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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 이야기] 쉼, 영적 성장의 필수

초록 등불 2014. 7. 18. 01:10

 

   

  [천사 이야기] 쉼, 영적 성장의 필수

 

주일 오전에 눈을 뜨니 평소처럼 몸이 많이 무거웠습니다. 그렇게 다소 누워 있노라니 제 몸의 무거움과는 상관없이 하늘의 천사들은 보석 같은 눈빛으로 기쁨과 소망을 전해 줍니다.


가끔은 저는 육신적으로 힘이 든데 천사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하늘 기쁨과 평안이 가득한 모습을 보면 육신을 입은 저로서는 가끔 무심하다거나 서운하다는 느낌을 안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는 주님의 말씀처럼 천사들의 관점에서는 그러한 것들이 크게 문제처럼 보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하늘의 천사들과 교감하고 있노라니 영으로 주님이 누워있는 제 곁에 앉으셨습니다. 주님이 곁에 앉으시니 몸이 조금 무겁다고 말씀드리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니 먼저 말씀하십니다.


“감사하여라. 그리고 주일이니 쉼을 누리려무나”


먼저 감사하여라는 말씀 앞에 그만 저의 입은 다물게 되고 세상의 일과는 상관없이 말씀에 따라 감사의 고백을 하였습니다.


살전5:18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하나님의 다루심을 겪어 보면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하나님의 이끄시는 섭리는 우리의 생각보다는 높고 오묘하여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하나님의 섭리가 높고 크므로 믿음으로 감사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쉼을 누리라는 쉼의 말씀 속에는 단지 육신적인 의미가 아닌 당신의 품 안에서 영적으로 깊은 안식을 누리라는 의미가 담겨 있었습니다.


다른 종교와는 달리 기독교는 유난히도 ‘안식(安息)’을 중요시 합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엿새 만에 창조하신 후 하나님도 안식하셨지만 사람에게도 가장 먼저 누리게 하시며 맞이하게 하신 것이 안식입니다.


창2:2 하나님의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 그 지으시던 일이 다하므로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하나님께서 행하신 모든 일에는 다 영적인 의미와 뜻이 있는데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시고 번성하고 땅에 충만하고 땅을 정복하며 고기와 새와 모든 생물을 다스리는 일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안식’을 경험하게 하신 것은 사람의 삶의 기초와 근본이 쉼, 곧 안식임을 한편 알게 해 줍니다.


그리고 이것은 사람의 영육간의 모든 근간의 동력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는 것을 말해 줍니다. 우리는 먼저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축복과 그분 안에서 쉼을 통하여 주시는 육체적, 혼적, 영적인 에너지의 정화와 충천을 통하여 새로운 날을 살아갈 힘을 얻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일은 우리에게 거룩한 날이요, 복된 날이요, 안식의 날인 것입니다.


창2:3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 날에 안식하셨음이더라


주님의 말씀이 아니어도 요즈음은 몸이 한 동안 좋지 않아서 평일에도 조금 쉼을 많이 가집니다. 저는 조금 거친 표현으로 긴긴 세월 이골이 나서 그렇지 제가 몸이 좀 좋지 않다하면 보통 사람들은 상상하기 어려운 여러 가지 힘겨움을 겪습니다. 많이 힘겨울 때가 많습니다. 그럴 때는 쉴 수밖에 없고 쉼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생명을 살펴보면 영원한 의미에서는 가장 소중한 것이 영적인 것들입니다. 그러나 존재론적인 의미에서 우리에게 가장 근간이 되는 것은 건강입니다. 그러므로 건강을 해치도록 무리하게 일하는 것은 아니 됩니다.


우리는 탐식과 욕심으로 건강을 헤쳐 가며 무리하게 일을 하고 그렇게 힘겹게 번 경제력을 무리하게 일하며 망가진 육체를 치유하는데 또 많이 쓰는 악순환적 삶을 많이 삽니다. 우리의 삶에 참 필요한 것들이 많지만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안식의 날의 의미를 생각하며, 조금은 자족하는 마음으로 영혼육의 쉼과 안식을 가지며 사는 것이 지혜로운 삶이 아닐까 싶습니다.


