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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 이야기]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진 자

초록 등불 2013. 11. 18. 03:20

 [천사 이야기]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진 자

 

길 가의 앉음직한 자리에 앉아서 저의 천사들을 품에 안고 장난을 치고 있으니 저의 다소 힘겨운 마음을 아셨는지 주님이 영으로 오신 것이 보였습니다.


이것도 주님이 다루시는 영성훈련의 한 과정인지 아니면 조금은 고독하고 적적한 저의 일상의 삶 때문인지 요즈음은 감정의 변화에 대하여 무디어져 가는 자신을 보게 됩니다. 별스레 기쁜 일도 없고 별스레 슬픈 일도 없고 영적으로는 그냥 잔잔히 평안하며 혼적으로는 육신의 연약함 등으로 다소 곤고함을 느낄 뿐입니다.


하지만 아직은 온전히 성취되지 아니한 하나님의 나라, 만물이 탄식하고 신음하는 시간 속을 걸어서인지 하늘의 기쁨의 무게보다는 땅의 수고로운 무게가 조금 더 무거운 듯 합니다.


그러니 저녁 산책길을 나서도 조금씩 더 조용하고 고요하게 거닐다가 오게 되는 것 같습니다. 오늘(2013.11.17) 저녁도 그렇게 기쁜 듯 아니 기쁜 듯, 슬픈 듯 아니 슬픈 듯 조용히 길을 걸어보았습니다.


저녁 시간에 잠시 산책 겸 운동을 하고 나면 집으로 돌아와 잠시 쉼을 갖고는 일을 합니다. 저는 늘 육신의 피로함과 다소의 통증을 느끼기에 의지를 발휘하지 않고 마음의 느낌에만 저를 맡겨버리면 일을 못합니다. 마냥 쉬고 쉬어도 피곤하니까요. 그래서 마냥 쉬고 싶은 마음을 물리치고 대부분 무조건 이른 저녁 시간에 자리에 앉아 일을 시작해 버립니다. 그래야만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일을 마치고 나면 깊은 밤중에는 기도와 말씀 경건 시간과 쉼을 시간을 가지면서 보내고, 그리고 낮에는 잠을 자는 너무도 단순한 삶을 몇 년을 지속하다 보니 가끔은 조금 지루하기도 하고 시원한 푸른 바닷가나 강바람이 그립기도 합니다. 하지만 마음속으로 그리울 뿐 정작 가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주님이 거두신 것인지 저의 마음이 그렇게 된 것인지는 모르지만 세상의 일에는 대부분 흥미를 잃어버렸습니다.


실상 남은 그리운 푸른 바닷가와 강바람은 이 땅의 것이 아닌 주님의 품이요, 하늘의 품뿐입니다. 그냥 하늘이 그리울 뿐입니다.


제가 그렇게 조용히 길을 걸으면 제 곁의 천사들도 조용히 걷거나 조용한 분위기로 함께 합니다. 영의 세계는 마음의 세계, 제 마음의 분위기에 맞게 함께 어울려주는 것을 경험합니다.


물론 저는 고요하나 천사들은 하늘하늘 춤을 추어주기도 하지만, 정중동(靜中動)의 조화로움 속에서 춤을 추지 아무렇게나 춤을 추지는 않습니다. 그리고는 최근에는 하늘을 나는 천사들도 땅으로 내려와 함께 길을 걸어주기도 하며 더욱 가까이서 함께 해 주는 것을 보게 됩니다. 특별히 예쁜 ‘리나’천사가 자주 그러합니다. 아마도 하늘의 위로가 더 필요해서인가 혼자 생각해 봅니다.


날개가 달린 예쁜 천사인 ‘리나’가 곁에서 함께 해 주면 그 모습이 우리가 아는 천사의 모습 그대로이라 천사가 함께 한다는 느낌의 조금 더 실감도 나고, 마치 큰 새가 함께 해 주듯 땅으로 함께 거닐다가는 하늘을 날며 아름다운 자태나 우아한 춤사위를 보여주기도 하기 때문에 조금은 더 흥미롭습니다.


