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등불/초록 영성설교

4차원 하나님의 사랑 - 길지만 차분 읽어보시면 많은 깨달음 있을것입니다

초록 등불 2011. 4. 18. 19:00

 

※4차원 하나님의 사랑※

 

 

아시다시피 한 10일 정도 감기몸살을 앓았습니다. 그래서 한 10일 정도는 거의 외출을 삼가고 지냈지요. 그러다가 지난 토요일, 감기도 거의 낫고 햇살이 너무 좋아서 자전거를 가지고 외출을 하였습니다.


자전거를 타고가 아닌, 가지고란 표현은 자건거는 그냥 이동할 때 타기도 하고, 세워두고 운동도 하고, 벤치에 앉아서 햇살도 쪼이고 때로는 자전거와 함께 걷기도 하니까 꼭 타고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산책을 하러 갈 때 강아지를 데리고 가듯 그러한 개념으로 자전거를 가지고 가니 그런 표현을 쓴 것입니다.


작년 건강에 큰 이상이 생길 무렵에 비하면 많이 호전되었지만, 아직도 긴 외출 등에는 어려움을 느끼기에 한 시간 남짓 나들이를 하고는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의 외출이었지만 몰려오는 피로에 쏟아지는 잠, 오후 내내 단잠을 깊이 잤습니다.


저녁을 먹고도 이상하게 노곤하고 피로하여 누워서 쉬었습니다. 하지만 내일이 주일이니 예배준비, 곧 전할말씀을 준비해야 하겠기에 누워서 조용히 기도를 드렸습니다.


성경에는 권능적인 차원의 은사가 아홉 가지가 나오는데,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 중의 하나가 그러한 은사를 받으면 항상 그 사람이 그 은사를 활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영분별의 은사나 믿음의 은사나 신유의 은사 등등 대부분의 은사들이, 실제로 그러한 은사를 받았다, 정확한 표현은 자주 나타난다고 하여도, 자신이 원하고 행하고 싶을 때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주권자이신 하나님, 곧 성령 하나님이 원하실 때 원하시는 방법으로 나타납니다.


가령 예언의 은사가 종종 나타난다고 하여 예언의 은사를 받았다고 하는 사람도, 성령님이 필요한 경우 혼과 육을 뚫고 나타나 주시는 역사가 없으면 아무 것도 모르는 연약한 인간일 뿐입니다. 그러한 경우는 솔직하게 “지금은 성령께서 역사하여 주시지 않네요”라고 솔직하여야 하겠지요. 억지로 자신의 느낌과 마음을 계시인 냥 전하면 많은 문제를 만들게 되는 거짓 예언자가 되는 것이지요.


자신이 원할 때 자신이 마음대로 활용할 수 있는 것은, 한 가지 개인적인 신앙의 덕을 세우고 함양하게 하는 방언기도와 그러한 기도 가운데 간간 뜻을 알게 되는 개인적인 기도의 통변뿐입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때로 하찮게 여기는 방언의 은사가 신자가 영적으로 성장하거나 또는 다른 은사의 열림과 개발을 위하여 반드시 필요한 기초적이고도 중요한 은사인 것입니다.


경험해 보면 설교의 기름부음도 마찬가지입니다. 때로 성령께서 설교의 기름부음을 강하게 주시면, 정말 원고 몇 장의 분량이라도 그냥 성령께서 말씀하시고 가르치시는 대로 적으면 됩니다. 하지만 다른 은사가 그러하듯 설교의 기름부음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원한다고 항상 그렇게 강하게 역사해 주시지는 않습니다. 오직 주권자이신 성령의 뜻대로, 그분이 원하시는 때에 원하시는 방법으로 나타나 주십니다.


