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등불/초록 영성수필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 하나님 안에서 언제나 넘치는 복된 삶 되십시요.

초록 등불 2011. 5. 4. 18:30

 

※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감기에 대하여 중요한 사실 하나만 알려드리겠습니다. 감기를 고전 한방에서는 상한이라고 하는데, 감기가 오면 흐름에 있어서 일반적으로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실증인 경우로 초기 감기증상으로 일반적으로 오한, 발열, 두통이 오지만 식은땀을 흘리지 않습니다. 이러한 경우는 일반적으로 체력이 어느 정도 받쳐주는 사람의 경우로, 이러한 경우에는 휴식을 취하면서 땀이 나게 하는 것이 좋습니다. 땀과 함께 열증이 해소되니까요.


하지만 다른 하나인 허증인 경우에는 역시 오한, 발열, 두통을 하지만 식은땀을 줄줄 흘리게 되는데, 이는 원기가 허약하여 그렇습니다. 이러한 분들은 체력과 그리고 몸을 지키는 몸의 방위기운인 위기가 약하여 날씨가 어느 정도 추워지면 거의 무조건 강제로 감기에 걸리고 맙니다.


왜냐하면 몸을 지키는 위기가 약하니, 어느 정도 추위의 세력이 강해지면 무조건 담을 무너뜨리고 들어오기 때문이지요. 이러한 경우에는 휴식과 영양보충을 취해주는 것은 실증과 같지만, 절대로 땀을 더 흐르게 해서는 안됩니다. 더욱 악화가 됩니다.


어릴 적에 이 기본적인 사실을 몰라서 계속 땀을 내면 좋다고 하여, 아니 그래도 식은땀이 줄줄 하는데 이불을 뒤집어쓰고는 이불이 젖도록 땀을 내곤하여 더욱 감기를 악화시킨 경험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의 경우는 보통 야위고 체력적으로 약한 분들이 많은데 가볍게 땀을 내는 것은 일시적으로 어떤 경우에는 할 수도 있겠지만, 근본적으로 땀을 내지 않고 치료를 하여야 합니다.


저의 경우는 후자에 속하여, 감기가 걸리면 식은땀을 많이 흘립니다. 그래도 나름 감기는 잘 걸리지 않고 관리하여 왔는데, 지난 해 다소 건강이 나빠진 후로는 왠지 겨울이 아닌 여름에도 추위를 느끼고 감기가 찾아오곤 하네요. 타고난 체질이 많이 허약하니 더욱 건강관리에 신경을 써야 할 것 같습니다.


은은한 오한과 식은 땀, 오늘도 약간의 감기기운으로 다소 쉬다가 오후에 기도를 드리니, 힘들어도 말씀을 전하라 말씀하시고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를 비롯한 몇 가지 말씀에 대한 영감을 주셔서 오늘은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라는 제목의 글을 순종하는 마음으로 써 봅니다.


살아있는 것과 죽은 것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살아있는 것, 곧 생명의 특징에 대하여 여러 가지를 말할 수 있겠지만, 갈망과 성장도 분명한 특징 중의 하나이겠지요.


생명이 있는 생명체는 무엇인가를 향한 갈망이 있습니다. 어떤 것은 육신적인 본능에 의한 것이요, 어떤 것은 자신의 삶의 꿈과 비전 등에 관한 것들이겠지요. 분명히 살아있는 생명체는 어떤 무엇인가를 추구하고 갈망을 합니다. 그리고 동시에 그러한 갈망을 통하여 성장을 하여 갑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갈망이 없다면, 그것은 죽은 것입니다. 키에르 케고르는 “절망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고 말했다지요. 설령 육적인 생명은 유지하고 있을지라도 어떤 꿈과 비젼 등의 이루고자 하는 갈망이 없는 절망의 삶을 살고 있다면 살아 있어도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겠지요.


영적인 영역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적으로 살아있는 사람은 늘 영적인 갈망이 있게 됩니다. 죄악에 흠뻑 젖어 사는 사람은 아무런 부족함을 느끼거나 갈망이 없이 잘 지내는데, 오히려 기도하고 말씀에 충실하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을 살려는 사람은 때로 그러한 사람들보다 고뇌의 시간에 잠기곤 합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을 향한 갈망입니다.


그러한 갈망은 부정적인 것이 아니요, 거룩한 근심처럼 하나님과 그 의를 향한 거룩하고 아름다운 갈망입니다.


7:10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보통 사람들이 보면 이만하면 저만하면 만족도 할만한데, 결국 영적인 갈망의 궁극은 온전한 하나님과의 합일이기에, 사람은 때때로 저만치 하나님과 우리는 떨어지는 삶을 살 수 밖에 없는 연약한 존재이기에, 영적인 갈망은 영적인 삶을 살기 원하는 사람들의 가슴에는 언제나 목마름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때때로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하거나 의를 이루지 못하면, 영혼의 곤고함 속에서, 하나님의 얼굴과 그 분의 거룩한 영적인 빛에 굶주려, 열병을 앓는 사람처럼 영적 갈망으로 허덕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보좌 앞에 몇 시간이고 앉아서 그분의 생수가 그 갈망을 충족시켜 줄 때까지 하나님을 바라고 찾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산상수훈에서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지요.


마5:6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


이 말씀처럼 그렇게 하나님을 갈망하고 사모하는 심령은 하나님은 결코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 반드시 그 영혼을 충족시켜 주시며,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고 넘치는 기쁨으로 노래하게 하여 주십니다.


살아있는 생명체는 갈망이 있습니다. 그러면 저와 여러분의 가슴에는 하나님을 향한 그러한 거룩한 갈망과 열망이 있습니까? 만약 그러한 갈망이 있다면 그 영은 하나님의 생명 안에서 살아있는 것이고, 아무런 감각이 없다면 영이 잠들었거나 죽은 상태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영적으로 살아있는 영적인 사람들의 갈망에는 어떠한 것들이 있을까요? 주님께서 감동하신 몇 가지를 나누어 봅니다.