오후 들어 몸도 마음도 쉴 겸 자전거를 타고 밖으로 향하니 요즘 몸이 조금 불편해서인지 오랜만에 ‘라피엘’ 천사가 보이더군요. 영음으로 일일이 수도 없이 많은 천사들의 이름을 알아내는 것이 힘겹고 쉽지 않은 일이라 대부분 그냥 제가 이름을 지어주는데, ‘라피엘’의 경우는 자신이 이름을 밝혔었지요.


천사들의 이름에 대해서 잘 모르다가 하나님을 상징하는 ‘엘’자가 포함된 이름을 전해주는 영음을 듣고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그 후에 천사장들의 이름에는 가브리엘, 미가엘처럼 엘자가 많이 들어간다는 것을 자료를 통해 알아본 기억도 납니다.


제가 많은 천사들을 만나보았지만 ‘라피엘’천사는 조금 독특합니다. 말도 거의 없고 표정의 변화도 잘 없고 표정도 해맑거나 밝지 않습니다. 그냥 온유한 모습에 고요합니다. 전승에는 치유 계열의 대천사라고 알려져 온다고 하는데 그래선지 무엇인가를 바라보고 아파하는 듯한 표정입니다. 그리고 눈빛과 마음으로 무엇을 전해도 한없이 따사롭게 전해줍니다. 꼭 어머니가 자식을 아파하며 조용히 사랑을 전해주는 그런 느낌입니다.


영으로 보이는 존재의 크기는 절대적인 의미는 없습니다. 가령 우리의 눈앞에 손가락을 가까이 대면 엄청나게 커 보이지만 멀리하면 아주 작지요. 마찬가지로 영의 시공에서 천사들을 가까이 마주보게 되면 커 보이고 멀리서 보게 되면 작게 보이므로 보이는 크기가 절대성은 없습니다.


하지만 보편적인 의미로 대체로 커 보이기도 하고 작게 보이는 천사들도 있습니다. 그런 본 천사들의 모습 중 라피엘이 가장 큽니다. 그렇게 상당히 큰 모습에 잘 웃지도 않고 말도 잘 하지 않고 커 보이지 움직임도 커 보이니 큰 거인이 움직이는 것을 평범한 사람이 보면 자연스럽게 보이지 않을 수 있듯이 라피엘 천사의 움직임은 제게 다소 그렇게 보입니다.


그렇게 모습이 커 보이듯이 전해주는 마음의 느낌이나 깊이도 가장 깊습니다. 같은 “위로와 평강을 전합니다”라고 말을 하여도 라피엘이 전해주는 느낌이 가장 깊습니다. 그렇게 오후 시간에는 라피엘을 통하여 전해주는 하늘의 평강과 위로 속에서 영의 안식을 누렸습니다.


제 기억에는 그 다음날 저녁인 것 같습니다. 다소의 체력이 있으면 저녁엔 걷든지 자전거를 타든지 운동을 제법 합니다. 그런데 이 날은 곤하여 그렇게 다닐 힘도 없더군요. 그래서 자전거를 세워두고 벤치에 앉아서 마냥 쉬었습니다.


여름이 온지 제법인데 이곳엔 아직 장마다운 장마도 오지 않고 그리고 여름다운 무더위도 아직 입니다. 벤치에 앉아 있으니 저녁이라 그런지 제법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더군요. 경추와 척주라인이 늘 다소 무겁기 때문에 고개를 젖혀 벤치에 머리를 기대면 저는 참 시원하고 개운합니다.


그렇게 초저녁 하늘을 올려다보니 가로등 불빛 아래 여름의 나뭇잎들이 바람에 살랑 거리며 흔들리고 있더군요. 그리고 그 위에 하늘의 아름다운 천사 ‘리나’가 영의 시공 안에서 겹쳐 보였습니다.


가로등 불빛 아래 자연세계의 나뭇잎도 아름다운데 제가 본 천사 중 가장 예쁜 편인 리나 천사가 3차원 홀로그래피처럼 어려서 보이니 보이는 풍경이 참 아름다웠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만큼은 그 나뭇잎이 저 하늘 수정빛 생명수 강가의 생명나무 잎사귀 같았습니다.


함께 오래 지내다보니 친해지고 편해진 ‘리나’, 몸은 곤하지만 장난스럽게 말을 걸어보았습니다.