토요일 저녁, 다소 곤하여 누워서 조용히 기도하니, 이 날은 설교의 기름부으심도 조용히 임하였습니다. 평소처럼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전해야 할 것들과 그 의미를 조명해 주셨습니다. 마치 글자가 쓰여진 책을 그냥 보여주시듯이 그렇게 조용히 그러나 너무도 원론적이고 중요한 것을 성령님은 조명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전하시길 원하시는 것은 “복 주시기 원하시는 하나님”이었습니다. 하지만 조금 특색있게 제목을 잡기 위하여 “4차원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제목으로 바꾸고, 본문도 이와 관련된 것을 택하였습니다. 이 본문을 중심으로 성령께서 말씀이 아닌 뭐랄까요 전해야 할 것들을 그냥 빛으로 비추어 주신 것들을 서술형으로 함께 나누어 보겠습니다.


본문으로는 에베소서 3장 14절로 19절의 말씀을 택하였습니다.


엡3:14 이러하므로 내가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엡3:15 이름을 주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

엡3:16 그 영광의 풍성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 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

엡3:17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엡3:18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엡3:19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설교의 형태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본문의 내용을 하나하나 원어적 의미나 역사적 배경을 살펴가며 하는 강해 설교가 있고, 본문 내용의 어떤 부분을 발췌하여 특정한 주제로 본문에 많이 얽매이지 않고 하는 주제 설교 등이 있습니다. 저는 지금까지는 대부분 주제설교를 많이 합니다. 본문에 얽매이지 않고 조금 폭 넓게 다룰 수 있으니까요.


오늘 본문에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19절의 “그 넓이와 깊이와 높이와 깊이”가 차고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 곧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 내용을 중심으로 성령께서 그림을 비추어 주시듯 뜻과 의미 등을 조명하여 주신 것을 오늘은 다소 논문형이고 서술적인 신앙의 글을 써 보려 합니다. 다만 다소 지루하게 느끼실 지도 몰라 차례와 번호를 넣겠습니다. 다소 길지만 차분히 읽으시면 영적으로 많은 것을 새롭게 깨닫게 되실 것입니다.


1)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

성경이 말씀하듯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의 한 속성은 창조입니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서로 사랑하여 아이를 잉태하듯 사랑의 한 속성은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하나님은 그런 사랑의 속성으로 이 세상만물과 우리를 지으셨습니다.


그런데 그 지으신 모든 것들 중에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가장 사랑하셨고, 실상 그 모든 만물은 우리를 위하여 주신 것들입니다. 이 땅과 하늘에 속한 모든 것을 첫 사람 아담에게 주셨고 만물의 영장으로 삼으신 후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오직 우리 사람만 말씀으로 짓지 않으시고 손수 흙으로 빚어 만드시고 생기를 불어넣어 생령이 되게 하시며, 하나님 당신의 형상을 덧입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우리를 사랑으로 지으셨고, 사랑의 대상으로 삼으셨고, 우리와 사랑의 교제와 교통을 나누기 원하셨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시편기자는 다음과 같이 노래하지요.


시8:1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영광을 하늘 위에 두셨나이다

시8:2 주의 대적을 인하여 어린아이와 젖먹이의 입으로 말미암아 권능을 세우심이여 이는 원수와 보수자로 잠잠케 하려 하심이니이다

시8:3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의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

시8:4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권고하시나이까

시8:5 저를 천사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

시8:6 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 발 아래 두셨으니

시8:7 곧 모든 우양과 들짐승이며

시8:8 공중의 새와 바다의 어족과 해로에 다니는 것이니이다

시8:9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시편기자의 노래처럼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으로 지으셨고, 사랑하길 원하셨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워주셨습니다.


2) 또 주신 너무나도 귀한 선물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시면서 인간에게 주신 또 다른 너무나도 귀한 선물이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다름 아닌 자유의지입니다.


영적인 세계에서도 원리와 법칙이 있는 것을 성경을 보면 알게 되는데, 이 자유의지는 아직도 하나님도 마귀도 어떻게 하지 못하는, 아니 관여하지 아니하시는 우리의 진정 독립된 권한이요, 자유입니다. 천지만물의 창조 때나 지금이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온전한 자유의지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온전히 주신 것이기 때문에 그 때도 지금도 하나님은 우리의 자유의지에는 관여하지 아니하십니다. 사단도 허락하지 않는 한 관여하지 못합니다.


