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고유자료/천사 이야기

[천사 이야기] 용서와 미소

초록 등불 2014. 10. 19. 21:14

 

   

  [천사 이야기] 용서와 미소

 

어느 날인가 별스레 누군가의 큰 잘못도 아닌데 이상하게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마음속에서 화가 났습니다. 사람이 그 누구랴 하나님 안에서 온전하게 살아가련만 영성이 발현되면 심성이 고요해져가며 혼적인 감정의 일렁거림이 잔잔해져 가는데, 이 날은 이상하게 사소한 누군가의 잘못에 화가 나고 감정이 일렁거렸습니다.


그렇게 다소 감정의 파랑이 일렁거리는 가운데 저녁 식사를 하고는 저의 길벗인 자전거를 타고 산책겸 운동을 나갔습니다. 가면서 마음속에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 내가 다른 사람의 잘못을 용서해야 하지?”


너무나도 기초적인 하나님의 말씀에 관한 것인데 아주 기초적이지만 근본적인 물음이 제 마음에 생겼습니다. 나는 이 사람에게 잘못한 것이 없고 저 사람이 내게 전적으로 잘못한 일인데 왜 내가 용서해야 하는지 스스로에게 질문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육으로는 자전거를 타고 길을 가면서 영으로는 영으로 보이시는 주님께 물었습니다.


“주님 왜 우리가 다른 사람의 잘못을 용서해야 합니까?”


이 질문 앞에 주님은 몇 가지를 생각나게 하시며 가르쳐 주셨습니다. 처음의 몇 가지는 하늘의 광대함이 너무도 커서 우리가 실제적으로 알기 어려운 것처럼, 아직은 우리가 다 알기 어려운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들의 광할함 같은 크신 하나님의 사랑에 관한 대답들이었습니다.


느9:6 오직 주는 여호와시라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과 일월성신과 땅과 땅 위의 만물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지으시고 다 보존하시오니 모든 천군이 주께 경배하나이다


첫째는 하나님께서 사랑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서로 용서하고 사랑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근본과 본질에 관한 이야기라 작은 마음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겐 조금은 사변적으로 들릴 수 있지만 하나님의 본성과 세상을 향한 경륜이 사랑이니 우리가 서로 사랑하며 용서하고 살아가야 한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요일4:8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요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둘째는 앞의 내용과 연결되어지는 것으로 우리는 본체와 본질이 사랑이신 하나님의 실제적인 자녀이기 때문에 사랑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앞의 말씀은 온 인류를 향하신 하나님의 근원적인 경륜이라면 두 번째의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실제적으로 당신의 아들이 된 우리는 더욱 그러해야 한다는 어떤 의미에서 자녀로서의 의무라고 말할 수 있는 당위성의 말씀이었습니다.


가령 우리의 아버지가 이 세상의 왕이라면 우리가 그 자녀로 태어남을 입었다면 왕의 자녀, 곧 왕자나 공주로서의 사랑과 덕의 품성을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 이치와 같은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은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고 핍박하는 원수는 미워하나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는 원수도 사랑하며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는 삶이 하늘 아버지의 자녀로서의 한 자격이요, 마땅한 삶의 도리임을 말씀하셨습니다. “이 같이 한 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마5:43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마5:4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마5:45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이니라


셋째는 조금은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이유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모든 죄를 용서받았으므로 마땅히 우리도 타인의 죄를 용서하고 사랑하여야 한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성경은 이 부분에 대하여 하나님께 우리가 용서 받은 죄의 무게는 일만 달란트와 같으며 이웃인 타인이 우리에게 때때로 잘못하는 행위는 백 데나리온의 무게밖에 되지 않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부분도 작은 마음의 하늘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두 죄의 무게의 엄청난 차이에 대하여 실제적인 체감이 적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약속하는 구원과 그 구원을 위하여 하나님이 치르신 십자가의 희생과 영원한 하늘나라의 영광스러운 소망을 생각하여 본다면 우리의 마음에 깨달음이 커져 가리라 봅니다.


마18:23 이러므로 천국은 그 종들과 회계하려 하던 어떤 임금과 같으니

마18:24 회계할 때에 일만 달란트 빚진 자 하나를 데려오매

마18:25 갚을 것이 없는지라 주인이 명하여 그 몸과 처와 자식들과 모든 소유를 다 팔아 갚게 하라 한대

마18:26 그 종이 엎드리어 절하며 가로되 내게 참으소서 다 갚으리이다 하거늘

마18:27 그 종의 주인이 불쌍히 여겨 놓아 보내며 그 빚을 탕감하여 주었더니


마18:28 그 종이 나가서 제게 백 데나리온 빚진 동관 하나를 만나 붙들어 목을 잡고 가로되 빚을 갚으라 하매

마18:29 그 동관이 엎드리어 간구하여 가로되 나를 참아 주소서 갚으리이다 하되

마18:30 허락하지 아니하고 이에 가서 저가 빚을 갚도록 옥에 가두거늘


마18:31 그 동관들이 그것을 보고 심히 민망하여 주인에게 가서 그 일을 다 고하니

마18:32 이에 주인이 저를 불러다가 말하되 악한 종아 네가 빌기에 내가 네 빚을 전부 탕감하여 주었거늘

마18:33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관을 불쌍히 여김이 마땅치 아니하냐 하고

마18:34 주인이 노하여 그 빚을 다 갚도록 저를 옥졸들에게 붙이니라


마18:35 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그리고 네 번째로 한 말씀을 이르셨는데, 작은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작은 저에게는 가장 가슴에 와 닿는 실제적인 음성으로 들렸습니다.


