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등불/초록 영성수필

로뎀나무 (2) - 새롭게 일어나게 하시는 어머니 같은 하나님의 사랑

초록 등불 2011. 6. 1. 10:49

 

※ 로뎀나무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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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우리가 탈진하게 되었을 경우에 대하여 감동하신바 말씀에 대해서 나누어 보겠습니다. 여러 번 말씀드리지만 하나님의 감동하시고 가르치시는 바는 단순하고 동일하며 반복적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행하여야 할 하나님의 말씀이 무슨 어려운 철학과 같은 것이 복잡한 것이 아니며, 현명한 자나 어리석은 자나 누구나 알 수 있는 단순하고 쉬운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어려운 수학이나 깊은 철학처럼 어려운 것이라면 어떻게 지적으로 현명하지 못한 사람들이 구원을 얻겠습니까?


하나님은 만민의 구원을 위하여 말씀과 복음을 단순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지적인 것을 좋아하는 사람의 눈에는 십자가의 도가 너무 단순하여 미련하게 보이게 하셨으나 그것을 믿든 자에게는 구원을 주시는 능력이 되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지혜로움을 저 높은 하늘이 땅을 뛰어넘듯 그렇게 뛰어넘는 하나님의 지혜요, 신비로움입니다.


그래서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음성, 주의 음성을 들으보면 대부분 단순하며 반복적입니다. 그러나 어제 들었던 말씀이나 오늘 들으면 다시금 어제 받았던 빛이 희미해져 가는 마음에 같은 말씀으로 새 빛을 주십니다. 이 말씀을 적고 읽는 저와 여러분에게도 다시금 그 빛이 임하게 되길 주의 이름으로 기원해 봅니다.


첫째로, 성령은 “오직 하나님만이 빛이시라”는 사실을 언제나 기억하고, 낙담하고 탈진할 때 상기하라 이르셨습니다.


우리는 평소에는 우리의 삶의 빛들이 재물이요, 권력이요, 명예요, 쾌락과 세상의 즐거움인 것으로 가끔은 착각을 합니다. 그래서 그러한 것들을 추구하고 빠져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궁극적인 절망인 짙고 짙은 어두움의 죽음의 그림자 앞에서는 그 모든 것들이 빛을 잃고 죽음의 잿빛과 허무로 변하고 맙니다.


우리의 생이 본래 지어진 타락이전의 아담과 하와처럼 영원하다면, 어쩌면 세상의 부요함이 우리 마음의 빛이 될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인간의 궁극적인 절망인 죽음 앞에서는 그러한 것들이 모든 빛을 잃고 말게 됩니다. 나아가 그러한 것들을 많이 누린 사람일수록 죽음 앞에서는 생이 더 큰 허무와 공허로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창2:7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창세기 2장 7절의 말씀처럼, 사람은 나무와 식물이나 곤충이나 동물과는 차원이 다른 영적인 존재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생령을 불어 넣어 지으신 영적인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결코 세상적인 것들의 충만함으로는 그 마음에 진정한 행복을 얻지 못합니다. 누리지 못합니다. 오직 하나님과 그 빛이 임할 때에만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넘치는 기쁨과 만족 속에서 찬양하고 기뻐하며 노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세상의 그 모든 것을 얻었다 하여도 하나님을 잃어버리면 그 마음엔 짙은 어둠이 임합니다. 행복하고 만족하여야 하는데, 도리어 공허와 허무에 시달리게 됩니다. 그것은 우리는 하나님의 영을 부여받은 하나님 안에서 살게 지음받은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하여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마4:4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그러므로 성경의 역사를 살펴보면,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을 빠짐없이 풍족하게 누렸던 솔로몬은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도다” 이 세상의 것들에 대하여 한탄하였지만, 이 세상의 것들은 거의 누리지 못한 사도바울은 이와 같이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고후6:9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는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고후6:10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그러므로 마음의 빛과 행복은 세상의 것들에서 오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오직 우리의 심령의 빛은 하나님인 것을 우리는 언제나 기억하고 특별히 낙담하고 탈진한 상태에서도 다시금 상기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다시금 하나님께로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삶의 소망이요, 빛이며, 우리의 가장 궁극적인 절망인 죽음조차도 뛰어넘게 하는 생명의 참된 빛인 것입니다.