생각해보면 이것이 얼마나 귀한 선물입니까? 만약 자유의지가 없다면 다른 말로 표현하면 창조된 로봇아닙니까? 로봇은 주인이 원하는대로, 리모컨으로 컨트롤 하는대로 움직이지요. 그게 무슨 창조적인 참 존재이며 자유한 존재입니까? 우리를 그렇게 지으시지 않으셨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이며 감사한 일인지요.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 성삼위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3)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영적인 세계

우리는 우리가 육으로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는 자연계의 세계에 대해서도 실상 너무도 모르는 것이 많습니다. 로켓을 우주를 향하여 쏘아 올리고 달을 넘어 화성에도 다녀오곤 하지만, 최첨단 과학문명이라고 하지만, 이론 물리학과 천문학을 들여다보면, 정말 천재 중의 천재가 아니면 이해하기 난해한 수학 방정식들뿐이지만, 인류의 역사가 또 한편 종말을 맞지 아니하고 한 시즌 흘러간다면 지금의 여러 가지 과학적 상식들이 또한 진리가 아닌 한 때의 이론이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지적 능력이 그렇습니다. 저 거대한 바닷물과 같은 지식의 영역에서 한 바가지의 물을 담고 있는 정도이겠지요.


블랙홀을 생각해 보십시요. 블랙홀은 너무도 중력이 강력하여 빛조차도 빠져나오지 못하고, 상대성 이론에 의하면 그곳엔 시간도 흐르지 않고 정지하여 버립니다. 그 세계가 이해가 잘 되는지요? 그리고 우주는 빛의 속도로 여전히 팽창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 세계가 이해가 잘 되는지요? 팽창하면 어디로 향해 팽창하며 팽창을 가능하게 하는 또 다른 차원의 공간은 무엇입니까? 조금 어렵나요. 자신의 버릇 남 못준다고 물리학을 전공한 버릇이 조금 나오네요. 하하.


이렇듯 우리는 실상 우리가 보고 느끼는 자연계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너무도 적습니다. 우리가 걷는 길옆에 조그맣게 자라는 식물이나 나무 한 그루에 대해서 우리가 아는 것이 정말 얼마나 될까요? 정말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것이 얼마나 진리일까요?


우리가 보고 만질 수 있는 세계에 대한 지식이 이러할진대, 영적 세계에 대한 우리의 지식은 어떠하겠습니까? 그곳에 대한 지식은 오직 하나님이 열어 보여주시고 계시한 것 이외에는 우리가 결코 알 수 없습니다.


그러한 영적인 법칙 중에 우리가 이해하기 어렵지만, 하나님과 범죄한 천사와 그 무리들, 곧 사단과 귀신들과의 사이에도 어떤 원칙과 법칙이 있는 것을 우리는 성경에서 보게 됩니다. 예를 들면 형벌의 정하신 때가 있고 그 때까지는 자유롭게 하나님도 한편 자유롭게 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마8:29 이에 저희가 소리질러 가로되 하나님의 아들이여 우리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때가 이르기 전에 우리를 괴롭게 하려고 여기 오셨나이까


4) 남용한 귀한 선물, 자유의지

우리가 잘 알다시피 우리의 원 조상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이 우리를 로봇으로 만들지 아니하고 진정한 자유의 존재, 참 존재로 만드시기 위하여 주신 ‘자유의지’를 오용, 남용하고 말았습니다.


창2:15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사 그것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시고

창2:16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창2:1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은 그 어떤 것도 마음대로 누리며 사용하되, 오직 동산 가운데 있는 선악과의 나무는 먹지 말라 하셨습니다. 그것은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주권의 인정이요, 모든 것을 누리게 하신 하나님에 대한 감사의 경외의 표현이었으며, 하나님은 단지 그 하나의 명령만 순종하며 지키길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다시피 아담과 하와는 뱀, 곧 사단의 유혹에 넘어가서 그것을 먹고 하나님 앞에 범죄하고 말았습니다.