“용서는 다른 사람이 아닌 너 자신을 위하여 하는 것이다”


글의 서두에 기록하였듯이 우리가 잘못한 것이 없는 경우 상대방의 일방적인 잘못으로 생각되는 경우 우리는 왜 그 사람을 용서해야 하는지 의문이 들 수 있습니다. 우리 자신 안의 공의로 보아도 그러하고 하나님의 공의 안에서 보아도 용서하기 어려운 사안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러한 경우에라도 우리에게 사랑하고 용서하라고 하십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우리 자신을 위한 것이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가령 우리가 그렇게 용서하지 못하고 분노와 앙금의 마음을 안고 살아가면 그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의 밧줄에 우리 스스로가 결박되어 고통을 당하며 우리의 마음과 영혼이 피폐되어져 갑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것을 아시기에 너희 스스로를 위하여서도 무조건 말씀을 따라 용서하라고 말씀하신다는 가르치심이었습니다.


이 원론적이고 실제적인 말씀의 비추임 속에 머물다 보니 괜스레 일렁이던 혼적인 분노의 파랑을 잠잠해지고 다시금 저의 심령에 고요한 평강이 찾아왔습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원수까지도 용서하고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하시지만, 한편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시기에 당신의 공의 안에서 그 영광의 눈을 범촉하는 죄인과 악인에 대해서는 친히 형벌을 집행하십니다.


롬12:19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롬12:20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롬12:21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그러한 원론적이고 실제적이고 공의적인 여러 가지 하나님의 경륜 안에서 그러므로 너희는 어떠한 사안이던지 조건과 상황을 초월하여 사랑하고 용서하며 도리어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서도 기도하는 사랑과 용서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영으로 보이시는 주님의 가르치심 속에서 마음과 심령의 고요함을 회복하고는 공원에 이르러 운동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늘 땅과 하늘에서 함께 하는 저의 천사들을 영으로 보며 조용히 운동을 하였습니다.


이곳에서 운동을 하다가 자전거를 저곳으로 이동을 하는데 기쁨의 영 계열인 ‘귀염이’가 언제나처럼 활발하고 발랄하게 저를 기쁘게 해 주려 하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우리가 육체를 입고 있는 동안에는 영의 세계는 마음의 세계, 곧 마음으로 밖에 교감할 수 없기에 그 모습이 귀여워서 마음으로 자전거 뒤에 태아고 등에 업어 보았습니다.


그런데 ‘귀염이’는 기쁨의 영 계열이라 그런지 활달한 아이가 부모의 품에 안겨있기 보다는 내려서 뛰놀기를 좋아하듯이 곧장 내려와서 또 발랄한 모습을 보여주려고만 합니다. 대부분 늘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날은 제가 조금은 강압적으로 “그냥 등에 조용히 업어 있어”라고 마음의 작용으로 행동을 자제 시키니 부모 품보다는 뛰어 내려와서 움직이고 싶은 아이가 부모의 말씀에 어쩔 수 없이 참으며 안기거나 업혀 있는 모습으로 보였습니다.


그러니 ‘귀염이’ 자기도 우스운지 늘 웃지만 업혀서는 하늘 웃음으로 소리 없이 웃었습니다. 웃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사람으로 말하면 조금 심하게 웃으니 눈동자는 보이지 않고 눈동자 아래선과 윗선이 붙어서 하얗게 웃고 있었습니다. 웃는 모습이 귀여워서 삶의 고단함이나 아픔도 잊고 저도 따라 웃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우리가 조금 더 사랑하고 조금 더 용서하는 삶을 살아간다면 이렇게 서로 기쁘게 웃을 수 있는 세상이 되겠지요. ‘귀염이’의 하늘 웃음 안에 그러한 이웃을 용서할 수 있는 하늘 사랑의 마음을 담아 전합니다.


그리고 다음 날 주님의 가르치심이 아닌 제 스스로 안에서 또 다른 용서에 대한 답이 생각이 났습니다.


“나도 타인에게 잘못과 상처를 주는 삶을 때때로 살지 않는가?”


사랑과 용서의 삶을 살아야 하는 이유를 말씀의 진리 안에서 바르게 알아 사랑과 용서의 삶 안에서 하늘 웃음을 잃지 않는 우리 서로면 좋겠습니다. 하늘의 평강 전합니다. 샬롬



마18:21 그 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가로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마18:22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할지니라

  

 

출처: cafe.daum.net/riverofwater, 초록 등불 목사(기독교 대한 감리회 속)

 

[안내] 출처 부분을 남기셔서 저작권을 지켜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카페규칙 상 스크렙 및 링크가 허락되지 아니한 게시판에 부지 중 올렸다면 먼저 죄송한 맘 전합니다. 소식 주시면 글올림을 삼가거나  따르도록 하겠습니다. 카페운영에 어려움 주지 않기 위하여 저작권 유의 배경음악과 그림자료 살펴 조심하고 있습니다. 평안하세요. 샬롬

 

 

 Home  cafe

배경음악(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