요8:12 예수께서 또 일러 가라사대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고전15:55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고전15:56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고전15:5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둘째로, 성령께서는 너무도 자주 들어서 알고 아시겠지만, “말씀이 생명의 열매임을 알라” 감동하셨습니다. “말씀을 품고 그 말씀대로 살아갈 때 영육이 생명을 얻는다” 이르셨습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삽니까? 그것은 떡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람의 육체적 생명에 한하여 입니다. 영적 생명은 오직 하나님과 그 입으로 나오는 말씀으로 우리는 살게 지음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그 말씀으로 말미암아 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너무도 쉽게 구입할 수 있으며 성경을 접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성령시대, 우리 속에 내주내재 하시는 성령은 시시때때로 우리에게 당신의 음성, 곧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주십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시대도 있었습니다. 그렇지 못한 시대에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기갈이 있었습니다.


암8:11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교회에서 예배를 드릴 때나 홀로 성경을 읽으며 묵상할 때나 여러분의 심령 속에 임하는 하나님의 생수, 곧 영혼의 생수, 생수의 강의 흐름을 느끼지 못하십니까? 우리의 마음을 시원케 하고 만족하게 하시는 말씀의 생명됨을 알지 못하십니까?


비록 우리의 육은 떡으로 살지만, 우리의 영은 오직 하나님과 그 입으로 나오는 말씀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평탄한 길을 걸어갈 때나 역경의 길을 걸어갈 때나, 때로 낙심하고 탈진하였을 때 말씀드린 것처럼 다소의 주 안에서 쉼의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을 수도 있지만, 결국은 다시금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그 말씀 안에서 빛과 소망을 발견하여야 하고, 갈한 심령에 생수를 공급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마음에 낙담이 찾아왔습니까? 영적으로 탈진하여 힘이 드십니까? 그렇다면 주님 안에서 다시금 조용히 그 말씀 하나하나, 들었고 읽었고 아는 말씀들을 다시금 조용히 묵상하고 그 말씀 안에 잠기어 보십시요. 다시금 성경을 펼쳐 조용히 읽어 보십시요.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다시금 심령에 새 힘을 주며 소성케 할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은 선한 목자,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가라” 감동하셨습니다.


우리가 대부분 신앙의 길을 걸어가다가 낙담하거나 탈진하게 되는 경우는 여러 가지 요인 있겠지만, 그 중의 하나는 성령의 인도하심, 곧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온전히 순종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버리고 저것을 행하라 하시는데, 그렇게 하지 못함으로 조금씩 마음에 빛을 잃고 어둠 속으로 조금씩 잠겨가게 되는 것입니다.


시23: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시23:2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시23:3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시편 23편에서 다윗이 노래하듯 목자되신 좋으신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를 푸른 초장과 잔잔한 물가로 인도하십니다. 우리의 영혼을 날마다 소생시키시고 당신의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이렇게 노래하였던 다윗이 한 때 깊은 어둠에 빠지게 된 것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아닌 인간의 정욕을 좇는 죄를 범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우리 속에서 내적증거를 통하여 감동감화하시는 성령의 세미한 음성에 귀기울이며, 누군가가 미워도 용서하고 사랑하시면 그리하고, 이것을 행하고 싶지만 하지 말라 하시면 하지 말고, 저것은 행하고 싶지 않지만 행하라 하시면 묵묵히 순종하면 언제나 우리는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로 인도함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우리는 성령의 인도하심에 민감하여야 하며, 그 인도하심을 따라야 합니다. 특별히 심신이 지치고 영적으로 탈진한 상태에서 다시금 기력을 얻는 길도 성령의 세미한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다시금 새 마음으로 순종하는 길이 회복의 열쇠인 것입니다.


이 부분은 뒤에서 다시 말씀드리겠지만 엘리야도 성령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 가운데 새 힘을 얻게 되지요.


넷째로, 주님은 성령 안에서 다소의 우리의 의지의 발휘와 믿음의 선함 싸움을 싸울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자신을 쳐서 복종시키고 감당해야할 소명이 있음을 알라” 이르셨습니다.


엘리야의 지침과 탈진을 이해할 수도 있지만, 우리의 때때로 지침과 탈진도 이해할 수 있는 부분들이 있겠지만,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은 그리스도인의 군사입니다. 싸움을 하다가 피곤하고 지친다하여 낙담해 버리면 이미 승패는 결정난 것이겠지요.