창3:1 여호와 하나님의 지으신 들짐승 중에 뱀이 가장 간교하더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가로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창3:2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실과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창3:3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창3:4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창3: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창3:6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창3:7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 자기들의 몸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하였더라


여기서 우리는 우리가 이해하기 어려운 영적인 세계의 법칙을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가 추측할 수 있는 것은 우리 인간의 창조 이전에 벌써 타락한 천사, 곧 사단과 귀신들은 존재하였다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창조한 인간을 뱀의 형상으로 꾀인 것이지요.


그런데 우리가 이해하기 어렵지만 발견하게 되는 영계의 법칙은, 우리는 하나님의 창조물이요, 그분께 속하여 있었지만, 우리가 범죄함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자유의지를 사용하여 하나님이 아닌 사단의 말을 듣게 됨으로써 엄청난 변화가 일어나게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본래 우리에게 속하였던 하늘과 땅의 통치권이 우리가 아닌 사단에게 넘어가 버린 것이지요. 또 다른 하나는 우리를 지으시고 속하였던 하나님으로부터 우리의 소속이 사단에게로 넘어가 버린 것입니다. 이해하기 어렵지만 성경은 이러한 영계의 법을 말씀하여 주고 있지요.


이러한 부분을 성경은 사단에 대하여 “공중의 권세 잡은자”, “이 세상 임금” 등으로 표현하고 있으며, 예수님을 광야로 유혹한 장면에서도 자신에게 절하면 이 세상의 모든 영화를 예수님께 주겠다고 말하는 사단에게서 볼 수 있지요.


어떻게 하나님께 속하였던 우리가 비록 죄를 범하였지만, 하나님의 소유물이 아닌 마귀의 것이 되어버린 것일까요? 어떻게 우리의 통치아래 있던 하늘과 땅이 마귀에게로 넘어가 버린 것일까요? 이것은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영적인 세계, 곧 영계에서의 어떤 원리와 법칙인 것이겠지요.


5) 우리에 대한 소유권과 소속의 문제

우리는 우리의 자녀가 가끔 잘못을 하면, 용서를 빌면 그냥 용서를 해 주기도 합니다. 그런데 영적인 세계, 곧 영이신 하나님의 세계에서는 그 분은 그분의 말씀을 반드시 그리고 단연코 지키십니다. 식언하지 않으시는 것을 성경을 통해서 볼 수 있습니다.


민23:19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


창2:1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이 두 말씀을 보면 하나님은 당신의 말씀을 지키실 수밖에 없으시기에, 우리를 죽음에 이르게 하신 것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라”


그렇다면 하나님이 우주 만물과 우리의 모두를 지으셨는데, 실상 사단과 그를 따르는 귀신의 무리들도 결국 하나님의 주권아래 있는 것인데, 우리가 하나님 앞에 범죄할 때 과연 우리의 소속은 마귀에게 속한 것일까요? 아니면 여전히 하나님께 속한 것일까요?


여기에 대한 해답은 근원적으로는 여전히 우리는 하나님께 속해 있습니다. 그러나 부분적으로는 마귀에게 속해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근원적으로는 범죄한 우리도, 그리고 타락한 천사들인 사단과 귀신들도 모두 하나님의 주권적 영역 안에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하나님이 아닌 마귀의 말을 자유의지를 사용하여 듣게 됨으로써, 하나님이 당신과 우리 사이의 생명적인 관계를 끊어 버리시고 버리신 것이고, 그 버린 영역을 마귀가 한시적으로 통치하게 된 것이지요.


