐입니다. 이러한 그리스도인의 특징이 ‘기저귀’입니다.


마음과 눈에 빛이 없어 하늘을 말씀하시는 예수님을 참되이 보지 못함으로 하늘을 향한 헌신과 희생이 힘겹습니다. 시간의 드림이던지, 헌신의 드림이던지, 예물의 드림이던지, 하나님을 향한 무슨 수고로움이던지 다 손해 같으니 힘겹고 피하고 싶은 마음뿐이게 됩니다.


하나님의 나라도 막연한 관념의 지식과 기대 안에서 천국은 혹시나 모를 막연한 보험이요, 그저 하나님과 사람들 사이에서 기저귀를 벗지 못한 아이처럼 위로와 평화와 땅의 축복을 바라는 행동을 하게 됩니다.


하늘을 보는 빛이 마음에 없으니 교회를 가든지 어디를 가든지 항상 기저귀를 찬 어린아이처럼 위로받고 보호받기만을 원하며, 장성한 어른처럼 주와 그 나라를 위한 헌신은 회피하려고 합니다. 저의 삶이나 많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펴보면 나름 성령 안에서 하늘의 신령한 것을 맛본 사람들도 많은 사람들이 이런 어린 아이의 신앙, 기저귀 신앙을 가지고 있습니다.


주를 참되이 사랑하며 헌신하려는 마음이 없기에 교회에 오가면서도 휴지하나 줍지 않습니다. 잡초 풀뿌리 하나 뽑지 않습니다. 장성하여 하나님과 주님의 그 큰 사랑을 알면 어떻게 하면 하늘을 사랑을 갚을까, 눈에 보이는 것이 일거리요, 손에 잡히는 것이 일거리일 것인데 보이지 않습니다. 어린아이처럼 일거리만 만들 뿐입니다.


눈과 마음에 빛이 있어 하늘의 영원과 영광을 알면 눈에 보이는 것이 상급거리요, 손에 만지는 것이 상급거리일텐데 모르므로 하늘 보화를 쌓는 일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땅에는 장성하나 하늘에는 아이처럼 행합니다.


우리 모두는 육체를 입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누구도 육체의 필요와 소욕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습니다. 육체를 입고 있는 동안에는 먹을 것과 입을 것과 거할 것 등이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한편 우리는 땅의 것을 바라보지 않을 수는 없는 곤고한 자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눈과 마음에 주님의 빛이 임하면, 주님이 말씀하신 산상수훈의 팔복을 실체로 알아가며 조금씩 땅의 것에서 자유해 가며 하늘을 향하여 날고 비상하며 침노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그것이 영적 성장입니다.


구약시대 성경을 보면 하나님을 섬길 레위족속들을 선별할 때 하나님은 삼십세부터 오십세까지 계수하여 참가하라고 합니다.


민4:2 레위 자손 중에서 고핫 자손을 그들의 가족과 종족을 따라 총계할지니

민4:3 곧 삼십 세 이상으로 오십 세까지 회막의 일을 하기 위하여 그 역사에 참가할 만한 모든 자를 계수하라


이것을 우리에게 적용시켜 보면 하나님의 일을 청년의 때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에 열심히 하라는 것이지요. 나이가 들어 육체의 힘이 쇠하기 전에 하늘의 빛을 보고 하늘을 향해 열심히 살라는 것이지요.


그러나 저와 우리의 삶을 돌아보면 땅의 해가 저물어 가는 황혼 앞에서도 하늘이 아닌 땅의 것만 찾는 우리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여전히 눈이 가리고 귀가 가려져서 땅의 것만 바라며 하늘을 보지 못하는 어린 아이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성경은 땅의 것을 한없이 누렸던 부자보다 거지로 살았던 나사로가 진정한 생명의 승리자였음을 주님은 말씀하셨는데, 우리는 여전히 눈과 마음의 빛이 어두워 하나님의 참된 사랑과 영원한 하늘의 가치를 보지 못하고, 주님을 탄식하게 하는 모습으로 살아갑니다.


요6:27 썩은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의 인치신 자니라


제가 경험해 보니 사람은 눈과 마음으로 보는 것만큼 깨닫고 보는 것만큼 행합니다. 아무쪼록 저와 우리 모두에게 보는 눈과 듣는 귀의 참 마음이 있어, 이제는 마냥 위로 받기 원하고 하늘 상급이라는 전혀 없을 어린아이의 모습을 벗어 버리고, 하나님의 사랑에 화답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영원을 위해서 살아가는 참된 영의 빛이 우리의 눈과 마음에 있기를 바래봅니다. 샬롬 !


마6:23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두움이 얼마나 하겠느뇨


고전13:11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히5:13 대저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히5:14 단단한 식물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저희는 지각을 사용하므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변하는 자들이니라

 

 출처: cafe.daum.net/riverofwater, 초록 등불 목사 (기독교 대한 감리회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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