사실 최근 며칠은 평소보다 마음이 조금 힘들었습니다. 첫째는 몸이 좀 고단하였습니다. 바이오리듬이라는 말이 있듯이 간간 별스런 이유 없이 몸이 다소 좋지 않아지곤 하는데, 이런 경우는 회복에 며칠의 상당한 시간이 걸리곤 합니다.


저의 경우 중추 신경계의 기둥인 온 척추계열의 상태가 나빠지기 때문에 한번 나빠지면 회복이 쉬 되지 않고 며칠을 걸리곤 합니다. 쉬어주며 잠을 자고 또 자 주어도 회복에 며칠씩 걸리곤 합니다. 최근 며칠이 그러하여 카페에도 모습을 자주 보여 드리지 못하고 쉬며 잠을 자고 또 잤습니다.


두 번째는 일반 교회 사역이 아닌 특수한 환경 속에서 영성 계열의 사역을 하다보니, 평범한 사람들보다는 일반 사람들은 알지 못하는 다양한 어려움을 겪는 분들을 많이 만나게 되고 상담을 하게 되고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영의 세계를 살펴보고 또 다양한 상담을 하다보면 영의 세계에는 얼마나 많은 기이한 일들이 많은지 모릅니다. 그런 영의 기이한 현상으로 어려움을 당하시는 분들, 이런저런 삶의 숱한 문제들로 어려움을 겪는 분들이 우리 주변에 얼마나 많은지 실감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근원적인 뿌리인 원죄로부터 우리의 죄의 결과가 얼마나 수고로운 것인지를 가슴으로 알게 됩니다. 이 세상은 온전한 구원이 성취되기까지는 죄로 말미암은 수고로움의 그늘 아래 아직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더욱 하나님의 경외하며 그 말씀대로 살아 우리의 수고로운 삶에 무게에 무게를 더하는 어리석은 사람은 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저의 연약함을 안고서 대부분 어려운 사람들을 만나고 상담하고 사역을 하다보면 저도 스스로의 삶의 무게와 더불어 다소 힘겨워지곤 합니다. 오늘에야 비로소 몸 상태가 다소 호전되었지만 한 며칠 힘겨웠던 시간 때문인지 저녁 산책길의 발걸음이 그리 가볍지가 않았습니다.


마음이 다소 그러하여서인지 오늘은 평소와는 다른 길로 산책을 하고 싶었습니다. 왜냐하면 늘 같은 일상의 반복에 산책의 길이나마 다소 변화를 주어서 신선한 기분을 얻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요즘 집 안에 있을 때나 밖에서 이렇게 산책과 운동을 할 때나 마음은 거의 비슷합니다.


제가 주님께 다루심을 받고 보니 ‘영성의 삶’이란 하루 몇 시간씩 기도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며, 그러한 것도 진정한 영성의 삶은 아닙니다. 영성의 삶이란 주님의 임재와 동행이 습관이 되고 체질이 되어서 자신의 온 삶이 되는 것입니다.


이해가 되도록 비유를 들어서 설명을 드리면, 가령 우리가 기도원에 기도를 하러 갔다고 생각을 해 봅니다. 그런데 기도원에 머무는 시간이 하루 이틀이 아닌 몇 년이 된다고 생각을 해 봅니다.


그러면 아침 식사를 하고는 예배와 기도에 참여를 하고, 또 점심을 먹고는 예배와 기도에 참여를 하고 저녁이나 새벽이나 자신의 약간의 활동시간을 제외하고는 늘상 그렇게 지내며 생활하겠지요. 그런데 그런 시간들이 몇 년이 지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특별히 예배 시간과 예배 외적인 자신의 생활이 그다지 구분이 가지 않겠지요? 숱한 시간의 반복되는 예배와 경건생활이 몸에 습관이 되고 일상이 되어서, 예배 시간이거나 혼자 길을 잠시 걷는 시간이거나 마음으로는 늘 주님을 생각하게 되고, 간간 기도하게 되며, 말씀을 묵상하거나 찬양을 하게 되겠지요.