예가 조금 이상하기는 이것과 비슷하게 이해하시면 됩니다. 가령 지금은 우리나라가 여러 면에서 북한을 월등하게 앞서지만, 이해를 위하여 우리나라가 북한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너무도 낮은 국방력과 경제력을 지고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렇지만 강력한 우방국과의 호의적인 관계 속에서 우리의 국방을 지키고 있다고 생각해 봅니다. 그런데 어느 날 우리가 우방국과 반드시 지켜야 할 약조와 협약을 파기하고, 그로 말미암아 우방국들이 이 땅에 대한 영향력과 간섭을 거두고 모두 철수하고 우리를 유기하면, 북한 국이 쳐들어와서 우리를 지배할 수 있겠지요. 이와 비슷하게 이해하시면 되는 것입니다.


예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범죄한 우리는 여전히 근원적으로보면 하나님께 속하여 있지만, 식언하시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공의로심, 거룩하신 그분의 속성상 우리를 유기할 수밖에 없었고, 그 유기한 영역을 정한 때에 하나님께서 불 못에 넣기로 작정해 두셨던 사단과 마귀가 한시적으로 차지하여 버린 것이지요.


우리에 대한 소유권과 소속의 문제를 이렇게 이해하시면 될 것입니다.


6) 4차원 하나님의 사랑

그러면 생각해 봅시다. 우리가 죽게 된 것은 우리 때문입니까? 하나님 때문입니까? 우리가 사단의 억압을 받게 된 것은 우리 때문입니까? 하나님 때문입니까?


우리가 협약과 조약을 파기하고 어긋나게 행동하여 우방국들이 물러가고 만약 우리가 북한국의 침입을 받게 되었고 공산당의 탄압과 압제하에 있게 되었다면, 우리의 잘못입니까? 우방국의 잘못입니까? 당연히 우리의 잘못이지요.


마찬가지로 우리는 하나님이 아닌 우리 자신들의 허물로 인하여 죽게 된 것입니다. 우리 자신들의 잘못으로 인하여 사망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사단과 귀신들이라는 악한 영들의 세계가 영적인 세계에 존재하고 있는 영적의 세계의 현실과 원리가 우리에게 참극이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우리의 잘못으로 사망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사람들은 가끔 이 부분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하나님이 우리를 죽게 하였느니, 하나님이 우리를 지옥에 보내시느니”라는 말씀을 합니다.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의 잘못으로 사망에 이르게 되었고, 우리의 잘못으로 지옥의 형벌을 받게 된 것이지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은 당신의 말씀에 신실하신 것뿐인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죽음에 대하여 대속이라는 표현을 자주 쓰고 많이 들었지요. 대속이란 ‘어떠한 행위에 대하여 마땅한 값을 지불하다’라는 뜻의 의미가 있지요.


이 말은 어떤 의미에서는 맞고, 어떤 의미에서는 적절하지 않은 것도 같습니다. 사단을 비롯한 모든 것이 근원적으로 하나님께 속해 있는데, 하나님께서 누구에게 값을 지불하고 우리를 구원합니까?


오직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당신의 말씀을 어길 수가 없어서 우리를 구속하려면 누군가가 사망이라는 형벌을 받아야 하고, 그로 말미암아 구약시대에는 예수님의 모형과 그림자로 동물의 희생제사로, 그리고 신약시대에는 죄없으시고 영원하신 성자 예수님, 곧 하나님 당신께서 육신을 입고 오시는 기이하고도 신비로운 방법으로 우리 구원을 위한 문제를 당신 스스로 해결하신 것이지요. 그런 차원에서 구속의 죽음이라는 말은 맞지만 대속의 죽음이라는 말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부분적으로 보면, 하나님이 유기하신 인간은 또 다른 영적인 존재인 사단과 그 무리가 우리를 차지하여 버렸고, 식언하지 않으시는 당신의 공의로우심 때문이던지 어찌하였던지 사단의 억압과 통치에서 우리를 벗어나게 하시려면 누군가의 죽음이 있어야 했기에, 부분적인 차원에서보면 예수님의 죽음은 대속의 죽음이라도 말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위의 비근한 예로, 우리의 잘못으로 우리와의 우방협약을 파기하고 떠났던 우방국들이 마음을 돌이키고 우리를 인도주의적인 차원에서 다시 배려하여, 북한의 손에서 벗어나게 하려면 전쟁과 그를 통한 희생을 치루어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지요.


