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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의 글] 성령이여! 바람이여!

초록 등불 2014. 8. 30. 00:10

 

  [영성의 글] 성령이여! 바람이여!

 

사랑의 사람 사도요한이 밧모섬에 유배되어 홀로 얼마의 시간을 보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한편 주 안에서 행복하고 한편 인간 안에서 힘겨웠을 것입니다. 간접적이나 부족한 저의 삶을 돌아보면 그러한 면이 느껴집니다.


가령 우리가 어떤 환경으로 무인도에서 혼자 살게 된다면 처음에는 새로운 장소의 새로운 느낌이나 세상의 소란함을 떠난 고요함이 좋을지도 모릅니다. 푸른 하늘과 바다, 끼룩끼룩 바다새의 울음소리가 신선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하루 이틀, 한 달 두 달, 일 년 이 년의 시간이 지나가면 새로운 느낌들은 모두 식상해지고 늘 보던 바다, 늘 보는 하늘, 늘 보는 풍경 속에서 지루함과 사람은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게 본성진 존재, 사람들이 그리워져 갈 것입니다.


저의 지금의 삶은 누군가 그렇게 강요하는 삶은 아니지만 여러 가지 환경으로 그렇게 대부분 홀로 밤과 낮을 거꾸로 살아가며 홀로 단순한 일상 속에서 지냅니다. 그러다보면 무인도에서 혼자 지내는 것처럼 일상의 지루함과 힘겨움, 그리고 사람들을 그리워하는 마음속에서 사람이나 그 무엇이 채워줄 수 있는 것이 아닌 인간 궁극의 고독을 절감하게 됩니다.


그러한 시간 가운데 가령 우리가 무인도와 같은 곳에서 혼자 오래 지내다 보면 숲 속의 작은 새나 동물이나 혹은 바닷가의 작은 생물이라도 친구삼아 벗 삼아 마음을 달래며 지내게 되듯이, 저는 주님이 열어주신 하늘과 그 속의 천사들을 친구삼아 벗 삼아 마음 달래며 지내곤 합니다.


“가재야, 안녕. 천사야, 안녕”


하지만 무인도에서 홀로 그러한 생명들을 친구 삼고 벗 삼고 사랑 삼고 살아보면 그러한 것들이 마음에 참 행복을 줄 수 없는 것을 알아감과 동시에 인간에겐 궁극적으로 하나님과의 연합 외의 그 어떤 것도 참 행복을 줄 수 없음을 조용히 홀로 보내며 깊어진 마음의 성찰 가운데 자연스레 알게 될 것입니다.


그렇듯이 저도 홀로의 긴긴 시간 속에서 인간이란 참으로 세상에서는 어떠한 참 만족과 행복도 누릴 수 없으며 오직 하나님 안에서만 얻고 누리고 쉼을 누릴 수 있는 것을 알아갑니다.


그래서 하늘을 향하고 찾으며 살아보려 애쓰지만 인간의 연약성 안에서 온전히 하늘을 향하지 못하는 이 하릴없는 못난 마음과 행함 갈등과 궁극적으로 하늘의 ‘이미’와 ‘아직’의 시간대 속에서 힘겹습니다. 그렇게 하루도 밧모섬의 한 모퉁이와도 같은 저의 방에서 밤을 하얗게 지새었습니다.


그리고 새벽녘 즈음에 속히 이 밤의 시간이 지나가고 낮의 시간이 다가오기를 바라는 닭울음소리처럼, 수고진 인생의 무게가 쉽지 않아 가득진 짐을 실고 언덕을 오르는 소울음 소리처럼 찬양과 기도의 소리로 하늘의 주님을 찾았습니다. 점점 말을 잃어가는 침묵의 일상, 소리없는 기도의 소리와 소리없는 찬양의 소리로 주님을 찾았습니다.


그렇게 하늘의 주님을 찾으니 주님께서 환상을 펼쳐 보여주었습니다. 시원한 바닷가의 환상이었습니다.


푸르른 바다가 펼쳐져 있고 싱그러운 바닷바람이 불어왔습니다. 본시 바다를 좋아하는지라 환상이지만 바다가 펼쳐지니 다소 답답한 삶과 마음에 산들 바람이 불어오는 것 같았습니다. 생시 같은 환상, 환상 가운데 발을 바닷물에 담겨보았습니다. 고향 바닷가에 발을 담근 듯 물의 시원한 느낌이 전해오는 것 같았습니다.