전쟁터에서 소명과 임무를 부여받은 군인들이 매양 낙담하고 탈진해 버린다면 승패는 불을 보듯 뻔한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인간인지라 우리가 때때로 탈진하고 약해질 수도 있겠지만, 약해지려는 자신을 쳐서 복종시키고, 기도의 두 손을 들고 성령의 검인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우리를 낙담시키고 탈진시켜 추락시키고 멸망시키려는 원수 사단 마귀를 향하여 우리는 주님의 의의 군사로써의 선한 싸움도 우리의 신앙에 여정에 필요하다는 말씀이셨습니다.


우리는 기도온의 300명의 군사처럼 강하고 용맹하여야 할 그리스도인의 군사입니다.


여기까지 이르신 주님께서 본문의 말씀과는 달리, 기뻐할 것을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지금부터 주님께서 제게 이르신 말씀들은 여러분에게도 동일하게 말씀하신 것으로 생각하시며 읽어보시면 싶습니다.


왜냐하면 저나 여러분이 모두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부모가 어느 자녀를 사랑하지 아니합니까? 그러므로 몸이 곤하여 다소 지친 제게 이르신 말씀은 어떤 문제로 다소 지치거나 지칠 수도 있는 여러분을 향하신 말씀이기도 한 것입니다.


주님께서 다소 심신이 지친 제게 이르시기를 “내 안에서 기뻐하라, 나는 모든 것을 행할 수 있는 전능자이며, 너의 소망이니라. 세월은 수이가고 영광의 그날은 속히 올 것이다”


말씀하시던 주님께서 곤하여 누워서 기도하며 주시는 말씀들을 적고 있는 제게 “내가 주는 능력을 받으라, 성령을 받으라” 말씀하셨습니다.


기도생활의 방법에 작은 도움이라 되실까 저의 기도시간에 대해서 조금 말씀드리면, 저는 임의로 기도할 때도 있지만, 대부분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민감하게 따르며 기도를 드리려 애씁니다. 내주 하시는 성령의 내적증거를 영으로 감지하며 그 인도하심을 따라서 기도를 드립니다.


그리하면 때로는 저의 잘못을 아뢰길 원하시는 시간이 있고, 혹은 간구를 드리라고 이끄시는 시간이 있고, 또 주님의 말씀을 듣기를 원하시기도 합니다. 때로는 찬양과 감사를 드리길 원하시는 이끄심이 있습니다. 또 어떤 때는 저의 혼은 전혀 알지 못하게 영이 홀로 방언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는 시간의 한동안도 있습니다.


그리고 보통 잠자리에 들어서 기도할 때면 대부분 감사를 드리게 하십니다. 그런 와중에 가끔은 “내가 주는 성령의 새 기름부음을 받으라” 이르실 때가 있습니다. 이런 경우는 제가 항상 뒷머리가 아파서 그런지 일반적으로 구토증상이 일어납니다. 그러나 기분 좋은 구토증상입니다. 하고 나면 머리가 다소 맑아지고 교통의 문이 더 열리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저의 경우는 머리가 아픈 특별한 상황으로 이런 구토 현상이 이유는 모르지만 더 자주 오는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현상들을 부러 따라하려 하지는 마십시요. 우리가 성령 안에서 영적 생활을 하면서 범하는 많은 오류 중의 하나가 누군가의 어떠한 현상들을 따라하고 모방하려다가 때로 잘못된 길로나 혹은 사단에게 사로잡힘을 겪게 되기도 합니다.
가령 귀신을 나갈 때 구토증상을 보이면 귀신을 내 보내려면 구토를 부러 해라 이런 오류를 많이 범합니다. 어떤 특정한 개인의 현상을 고정화하고 원칙화합니다. 그것이 그릇된 길로 가게 되는 한 길입니다. 그러므로 각각 성령의 이끄심 때로 행하면 되는 것입니다. 누구를 모방하거나 따라 하지 말고 현상을 고정화하지 마시고 원칙과 교리로 삼지 말아야 합니다. 이어서 말씀 드립니다)


그러한 이후에 성령과 교통하는 시간을 조금 가졌습니다. 우리는 기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성부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성경이 가르치는 것이고 옳은 기도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성령님과 교통할 수 있지요. 친교할 수 있습니다. 잠시 성령님과 교통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랬더니 성령께서 교통 가운데 이르시기를 “나는 너의 생명의 근원, 곧 뿌리이며 너의 어머니니라”이르셨습니다.