그러므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잘못하신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하나님은 우리에게 잘못하신 것도, 억압하신 것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단지 우리를 존귀와 영화롭게 창조하셨고, 또한 우리를 존중히 여기셔서 자유의지를 주셨던 것뿐입니다. 우리가 사망의 그늘에 앉게 된 것은 우리의 선택의 잘못이있고, 우리가 이해하기 어렵지만, 영계에 빛이신 하나님의 반대편에 죽이고 도적질하고 멸망시키는 것이 그의 일이 사단의 왕국이 존재하였다는 비극적 사실인 것이지요.


단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하신 것은, 태초에 다른 피조물인 만물과는 다르게 당신의 형상을 따라 영원한 영적인 존재로 지으시고 만물을 다스리고 누리게 하시며, 죽음을 맛보지 않는 영원한 존재로 지으시고, 더불어 로봇이 아닌 자유의지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또한 스스로 불순종하고 하나님이 아닌 사단과 사망을 선택한 우리를 위하여 가지가지 모양으로 뜨거운 사랑의 구속의 역사를 이어오시다가, 말일에 신비롭고 비밀스러운, 사단조차도 속을 수밖에 없는 기이한 하나님의 방법, 곧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당신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음으로써 단번에 모든 인류를 위한 구원의 길을 열어주신 것이라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행하신 것은 우리를 존귀하고 영화롭게 지으셨고 자유의지의 복된 존재로 지으셨으며 영원한 행복을 주신 것입니다. 우리 스스로 불순종하여 사망으로 떨어졌으며 사단의 종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곳에서 우리를 구속하시기 위하여 다시 한번 성육신 하셔서 당신을 십자가에 못 박는 사랑을 보여주신 것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행하신 것은 오직 사랑뿐입니다. 우리가 겪는 죄악과 고통은 우리 조상들, 곧 우리들의 잘못인 것입니다.


우주의 근본이시며 중심이신 하나님은 당신의 말씀을 어기실 수 없습니다. 만약 그분이 그렇게 변화무쌍한 분이라면 어떻게 이 우주가 질서 있게 존재하겠습니까? 저 태양이 멀어졌다 가까워졌다 한다면 우리가 얼마나 괴롭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은 당신의 말씀에 신실하실 수밖에 없는 분이시고, 그분이 신실하지 못하시다면 우리가 어떻게 그분을 믿고 의뢰할 수 있겠습니까?


한편 이렇게 생각할 순 있겠지요? “왜 아담과 하와의 범죄를 후손들에게 까지 전가시키느냐고?”


물론 그렇게 생각할 수 있지만, 만약 그렇게 하지 않으려면 아담과 하와를 통한 생물학적인 출산과 생명의 연속성은 없어야 할 것이고, 아담과 하와가 죽고 나면 또 한 인간을 창조하고 그가 어떻게 하는지 지켜보았다가 또 죄를 범하여 죽으면, 또 인간을 창조하고 그래야만 할 것인데, 하나님의 편에서도 쉽지 않고 우리의 무리한 논리 같지 않습니까?


만약 아담과 하와가 순종하여 후손인 우리가 영생의 복을 더불어 누린다면 그 때는 각 사람에게 선악의 나무를 시험하지지 왜 복을 물려 누리게 하시나 항변하시겠습니까? 하하.


더불어, 첫 사람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이유없이 사망에 이르게 된 것처럼, 둘째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유없이 단지 믿음으로 영원한 생명과 나라, 이전의 에덴보다 더 영화롭고 아름다운 하나님의 나라와 다시는 선악과의 그런 시험도 없는 온전한 생명의 나라를 예비하고 계신데, 각 사람을 새로 창조하고 각 사람에게 선악과 시험을 거치게 하지 않는다는 우리의 논리와 불평은 조금 무리이지 않습니까?