단순한 저의 일상의 다소의 지루함을 달래 주시려는 하늘의 사랑으로 생각되었습니다.


다음으로 조용히 흐르는 강물의 환상을 보여주었습니다. 제가 강도 좋아하거니와 바다를 보여주시는 것과 같은 의미로 여겨졌습니다. 바다가 다소 마음에 시원한 바람을 안겨 주었다면 강물은 잔잔함과 고요함의 평화를 안겨 주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강물의 환상에는 언덕에 꽃들이 가득 피어있었습니다.


그 때 주님께서 문득 한 마디 하셨습니다. 말씀을 하시기 시작하셨습니다.


“향기가 있어야 생명체가 모여든다”


그 말씀을 듣는 순간 짧은 말씀이지만 단순한 진리이지만 마음에 큰 일깨움을 주는 말씀으로 다가왔습니다. 세상의 생명체는 아름다운 향기에는 끌리지만 더러운 악취는 멀리하려 하듯이 저와 우리가 진리 안에서 향기로운 존재가 되어야 그 향기로 사람들을 이끌고 인도하며 생명을 전하여 줄 수 있다는 의미의 말씀이었습니다.


“말씀으로 정결하여 빛 고운 신부가 되어라” 주님의 말씀은 위의 말씀과 일맥하게 이어졌습니다.


“잘 되지 않고 힘든 부분도 많이 있습니다” 제가 대답하였습니다.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워라. 내가 도울 것이며 생명의 성령의 영이 자유하게 할 것이다. 항상 깨어 기도하며 말씀을 가까이 하며 빛과 진리에 속한 것들을 가까이 하여라”


“고난은 잠시이지만 영광은 영원하다” 주님의 대답과 말씀은 그렇게 이어졌습니다.


그런 가운데 주님이 또 다른 환상을 보여주셨습니다. 그것은 사람이 자전거를 타고 아스팔트 언덕 도로 길을 달려가는 환상이었습니다. 언덕길을 자전거를 타고 올라가니 땅은 멀어지고 하늘은 다가오는 듯한데 빠르게 달려가니 바람 때문에 머리칼과 옷자락이 날렸습니다.


앞의 바다나 강과는 다른 환상을 보여 주시길래 “주님 이 환상을 보여주시는 의미, 이 환상의 의미가 무엇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러니 주님이 또 한 깨달음을 주시는 말씀을 전해 주셨습니다.


“힘써 달릴 때 바람이 분다”


주님의 이 말씀을 이해 시켜 드리기 약간의 설명을 드리자면 우리가 활주로에서 비행기가 이륙할 때 빠르게 땅을 달려가지요. 그러면 공기는 정지하고 있더라도 비행기가 빠르게 달리므로 비행기의 달음박질로 인하여 비행기에서 보면 바람이 불어오는 효과가 생기지요. 주님은 이러한 바람 생성의 원리를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곧 우리가 신앙의 거룩한 달음박질을 열심히 달릴 때 하늘을 비상하게 해 주는 성령의 바람도 기쁨과 자유와 생명으로 시원하게 불어옴을 말씀해 주신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주님은 곁들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바람은 생기이며, 성령이며, 참 자유의 기쁨이다. 힘써 달려라. 내가 바람으로 달려가리라”


글을 맺습니다. 앞에서 기록한 것처럼 우리의 생은 그 누구나 어느 자리에 있던지, 어떤 문제를 겪고 있던지 밧모섬의 요한처럼 주 안에서 한편 행복하고 한편 우리 안에서 힘겹습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는 궁극적인 참 행복과 쉼이 없기 때문입니다. 오직 우리의 쉴 곳과 참 행복은 하늘의 품, 아버지의 나라입니다.


이를 알고 마지막 환상을 통하여 주님이 일깨워주신 것처럼 그 영원한 생명의 나를 향하여 힘껏 달려가는 저와 여러분의 생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성령이여, 바람이여, 불어오소서. 우리가 달려가나이다”


주님은 제게 마지막으로 안부의 인사를 전하였습니다. 그 인사를 여러분과 함께 나눕니다.


“평안할지어다”



고전9:24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아날지라도 오직 상 얻는 자는 하나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얻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고전9:25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출처: cafe.daum.net/riverofwater, 초록 등불 목사(기독교 대한 감리회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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