처음 들어보는 너무나도 친숙하고 사랑으로 다가서는 어머니라는 표현, 다소 생소하였지만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라는 말씀이 갑자기 생각나는데 그 말씀에 따르면 성령은 영의 어머니라는 말씀도 틀린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맞는 말씀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아가 이르시기를 “내가 너를 향한 마음이 세상의 어머니보다 깊다. 언제나 내 안에서 생명을 누리기 바라는 나의 마음을 알라” 교통 가운데 말씀을 하셨습니다. 세상의 어머니보다 깊다라는 말씀을 하시는 뜻은 세상의 어머니의 불완전함에 비견하여 말씀하심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 말씀을 듣는 가운데 저의 힘든 상황과 맞물려 따뜻한 위로의 말씀에 눈물이 핑글 돌더군요.


계속하여 성령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다시금 말씀드리지만 성령이 이르시는 말씀을 여러분에게도 동일하게 이르시는 말씀으로 들어십시요.


“너는 이미 복을 받았다. 사랑하는 아들아. 기뻐하여라. 너를 위하여 예비 된 것들이 많단다. 하나님께서 너를 사랑하셔서 아들을 주셨는데, 무엇인들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천국은 영광 위의 영광이니라. 기뻐하라”


여기서 저를 위하여 예비 된 것이 많다는 말씀은 제가 무슨 특별히 하나님의 일을 많이 하여서 특별한 상급을 말씀하시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왜냐하면 너무도 부족하게 사역하여 온 것을 저 자신이 잘 아니까요. 천국의 일반적인 영광에 대한 말씀 같았습니다. 여러분은 귀한 충성을 하신 분이라면 특별한 상급이 있을 것입니다.


나아가 성령님은 “내일이 주일이니 이제 일찍 잠자리에 들어라, 네게 평강을 주노라, 사랑하는 아들아”이르셨습니다. 그리고는 마치 주님께서 강림하셨다가 하늘로 올라가버리신 것처럼 이후엔 말씀이 없이 잠잠하였습니다. 그 주님의 말씀을 끝으로 잠자리에 들었지요.


위에서 성령님과의 교통, 곧 저와 여러분에게도 해당되는 말씀처럼 하나님은 우리 영의 어머니 된 성령 안에서 우리를 낳으셨고 사랑하십니다.


제게도 여러분이 알다시피 생의 수고로움이 있습니다. 여러분에게도 있겠지요. 그것은 본래 생이 수고로움이 있기 때문일 것이며, 또한 저의 경우는 그 이유를 말씀하시지 않으니 알 수는 없지만, 저와 여러분의 삶에 있는 수고로움이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언젠가 이르신 말씀이 생각납니다. “많은 사람들이 생의 수고로움 때문에 나의 사랑을 의심하지만 나는 너희를 사랑한다. 진정 사랑한다”


성경을 통하여 생의 수고로움의 근원은 인류의 원죄에 그 뿌리를 두고 있지요. 하지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속 받았고, 우리의 영과 만물이 탄식하며 온전한 구속의 날을 기다리고 있는 날 동안 이런저런 수고로움이 있겠지만, 하나님의 사랑과 뜨거운 열심이 결국 우리를 영광 위의 영광의 나라로 이끄실 것이니 그 안에서 기뻐하는 우리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 사랑의 하나님이 어떻게 심신이 지치고 영적으로 탈진한 엘리야를 어루만지셨는지 살펴볼까요?


성경을 읽으면서 제가 궁금한 것은 왜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너는 나가서 여호와의 앞에서 산에 섰으라” 하시고는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었으나 그 속에 계시지 아니하였고, 그 후에 지진이 있었으나 그 속에도 계시지 아니하였고, 지진 후에 또 불이 있었으나 불 속에도 계시지 아니하셨을까? 그 후에 세미한 소리로 말씀하셨을까? 그것이 궁금하였습니다.


시내산에서 이스라엘 백성 앞에서 강림하시고 말씀하실 때에는 빽빽한 구름과 우뢰와 번개와 심히 큰 나팔소리 가운데서 말씀하셨는데, 모세에게도 떨기나무 불 가운데서 말씀하셨는데 왜 엘리야에겐 세미한 음성으로 말씀하셨을까요? 왜 바람과 지진과 불 속에서는 계시지 아니하셨을까?