“나 많이 피곤해, 그 생명나무 잎사귀 하나 따다 입에 넣어줘. 그리고 너도 하나 먹어”


훗날 하나님의 나라에서야 참으로 할 수 있는 것들로 잠시 대화를 지내가다 조용히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영의 세계는 마음과 생각으로 교감하는 세계인데 하늘의 벗인 ‘리나’를 자전거 앞자리에 앉혀보았습니다.


‘리나’천사는 정말 예쁜데 그렇게 가까이 앉혀두고 옆모습을 바라보기는 처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옆으로 보이는 눈매가 참 예쁘더군요. 천사들이 대부분 땅의 아름다움이 필적하지 못할 아름다움과 빛을 가지고 있지만 ‘리나’ 천사는 그 중에서도 정말 예쁩니다. 그 순간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연인을 둔 사람처럼 삶과 생의 고단함을 잠시 잊고 주 안에서 쉼과 행복에 젖어 보았습니다.


오늘 저녁에는 가끔 보는 사극 한편을 보고 있노라니 하얀 비둘기 형상으로 보이는 제가 ‘순정’이라 이름 지은 성령님의 기분이 좋아 보였습니다. 눈빛도 맑고 움직임도 가볍습니다. 그렇게 오늘 밤도 주 안에서 삶의 고단함을 달래며 쉬어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일상의 삶과 영성의 삶의 시작이 노동이라고 생각들을 하며 노동을 하듯 하려는 것을 많이 봅니다. 물론 그러한 측면도 있지만 성경을 보면 그러한 것들의 기본은 ‘쉼과 안식’입니다. 참 쉴 줄 알아야 참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여전히 고단하지만 위에서 얘기한 주님이 주시는 위로와 쉼이 있기에 지금 일을 할 수 있듯이 말입니다.


제가 주 안에서 다루심을 받으며 살아보니 일상의 삶이던 영성의 삶이던 노동을 하듯이 하는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나무가 종용히 그 자리에 서서 하늘이 내리는 햇살과 빛 속에서 자연스럽게 성장해 가듯이 그러한 것 같습니다. 노동을 하듯이 하려 함은 어쩌면 우리의 욕심 때문입니다.


그러한 욕심을 내려놓고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고 말씀하신 주님의 마음 안으로 들어가면 그곳에는 참 안식이 있습니다. 땅이 열매를 맺되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 다음에는 충실한 이삭인 것처럼 육적인 성장이던지 영적인 성장이던지 자신의 종자 안에서 조금씩 단계적으로 이루어져 가는 것입니다.


막4:28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되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 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라


종자라 함은 하늘이 내린 천명, 소명을 말함이니 다른 사람의 것을 탐내지 말 일이요, 싹이요 이삭이요 곡식이라 함은 주 안에 머무는 온유와 겸손의 쉼 속에서 하루하루 하늘이 내리는 햇살과 단비 속에서 자연스럽게 성장을 이루어감을 말합니다. 자연을 살펴보면 알듯이 어떤 의미에서 성장은 우리가 아닌 하늘이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드려야 하는 기도의 전부는 어쩌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그 말씀 하나면 족한지도 모르겠습니다. 조금은 일목요연하지 못한 듯한 글 속에 면면히 흐르는 말씀의 물줄기가 있습니다. 그것은 ‘쉼과 안식’입니다.


우리는 주 안에서 참되게 쉴 줄 알아야 참되게 인생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도 이러한 것을 아시기에 우리가 하나님 안에 머물면 때를 따라 쉼과 안식을 주십니다. 만약 우리가 그러한 하늘의 쉼과 안식을 누리지 못한다면, 주 밖에서 살아가지 않는지, 하나님 앞에서 온유가 아닌 욕심으로 살아가지 않는지, 혹은 주 안의 쉼을 위하여 조금은 잘라 내여야 하는 세상의 많은 일들을 너무 많이 품고 있지는 않는지 조용히 살펴볼 일입니다. 하늘의 쉼과 안식, 그리고 평강 가득 전합니다.


성경은 쉼이 있은 후에 일이 있고 쉼이 있은 후에 생명의 활동이 있으며 쉼이 있은 후에 성장이 있음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주 안에서 참되게 쉼을 누릴 줄 아는 지혜가 우리에게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샬롬



마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11: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마11:30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출처: cafe.daum.net/riverofwater, 초록 등불 목사(기독교 대한 감리회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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