저의 요즘 생활이 몇 년간 그러한 생활과 비슷하였고, 특별히 주님께서 영의 눈을 열어 천사들을 비롯한 영적인 존재들을 언제 어디서나 보게 하시니 언제 어디서나 주님을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되며 그러다 보니 경건 시간이나 경건 외적인 삶의 시간이나 대부분의 시간 마음이 자연스럽게 주님을 향하여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렇게 우리가 이러한 부단한 경건 연습과 훈련을 통하여 온 삶에 주님의 임재와 동행을 경험하며, 그러므로 삶이 기도가 되고 예배가 되는 삶이 습관이 되고 체질이 되고 자신의 온 삶이 되어야만 참된 영성의 삶이 시작되는 것 같습니다.


이것이 사도바울이 우리에게 권면하는 경건에 이르는 연습이요, 훈련이며, 나아가 우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사로 드리는 진정한 예배, 말과 입술로만 드리는 예배가 아닌 온 삶으로 드리는 신령한 영적 예배인 것이지요.


딤전4:7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오직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

딤전4:8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롬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이러한 영적인 삶이 체질이 되고 삶이 되면, 인간이기에 때때로 성령의 다스림이 아닌 혼 안에서 행하게 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시간을 성령의 다스림 안에서 행하게 됩니다. 생각과 말과 행동을 성령의 다스림 안에서 행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말의 실수가 적어지고 행동의 실수가 적어지고, 생각과 말과 행동에서 하나님의 빛이 조금씩 묻어나오게 되니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는 주님의 말씀이 자신의 삶 안에서 조금씩 실제가 되어가고 우리가 그리스도의 향기가 되어가는 것입니다.


고후2:15 우리는 구원 얻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고후2:16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 좇아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 좇아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누가 이것을 감당하리요


그렇게 최근의 힘겨웠던 시간들 때문에 다소 혼적으로 침잠된 가운데, 평소와는 다르게 도심을 향하여 뻗은 길을 걸어서 산책을 하며 운동을 하였습니다. 도심의 불빛을 향하여 걸어간 것은 이제 제겐 그리운 곳과 쉴 곳은 어쩌면 하늘 품뿐인 것 같지만, 하늘을 향하여 열린 걸어갈 길이 없으니 어울리기 어려운 세상이지만 그래도 밤을 수놓은 불빛만큼은 아름다워 그렇게 걸어간 것 같습니다.


그렇게 걸어가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 대리석으로 예쁘게 꾸며 놓은 앉아 쉴만한 장소가 보였습니다. 하루에 잠시 시간을 내어서 운동하고 산책하는 유일한 시간이라 조금은 쌀쌀하지만 가을의 품에 안겨있고 싶어서 자리에 앉아서 잠시 쉬었습니다.


길을 걸을 때는 천사들이 곁에 보여도 그냥 조용히 길을 걸어갔지만 쉬는 시간이라 조금은 마음을 집중하여 천사들과 어울려 보았습니다. 영의 세계는 마음의 세계라 마음으로 밖에 교감할 수 없지만 앉았으니 영의 눈으로 보이는 모습에 저의 몸짓도 다소 곁들이며 어울려 보았습니다.


‘송이’와 ‘귀염이’는 막내딸처럼 작으니 안으면 품에 쏘옥 들어옵니다. 막내 딸 같은 ‘송이’와 ‘귀염이’와도 재밌게 어울려 보며, 조금은 키가 큰 ‘깜찍이’와도 어울려보았습니다. 그리고 저의 단짝 같은 ‘캔디’와 어울리며 조금 쉼을 갖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앞에서 말씀드린 몇 가지의 이유로 마음은 여전히 다소 곤하였습니다. 그 때 저의 오늘의 다소 힘겨운 마음을 아셨는지 주님이 영으로 오신 것이 보였습니다. 제가 영으로 오셨다 함은 보려고 하면 늘 보이시지만 어느 시간에 주도적인 영으로 뚜렷이 인식이 되어지고 자각이 되어짐을 말합니다.


그리고는 주님이 성경의 한 말씀을 일러주셨습니다.


“나는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다”


그 말씀을 듣는 순간 주님이 왜 그 말씀을 하시는지 금세 알아차릴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인생은 잠시이고 당신께서 생명과 부활과 영생이 되시며, 십자가 위에서 죄와 사망의 권세를 멸하시고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진 주시니, 힘겨운 남은 생의 여정에서 힘과 용기를 내어라는 사랑과 권면이었습니다.