무엇보다 이러한 사람들은 세상이 아닌 하나님을 더욱 온전히 그리고 더 많이 그리고 더 많은 삶의 영역 안에서 사랑하기를 위해서 늘 갈망합니다. 사도바울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그 안에서 진정으로 발견될 수 있다면 세상의 모든 것들을 배설물과 같이 여깁니다. 오직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리스도를 닮기 위한 것이 그의 열망의 전부가 됩니다.


그토록 하나님을 사랑하며 온전히 자신을 드렸던 스미스 위글스워스 목사님도 그의 말년에조차 그의 기도는 “예수 그리스도만 남기고 나를 온전히 불태워 주소서!”였다지요. 이렇게 살아있는 영혼은 오직 하나님 사랑, 그분만으로 채워지기를 사모하고 갈망하고 열망합니다.


나아가 말씀대로 더욱 온전히 살기를 원하는 갈망으로 불타게 됩니다. 그러한 것들쯤은 괜찮을 것 같은데, 실오라기 같은 하나마져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 원하는 갈망이 있게 됩니다. 그리고 그렇게 살지 못할 때 거룩한 근심과 갈망에 시달립니다. 더욱 온전한 말씀의 삶에로의 갈망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누구나 경험하겠지만 기도를 통한 하나님과의 교통에의 열망이 있게 됩니다. 하루에 그러한 시간을 갖지 못하면 식사를 하지 못한 사람의 배처럼 영적 곤고함이 찾아옵니다. 날마다 기도를 통하여 그분의 낯을 뵈며 그분의 음성을 들으며 그분의 말씀으로 영혼이 채워질 때만 갈망이 해소됩니다. 그래야만 얼굴의 빛이 환해집니다.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으로 물들어 가면, 그분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 곧 영혼구혼의 갈망에 시달리게 됩니다. 나아가 이기적인 이타적인 섬김과 희생에의 삶에의 갈망과 열망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이전에는 이기적인 삶이 만족을 주었으나 이제는 이타적인 삶이 오히려 만족과 기쁨을 주게 됩니다. 따라서 사랑과 섬김에의 갈망이 가슴에 자리잡게 됩니다.


그리고 누구나 경험하고 짐작할 수 있듯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거룩한 갈망이 자리잡게 됩니다. 식물과 동물들이 육신의 음식이라면 하나님의 말씀은 영의 양식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읽지 않으면 영적인 곤고함, 곧 갈망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들이 기도 중 주님께서 감동하신 영적인 삶을 갈망하는 사람들의 갈망들입니다.


예수님은 산상 수훈에서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어 천국이 저희 것이 될 것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으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라 말씀하셨지요.


아시겠지만 이 말씀은 육신적인 마음의 가난이나 애통이 아닙니다. 가령 못나고 배우지 못해서 기죽어 사는 마음의 가난함이나 자식이나 부모나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서 우는 그런 애통이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의에 주리고 목말라 하며, 가난한 맘으로 그리고 애통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심령을 말하는 것입니다.


목회자로 살아온 지 어언 10여년이 넘는 세월, 하지만 정말 영적으로 온전히 살고 온전히 하나님을 향하여 사는 것이 결코 쉬운 것이 아님을 실감하며 살아갑니다. 하루의 대부분의 시간을 말씀과 기도에 드려도 때때로 하나님의 뜻과 의를 이루지 못하는 자신을 봅니다. 그래서 저의 가슴에는 언제나 저의 부족함에 비례하여 하나님을 향한 영적인 곤고와 갈망이 있습니다. 마음에 깊은 갈망이 잦아들땐 때때로 집에서 드리는 기도지만 남들이 듣던지 말던지 소리내어 부르짖게 됩니다.


목회자로 살아온 지 어언 10여년이 넘는 세월, 정말 성경이 말씀하시는 바 거룩한 성도와 그리스도인의 삶이 결코 쉽지 않은 것을 느낍니다. 정말 하나님이 원하시는 목회자의 삶을 사는 것은 더욱 쉽지 않다는 것을 절감하며 지냅니다. 그러한 삶은 나의 모든 것은 죽이고 태우고 없애버려야 하는 것이더군요. 오직 하나님과 그 의가 살아가는 이유요, 존재의 목적이요, 삶의 푯대요, 꿈과 기대와 열정이 되어야 가능한 것이더군요.


그것이 성경이 말씀하시는 바,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로 믿음의 성장이지요.


엡4:1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엡4:14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

엡4:15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하나님의 사람, 영적인 사람들이 그토록 갈망하는 의는 궁극적으로 무엇입니까? 그것은 결국 성부 하나님이시요, 성자 예수 그리스도시요, 성령 하나님입니다. 그것은 결국 하나님입니다. 영적인 사람들의 갈망은 세상이 아닌 하나님을 더 많이 가슴에 소유하고, 그 분의 품과 생명 안에 더욱 안기고 하나되는 것인 것입니다. 오직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인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 이러한 의를 이루게 하는 거룩한 근심과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게 하는 거룩한 열망의 사람이 되어, 언제나 그리스도의 충만한 생명력을 공급받으며 그 안에서 넘치는 거룩함과 능력과 생명의 삶으로, 우리 자신은 물론이거니와 이웃과 세상을 변화시키는 빛과 소금된 삶을 살아가는 우리면 좋겠습니다. 주님은 지금도 그리고 언제나 우리의 심령의 문을 두드리고 계십니다.


계3: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저작권자: cafe.daum.net/riverofwater, 초록 등불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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