출19:16 제 삼 일 아침에 우뢰와 번개와 빽빽한 구름이 산 위에 있고 나팔 소리가 심히 크니 진중 모든 백성이 다 떨더라

출19:17 모세가 하나님을 맞으려고 백성을 거느리고 진에서 나오매 그들이 산 기슭에 섰더니

출19:18 시내 산에 연기가 자욱하니 여호와께서 불 가운데서 거기 강림하심이라 그 연기가 옹기점 연기같이 떠오르고 온 산이 크게 진동하며

출19:19 나팔 소리가 점점 커질 때에 모세가 말한즉 하나님이 음성으로 대답하시더라


이 부분이 궁금하여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곧장 영감을 주시거나 말씀하시지 아니하셔서 다소간의 시간을 기도하며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주님께서 이렇게 가르치셨습니다.


“능력의 하나님의 임재하시는 경우에는 영광과 권능이 따른다. 그것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권능과 능력 때문이며 한편 하나님을 경외하게 하려 함이니라”


“어디에도 계신 하나님께서 바람인들, 지진인들, 불속인들 어딘들 계시지 아니하셨겠느냐? 어떠한 모습으로들 나타나지 못하시겠느냐? 다만 그 후에 세미한 음성으로 엘리야에게 나타나신 것은 심신이 지치고 영적으로 탈진한 엘리야의 마음의 깊은 곳을 사랑으로 부드럽게 만지시기 위함이다” 가르쳐 주셨습니다.


주님의 가르치심을 다소 풀어서 설명 드리면, 가령 우리의 자녀가 어떤 일로 기죽고 풀이 죽어 있다고 생각해 봅시다. 자녀를 키우다보면 때로는 큰 소리로 호통을 쳐야할 때가 있고 때로는 조용하고 자상한 목소리로 어루만져 주어야 할 때가 있지요? 바로 그런 말씀인 것입니다.


시내산에서는 큰 우뢰와 번개와 빽빽한 구름 속에서의 심히 큰 나팔 소리 가운데 여호와께서 현현하신 것은 백성들로 하여금 경외함을 배우게 하려 함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엘리야는 지금 심신이 지치고 마음이 상하고 영적으로 탈진하여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강력한 바위를 부수는 바람이나 큰 지진이나 불 가운데서 현현하지 않으신 것입니다. 크고 요란한 소리가 아닌 부드럽고 자상한 어머니의 목소리처럼, 아주 조용하고 세미한 그리고 사랑어린 음성으로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는거니?”라고 물으시며 마음을 추스릴 수 있도록 다독거리신 것입니다.


당신의 사람, 당신의 백성, 당신의 자녀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엿볼 수 있는 장면이지요.


결국 엘리야는 이러한 하나님과의 만남과 사랑스런 어루만지심, 그리고 강한 바람과 지진과 불의 살아계신 하나님의 권능과 능력과 영광을 보고 새롭게 힘을 얻어서 남은 소명의 길을 아름답게 걸어가다 하늘로 불 병거를 통하여 들림을 받게 되지요.


이 성경의 물음에 대하여 응답하시던 주님은 이것과 아울러 이와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바람과 지진과 불과 같은 이런 현상이 있던 없던 나는 어디에나 있다. 그러므로 항상 내 앞에서 행하지니라. 너도 어려움이 많으나 강하고 담대하라. 나는 내 뜻대로 모든 것을 행하는 능력의 하나님이니라”


사랑하는 주 안에서 한 지체된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제게 이르신 말씀들은 동일하게 여러분에게도 이르시는 말씀이라고 제가 말씀드렸지요. 하나님은 마지막으로 저와 여러분 모두가 때때로 이런저런 일들로 지치고 힘들어 하지만, 우리 모두가 새 힘을 얻어서 남은 소명과 사명과 생의 길을 걸어가길 원하셨습니다.


사40:31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


짧지 않은 나름 긴 말씀과 글이었지만, 이 속에서 저와 여러분의 각 심령에 비춰주시는 성령님의 조명하심이 있어서, 우리 모두 하나님과 말씀과 그분의 가르치심 속에서 약한 심령과 무릎을 다시금 강하게 하여 새롭게 강하고 담대하게 일어나서 엘리야가 그리하였듯 남은 생애 우리도 승리하는 삶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오직 주만 영원히 영광을 받으시옵소서. 영원부터 영원까지 오직 주만이 우리의 주가 되시나이다. 우리의 삶의 형편이 어떠하던 결국 당신 안에서 승리를 쟁취하게 하소서. 그리하게 하실 줄을 믿음으로 고백 합니다. 할렐루야! 아멘!  

<저작권자: cafe.daum.net/riverofwater, 초록 등불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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