여러분이 대부분의 저의 글에서 보듯이 저의 글은 대부분 삶의 경험과 간증이 동반된 글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비슷한 삶이나 영적인 경험을 하시는 분들께는 조금은 더 글이 아닌 실제로 다가가지 않을까 생각도 해 봅니다.


인간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면 저의 삶이 수십 년의 세월 이토록 아픈 것은 어쩌면 저의 조상이나 저의 부족한 죄얼로 인한 것인지도 알 수 없지만, 한편으로는 단순한 말과 이론이 아닌 실제를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게 하시려는 뜻이 있는 것이 아닌지 가끔 생각해 보곤 합니다.


아직 나이가 어리고 젊은 분들에게는 낯선 고백인지 모르지만, 이런저런 삶의 힘겨움으로 인생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그 궁극의 실체를 조금은 일찍 이미 알아버린 제게 이 땅의 생은 더 이상 행복도 아니며 슬픔도 아닙니다. 다소 수고스럽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궁극의 슬픔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생에 두신 이 땅의 작은 행복들은 하나님의 영적인 뜻을 이루어가는 우리의 순례자의 길이 너무 지루하지 않도록 두신 작은 행복의 장난감에 불과합니다. 그 작은 조각도 오직 주님 안에서 누릴 때에만 참 행복을 안겨줍니다.


그리고 슬픔과 아픔과 사망도 마냥 어둡고 싫은 것이나 궁극적인 것이 아닌 죄의 삯이 무엇인지를 가슴으로 배우도록 배려하신 하나님의 섭리의 손길일 뿐입니다. 모든 것들은 참을 얻게 하시기 위한 그림자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의 말씀대로 이 세상에는 참된 행복도 참된 슬픔도 없습니다. 이 세상의 것들은 참된 행복과 슬픔의 그림자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영으로 살펴보면 크게 기뻐할 일도 크게 슬퍼할 일도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의 남는 삶은 오직 오직 하나님 사랑, 예수님 사랑의 삶 뿐인 것입니다.

그리고
참된 행복과 참된 슬픔은 이 세상에서가 아닌 우리에게 주어진 순례자의 길을 마치고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지신 주님 앞에 설 그날에 결정되고 주어지는 것입니다. 오른편의 양으로 인정받은 사람들은 그때서야 비로소 참된 행복이 무엇인지 알게 되며 소유하고 누리게 되며, 왼편의 염소로 분류된 사람들은 그때서야 비로소 참된 슬픔과 사망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며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다소 쌀쌀해져 가는 가을날의 바람처럼, 조금은 평범하지 않은 인고의 세월을 늘 살아가며 힘겨워하는 제게 주님은 오늘은 이 말씀으로 위로와 용기를 주셨습니다.


“나는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다”


사람은 알고 보면 참 강한 것 같으나 또한 참으로 약한 존재입니다. 주님의 이러한 말씀을 들으면 잠시 힘을 얻지만 곧 또 다시 힘을 잃고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곤 하지요. 하지만 이러한 우리의 성정을 아시기에 주님은 우리에게 돕는 천사들을 두시고 또한 세상끝날까지 우리와 함께 영으로 거하시며 때를 따라 용기를 주시는 것이겠지요.


세상 모든 사람들이 그러하듯, 저와 여러분의 삶에도 이러저러한 수고로움이 적지 않으시겠지만, 오늘 주님이 제게 이르신 말씀, 곧 우리의 구주와 소망이 되신 예수님,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지고 계셔서 우리를 능히 사망의 권세에서 건져내어 빛과 영생의 나라로 인도하실 주님 안에서 새롭게 삶의 용기와 힘을 얻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말씀 속에 간간 곁들인 영적인 여러 말씀들이 마음에 새로운 빛과 깨달음이 되기를 기도해 봅니다. 샬롬 !


계1:17 내가 볼 때에 그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같이 되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가라사대 두려워 말라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니

계1:18 곧 산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계1:19 그러므로 네 본 것과 이제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

 

 출처: cafe.daum.net/riverofwater, 초록 등불 목사 (기독교 대한 감리회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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