결론적으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우리에게 행하신 것은 사랑뿐이셨습니다. 선하신 것 밖에 없으셨습니다. 사망과 고통의 삶으로 추락한 것은 우리 조상, 곧 우리 자신들의 그릇된 자유의지의 사용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은 창조와 역사와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보여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4차원적,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길이가 어떠함을 깨달으라”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전체와 본문이 말씀하듯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그리고 그 사랑은 우리의 생각을 뛰어넘는 4차원적인 사랑입니다.


요일3:1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고,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니라


7)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

마지막으로 지옥의 심판에 대하여 한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성경은 그리스도인들을 향하여 그리스도의 몸 된 지체들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곧 머리되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각 지체들이 영적으로 서로 한 몸을 이룬다고 말씀하고 있지요.


반대로 생각하면, 사단의 왕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두움의 머리되는 사단과 그 귀신들 안에서 그를 따르고 또 다시 부활과 생명의 기회를 주신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을 부인하는, 여전히 자유의지를 사용하여 사단을 선택하는 자들은 사단과 연합하여 사단과 한 몸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만약에 사람들이 지옥에 간다면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근원적으로 보면 우리 자신들이라고 할 수 있는 우리 조상의 죄요, 현재적으로 보면 여전히 우리 자신의 자유의지를 잘못 사용하여, 육신의 정욕과 쾌락의 삶, 곧 사단을 따르는 삶을 선택한 우리 자신의 잘못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짓기 이전부터 사단을 벌하시기로 작정하신 불못에 사단과 한 몸이기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창조된 우주만물을 통하여 당신의 신성을 보여주심으로 창조주가 있음을 본능적으로 알게 하셨고, 양심의 법을 주어서 또한 알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선지자와 나아가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고 제자들과 뭇 사람들의 순교의 선교를 통하여 당신께로 우리 모두를 부르셨고, 아담 안에서 영원히 죽게 된 다시 한번 우리에게 생명과 사망의 선택을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 기회를 거절함이 우리를 지옥에 가게 하는 것이지,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그리고 지옥의 잔인함과 전율스러운 공포는 사단과 마귀를 향하신 하나님의 분노이지, 궁극적으로 우리를 향하신 분노는 아닌 것입니다. 영계의 세계를 잘 모르니 왜 그러셨는지 모르지만 하나님은 범죄한 사단은 다시는 기회를 주시지 않고 버리셨지만 우리는 창조이래 하나님은 구원하시려 애쓰셨습니다. 하지만 끝내 사단을 따르고 그 말을 들으면 사단과 한 몸을 이루게 되기에 그분의 진노가 그토록 무섭게 쏟아지는 것입니다. 사단과 더불어 영원한 불못의 지옥의 형벌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8) 또 다른 질문들
삶이 수고로워 어쩌면 이러한 항변은 어쩌면 가능하겠지요? “왜 하나님 저를 태어나게 하셨습니까? 생명을 주셨습니까?” 물론 논리적으로 보면 내가 태어나길 원한 것이 아닌데 하나님이 이 땅에 태어나게 하시고 힘들고 수고로운 삶을 살아가게 한다고 느끼면 그렇게 항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서로 대등한 능력과 위치에서 가능한 항변입니다. 여러 번 말씀드린 기억이 나지만 “자유는 자신의 능력만큼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부장보다는 사장이 자유를 많이 누립니다. 절대자유는 절대능력자이신 하나님 한 분 밖에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이론적으로 맞는 것 같지만 이것은 주권자이시고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주권에 심각하게 도전하는 것이 됩니다.


가령 여러분이 개를 기르면 여러분이 어떤 의미에서 진정한 주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저렇게 취향 따라 가꾸고 꾸미지 않습니까? 개가 원망하고 불평하면 “조용히 해! 이 녀석아! 내가 너를 돈을 주고 샀고 너의 주인이야!”라고 말을 하겠지요.


