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2000 여전 이 땅에 놀라운 용서의 은총이 햇살처럼 내렸습니다.
하나님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게 하시고, 또한 예수님은 우리들을 향하여 “아버지여, 저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저들이 하는 짓을 알지 못하나이다”라고 기도하였습니다.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려는 하나님의 뜨거운 사랑은 예수님의 몸에서 붉은 선혈로, 눈물로 아롱아롱 흘러내렸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이러한 큰 사랑을 일 만 달란트에 비유하지요. 그러나 또한 성경이 말하듯 우리는 이웃에게 백 데나리온의 사랑을 베풀지 못하지요.
용서에 관하여 주님의 감동하심을 구하며 간구하였습니다. 주께서 성령으로 감동하시며 “기독교는 용서의 종교이다”명제형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나아가 “너희 자신을 위하여 이웃을 용서하라. 이웃을 용서하는 자를 나는 긍휼히 여긴다. 또한 용서하는 삶을 살 때 너희가 마음의 평강을 누리리라”
“또한 너희가 참된 용서의 삶을 살아갈 때 세상 사람들이 너희가 내 자녀임을 알리라. 용서하는 삶을 살아가라, 너희가 내 앞에서 행할 선이 그리 많지 않느니라”이르셨습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성경에 의하면 우리는 용서받은 죄인입니다. 우리가 무슨 선이 있거나 의가 있어서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긍휼하심으로 말미암아 값없이 그저 용서받은 죄인입니다. 무조건적 용서로 말미암아 의롭다 칭함을 받은 의인 아닌 의인입니다.
이러한 하늘보다 높고 바다보다 깊은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깨달았던 손양원 목사님은 이웃을 향한 사랑의 원자탄이 되어, 자기의 아들을 죽인 사람을 양자로 삼는 사랑을 베풀었었지요.
그러므로 사랑하는 이들이여, 우리의 삶에서 이웃의 크고 작은 허물을 용서하는 삶을 살아갑시다. 주님의 말씀대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행할 선이 많지 않으나 그 중의 하나가 용서입니다.
우리는 누군가를 미워하고 용서하지 못하는 것을 때때로 가볍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용서하지 못하는 것은 영적으로 바라볼 때 결코 가벼운 죄가 아닙니다. 치유나 회복을 가로막는 영적 축복의 장매물이 될 뿐만 아니라, 성경의 말씀대로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죄를 용서받지 못하는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 허물과 죄로 날마다 얼룩지는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받지 못한다는 말씀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하나님께서 조건없이 우리를 용서하시고 허물을 덮어주셨듯 우리도 중심으로 이웃의 허물과 잘못을 용서하여야 합니다.
또 한편 앞에서 주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용서는 결국 자신을 위한 것입니다. 경험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용서하지 못하고 있는 마음은 미움과 원망에 사로잡혀 있는 마음입니다.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사단의 포로된 마음입니다. 그러므로 자기자신을 위해서도 용서해야 합니다. 진정으로 그리고 중심으로 용서할 때에야 비로소 성령 안에서 산마루 선선하게 불어오는 산들바람 같은 참된 자유와 해방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타인의 허물과 잘못을 용서하지 못하는 것은 영적으로 결코 작은 죄가 아닙니다. 때때로 어떤 경우엔 결코 용서가 쉽지 않은 경우도 분명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용서해야 합니다. 진정한 용서의 본을 예수님은 십자가 상에서“아버지여, 저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저들이 하는 짓을 알지 못하나이다”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이 당한 용서 못할 경우만큼 크고 깊은 상처가 있겠습니까? 주님께서 그러하셨으니, 주께서 명하시니 우리는 그 말씀 따라 우리의 형제자매와 이웃들의 잘못을 언제나 중심으로 용서하여야 합니다. 일흔 번씩 일곱 번씩이라도 용서하여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가 그러한 삶을 살아갈 때 하나님으로부터 또한 용서함을 받는 복을 누리리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참된 용서의 삶 안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우리의 허물과 죄 또한 늘 용서함 받으며 그 속에서 참된 자유와 기쁨과 축복을 누리는 저와 여러분이면 싶습니다. 샬롬!
마6:14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
마6:15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