그러한 의미에서 근원적으로 하나님은 모든 것들의 주권자이시기에, 태어나게 하시거나 하는 등의 당신의 의지를 행하심에 항변하는 것은 한편 주권자에 대한 도전이요, 만홀히 여김이요, 지혜롭지 못한 것입니다.


항변하고 대드는 것은 자유이겠으나 생각해보면 너무나도 어리석은 것이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생사화복의 모든 것의 주권이 하나님께 있고 하나님께서 이미 태어나게 하셨는데 상대적인 그분의 사랑과 도움과 구속이 필요한 피조물이 대들고 항변하는 것이 무슨 유익이 있습니까?


더구나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하나님의 높으신 경륜 안에서 아담 안에서 모두가 죄인이 되게 하신 것이나 또 둘째 아담 예수 안에서 모두가 의인이 되게 하신 것처럼, 하나님도 그러한 모든 생명체의 번창과 생육을 위하여 생물학적인 후손의 이어짐을 섭리하신 것은 한편 당신의 선택이셨고, 어쨌거나 영원한 생명과 영광스러운 나라의 기회를 새롭게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셨는데, 그러한 항변만 마냥 하고 있다면 얼마나 어리석고 무의미한 일인지요?


그러므로 지혜서인 잠언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잠9:10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


또 다른 질문, “그렇다면, 예수님에 대해서 듣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한 시대에 살다가 죽은 사람이나 저 공산주의 국가에 태어나서 복음을 접하지도 못하고 죽은 사람은 지옥에 갑니까? 천국에 갑니까? 하나님이 어떻게 하십니까? 태아가 유산되면 어떻게 됩니까?” 이런 질문을 하실 수 있겠지요. 이러한 의문에 대한 답은 글이 너무 길어질 듯 하여 다음 편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


9) 결언

쓰다보니, 글이 많이 길어졌지만, 상당 부분 어떤 영적인 부분들에 대한 이해와 지각이 한편 열렸으리라 생각합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가 영적인 세계, 곧 영계의 원리와 비밀에 대하여 모르는 부분들이 있지만,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성경을 통하여 보여주심과 같이,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우리에게 생명과 복을 주시기 원하십니다. 타락한 천사는 완전히 버리셨지만 우리는 다시금 갱생의 기회를 주시기 위하여 당신의 아들을 저 잔인한 십자가의 형틀을 지게 하셨습니다. 그렇게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땅의 삶에 다소 수고로움이 있다고 하여도, 그것은 하나님이 아닌 우리의 조상, 곧 우리 자신들의 잘못된 자유의지의 사용에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당신의 말씀에 신실하셨을 뿐, 끝끝내 우리를 사랑하시고 또 다시 갱생의 기회와 생명을 주시기 위하여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기까지 하신 하나님의 놀랍고도 깊은 4차원의 사랑을 의심하지 마십시요.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복주시기 원하시는 선하신 하나님, 좋으신 하나님, 우리를 지으신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그 사랑의 하나님은 자기를 찾고 그 이름을 부르는 자에게 언제나 상 주시고 구원을 베푸시며, 언제나 영의 음성으로 당신께로 우리 각 사람 모두를 부르고 계십니다. 우리를 지으신 아버지이시기에 당신께로 언제나 부르고 계십니다.


우리 모두 그 부름에 응답하고 이제는 우리에게 주신 귀한 자유의지를 생명을 향하여 선택함으로써, 저 사단을 위하여 예비한 무서운 지옥의 불못의 형벌에 사단과 한 몸 되어 들어가는 영원한 후회와 자책과 절망과 비명의 결국을 맞이하지 않는 우리와 모든 사람들이 되기를 간절히 기원해 봅니다.

생명 되신 주님을 믿고 따라 영화로운 하나님의 나라에서, 생명수의 강이 언제나 흐르는 그곳에서 주님과 더불어 영생의 행복을 차지하고 누리는 저와 여러분, 그리고 모든 인류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려봅니다. 아멘!!

<저작권자: cafe.daum.net/riverofwater, 초록 등불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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